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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아끼지 말고 꺼내세요
나를 닮았지만 나는 아닌 11 좋다, 신기하다 말고 16 당신만을 위한 얼굴을 마주한다면 21 상대적으로 불변하는 연못 27 여름의 발 : 이미지에 대하여 32 호─시 : 시를 선물하는 일에 대하여 38 가장 아픈 곳이 몸의 중심이 되듯이 45 바람을 누르고 놓인 단어들 50 얘들아, 무엇을 대접할래 56 “깨끗한 돈을 줄게”─채에게 61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삼각형 66 젊은이의 음지 70 투명한 옷을 직조하기 76 시는 술처럼 산문은 물처럼 82 마감을 앞둔 3월의 시인 같은 플레이리스트 86 2부 모험가들에게 이리 같은 이불 같은 나 같은 97 ‘시’라는 용의자를 찾아서 104 나 말고 내 시를 믿자 110 내 이름은 시인, 탐정이죠 115 방과 가방을 털어 소재를 얻기 120 백 번 불고 백한 번 멈추는 바람처럼 125 절대 독자 131 3부 나는 금붕어를 주었는데 너는 개구리를 받았네 고리 141 여름에게 초대된 사람 145 지구를 포기하는 방법에 149 말줄임표라는 쿠션 159 모르면 물어보자 163 남의 칼 만져보기 167 나는 금붕어를 주었는데 너는 개구리를 받았네 171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175 뜬구름 채집 179 안전한 미궁 속을 여유롭게 183 사람 놀이 187 “성스러운 밤이여, 그대 내려와 드리우니 꿈도 함께 드리우네” 191 신뢰할 수 없는 직군 195 사랑도 다 같은 사랑이 아니고 199 낙심 203 당신은 그 책을 다 읽었나요 208 |
ㄱㅂ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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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알까. 내가 당신들이 계속 쓰고 읽기를 은근히 바란다는 사실을. 대신 나의 격려나 나의 칭찬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당신들 예측불허한 생으로 인해 그러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그들이 계속 쓰기를 바란다. 오늘 쓴 것이 아주 별로일 수 있고, 영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2030년이 지나도 그들이 계속 쓰고 있다면 나로서는 그들의 시를 읽고 싶어질 게 분명하다. 내가 그러했듯이 그들도 그들의 독자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게 어떤 기분인지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좋다, 신기하다’ 외의 다른 이야기를.
---「좋다, 신기하다 말고」중에서 뭔가를 남기려고 시를 쓰는 건 아니다. 불행한 시간이 내내 고통으로만 채워져 있지 않듯이, 행복한 시간도 내내 기쁨으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다. 속절없이 살며, 살아낸 시간을 시로 쓸 뿐이리라. 인생의 꽃같이 아름다운 시절이 그 쓰는 시간에 있으리라, 나는 주장하고 싶다. ---「호─시: 시를 선물하는 일에 대하여」중에서 ‘대접하기’는 시를 쓰기 위한 밑작업 중 하나다. 잘만 하면 그대로 시가 되기도 한다. 그 시, 그 음식, 훌륭할 것이다. 물론, 천사가 음식을 엎어버릴 수 있다. 그러면 울면서─혹은 화내면서─치우는 것까지 차린 사람이 알아서 다 해야 한다. 거기까지가 대접하기로써 시를 쓴다는 의미다. ---「얘들아, 무엇을 대접할래」중에서 시는 혼자 쓰는 것이지만, 사실은 혼자서는 쓸 수 없다는 것, 타인의 소원과 타인의 고통은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잊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나만의 고통이라고 썼는데 타인의 고통과 연결되는 경우도 잦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타인의 고통에 닿는 일을 피할 길이 없다. 타인의 고통을 잘 다루는 방법을 가르칠 수 없어서, 나는 타인에게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쳤다. ---「“깨끗한 돈을 줄게”─채에게」중에서 지금까지 내가 유일하게 제 의지로 가질 수 있던 빈 것은 흰 종이뿐이었습니다. … 집이 작고, 좁고, 오래 머무르셨을수록, 빈 벽이 없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흰 벽이 있든 없든 괜찮습니다. 우리에겐 흰 종이가 있습니다. 가세요. 등 뒤를 겁내면서 가세요. 겁이 안 난다면, 겁내는 사람처럼 흉내를 좀 내보면서 가세요. 호랑이 앞으로, 절벽 앞으로, 흰 종이 앞으로 가세요. ---「이리 같은 이불 같은 나 같은」중에서 나는 인간이 하는 일을 찾다가 인간이 아닌 것을 찾고, 거기서 도로 인간을 찾는다. 의식하고 보니 그런 고리 속에 있었다. … 이 고리를 타고 도는 일은 내가 잘하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다.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늘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 나는 왜 이 고리 바깥으로 나가고 싶을까? 인간도 비인간도 아닌 종족을 발견하고 싶다. 바깥에 아무것도 없다는 말, 바깥 따위는 없다는 말, 애초에 고리는 안팎 구분이 모호하다는 말, 그런 말 바깥으로. ---「고리」중에서 한 시간 정도 더 끙끙거린 후 접어낸 것은 아름다운 금붕어 한 마리였다. 지요가미가 제 진가를 뽐내는, 내가 봐도 잘 접은 하늘하늘한 금붕어! 