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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글/11
1. 정치에 휘둘리는 갈팡질팡 美 CDC 13 2. 장혜영의원 · 정의당 성추행 대응이 주목받는 이유 15 3. 쇠사슬과 세계 17 4. 아시아 각국 미세먼지 전쟁, 물대포 · 인공강우 폭죽금지 19 5. 전국민 통신비 2만원 지원책 갈팡질팡 22 6. 갈팡질팡 4차 추경안 국회 통과 24 7. 아스클레피오스? 히포크라테스? 26 8. 먼 미래로부터의 역산 김세연식 보수 혁신 청사진 29 9. 근대올림픽 여담 38 10. 14전 15기로 다진 멀티 방송인...좌절은 없다 45 11. 음양오행의 수학적 원리와 응용 51 12. 조국 딸 생일 케이크 귀가 사진, 표절? 황당무계 54 13. 미운 우리새끼부터 윤식당까지 中 무단표절 빈번 55 14. 북한 권력 주변보다 주민들 일상 다룬 보도 많았으면 57 15. 거짓말할 때 늘어나는 이것을 주목하라 66 16. 케이트 미들턴 출신과 언론의 호들갑 67 17. 혐오의 공기 뚫은 숨구멍 차별금지법 69 18. 차별을 시정할 기회조차 못 얻는 사회 71 19.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 73 20. 뒤섞이고 교차하는 편곡의 세계 75 21. 위선과 민주주의 77 22. 비록 농담이겠지만 79 23. 달력에 슬픔이 가득한 4월 81 24. 바빠서 못 만난 애인에게 나와 똑같은 AI분신을 띄우면 좋아할까 83 25. 백신 노쇼(no show) 86 26. 홍콩은 어디로 가고 있나 88 27. NFT와 과시적 소비 90 28. 추악한 범죄 공간 vs 자유를 위한 최후의 보루 93 29. 병역 불이행 땐 국적 이탈 차단‘헌법불합치’ 95 30. 9년간 못 고친 특고 적용 제외 산재법 독소조항 언제 손 볼까 97 31. 정인이 사건을 보는 또 다른 관점 99 32 노예 영웅 해리엇 터브먼 100 33. 가습기살균제 참사, 무죄 판결을 반박하다 102 34. 거짓말과 피노키오 효과 105 35. 표준어 정책, 규제가 만능은 아니다 107 36. 자전적 글쓰기 109 37. 행복한 가족의 기초, 믿을 수 있는 어린이집 111 38. 다시 블로그 113 39. 백신 전쟁, 특허에 의한 살인을 방치할 것인가 115 40. 유령 간호사 117 41. 김학의 사건의 본질이 사라지고 있다 119 42. 알아야 면장, 제대로 알고 쓰자 122 43. 포럼 정치 123 44. 지도를 보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 125 45. 미 언론 양치기 소년 딜레머 127 46. 동문서답의 정치 129 47. 사회서비스원을 양치기 소년으로 만들 셈인가 133 48. 사람이다 135 49. 납치피해자와 그 자족에 대한 보호 · 지원 137 50. 열악한 아동보호전담요원제 139 51. 세상에 정답이란 존재하는 걸까? 141 52. 타인에게 잔인한 관행 멈출 수 없을까 143 53. 쉰다고 쉬어지나요 145 54. 대리사회 유감 147 55. 플랫폼 물신주의 149 56. 그 행사 꼭 필요한가요 151 57. DP, 열풍이 요청하는 변화 153 58. 예술원 그들만의 잔치 155 59.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157 60. 국가의 입증 책임 159 61. 우울이라는 희망 161 62. 언어의 혼란-명(名) 163 63. 간첩 낙인 3천여명 어민들 恨, 정부가 풀어줘야 167 64. 관리비, 그것이 궁금해 173 65. 택배 노동자들이 화났다 175 66. 화천대유? 역의 철학과 개발 자본 177 67. 모든 것이 정당방위가 될 때 179 68. 차별금지법 필요성, 언론이 보여줘야 181 69. 우리는 미쳤다 183 70. 증세 vs 감세 185 71. 멸공과 박멸의 정치 187 72. 삼포세대가 무슨 말인지 아니나요? 189 73. 청년은 소모품이 아니다 191 74. 진짜 멸공 193 75. 소비의 양면성 195 76. 무덤 옆 나무에 보검을 걸다 197 77. 소위 이대남과 5060 199 78. 문화 권력 갑질 진실이 궁금해 201 79. 패스트 패스 vs 백신 패스 203 80. 볼셰비키 홍범도에게 바친 최고의 예우 205 81. 親與 조해주 임기연장 꼼수와 관권 선거용 알박기 207 82.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는 죽음들 209 83. 평온한 봄은 언제 쯤 일까 211 84. 나라는 누가 지키나 213 85. 팬덤 정치의 종언을 위하여 215 86. 다음 정부는 독박 쓰게 돼 있다 217 87. 노블레스 오블리주 219 88. 인간은 괴물이 될 것인가 221 89. 과거는 양날의 칼 혹은 0이다 225 90. 야성과 맞닥뜨리다 227 91. 비정규직은 국민연금도 사치인 나라-연금개혁을 말하다- 229 92. 미룰 수 없는 시기 상조 234 93. 과학기술에게 물어 봐 236 94. 종교계의 위없는 실세들 238 95. 정부 돈 가장 많이 따낸 기업은 어디? 240 96. 온라인 폭력, 개념 뒤짚고 방지책 마련해야 243 97. 눈을 부릅뜨고 역사를 보라 245 98. 안전권=기본권, 믿어도 되나 247 99. 