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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한 마을이 불타고 있다
양장
윤은한
창연 202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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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연시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물건리 방조 어부림
불을 지른 자는 안갯속이다
산불 진화대원의 사투
산불을 끄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우주의 한 마을이 불타고 있다
감나무
초록의 고사리 새순
대나무의 울부짖음
붉나무
산불감시원의 하루
봉수대 첫날밤
우듬지 시계는 멈췄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제2부


아버지는 민둥산에 나무를 심었다
수양버드나무
소나무의 임종
곡돌사신曲突徙薪
산불 조사 감식
계수나무
모닥불의 유혹
산불진화대원 안전수칙
산불 감시 초소
꺼지지 않는 원죄
불이 죽어서 잠을 깼다
옻나무
성산산성

제3부


굴참나무
잿더미의 기억
프로메테우스와 불
묘소 앞에서
성황당 소나무
무등산이 의병장에게 보내는 편지
코시모 숲속의 화재
가을비 내리는 라만차
지리산 멧돼지
천왕봉 산불
반성 수목원
공중진화대원
원룸

제4부


동백나무 상륙작전
불새의 탄생
엄나무
폭설에 쓰러진 소나무
그해 겨울, 땅이 먼저 죽었다
엄마는 비상벨
입산통제구역
소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잠든 코알라
산불방지 기원문

시집 해설
불의 시학과 생명의 윤리
- 임창연(시인, 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

2016년 《리토피아》로 시 등단 경상남도문인협회 회원, 경남문심회 회장 역임 시집 『야생의 시간을 사냥하다』 『우주의 한 마을이 불타고 있다』 산림녹지공무원으로 34년 근무, 산불 강사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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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7월 1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26*196*13mm
ISBN13
9791191751949

출판사 리뷰

불의 시학과 생명의 윤리
- 『우주의 한 마을이 불타고 있다』를 읽고

임창연(시인·문학평론가)

들어가며 - 윤은한 시인과 게리 스나이더와의 생태적 공명


윤은한의 시를 더 깊이 있게 읽기 위해 미국의 시인 게리 스나이더(Gary Snyder, 1930~)와의 비교는 매우 유의미하다. 스나이더는 자연과 불, 불교 사상과 생태적 삶을 결합한 시적 실천으로 20세기 미국 생태시의 대표자로 자리 잡은 인물이다. 그의 대표작 『거북이섬(Turtle Island)』은 1975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그속에는 인간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예언자적 시선이 담겨 있다. 윤은한 역시 그러하다. 그는 재난의 현장을 묘사하면서도 단순히 참상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생명에 대한 윤리적 물음을 시의 형식으로 끌어들인다.

스나이더의 시에는 불이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파괴만을 상징하지 않는다. 『The Practice of the Wild』에서 그는 불을 “정화의 에너지이며, 죽음과 재생의 윤리”라고 보았다. 윤은한 또한 산불을 재난으로 보되, 그 속에서 다시 자라나는 고사리 새순을 응시한다.

두 시인 모두 자연은 회복력을 가진 존재임을 믿으며, 인간은 그 순환을 지켜보며 겸손해야 함을 설파한다.

이러한 공통의 인식은 두 시인의 시학을 생태윤리의 공명선으로 연결시킨다. 스나이더는 한때 요세미티에서 산불감시원으로 일하며 자연을 온몸으로 겪었고, 그 체험은 그의 시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윤은한의 경우, 시집에 수록된 시 「산불감시원의 하루」나 「산불진화대원 안전수칙」 등을 통해 우리가 보통 지나치는 현장의 노동과 긴장, 침묵을 시로 기록해낸다. 두 시인의 차이는 문화와 배경에 있지만,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동일하다. 자연은 배경이 아닌 주체이며, 인간은 그 일부라는 사유가 공명한다.

또한 스나이더는 선불교와 도가사상을 흡수한 시인이다. 그의 시는 종종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원리에 기대어,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탈각한 언어를 구사한다. 윤은한의 시도 또한 유사한 사유를 드러낸다. 숲의 침묵과, 불에 타버린 나무의 고요함, 다시 돋아나는 새순 앞에서 시인은 어떠한 언어적 허세도 걷어낸다. 그의 시적 언어는 비움과 기다림의 윤리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스나이더와 궤를 같이한다.

마지막으로, 두 시인의 시는 기록을 넘어선 예언의 언어라는 점에서도 닮아 있다. 스나이더는 『TurtleIsland』에서 “다음 세대가 살아갈 땅은 우리가 어떻게 오늘을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썼고, 윤은한은 시인의 말에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단지 자기반성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향한 윤리적 제안이자 선언이다.

