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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게 된 동기
들어가는 말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아프리카로 간 만득이 정체성 문제 1. 테세우스의 배 2. 정체성과 주체성 3. 집단의 정체성 한국의 정체성 1.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정체성 2. 한국의 정체성 탐구 방법 결론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보편적인 것은 없다 1. 보편성은 이름뿐이다 2. 바다는 파랗지 않다 3. 보편적인 것이 가능하다면?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 1. 홍콩 영화의 성공 비결 2. 한국의 특수성 3. 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결론 정체성 판단의 기준 고유성 1. 원조 컴플렉스 2. 이중 잣대 3. 고유성의 의미 창의성 1. 창조적 수용이란 무엇인가? 2. 토착화의 의미 정체성 판단의 기준 1. 현재성 2. 대중성 3. 주체성 맺는말 |
卓石山
탁석산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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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민 (shine@yes24.com)
일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책장을 정리하다가 '정말?‥‥' 하면서 놀랄 때가 있다. 1968년 값 500원. '이때는 이랬구나‥‥' 새삼스럽게 손때 묻은 책을 들춰보며 책의 나이와 내 나이를 견주며 세월을 가늠하는 그런 일 말이다. 다름아닌 손바닥 만한 문고판 도서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알찬 내용으로, 휴대하기도 좋고, 가격도 저렴해서 두고두고 사랑을 받아온 문고판 도서들은 과거만이 아니라 이 시대에도 건재하다.
우리나라의 문고판 도서는 1948년 200원 안팎으로 '국민계몽'을 위해 출간된 '을유문고' 에서 시작되었다. 그 후 '을유문고'는 한국전쟁을 겪은 후 1970년대에 다시 등장하고, '범우수필문고'도 그 시절에 태어났다. 그러다 1980·1990년대 잠잠했던 문고판 시장이 최근 몇 년 사이 다양한 판형과 내용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크기도, 값도 부담이 없는 문고판은 독자층의 성향과 경제상황을 고려해 볼 때에 더욱 성장하리라 예측된다. 출판계에서 성장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문고판은 출판 기획자들에게는 '꿈'이라 불리 운다. 부담 없이 살 수 있고, 어디에서든지 읽을 수 있는 판형이니, 좋은 책을 널리 읽히고 싶은 출판 기획자들의 꿈을 이루기에는 더 없이 좋은 것이다. 그런 꿈을 실현하는 문고판 중에 책세상에서 출간되는 『책세상문고 · 우리시대』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시리즈는 국내 소장 인문학자들이 저자로 참여하는데, 이름 그대로 우리시대 쟁점을 둘러싼 '논쟁 붙이기'라는 도전적인 기획의도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협소한 인문서 시장 가운데서도 일부가 베스트셀러에 꼽히는 등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기에 더욱 유명해졌다. 『책세상문고 · 우리시대』는 우리의 소장학자들이 우리문제를 저자의 관점에서 쓰도록 하여 대중의 관심을 학문적으로 끌어내도록 하고 있다. 이 책 『한국의 정체성』(탁석산)도 그런 의도로 태어났다. 한(恨)의 정서, 정(情), 은근과 끈기로 대변되는 한국, '과연 한국은 그러한가?' 신진철학자 탁석산의 문제제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는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치 않았던 근대화(서구화)가 된 이후 100여년 남짓한 현재 시점에서 우리를 되돌아 볼 필요성을 지적한다. 『한국의 정체성』에서 논쟁은 '정체성' 그 정의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자가 말하는 '정체성'은 '모든 속성은 변한다'는 진리를 전제로 한 '현재성'과 '대중성'과 '주체성'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서편제' 보다 '쉬리'가 더 한국적일 수 있는 것이다. 시·공간을 벗어나 우리나라의 모든 요소 중에서 공통요소만을 찾아 정체성이라 해야 마땅하지만 사실 공통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함을 저자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는 한국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기에, 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해답을 찾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이 책은 인문사회과학 출판 분야에서 가장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으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의 인문사회과학분야 베스트셀러로 장식되었다. 『책세상문고 · 우리시대』는 논술준비를 하는 고등학생도 독자층으로 포함시키기에 충분하다. 수상경력에서 말해주듯, 제 41회 한국백상 출판문화상의 출판상/문고부분 (한국일보)에서 『책세상문고 · 우리시대』가 뽑혔으며,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23) 우리 조상은 하늘을 어떻게 이해했는가』는 제 40차 한국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청소년 권장도서로 선정되었고,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26) 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 는 제 40차 한국 간행물윤리위원회의 이달의 책 (1월)로 선정되었고, 『반동적 근대주의자 박정희』는 문화관광부 청소년 추천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물론, 『책세상문고 · 우리시대』에 대한 비판도 많다. 