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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
머리말 제1장 정의 그리고 학문의 첫째 원리 제2장 사칙 연산에 의한 대수적 양의 결합 방법에 대하여 제3장 대수의 첫째 원리와 기본 연산에 관한 고찰 제4장 수치 분수의 이론에 대한 대수의 응용 제5장 대수 표현을 동치이고 더 단순한 형태로 변형하는 것에 대하여 제6장 지수 이론에서의 추가적인 진전 제7장 십진 소수의 이론에 대하여 제8장 대수에서의 역 연산에 관하여, 그리고 대수적 양 또는 수치적 양에 대한 거듭 제곱 근의 풀이에 관하여 제9장 순열과 조합의 이론 제10장 이항 정리와 다항 정리에 대하여 제11장 비와 비례 제12장 단순 근의 일반 이론 그리고 대수의 기하로의 응용에 대한 원리 제13장 미정 계수에 대하여 제14장 로그와 로그 표 그리고 그 응용에 대하여 제15장 알려지지 않은 양 한 개를 포함하는 일차, 이차 그리고 고차 방정식에 대하여 제16장 연립 방정식의 해법에 대하여 제17장 문제들의 해에 대하여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
George Peac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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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대수 식의 제곱 근을 추출하는 과정은 제곱을 직접 계산하는 과정에 그 기초를 두고 있는데 단지 순서를 뒤바꾸는 것이다. 이 과정은 물론 주어진 식을 두 개의 동일한 인자로 분해하는 것과 동치이다. 그러한 인자가 존재하면, 주어진 식은 완전 제곱이므로 그 제곱 근은 유한개의 항으로 얻어진다. 그러나 주어진 식이 완전 제곱이 아니면, 그리고 그러한 유한 근이 존재하지 않으면, 제곱 근은 무한 급수 형태로 규칙에 의해 찾을 수 있는데 이것은 나눗셈에서 불완전한 몫으로 표현되는 급수에 대한 원리와 동일한 원리에 그 근거를 두고 있고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된다.”
---「조항 204」중에서 “산술 대수에서 기호는 수와 동일하게 포괄적이므로, 수가 나타낼 수 있는 선의 길이, 넓이 또는 다른 모든 종류의 양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한 양이 해석할 수 있는 거듭 제곱을 수용하는 모든 경우에, 산술 대수의 이 체계에 속하는 산술 근이라 부를 수 있는 해당 근이 있을 것이다. 단 그것들이 나타내는 양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a2이 넓이라면, a는 설명될 수 있는 동일한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이다. a3이 입체의 부피라면, a는 동일한 정육면체의 모서리의 길이이고 다른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산술 근이라는 용어 사용의 확장은 부호 +와 -의 독립적 사용에 의해서만 제한되며, 나타내는 양의 속성에 의해서는 제한되지 않는다.” ---「조항 424」중에서 “사실은, 사인 또는 코사인의 주어진 값이 각도의 결정된 값에 상응하므로, 우리는 이 각도의 다른 각, 또는 직각에 대한 비율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각도의 값(실제 기하학적 양으로 간주됨)에서 그 측정 값까지 전환하는 것은, 어떤 양이 가정되었을 때 그 측정 값도 그것과 동일한 비율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것처럼, 완전히 임의적이다. 임의의 양과 마찬가지로 임의의 양과 동일한 비율로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측정 값으로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각도를 형성하는 선에 의해 가로막힌 임의로 주어진 원의 호는, 우리가 그 각도의 다양한 값들에 대한 동일한 원을 고수한다면, 그 측정 값으로 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측정에 대해 이 원의 호가 반지름에 대해 갖는 비율을 가정해야 한다면, 원의 반지름이 무엇이든 간에 동일한 각도의 측정 값과 같은 양이 되는데, 원의 반지름이 1과 같다면, 그 크기가 동일하게 유지되는 균일한 측정 값을 얻을 수 있다.” ---「조항 666」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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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개혁의 열망이 대수학에 과학적 기초를 낳다
케임브리지 교수에서 영국과학진흥협회 활동까지 이 책의 저자인 조지 피콕은 1791년 4월 9일 잉글랜드 북부의 덴턴(Denton)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토마스 피콕은 영국 성공회 성직자였으며 50년 동안 학교를 운영했던 덴턴 교구의 큐레이터였다. 어린 시절 피콕은 아버지에게서 초등 교육을 받았고 17세에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생이 교수하는 리치먼드에서 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준비 교육을 받았다. 이 학교에서 그는 고전과 케임브리지 입학에 필요한 수학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1809년에 그는 트리니티 칼리지의 학생이 되었다. 피콕은 펠로우십을 받은 이듬해(1815) 케임브리지 대학의 강사로 임명되어 수년 동안 그 직책을 계속 유지했다. 그 당시 케임브리지의 수학 학습 수준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이에 피콕은 대수학에 진정한 과학적 기초를 확립하고자 교육 개혁에 매진하게 된다. 피콕은 배비지, 허셜과 함께 런던 천문학회를 설립한 세 명의 개혁가 중 하나였고, 유서가 깊은 과학 기구인 영국과학진흥협회에서 초기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833년에 그가 작성한 보고서는 세간에 가장 주목을 받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