이처럼 게리 스나이더와 윤은한은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지만, 그들의 시는 동일한 철학적 줄기를 공유한다. 그것은 ‘불’을 중심으로 한 생태 시학이자, 문학이 지닌 가장 근원적인 책임 - 즉, 존재를 응시하고 지키려는 마음 - 이다.

1. 불길을 마주한 언어의 기원

윤은한의 시집 『우주의 한 마을이 불타고 있다』는 오늘날의 한국 시문학에서 보기 드물게 재난과 생태의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적 기록물이다. 제목부터가 단순히 산불의 비극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주의 차원으로 확장된 시적 상상력 속에서 인간과 생명, 문명과 자연이 어떻게 소멸하고, 또다시 되살아나는지를 묻는다. ‘우주의 한 마을’이라는 표현은 지역성과 보편성을 동시에 담아내며, ‘불타고 있다’는 문장은 현재형으로 지속 중인 위기를 암시한다. 이 시집은 단순한 회고의 시가 아닌, 여전히 불씨가 살아 있는 현재의 시학이며, 타오르는 현실 앞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시인의 윤리적 응답이다.

시집은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1부에서는 산불이라는 재난의 직접적 경험과 참상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2부는 숲을 복원하고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과 생명의 회복에 대한 염원을 담는다. 3부는 불과 인간의 관계를 신화적, 역사적, 사회적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마지막 4부에서는 산불 이후 인간과 생명이 남긴 흔적과 그 너머의 상상으로 나아간다. 각 부는 긴밀한 연결 속에 하나의 거대한 시적 서사를 이룬다. 윤은한의 시는 불을 단지 파괴의 상징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는 불의 이중성을 인식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윤리를 함께 끌어안는다. 그래서 이 시집은 단순히 불을 기록하는 시집이 아니라, 불과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 혹은 그 운명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에 대한 내적 사유를 품은 시집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언어는 고발이 아니라 경청이며, 분노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 피어오르는 기도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 시집은 불탄 숲을 보며 고개를 돌리는 대신, 그 잿더미를 걷고 살아남은 존재들의 숨결을 붙잡으려는 언어의 의무에 충실하다.

2. 재난의 언어, 시의 윤리


그날의 산불은 괴물이었다
돌풍이 미쳐 날뛰던 시간
살다 살다 그런 불은 처음이었다

바람이 너무 세어
불이 하늘을 타고 날았다
모든 것이 폭삭, 재가 되고
속절없이 무너졌다

매캐한 연기가 마을을 덮고
골바람을 타고 불길이 솟구쳤다
휘발유에 불붙듯
맹렬하게 번져갔다

돌풍이 몰아치자
우리는 산불 속에 갇혔다
머리통만 한 불덩어리가 날아다녔다

바람이 스친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불은 대나무 숲으로
마을 깊숙이 옮겨붙었다
캄캄한 어둠 속
살기 위해 뛰었다

숟가락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남은 건 오로지 참담함

산불은 괴물이었다
- 「우주의 한 마을이 불타고 있다」 전문

『우주의 한 마을이 불타고 있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시인이 산불을 목격하는 자리에만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언어의 자리로 옮겨와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시는 목격자의 정직함을 담고 있으며, 그것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체험을 통해 얻은 실감에서 비롯된다. 시편 「우주의 한 마을이 불타고 있다」는 대표적으로 이러한 시인의 시적 태도를 드러내는데, 이 시에서 산불은 단지 자연의 재해가 아니라, ‘괴물’로 형상화되어 인간과 공동체, 생명의 질서를 공격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산불은 괴물이었다”는 반복 구절은 시인의 체험이 얼마나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그 고통의 크기를 직면하게 만든다.

어린아이가
질문을 한다
“선생님
산불은 누가 꺼요?”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소방관이
소방차가
공무원과 군인들이
헬리콥터가 끈다고

하지만
산불 속으로
걸어 들어간
산불진화대원은

타오르는 불길 속에
이름도
숨소리도
묻혀버렸다
- 「산불을 끄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전문

또한 「산불을 끄는 사람은 누구인가요?」라는 시에서는 어린아이의 순진한 질문을 통해, 재난의 이면에 숨겨진 노동과 희생, 이름 없는 존재들의 윤리를 환기시킨다. 소방관, 공무원, 군인 등은 보도자료에 오르지만, 산불진화대원의 얼굴 없는 사투는 말 그대로 “숨소리도 묻혀버”린다. 이 시는 시인이 단지 시적 언어를 구사하는 자가 아니라, 기록자의 책임을 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편이다. 재난의 언어는 다루기 어렵다. 그것은 언제나 감정과 윤리, 책임과 사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은한은 그 경계를 섬세하게 통과한다. 그는 고통의 과잉에 빠지지 않으며, 그렇다고 감정을 지워내지도 않는다. 그 대신 그는 침묵을 말로 옮기고, 부재를 존재로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시를 구성한다. 이 점에서 그의 시는 오히려 유가족의 증언처럼 읽힌다. 남겨진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 바로 ‘기억’의 시학이다.

