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어차피’라는 말 앞에 무너지지 말자고] 이슬아의 첫 칼럼집. 그의 글이 지워진 얼굴들을 비춰내는 동안 ‘어차피’ 안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최소한’ 이것만은 하자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예민하지만 불편하지 않은 언어로 기후위기 앞에서 같은 꿈을 꾸게 만드는, 그가 초대하는 세계로 함께 나아가고 싶게 만드는 정확한 힘을 지닌 책. - 에세이 PD 이나영
|
프롤로그: 마음에 걸리는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1부 동물에 대해 잊어버린 것 우리는 혼자 먹지 않는다 미래를 말하고 싶다면 이토록 구체적인 고기 다시 차리는 식탁 목숨을 세는 방식 동물어가 번역되는 상상 어떤 시국선언 가짜 해법에 속지 말 것 2부 나 아닌 얼굴들 한여름의 택배 노동자 우리 사랑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하지 않으리 이주여성이 마이크를 들었다 눈 밝은 어느 독자를 생각하며 인터뷰하는 마음 깊게 듣는 사람 슬픔을 모르는 수장들 누구나 반드시 소수자가 된다 서로 다른 운동이 만나는 순간 당연하지 않은 부모 납작하지 않은 고통 가릴 수 없는 말들 3부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의 목록 쓰레기로 이루어진 언덕과 바다에서 산불을 바라보며 어떤 멸종 몸을 씻으며 하는 생각 최초의 해방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는 여자들 결코 절망하지 않을 친구들에게 에필로그: 더 많이 보는 눈 |
이슬아의 다른 상품
마음에 걸리는 얼굴들 때문에, 이 책은 쓰여졌다. 분명 어떤 얼굴들은 충분히 말해지지 않는다. 그들에 대해 말하려면 특정 방향으로 힘이 기우는 세계를 탐구해야 한다. 그게 내가 배운 저항의 방식이다. 중요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 누락된 목소리를 정확하게 옮겨 적는 것.
--- p.7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우리 모두가 얼마나 굉장한 개인인지를 가르치곤 한다. 개인이 소비하지 않기로 한 선택들이 모여 기업과 정치와 과학을 들썩들썩 움직인다는 믿음을 학생들에게 쥐여준다. 자신의 선택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자아도취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나쁜 건 자신의 선택이 아무한테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믿는 자기기만이다. 전 지구인의 총동원이 필요한 이 시대에, 당신은 어떤 것을 그만두고 싶은지 궁금하다. --- p.19 식탁 위 요리나 매대 위 제품에서 동물은 추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구체적인 고통 같은 건 매끈하게 닦여 나간 뒤다. 그러나 우리 역시 동물이라 그 고통을 헤아릴 줄 안다. 이 상상력은 아름다운 우유 크림 케이크에서도 가축화된 동물의 생을 그리게 한다. --- p.31 이런 문장을 마주하면 나는 마음을 다칠 줄 아는 이가 몹시 그리워진다. 작가들은 실패할 것을 알면서 주어를 바꿔 말하고 있었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어차피’와 ‘최소한’의 싸움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과 그래도 최소한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절멸하지 않고 싶다는 의지였다.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소망이었다. --- p.59 ‘로켓배송’이라고 커다랗게 적힌 상자에서 세계의 진실을 마주한다. 여름과 겨울은 매번 돌아올 것이다. 다음 여름도 이래서는 안 된다. 다음 겨울도 이래서는 안 된다. 공평하지 않은 날씨의 고통 아래 쿠팡이 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지켜보는 사람 없이 힘의 기울기는 바뀌지 않는다. 우정도 시작되지 않는다. 쿠팡 노동자만큼 많은 수의 친구를 상상하고 있다. 우리가 소비자일 뿐 아니라 노동자의 동지라는 걸 노동자가 알기를, 쿠팡이 알기를, 그리고 우리 자신도 알기를 희망한다. --- p.74 당신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을 나열해보겠다. 당신은 무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당신의 가족과 나라가 얼마나 가난한지. 당신이 번 돈 중 얼마를 원가족에게 송금하는지. 어떤 사람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반말로 말을 건다. 당신은 새 가족에 편입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이름을 잃는다. 당신은 낯선 기후와 낯선 음식에 적응해야 한다. 낯선 한국어에 적응하는 일에 비하면 그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짐을 푼 곳에서 당신의 모국어는 배제된다. --- p.85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이다. 이 시각 국감에 모여 앉은 저 어른들에게 떠오르는 풍경이 있을까? 텍스트와 숫자 말고, 얼굴과 장면 말이다. 어떤 정책을 거론할 때마다 가슴을 아프게 하는, 단어마다 자꾸 걸려 넘어지게 하는 누군가가 그들 마음속에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들이 내뱉는 문장은 지금보다 생생하게 뛸 것이다. 나는 ‘진짜 질문’과 ‘진짜 대답’을 그리워하며 국회방송을 시청한다. --- p.109 “안다고 착각했던 일을, 진짜로 알게 되는 순간이 있지 않습니까.” 대담에서 그는 말했다. 21대 국회 3백 개의 의원실 중 적어도 한 곳은 기후위기 상황실이어야 하지 않겠냐는 경각심이 그를 기후 국감으로 이끌었다. 