우선, '논쟁을 유도한다면서 실제 책의 주장은 너무 온건하게 아니냐'는 지적에서부터, '정파성이 부족하다' 또는 '복잡다단한 경향이 공존함에도 내용은 보편성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의견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어야 20중반 이후의 월급 생활자들이 실제로는 책을 읽지 않고, 가장 큰 이유가 생활에 쫓기는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읽을 만한 책이 없다는 데에 큰 원인이 있는 현실에서『책세상문고 · 우리시대』는 지식의 창고로써, 독자들을 책으로 끌어들이는 데에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책세상문고 · 우리시대』시리즈는 앞으로 50권에 이르면 독자들의 서평을 받아 책으로 엮는 자체비평 뿐 아니라 1000권까지 계속 출간할 것을 목표로 한다. 염가의 책을 독자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보급함으로써 대중에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줌은 물론 그러한 향상된 능력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며, 지식인들을 압박하는 효과를 가져오도록 하는 희망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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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성과 대중성 외에 고유성과 창의성 판단의 기준이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주체성이다. 그럼 주체성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표면적 현상이 아닌 현상을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보자. 똑같이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가곡을 전공한 두 사람이 있다. 귀국하여 무대를 가졌는데 레퍼토리가 똑같고 창법도 같다. 그럼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가? 표면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이나 태도는 다를 수 있다.
--- p.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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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것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이 책이 '한국적인 것은 이것이다'라고 손에 쥐어줄 수는 없다. 그런 것을 발견하려면 한국의 각 분야의 공통된 속성을 조사하여, 과연 공통 속성이 있는지를 밝혀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매우 방대한 작업이 될 것이다. 많은 시일을 요하기도 하겠지만 각 분야에서 공통 속성을 찾으려면 무억을 한국적인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를 먼저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무엇이 한국적인 것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한국적인 것의 내용 탐구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 p.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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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은 개성이며 개성은 고유성과 창의성의 합이라고 본다면, 고유성과 창의성의 판단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곧 정체성 판단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의 정체성 탐구를 위해서 우선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에서 출발하고 현재의 현상을 중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정체성 판단의 기준의 하나는 현재성이다.
--- p. 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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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리고 불행히도 우리는 항상 특수성과 보편성의 긴장 해소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말해서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 간의 조화를 이룰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 주문은 이제 한국적이면서 미국적인 것을 찾으라는 주문으로 재해석 되어야 한다. 다시말해서, 한국적인 것을 찾아내어 미국적인 것으로 만들든지 아니면 미국적인 것을 한국적인 것을 통해 표현하든지 해야 한다.
--- p.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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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한국의 각 분야가 지니는 한국적인 특성을 밝히고 그 특성들 중에서 공통적인 어떤 것을 찾아내어 그것을 한국적인 것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할 수는 없다.이 책은 그런 작업의 토대와 근거, 그리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장에서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성격을 규명했다. 이 문제는 형이상학의 전통적인 문제인 정체성에 관한 질문을 계속하는데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한국의 정체성은 개인으로서의 한국인의 정체성과는 구별된다.