3. 불의 계보학: 신화와 인간 사이

3부에 이르면 윤은한은 불에 대한 시적 사유를 신화의 차원으로 확장한다.

제우스 신은
하늘 깊숙이 불을 숨겨두었다
신만이 다룰 수 있고
인간은 만질 수 없는 빛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신을 닮은 인간을 보았다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위대한 선물을 주고 싶었다

여신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태양의 수레 올라
붉은 불씨 하나를 훔쳐
인간에게 건네주었다

삶을 바꾸는 시작이었다
도구를 만들고 땅을 갈아
문명을 일구었으니
동물보다 월등한 존재가 되었다

제우스 신은 염려했다
불은 따뜻하지만
그만큼 위험하다는 것을

인간이 불을 사용하면서
불치병이 피어올랐다

그것은 “교만이었다”
- 「프로메테우스와 불」 전문

「프로메테우스와 불」은 그 대표적 사례로, 이 시는 인간에게 문명의 기원을 제공한 불이 동시에 인간의 파멸을 이끌 수 있다는 양가성에 주목한다. 시인은 제우스의 입장이 아닌, 프로메테우스의 시선에 서서, 인간이 불을 다룰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다. 이 시가 주는 핵심 메시지는 ‘교만’이다. 문명은 불을 통해 진보했지만, 그 불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따라 문명은 타락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이 시에 내포되어 있다. 불은 이 시집 전반에서 문명의 계보를 형성하는 기호다.

굴뚝 아래
장작더미를 쌓아두는 일
산불은 불씨보다
사람의 무심함에서 시작된다
- 「곡돌사신曲突徙薪」 부분

여름이 저물 무렵
불을 피운 해수욕장 소나무들이
갈색으로 시들며 하나둘 쓰러졌다
- 「모닥불의 유혹」 부분

그러나 불길 앞에서
그 의연함은
천덕꾸러기가 되었고
재앙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 「소나무의 임종」 부분

「곡돌사신」, 「모닥불의 유혹」, 「소나무의 임종」 등은 불이 인간의 무지와 오만, 무심함 속에서 어떻게 재앙으로 전이되는지를 보여준다. “산불은 불씨보다/ 사람의 무심함에서 시작된다”는 문장은 그 자체로 윤리 선언이다. 우리는 흔히 자연의 문제로 재난을 돌리지만, 시인은 그 근원을 인간의 삶 속, 일상의 사소한 선택들 속에서 찾아낸다. 이와 같은 시적 시선은 생태적 감수성과 더불어 문명 비판의 날카로운 통찰을 드러낸다.

4. 숲과 인간: 회복의 언어

2부와 4부에서는 산불 이후의 삶, 회복과 복원의 문제에 대해 집중한다. 이 부에서 가장 뚜렷한 정조는 ‘기억’과 ‘돌봄’이다.

나무 한 그루 없던 산
비 오면 흙이 쓸려 내려가던 곳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편백
어린 묘목들 지게에 얹고
굽이굽이 오솔길, 비탈길을 오르셨네

손이 부르트도록 흙을 고르고
날마다 물지게로
한 그루, 한 그루 정성껏 물을 주셨다

젓가락으로 송충이 잡아 흙 깊이 묻고
어린나무 칡넝쿨이 덮을 땐
낫으로 거칠게 걷어내며 지켜냈다

무거운 비료 포대 어깨에 메고
숨이 턱에 차오르도록 산을 오르던 아버지
깊은 정성의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 푸른 숲, 아버지의 숨결이 되었다
- 「아버지는 민둥산에 나무를 심었다」 전문

「아버지는 민둥산에 나무를 심었다」는 시는 생태적 복원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로 끌어온다.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며 물을 주고, 풀을 걷어내며 나무를 지켜온 아버지의 모습은 단순히 ‘조경’의 차원을 넘어선 생명의 윤리, 자연에 대한 헌신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말한다. “푸른 숲, 아버지의 숨결이 되었다.”