인간을 보는 개의 눈동자 249 100. 소년범 재범 방지 위해 우린 무엇을 했나 251 101. 명분 없는 사회 253 102. 달라지고 있는 중국의 술 문화 254 103. 자식 자랑 256 104. 아이고, 어쩌다 그렇게 되었소 257 105. 성별 표시 지우면 안 될까요 260 106. 우린 어쩌다 매일 전쟁을 할까 262 107. 귀농 스카우트 거절한 까닭 264 108. 유롭의 난민 위기와 인종주의 266 109. 승자가 보이지 않는 선거 268 110. MB 아바타입니까 270 111. 알박고, 까내고, 낙하산...고연봉 꽃보직 보은에 행정 부실 악순환 272 112. 국민의 힘, 한번이라도 뜨거워보라 275 113. 지금 우리 사회는 K절비의 시대 277 114. 다른 대안이 없다는 그 말 279 115. 꿀벌을 사수해야 한다 281 116. 이준석 대표는 왜 소수자와 다투는가 283 117. 새 정부는 닫혀 있는 지식의 문 활짝 열어야 285 118. 역사가 결코 우리를 파괴할 수는 없다 287 119. 1호 기업이 궁금하지 않다 289 120. 프레카리아트, 불안한 인간 291 121. 크레카리아트를 위한 정부를 건설하라 293 122. 복합쇼핑몰은 광주 정신을 훼손하는가? 295 123. 국가물관리위원회는 4대강보 철거 결정한 바 없다 299 124. 선거 후보토론 이대로 좋은가 301 125.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303 126. 말 바꾸는 이들이 가짜다 306 127. 시대를 반영하기보다 거스르는 책을 원한다 308 128. 표절기준? 예전에도 분명했어요 312 129. 여성 활당제와 능력주의 314 130. 중재안이 아니라 야합안이다 316 131. 검수완박, 미국 검찰에 비추어 보면 318 132. 인생이 아름답다고? 인간 주제에 320 133. 스태그플레이션 위협의 교훈 322 134. 투자와 규제완화 보따리 맞바꿀 텐가 324 135. 무책임한 선장의 사회 326 136. 멸치 말리는 공항이라고요? 328 137. 볼커의 신화, 혹은 착각 330 138. 지금 당장 국회가 할 일 332 139. 온 나라 학위 따기 334 140. 심사숙고는 누구의 몫인가 336 141. 이재명의 두 승부 338 142. 사람됨의 자존감은 밥보다 위에 있다 340 143. 자유는 없는 자 만이 느낀다 343 144. 흔적 345 145. 계절의 책장을 넘기며 347 146. 밈 현상의 만연 349 147. 다 있어서 온 서울.....왜 내 것은 없을까 351 148. 텃밭과 식물재배기 사이 357 149. 십자가는 못 지더라도 359 150. 너네, 자랑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해 361 151. 고문은 보호가 아니다 363 152. 당신은 어디에 시민의 권력을 쓸 것인가 365 153. 노동이 쪼개지면 일어나는 일 367 154. 프로 라이프와 프로 건의 끔찍한 합체 369 155. 풀뿌리 민주주의의 뿌리가 썩고 있다 371 156. 적폐 청산의 부메랑 효과 373 157. 정녕 허수아비 경찰을 원하는가 377 158. 이번엔 체험학습을 없앨건가 379 159. 이런 세대교체는 없다 381 160. 고창의 외로운·의로운 닭싸움 377 Ⅱ. 나가는 글/387 참고문헌/394 주석/398 |
金龍洙,海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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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쓰면서
인간 세상은 이유 없이 개에게 탓하곤 한다. 겨울 담장에 소복이 솟아오른 말고 흰 눈이 견심(犬心)인 듯한 데 말이다. 인간들은 허구한 날 모든 것이 개 같은 세상 탓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싶다. 한마디로 이런 세상 어떻게 사느냐고 하면서 애꿎은 네발짐승을 탓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런 심각한 논박에 있어서 아주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인간들은 개 같은 세상이라고 빗대면서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탓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주체가 자신들이란 점은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 볼썽사납기도 하다. 어쨌든 이 세상에 사는 개들이 뭐라 한 적은 없지 않은가? 단지 이 세상에 개들은 주인이 가난뱅이든 부자든 상관없이 주인이니까 꼬리치고 맴맴 돌고 멍멍 짖는다. 아울러 어떤 경우이든 개는 주인이 기분에 따라 부르는 명칭이 이름이 된다. 주인이 즐겁다고 메리(Merry)라 부르면 메리(즐거운 강아지)가 되고, 행복할 때 해피(Happy)라 부르면 해피(행복한 강아지)가 되어 주인의 기분을 충족 시켜 준다. 