--- pp.4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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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은 우리 문화정책의 기본 전략이 되다시피 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를 분석해보자.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란 구호는 두가지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국적인 것이라면 세계적이다'로 해석 할 수 있을 것이다....(중략)...둘째, 논리적으로 느슨한 이 구호는 논리적 관계가 아닌 우리의 염월을 표하는 것으로 해석 할 수 있다.
--- p.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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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나는 언제나 바다를 파란색으로 칠했다. 왜냐하면 기억 속의 바다는 파란색이었고, 또 바다는 파랗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훗날 동해 낙산사에서 바다를 볼 때 마다 나는 바다가 여러 가지 색을 띤다는 것을 알았다. 하늘이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일 때의 바다는 푸른빛이었다. 바다는 시시각각 하늘의 색에 따라 변했다. 나는 더 이상 바다 색이 파랗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바다의 색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이 시각 이 바다의 색이 무엇이냐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다면 답은 이 색 혹은 바로 이 바다 색이 될 것이다.
나는 세계가 개별자의 집합일 뿐 보편자의 예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의 근본적 존재자는 개별자이다. 존재자의 기본 단위는 개별자이다. 개별자들의 세계를 임의로 혹은 편의에 따라 분류하기 위해서 우리는 추상 개념을 도입한다. 즉 추상 개념을 사용해 세계를 분류, 정리한다. 정리된 세계는 우리에게 질서감과 동시에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선물을 주는 추상 개념에 개별자와 동일한 지위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보편 개념은 추상 개념으로서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바다의 색은 시시각각 변하며 어떠 특정한 색을 갖지 않는다. 우리는 편의상 바다는 대체로 파란색이라고 말할 뿐이다. 사실은 이 바다와 저 바다의 색이 다르며, 이 시각 저 시각 또한 다르다. 우리는 단지 편의상 추상 개념을 사용한다. --- p.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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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이라고 생각되는 속성을 우리의 것에서 찾아내어 특화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가 아니라 세계적인 보편성을 알아내어 역으로 그것을 한국적인 것에서 찾는 것이다. … (중략) …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것에 숨어있는 세계적인 것을 찾는 것이 현실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더 높은 방안일 것이다.
--- p.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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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일본과 미국의 순서가 바뀌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미국이 한국을 식민 지배하고 그후 일본이 점령군으로 입성했다면 우리는 미국을 증오하고 일본에 감사했을까? 나는 미국과 일본을 그 순서에 관계없이 한국에 대해 동일한 정책을 취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 일본에 대해 동일한 태도를 보여야한다. 즉 동일한 잣대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중잣대를 갖고있다.
--- p.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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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철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의미에서가 아닌, 또한 한국에서의 철학이란 의미에서가 아니라 한국의 특수성을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드러내는 철학이 있다고 믿는다.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다. 이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철학이 있다면, 시원에 관계없이 한국철학이다.
--- p.120 <맺는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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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 철학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의미에서가 아닌, 또한 한국에서의 철학이란 의미에서가 아니라 한국의 특수성을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드러내는 철학이 있다고 믿는다.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다. 이 세 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철학이 있다면, 시원에 관계 없이 한국철학이다.
--- p.맺는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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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이란 용어는 물론 제 2차 세계대전을 뜻한다. 하지만 왜 이것을 '세계' 대전으로 불러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이 전쟁은 전세계에 걸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 일부, 아프리타 일부에서 전쟁이 벌어졌을 뿐이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유럽의 전쟁이다. 그런데도 이를 '세계' 전쟁이라고 부르는것은 유럽 중심적 사고의 산물이다.
--- p.1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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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세계가 개별자의 집합일 뿐 보편자의 예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의 근본적 존재자는 개별자이다. 존재자의 기본단위는 개별자이다.