주말에 나는 그걸 조심히 들고 가 친구에게 주었다. 친구는 기뻐하며 그걸 받았다. “우와, 화려한 개구리네! 귀엽다!” 아닌데. 나는 금붕어를 주었는데 친구는 개구리를 받았다. 이것 역시 시 같았다. ---「나는 금붕어를 주었는데 너는 개구리를 받았네」중에서 놀이는 ‘노릇’과도 비슷한 것 같다. ‘사람 놀이’에 숙달되면 어느덧 사람 노릇이 수월해진달까. 눈 감기 놀이를 해야 혼자 잠들 수 있었고, 뜀뛰기 놀이를 해야 팔다리를 움직여 뛸 수 있었던 어린애를 어른들이 잘 봐준 덕에 나는 이제 제법 사람처럼 보인다. ---「사람 놀이」중에서 도대체 ‘시인’이란 뭘까. 대화를 이어가기 애매한 이 직업, 나의 생계와 낯선 이에게서 얻을 수 있는 호감도를 전혀 책임져주지 않지만, 정신과 마음, 위엄, 내가 말하지 못하는 나의 모든 고충을 책임져주는 이 직업. 과연 언제쯤 나를 전혀 모르는 낯선 이에게 나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신뢰할 수 없는 직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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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 예측불허한 생으로 인해 계속 쓰기를”
시인이 바람에 실어 보내는 흰 종이로의 초대장 1부에서 저자는 시인으로서 시란 무엇일지 자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2부에서는 〈복희도감〉 등을 통해 들어온 시 쓰기에 대한 여러 질문들에 답변한다. 3부는 저자의 일상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삶의 행간에서 시를 길어내는 방법을 모험가들에게 설명하니,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는 김복희 시인이 시인으로서 시간을 보내는 모든 장면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책이다. 어찌나 숨김없는지, 저자는 독자에게 시인의 삶이 얼마나 고독하고 지난한지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다만 ‘시인 김복희는 이렇게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소소한 다독임을 함께 덧붙인다. 쓰는 사람이 능히 갖는 읽히고 싶다는 욕망과 읽어줄 이 없을 거라는 불안감을 말하면서도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절대 독자’를 믿으라는 대안을 주고, 구절 하나를 쓰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무용해 보이는 시간들을 ‘뜬구름 채집’이라고 명명해주는 식이다. 평생 시를 쓸 수 없는 인간인 줄 알고 살아왔지만, 어쩌다 시인이 되어서도 어디 가서 자신의 직업을 ‘시인’이라고 쉬 밝히지 못하지만, 언어 사이에 말줄임표라는 쿠션을 넣지 않고서는 메시지를 보낼 수 없지만, 아직도 제멋대로 끝없이 추락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지만… 인생은 예측불허하며, 타인과 언어로 연결되는 환상적인 순간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기에. 저자는 못내 반갑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를 쓰고 싶으시다고요?”라고. 모험가님, 진실은 언제나 하나 써야 쓰는 사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쓰는 행위는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시도할 수 있다.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영수증 뒷면에 급하게 적어내려도 좋고, 핸드폰 메모장에 톡톡톡 입력해도 좋다. 그저 운을 떼면 그것이 곧 쓰기인데, 첫 발디딤이 무척 어렵다. 그래서 누군가 나의 등을 지긋이 밀어주기를 내심 바라게 된다. ‘그러면 된다’라는 말 한마디면 겁먹은 발걸음이라도 못 이기는 척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것이 저자가 이 책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다. “나는 금붕어를 주었는데, 독자는 개구리를 받는” 상황, 쓴 대로 읽히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시를, 더 많은 사람이 쓰고 읽었으면 좋겠다는 저자의 말처럼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오면 된다. 그럼 이제 무엇이든 쓸 수 있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 앞에 놓인 이 책처럼, 함께 시작(詩作)해보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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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희의 산문은 반죽을 떠올리게 한다.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꾸면서도 언제든 부풀어오를 준비가 되어 있는 반죽 말이다. 반죽은 쭉쭉 늘어나 그와 함께 한의원, 광장, 학교에 가기도 하고 이야기의 행간을 야무지게 메워주기도 한다. 책장을 덮을 때쯤이면 글맛으로 이루어진 빵 굽는 냄새에 기분 좋게 혼미해질 것이다. 이 책은 김복희가 글로 하는 융숭한 대접이다. -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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