우리 주변에서 어찌 개만 한 충복(忠僕)이 따로 있겠는가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그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개는 반려견(伴侶犬)이요 고양이를 포함한 귀여운 동물을 애완동물(愛玩動物)이라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실 핵가족 시대에 머무는 인간에겐 쓸쓸한 단면이지만 인간에게 개만큼 소중한 벗도 없다. 어쨌든 이 시대를 이끄는 인간이기에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아가야 할 숙제도 인간에게 주어진 듯하다. 이런 이유로 인간이 살아온 그 험난한 여정을 과거와 현재 속의 맑고 맑은 강아지의 눈빛으로 바라봄이 새로운 의미를 주는 듯이 비쳐온다. 아마도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은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말속에 삶의 흔적을 옮기는 듯하다. 사실 요즘 도심 골목에선 기발한 아이디어로 등장하는 애견 숍의 간판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멍멍아 야옹 해봐” 등인데, 사실 멍멍이가 어떻게 야옹야옹하겠는가? 우리 주변이 그럴 정도로 삶 속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 세상으로 변해갔으면 하는 바람이 살짝 담겨 있는 표현일 것이다. 여하튼 이보다 좀 더한 이야기가 야릇한 기분을 쏟아내기도 한다. 애견 숍 용품이나 사각 진열대에 갇힌 강아지들이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는 시절이 찾아온 것이 요즘이기도 하다. 어쩜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불현듯 근래에 벌어졌었던 해외 토픽감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미국의 어느 견주(犬主)가 강아지와 산책을 하던 도중에 호숫가를 빙 돌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이때 불쑥 나타난 새끼 악어가 강아지를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그 당시에 당황한 개 주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악어의 주둥이를 벌리고 강아지를 구해냈다는 영화 속 장면 같은 신문 기사 내용이었다. 우리 일상 속에서 개의 위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장난이 아님은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서구 문명국가에서는 집안에 갇혀 있는 강아지의 스트레스를 고려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 산책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는 한다. 사실 이 정도면 옛 어른이 말씀하신 개 팔자가 상팔자요 개가 주인인 시절이 맞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주변에서 복슬강아지가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이 분명하다. 아주 어린 시절에 강아지에 대한 추억도 남다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엔 흙 마당에서 뒹굴며 주인의 뒤를 졸졸 쫓아가는 누렁이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어찌 누렁이만 있었겠는가? 간혹 검둥이도 있었고, 흰둥이도 메리(즐거운 강아지), 해피(행복한 강아지)라고 주인이 부르는 대로, 한글을 쓰는 땅 위에서 외국어 이름을 사용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요즘의 귀여운 복장과 웰빙 문화의 혜택을 받으면서 영양 상태까지 완벽한 강아지와는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싶다. 사실 그 당시 아주 열악한 주거상태에서 귀여운 친구가 누렁이었다는 기억이 또렷하다. 어쩌면 비교가 안 되는 생활문화의 여건에서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것이 개의 일생이요 개 팔자라고 말이다. 이쯤에서 잠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지금의 귀엽고 토실토실한 강아지가 그러하듯, 당시의 복 돌이 복순이도 누렁이란 이름으로 혹은 검둥이와 흰둥이란 이름을 오가며 주인에게 충성(忠誠)을 다하는 충견(忠犬)이었다는 점이다. 매일매일 학교 갔다 집에 오면 반갑다고 마당을 뱅뱅 돌며 꼬리 치고 반겨준다. 그런데 어찌 이뿐인가 싶은 순간에는 누렁이 생(生)의 마지막이 찾아온다. 어느 날 사라진 강아지는 혹서의 계절 여름철에 주인의 영양보충을 위한 보신탕(補身湯)으로 변해 있었다. 이를테면 인류를 위한 최후의 봉사로 어느 가정에서인가 건강의 일선에서 최후의 생(生)을 마쳤던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