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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글/9
1. 저출산 해법, 모르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 12 2. 돈의 분열증, 부동산과 금융의 공생 15 3. 병역곡 난투사건 17 4. 저출생 대책 성공 땐 양육지옥 19 5. 개, 소, 산천어 21 6. 법률가 정치인 세상 23 7. 나에게 노동이란 25 8. 또다시 방송 독립성을 흔드는가 27 9. 전현희·한상혁 임기 보장하고, 한국판 한국판 플럼북 검토해야 29 10. 존엄한,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결정 31 11. 우리들의 자유 33 12. 강철 강사, 당찬 강사, 슬픈 강사 35 13. 쿠팡은 타인의 삶을 착취한다 37 14. 우리가 우월하다는 착각 39 15. 역사적 교훈을 실천한다는 것 41 16. 다발성 위기의 대통령 43 17. 장애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47 18. 여야의 기이한 복주기 경쟁 49 19. 대만에서 전쟁을? 51 20. 함께 한자 공부를 하자 53 21. 그런 말 듣고자 한 말이 아니다 55 22. 알고리즘엔 죄가 없다 57 23. 시대에 분노하는 청년들을 위해 59 24. 청각 교란의 시대 61 25. 당신들은 왜 정치를 하는가 63 26. 마법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한미일 협력 65 27. 끝없이 거꾸로 가면서 저출생 위기 논하지 마라 67 28. 쌀값 초대 폭락은 결국 행정 실패 69 29. 적과 동지의 분별과 현명함 76 30. 다시 생각하는 이중화, 고령화 민주주의 80 31. 일할 때를 정해주는 이중 빈곤의 사회 82 32. 낮은 지지와 권력 독점의 불비례, 민주공화국이 위험하다 84 33. 덜 나쁜 놈 고르는 선거에서 벗어나야 90 34. 교육부의 엉성한 데칼코마니 92 35. 기재돼야 할 다양한 가족의 진실 94 36. 진짜 사장님의 진솔한 사과가 중대재해를 예방한다 96 37. 역사 리터러시 규칙 제4조 99 38. 역사의 외투가 멀어져 갔다 101 39. 슬픔의 총량 103 40. 다시 돌아갈 순 없을 거라고 안 생각해 105 41. 판결의 무게 107 42. 하청과 방납 109 43. 왜 점을 믿는가? 111 44.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 113 45. 난민과 이민에 장벽 쌓는 유럽 115 46. 이 세상을 공유하지 않겠다는 마음 117 47. 부자들의 패거리 카르텔 120 48. 경제적 가치 넘어서는 아이의 본질적 가치 122 49. 말 한마디의 정치 125 50. 운동권 때리기 127 51. 탄소중립과 그린벨트 해라는 모순 129 52. 상속세 개편은 선택이 아닌 필연 131 53. 국민의 방송 133 54. 왜 국회의원이 되려는가 135 55. 장을 안 보는 사람들의 정치 137 56. 왜 상상의 세계에 빠질까 139 57. 선거운동과 후보자비방죄 142 58. 상식을 파괴하는 정치 145 59. AI 디지털 교과서 정책 허둥지둥 149 60. 고통이 주는 선물 151 61. 다시 노란 리본의 물결을 만들어야 할 때 153 62 남자를 배신한 자 누구인가 155 63. 왜 성범죄자를 변호했나 157 64. 히틀러의 나의 투쟁 독후사 그럼 지금은? 160 65. 숫자도 성평등이다 165 66. 푸틴의 폭주, 더 위태로워진 세계 167 67. 수도권 집중과 지역소멸 169 68. 생물학적 현상은 사회적 낙인에 의해 손상된 정체성이 된다 171 69. 바람의 세월, 그 10년에 대하여 176 70. 여전히 남겨진 연금개혁 팩트 확인 178 71. 하지도 않은 말고‘와전’ 181 72. 1억원의 매직? 1억원의 비즈니스 183 73. 부실정부 대한민국 185 74. 가치외교의 탈을 쓴 이념외교 187 75. 비지의 열 번째 뜻 189 76. 돌봄 살인 191 77. 채 상병 사건과 오키나와 전투 193 78. 전환마을을 넘어 전환도시로 197 79. 사라져가는 미래 200 80. 대북전단과 오물풍선, 우리가 잊고 있는 것들 204 81. 2004년 밀양, 2024년 진주 209 82. 돈 없어 감옥에 끌려간 5만 7267명 212 83. 왜 행정개혁을 예기하지 않을까 215 84. 저 출생 아이와 저출산 217 85. 대통령 사람들로 망가지는 인권기구들 219 86. 내신의 내로남불 221 87. 만족하다와 만족시키다 225 88. 정답을 비켜가는 저출생 대책 227 89. 탄핵과 협치 229 90. 모두의 공연 233 91. 위험한 음모론 전성시대 236 92. 공화국이 위기에 빠졌다 221 Ⅱ. 나가는 글/241 참고문헌/246 주석/250 |
金龍洙,海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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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쓰면서
