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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내가 다시 나를 찾은 날
제1부 별 헤는 마음 별똥별의 마음 별을 노래하는 마음 산티아고의 마음 별처럼 빛나고 싶은 마음 아버지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 제2부 우주를 겨드랑이에 낀 채로 덕이 출렁출렁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로 자신의 고유한 걸음걸이로 영감이 피어나는 순간에 모르는 곳으로 넘어가려고 발버둥 치면서 우주를 겨드랑이에 낀 채로 제3부 신의 있는 사람 지적인 사람 성공한 사람 ‘장오자’라는 사람 유유자적하고 장수를 누리는 사람 참된 사람 감동과 호기심이 넘치는 사람 제4부 건너가는 시선 야수의 시선 신뢰의 시선 자신의 생각에만 매몰되지 않는 시선 무불위(無不爲)의 시선 제5부 정해진 마음 넘는 법 정해진 마음 넘는 법 ‘아큐(阿Q)’로 살지 않는 법 ‘내 손’에 집중하는 법 무모해지는 법 종속을 넘는 법 곤(鯤)이 대붕(大鵬)이 되는 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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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산다’고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면서 ‘내가 나로 빛난다’는 뜻이다. 내가 나로 빛나면 유한한 시간 속에 무한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원하는 것’이다. … 원하는 것이 없는 삶은 빛날 수 없다. 원해야 한다!
--- p.40 새벽 기차에 올랐다. 익산쯤 왔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7시 조금 안 된 시각. 사람에게는 용건을 듣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다. 전화벨이 울리자, 임종하는 효도의 길이 이미 지났음을 직감했다. 아버지는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혼자, 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셨다. “나 인자 그만 먹을란다”라고 말씀하신 후, 8일간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다. 그리고 가셨다. --- p.55 눈앞의 편리함을 위해 공공의 책임감을 포기하거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경박함이 있다. 이런 경박함을 버리고 불편함을 감당하며 인간으로서 품격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덕(德)이 있는 사람이다. --- p.72 자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확인하는 자는 그 순간에 영원을 함께 경험한다. 자기 존재의 자각, ‘순간’과 ‘영원’이 교차하는 성스러운 자리다. --- p.107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한평생을 산다는 것은 책받침 두께 정도의 얇은 틈새를 천리마가 휙 지나가는 것과 같다. 홀연할 따름이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 『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 --- p.108 참된 인간(眞人), 즉 무엇인가 그려서 변화를 야기하는 인간, 창의적 인간, 모험하고 도전하는 인간의 모습은 고요하다. 외부 세계를 소유적 시각으로 제한하지 않으니 어디에 갇혀 있는지 알 수가 없다(是之謂眞人 其容寂 … 與物有宜 而莫知其極). --- p.153 지금 우리나라는 어떤 면에서는 한계에 갇혀 있고, 어떤 면에서는 혼란스럽다.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우선 해결해야 할 몇 가지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은 신뢰의 회복이다. 지식인, 법관, 정치인, 식당 주인, 운전기사, 농부, 어부 등등 사회 전반에 ‘신뢰’가 무너졌다. … 말을 지키지 않는 것은 원칙을 무너뜨리는 일이다. --- p.184 공동체의 평화를 말하면서 정작 나라의 힘을 키우는 데 소홀하다가는 그 평화 한 조각도 자신의 땅 위에 세우지 못할 것이다. 나라를 걱정하면서 부국강병을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은 다 가짜다. --- p.201 공자는 인격을 완성하는 최고의 방법을 말해준다. “자기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 문제는 이 말을 듣고 실생활에서 정말로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가, 여부인데 대개는 시험지 답안에만 쓰고 끝난다. 그것을 구체적인 생활로까지 끌고 나가는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 p.223 도가 철학을 좀 아는 사람들은 ‘무위’를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무슨 일이건 그냥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으로 이해하고는 ‘착실한 보폭’을 하수의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지적인 게으름이다. --- p.250 대붕은 조그맣던 곤이 엄청난 축적의 과정을 겪은 후, 몇천 리나 되는지도 모를 정도로 커지고 나서 된 영물(靈物)이라는 것이다. 매우 두터운 축적의 과정이 영물을 만들었다. 두터운 축적의 공, 즉 적후지공(積厚之功)을 의식하지 않은 채, 대붕의 ‘자유’나 ‘소요유(逍遙遊)’를 흉내 낸다면 다 방종에 가까울 뿐이다. --- p.250 |
노장 철학의 대가, 최진석의 진솔한 고백이 돋보이는 ‘삶’과 ‘철학’ 이야기