이끼 낀 그늘 아래
뒤틀린 나무들만이 남았다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에게 몸을 기대어 버텼다

팽나무는 깊은 주름 안고도
꺾이지 않은 채 서 있었다
휘어진 가지를 내밀어
소나무가 떠난 자리를 메웠다
-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부분

또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 등은 생태적 다양성과 생명의 불완전함을 존중하는 시인의 태도를 드러낸다. 숲은 완벽한 아름다움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굽고 휘어진 것들, 상처 입고 부러진 것들의 어울림 속에서 유지된다는 생태 철학적 통찰이 이 시들에 깃들어 있다. 이는 윤은한 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그는 ‘강한 것’이 아니라 ‘버티는 것’에 대한 존경을 보여주며, 그것이야말로 생존과 회복의 조건임을 시로 증명한다.

5. 불의 기억과 생명의 의례

불은 기억의 형태로도 존재한다. 시인은 잿더미와 재 속에 남겨진 흔적들을 수습하고, 그것을 ‘의례’로 회복한다.

갑작스레 번진 불길은
조상의 묘를 새까맣게 태웠다
반질거리던 비석마저
검게 그을려, 얼굴을 알 수 없었다

조상을 뵐 면목 없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납덩이같은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고
씁쓸함만 가득 채웠다

볏짚을 작두에 썰며
묘 앞에 몸을 낮추었다
타버린 흙 위에 볏짚을 뿌리고
맑은 술 한잔 올린 뒤
두 번의 절을 올렸다

잔디를 살리기 위해
묘지 위에 새 흙을 덮는다
- 「묘소 앞에서」 전문

「묘소 앞에서」에서처럼, 조상 묘소까지 태워버린 산불 앞에서 시인은 “납덩이 같은 마음이/ 가슴을 짓눌렀고”라고 쓴다. 이 마음은 단지 가족의 기억을 넘어선, 공동체 전체의 윤리적 고백처럼 들린다. 불은 과거를 지우지만, 시인은 그 지워진 자리에 새로운 의례를 세운다. 볏짚을 뿌리고, 술 한잔을 올리고, 절을 하는 행위는 말하자면 인간이 재와 무너짐을 넘어서 다시 공동체로 회귀하려는 시적 의지이다.

차가운 바람 스치는 봄날
서석대 높이 올라
김덕령 장군을 불러봅니다

임진왜란 고통스러운 시절
고향의 그리움은 접어두고
분노는 산을 태웠지요

“춘산春山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
저 산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에 연기 없는 불은 끌 물 없어 하노라”

억울함이 밀려와도
검게 타버린 숲속에서
참나무는 여전히 숨을 쉬고
진달래 꽃눈은 봄을 기다립니다

장군님
무등산은 꿋꿋하게 잘 살고 있으니
아까시꽃이 피면
목말을 타듯 슬쩍 내려오세요

충장로에서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뜨거운 눈물 한번 흘려봅시다
- 「무등산이 의병장에게 보내는 편지」 전문

같은 맥락에서 「무등산이 의병장에게 보내는 편지」는 불이 민족의 분노와 기억을 함께 담는 장치로 사용된 예다. “춘산春山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는 시조를 인용하며 시인은 임진왜란과 의병의 기억을 산불이라는 상징 속에서 되살린다. 여기서 불은 단지 파괴의 요소가 아니라, 기억을 불러오는 불씨, 역사를 호명하는 신호탄이다. 그러므로 윤은한의 시에서 불은 양면적이다. 하나는 생명을 위협하는 불이지만, 다른 하나는 잊힌 것을 불러내는 불이다. 이 양면성은 시인의 시를 더욱 입체적이고 철학적인 구조로 만든다.

6. 시적 전략과 형식의 조율

윤은한의 시는 간결하다. 대부분의 시는 20행 내외의 짧은 형식을 유지하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이미지와 정서의 진폭은 매우 크다. 그는 장황한 수사를 피하며, 직접적이되 감정의 선을 넘지 않는다. 이 시집은 마치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처럼 독자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며, 함께 호흡하고자 한다. 특히 각부의 첫머리에 배치된 시들은 주제를 강하게 환기하면서 전체 시집의 흐름을 이끄는 원심력으로 작용한다. 한편으로 윤은한은 각 시에 지리적 혹은 문학적 배경을 짧게 병기하여 사실성을 더하고 있다. 이는 시집의 다큐적 성격을 강화하는 장치로, 독자가 시를 통해 한국의 자연환경, 생태 문제, 산불 방지와 복원 현장을 보다 명확히 인식하게 돕는다

아침
도시락을 싸 들고
잠연히 산으로 오른다

옷과 모자는 단정히
신문이나 스마트폰은 멀리
술과 담배를 금한다

자리를 비울 수 없고
산불을 발견하면
지체 없이 보고한다

무전기로
초소별 호출이 시작된다
- 「산불 감시 초소」 부분

방심하지 말고
침착 차분하게 판단하여 행동하라
무선통신을 확인하라
명확한 지시를 내려라
항상 인원통제를 유지하라
불을 진화할 때에는
적극적으로 진화하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산불을 끄면서
이 모든 수칙을 지키는 일조차
버겁다
- 「산불진화대원 안전수칙」 부분

「산불 감시 초소」나 「산불진화대원 안전수칙」처럼 서사보다는 기록에 가까운 시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시와 보고서, 기록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실험적 형식이라 할 수 있다.