인간 세상은 이유 없이 개에게 탓하곤 한다. 겨울 담장에 소복이 솟아오른 말고 흰 눈이 견심(犬心)인 듯한 데 말이다. 인간들은 허구한 날 모든 것이 개 같은 세상 탓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싶다. 주인이 즐겁다고 메리(Merry)라 부르면 메리(즐거운 강아지)가 되고, 행복할 때 해피(Happy)라 부르면 해피(행복한 강아지)가 되어 주인의 기분을 충족 시켜 준다. 우리 주변에서 어찌 개만 한 충복(忠僕)이 따로 있겠는가 싶은 대목이기도 하다. 그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개는 반려견(伴侶犬)이요 고양이를 포함한 귀여운 동물을 애완동물(愛玩動物)이라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실 핵가족 시대에 머무는 인간에겐 쓸쓸한 단면이지만 인간에게 개만큼 소중한 벗도 없다. 어쨌든 이 시대를 이끄는 인간이기에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아가야 할 숙제도 인간에게 주어진 듯하다. 이런 이유로 인간이 살아온 그 험난한 여정을 과거와 현재 속의 맑고 맑은 강아지의 눈빛으로 바라봄이 새로운 의미를 주는 듯이 비쳐온다. 아마도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은 격세지감(隔世之感)이란 말속에 삶의 흔적을 옮기는 듯하다. 사실 요즘 도심 골목에선 기발한 아이디어로 등장하는 애견 숍의 간판이 눈길을 끈다. 예를 들면, “멍멍아 야옹 해봐” 등인데, 사실 멍멍이가 어떻게 야옹야옹하겠는가? 우리 주변이 그럴 정도로 삶 속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 세상으로 변해갔으면 하는 바람이 살짝 담겨 있는 표현일 것이다. 여하튼 이보다 좀 더한 이야기가 야릇한 기분을 쏟아내기도 한다. 애견 숍 용품이나 사각 진열대에 갇힌 강아지들이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는 시절이 찾아온 것이 요즘이기도 하다. 어쩜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불현듯 근래에 벌어졌었던 해외 토픽감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미국의 어느 견주(犬主)가 강아지와 산책을 하던 도중에 호숫가를 빙 돌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이때 불쑥 나타난 새끼 악어가 강아지를 덥석 물어버린 것이다. 그 당시에 당황한 개 주인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악어의 주둥이를 벌리고 강아지를 구해냈다는 영화 속 장면 같은 신문 기사 내용이었다. 우리 일상 속에서 개의 위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장난이 아님은 분명히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서구 문명국가에서는 집안에 갇혀 있는 강아지의 스트레스를 고려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 산책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는 한다. 사실 이 정도면 옛 어른이 말씀하신 개 팔자가 상팔자요 개가 주인인 시절이 맞을 것이다. 아울러 우리 주변에서 복슬강아지가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임이 분명하다. 아주 어린 시절에 강아지에 대한 추억도 남다르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당시엔 흙 마당에서 뒹굴며 주인의 뒤를 졸졸 쫓아가는 누렁이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어찌 누렁이만 있었겠는가? 간혹 검둥이도 있었고, 흰둥이도 메리(즐거운 강아지), 해피(행복한 강아지)라고 주인이 부르는 대로, 한글을 쓰는 땅 위에서 외국어 이름을 사용하는 친구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요즘의 귀여운 복장과 웰빙 문화의 혜택을 받으면서 영양 상태까지 완벽한 강아지와는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싶다. 사실 그 당시 아주 열악한 주거상태에서 귀여운 친구가 누렁이었다는 기억이 또렷하다. 어쩌면 비교가 안 되는 생활문화의 여건에서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것이 개의 일생이요 개 팔자라고 말이다. 이쯤에서 잠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지금의 귀엽고 토실토실한 강아지가 그러하듯, 당시의 복 돌이 복순이도 누렁이란 이름으로 혹은 검둥이와 흰둥이란 이름을 오가며 주인에게 충성(忠誠)을 다하는 충견(忠犬)이었다는 점이다. 매일매일 학교 갔다 집에 오면 반갑다고 마당을 뱅뱅 돌며 꼬리 치고 반겨준다. 그런데 어찌 이뿐인가 싶은 순간에는 누렁이 생(生)의 마지막이 찾아온다. 어느 날 사라진 강아지는 혹서의 계절 여름철에 주인의 영양보충을 위한 보신탕(補身湯)으로 변해 있었다. 이를테면 인류를 위한 최후의 봉사로 어느 가정에서인가 건강의 일선에서 최후의 생(生)을 마쳤던 것이었다. 2025년 5월 海東 김용수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