자기 삶의 ‘빛나는 별’로서 영원한 우주적 존재로 건너가는 법 성공을 바라는 자들을 향한 통렬한 일침!, “공이 이루어지면, 그 공을 차고앉지 말아야 한다(功成而不居).” 별똥별을 보며 죽음을 자각하고 영원을 꿈꾸다 고등학교 1학년, 고향 집 마당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던 저자는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불현듯 ‘내가 언젠가 죽을 수도 있다’을 사실을 자각한다. 그것은 불혹이 넘도록 그를 따라다니던 죽음의 공포를 갖게 된 계기였다. 그 후 저자는 줄곧 죽음 너머의 ‘영원’을 갈구한다. 그 갈망 끝에서 ‘인간이 존재 자체로 우뚝 설 때 별처럼 빛날 수 있’음을 깨닫는다. ‘별똥별’에서 시작된 죽음에 대한 탐구는 저자를 철학으로 이끌었고 그의 철학과 삶의 토대가 되었다. 저자는 책의 앞머리에서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기 삶의 정신적, 물질적 자양분이었음을 따뜻하면서도 애틋한 시선으로 돌아보고 어릴 적 한 조각 추억처럼 남은 큰누나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을 한 몸처럼 인식하고 살아가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죽음으로 향하되 영원과 절대 자유를 꿈꾼 저자는 노장 철학의 무위자연과 곤(鯤)이 대붕(大鵬이 되는 적후지공(積厚之功)의 경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성찰과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으로 바라본 우리 사회 ‘나’라는 존재에서 출발한 저자의 철학적 시선은 사회와 국가로 옮아간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현상 유지와 앞선 나라의 이론과 시스템을 따라 하기에 바쁜 나머지, 사회의 문제를 개인적인 일로 치환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치열함이 부족했던 결과로 ‘종속’의 틀에 갇혀 버렸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을 공부할 때도 플라톤과 장자 등 철학자의 철학적 결과물인 이론만을 답습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론만을 되새김질하는 철학은 진정한 철학이 아니기에 거기서 벗어나 철학자의 철학적 방법론과 사유의 높이 그 자체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가장 높은 사유의 단계라고 규정하는 철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질문’하고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 ‘낯설게 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일상적인 사건 속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은 ‘사과가 떨어진다’는 단순한 사건을 보고 ‘왜 그럴까?’라는 질문과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저자는 “거의 모든 철학서에 ‘철학은 경이에서 출발한다’라고 쓰여 있다. 그 말은 철학은 낯설게 하기에서 출발한다는 의미다”라고 적고 있다. 세상 만물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경이로움, 바로 거기서 철학은 시작된다는 인식이다. 낯설게 보기 위한 단초인 ‘호기심’이라는 작은 불꽃이 피어날 때, 인간은 비로소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거기서 새로운 지식과 이론이 생겨나 세계를 전략적으로 다루게 된다. 낯설게 보기라는 철학적 사유의 시작이 세계를 주체적으로 다루는 전략의 수립으로까지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철학적 사유의 시선을 갖자고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육고(陸賈)의 충언과 윤편(輪扁)의 수레바퀴를 넘어서 저자는 우리 사회가 이미 중진국 상위레벨에 도달했으면서도 선진국으로 나아갈 동력을 상실했다고 개탄한다. 그것은 새로운 단계에 걸맞은 전략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기득권 세력이 ‘성공의 덫’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건국 세력부터 산업화 세력, 민주화 세력은 여전히 자신들이 이룬 공을 차고앉아 기득권이 되어 국가의 미래에 대한 어젠다를 만들지 못한다. 그래서 저자는 장자의 “공이 이루어지면, 그 공을 차고앉지 말아야 한다(功成而不居)”는 말을 빌려 성공의 기억에 갇힌 이들에게 성공의 기억과 현실 안주에서 벗어나라고 일갈한다. 저자는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이 새 시대를 성공으로 이끈 비결로 말 잔등에 올라 세상을 도모할 수 없다는 육고의 충언을 받아들여 경전을 공부함으로써 새로운 비전을 가졌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새로운 세상은 그에 걸맞은 통치이념과 전략으로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수많은 학인(學人)이 외국에 나가 선진 학문과 문물을 배워왔다. 그럼에도 학문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 고유의 것을 거의 갖지 못했다. 그것을 저자는 윤편의 일화를 들어 외국 문물의 껍데기만을 들여왔을 뿐 윤편의 손에서 비롯된 수레바퀴를 만드는 그 기술을 배워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학문적 성과나 결과만을 배울 뿐 과정을 중시하지 않은 탓이다. 그래서 저자는 윤편의 수레바퀴를 넘어 윤편의 손에서 비롯된 기술을 배우고 그것마저도 넘어서야 한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일류국가, 선도국가로 나아가고 철학적 사유의 높이를 가지는 길이 될 것이다. 저자는 중국의 혼란기였던 춘추전국시대에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설파한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사회를 바꿔야 더 높은 단계로의 도약이 가능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철학이 이론을 넘어 진정한 철학이라 부를 수 있는 ‘실천하는 철학’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 철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라 힘주어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