탄소배출 감소와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들이 실제로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책임자들의 코앞에다 대고 묻고 감시하는 국감이었다. --- pp.125~126 모두가 버리지만 모두가 치우지는 않는 세계에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쓰레기가 잠깐이 아니라는 걸 똑바로 보는 부모와 자식과 자식의 자식과 노동자와 옷가게 주인과 잠수사와 소설가와 시인과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당신이 있다. 우리는 헤아릴 수조차 없다.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많은 생이 스며드는지. --- p.148 나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것의 목록을 적어가며 어른이 되어왔다. 청소년이었을 때에는 어른이 되면 최대한 단체생활을 하지 않는 환경에서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단체생활만 안 해도 사는 게 훨씬 홀가분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독립해서 살게 된 이후에도 몸과 마음이 홀가분하지 않은 일들을 자주 반복하곤 했다. 이를테면 말실수, 불친절, 과소비, 과식, 과로 같은 것. 단번에 고치지는 못해도 최대한 줄여나가고 싶었다. --- p.164 힘든 일 생기면 우리 집에 오라고 말하던 언니들이 있었다. 나는 십대 혹은 이십대였고 집이 없었고 있더라도 너무 남루했고 어떤 밤에는 정말로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언니들 집에 찾아가면 밥을 해주거나 시켜줬다. 내 얘기를 들어주고 언니들 얘기를 들려줬다. 자고 가라며 이부자리를 펴주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한다. 그때 언니들 되게 바빴을 텐데 어떻게 시간 냈을까. 언니들도 가난했는데 왜 가진 걸 나눠줬을까. --- p.175 새해에는 글쓰기로 더 많은 얼굴을 비추고 싶다. 깊은 밤 초롱불 같은 원고가 되게끔 문장을 데운다. 내가 계속한다는 게 나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희망이었으면 좋겠다. 그들과 함께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쓸 용기를 낸다. 어째서 자꾸 정치적인 글을 쓰느냐고 묻는 독자님도 계시지만 오히려 나는 언제나 이것이 아쉽다. 내 글이 충분히 정치적이지 않다는 것. 더욱 정치적이기 위해 더욱 구체적으로 첨예해지려 한다. 생을 더 자세히 사랑하겠다는 다짐이다. --- p.189 |
_“가속화될 기후위기 앞에서 우리 모두는 운명공동체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얼마나 용감해질 수 있는가 이슬아의 언어를 통과하면 중요하고 절박함에도 먼 곳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에 지나지 않던 문제들이 어느새 내 옆자리에 바싹 다가와 앉는 간절한 문제가 된다. 오래되고 익숙해져 환기력을 잃은 대상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아름다운 것들은 더욱 새롭게 아름다워지고 슬픈 것들은 새삼 더 슬퍼진다. 축산업과 낙농업의 시스템에 갇혀 매대에 놓인 고기 상품에 지나지 않게 된 공장식 축산 동물들, 한여름 수없이 화물차를 오르내리는 택배 노동자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하는 장애인들, 긴 세월 부지런히 하늘길을 오가며 자신들의 삶의 원리에 충실하였으나 이제는 끊기고 막힌 길 앞에서 서서히 멸종을 맞을 운명에 놓인 기러기들…. 『날씨와 얼굴』은 우리 삶을 지탱하지만 의도적으로 지워진 얼굴들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우리는 그 길의 곳곳에서 어떻게든 해보려는 사람들,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이들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얼마나 굉장한 개인인지, 얼마나 더 용감해질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는 저자가 글쓰기 수업에서도 늘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던 짓을 그만두기로 할 때 만들어질 커다란 정서를 그는 부푼 마음으로 상상한다.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지 않고도 무탈히 흘러가는 인간 동물의 생애, 그것이 이슬아 작가가 꿈꾸는 앞으로의 날들이다.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은 “사회의 수많은 고통 앞에서 윤리적 귀가 되기 위해 이슬아 작가는 조심스럽게 언어를 구성해간다”면서 “주목받지 못하는 얼굴들에 하나하나 조명을 비추며 우리가 연결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이 언어에 동참해보면 어떨까” 권한다. 이슬아 작가는 같은 꿈을 꾸자고 독자를 초대하며 말하고 있다. 나에게 없는 지혜가 당신에게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분명 서로에게 배울 수 있을 거라고. |
오늘의 날씨가 축적되면 시대의 기후가 된다. 개인의 얼굴이 모이면 집단의 초상이 된다. 오늘날 우리가 맞이하는 기후위기의 다양한 모습에는 그동안 인간이 외면해온 수많은 얼굴이 있다. 기후위기는 소외된 인간과 자연, 비인간 존재가 인간에게 보내는 고통의 신호이며 동시에 결과다. 『날씨와 얼굴』은 노동자, 장애인, 이주민, 동물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의 얼굴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낸다. “아름다운 우유 크림 케이크에서도 가축화된 동물의 생을 그리”는 것은 생명이 있는 존재의 얼굴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착취와 차별 속에 은폐된 어떤 얼굴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예민한 언어가 필요하다. 사회의 수많은 고통 앞에서 윤리적 귀가 되기 위해 이슬아 작가는 조심스럽게 언어를 구성해간다. 주목받지 못하는 얼굴들에 하나하나 조명을 비추며 우리가 연결된 존재임을 강조하는 이 언어에 동참해보면 어떨까. -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