7. 맺으며 - 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주의 한 마을이 불타고 있다』는 불의 기록이자 생명의 윤리학이다. 이 시집은 불을 통해 상처를 말하고, 재를 통해 생명을 다시 쓰며, 침묵을 통해 말을 건다.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한 시인이 불길 속에서 문학의 윤리를 지켜낸 방식을 본다. 시인은 질문한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물음은 독자의 자리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물음은 단지 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윤은한의 시는 고요하다. 그러나 그 고요는 결코 무력한 침묵이 아니다. 그것은 산불 이후의 침묵처럼 무겁고도 깊다. 언어는 타버렸지만, 시는 남는다. 잿더미 속에서도 초록은 다시 피어난다. 그 초록의 언어가 우리 마음에 뿌리내리기를, 그 불씨가 경각심으로 살아 있기를, 우리는 오늘 이 시집 앞에서 조용히 다짐해 본다.

시인의 말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 불길 앞에 섰습니다. 산불은 순식간에 숲을 삼켰고 수많은 생명이 그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자연이 빚어낸 결은 검붉은 재로 바뀌었고 초록을 잃은 산림은 야생의 숨결조차 사라진 검은사막이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타버린 그 자리에서, 삶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소명을 갖게 합니다.

이제 산불은 낯선 재난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만의 아픔이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되풀이되는 비극입니다. 미국과 칠레의 산촌, 터키와 그리스의 해안 숲도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재해를 넘어선 기후 위기의 실체이며 생태계가 무너지는 현장입니다.

불탄 숲에 어린나무가 다시 자라는데 30년, 황폐해진 땅이 제 향기를 되찾는 데는 10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만큼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입니다.

문학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고통의 자리를 돌아보며, 지켜야 할 가치를 기록합니다. 이 글은 산불의 기록이자 상처 입은 생명에 바치는 작은 위로입니다. 믿음으로 숲을 걸었고, 타버린 자리에 싹이 트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산불이 생태계 순환의 일부로 생물 다양성에 기여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초대형 산불 앞에서는 자연의 질서마저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숲은 점점 더 관리되지 않은 밀림으로 변해가고, 이는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예방의 지혜이며, 숲을 지키기 위한 실천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우주의 미래에 책임 있는 존재입니다. 이 작은 목소리가 경각심을 일으키고, 생명을 지키려는 다짐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숲을 지키는 일은 거창한 행동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조용한 결심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2025년 여름의 초입에
윤은한

추천평

‘숲’은 윤은한 시의 성소(聖所)이며 상상력의 원천이다.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인의 성소였다. 언덕 위에 성채를 짓고 평화와 안식을 기원하며 신에게 다가가 모든 것이 영원하기를 기원했다. 니케 신전, 파르테논 신전, 에릭테온 신전 등이 그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시대였던 고대 그리스 유적은 지금도 그리스 국민들 자긍심의 표상이다. 이곳에서 그들 문화와 역사를 얘기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세계 문화의 중심이라 자부하던 그리스인들이 그러하듯 시인에게도 자신만의 성소가 있다. 제사장이 제물을 바치고 의식을 행하는 것처럼 시인 역시 원고지 위에 한땀 한땀 바늘을 누벼 시의 옷을 짓는다. 건축가가 신의 음성을 들으며 신전을 짓듯 시인은 제의(祭儀)를 행하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

윤은한 시인의 성소는 수십 년 일용할 양식의 텃밭이 된 자연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원예(園藝)라고 할 수 있는데, 윤 시인의 경우 그 중심에 ‘숲’이 있다. 실제 경남도청 산림녹지 공무원으로 34년을 봉직하였고, 그 기간 중 경남산림환경연구원에서도 수년간 근무하였다. 현재도 그런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고 있기에 숲과 시인은 한 몸이라고 해도 과언 아니다. 이렇듯 생활의 근원이 된 숲은 시의 성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에게 숲은 삶의 뿌리이며 상상력의 원천이다. 이 시집을 세상에 내어놓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기에 일독을 권한다. - 이달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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