~ 표절과 베끼기는 그 자체로 범죄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고찰의 기회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다. 이 세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철학이 있다면, 시원에 관계없이 한국철학이다. --- p.57, 94, 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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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세계가 개별자의 집합일 뿐 보편자의 예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의 근본적 존재자는 개별자이다. 존재자의 기본단위는 개별자이다.
~ 표절과 베끼기는 그 자체로 범죄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고찰의 기회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현재성, 대중성, 주체성이다. 이 세가지 기준을 만족시키는 철학이 있다면, 시원에 관계없이 한국철학이다. --- p.57, 94, 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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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을 말한다.
이 땅에서 철학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대체로 '주책없이' 난해하다는 것이다. 철학적 문제가 무엇인가는 차치하고서라도 우선 철학이라고 분류된 책은 도저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철학 하면 골치 아픈 것이라는 선입견이 우리 머리 속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나는 두 가지 문제를 짚어 보고자 한다. 하나는 이 땅에서 철학적 문제를 잘못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중을 위한 철학서가 일정 수준의 재미와 흥미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철학적 문제 설정의 잘못은 지금 우리의 당면 과제들이 철학적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으로 잘 알 수 있다. 가령 '한국의 정체성' 을 예로 들어 보자. 해방 후부터 계속된 한국의 정체성 문제는 한국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이 질문이 의미없다고 말할 이 시대의 지식인이 얼마나 될 것인가? 또 이것이 절박한 질문임을 부인할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하지만 놀랍게도 한국의 정체성을 주제나 제목으로 하는 단행본은 이 책이 처음이다. 나는 책을 쓰기 전에 참고자료를 찾았다. 선학들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편적인 글들은 있었지만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은 유감스럽게도 없었다. 의아하고 당혹스러웠다.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 쓴 책은 많지만 '한국의 정체성' 을 다룬 책은 없었던 것이다. 철학이 이 땅에서 외면당하는 것은 독자 탓이 아니라 문제를 잘못 설정하고 있는 철학자들의 탓이다. 이 책은 서점에서 다양하게 분류되어 있다. 인문학에서 '동양철학/한국철학' 으로 또는 '한국학' 으로, 그런가 하면 '사회/역사, 지리' 로도 분류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이 '한국철학' 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사회 분야의 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 책을 '사상' 이란 부류에 넣고 싶다. '한국철학' 보다는 '한국사상' 이나 '사상' 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사상' 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상이란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침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학이란 명칭은 본래의 좋은 의미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현학적인' 학문이 되고 말았다. 니체의 철학이 우리 사회의 지침이 될 수 있을까? 퇴계의 주자학 해석이 지금 이 시대에 무엇을 말해줄 수 있는가? 사상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사회를 변혁시킬 역동성을 갖고 있다. 이 말을 달리하자면 '철학'이 죽은 학문인 반면 '사상'은 살아 움직이는 주장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의 모든 분야에서의 변혁의 시동을 걸 목적으로 씌여진 것이다. 제시된 방향이 잘못되었을지 몰라도 이 책이 살아 있는 힘을 갖고 있는 사상서이길 바란다. 철학이 제 임무를 다하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학문과 대중을 이어줄 이야기꾼이 없다는 데에 있다. 철학이 삶과 연관된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고 아무리 역설 해보아야 대중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향을 전환하여 대중에 영합하는 알기 쉽고 친절한 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번에도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대중을 우습게 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사회자들이 시청자들을 유치원생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는 대중이 우리의 삶을 기반으로 중요한 문제를 진지하게 서술하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가 사소하게 넘겨버렸던 문제에서 중요한 문제를 끄집어내고 그 문제가 갖는 의의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것을 이 책의 집필 목표로 삼았다.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서 사유를 시작하기 위해 주로 인기 있는 영화를 소재로 삼았다. 사람들이 주로 <서편제> 보다 <쉬리> 가 더 한국적이라는 내 주장에 대하여 가장 많이 언급한 것은 그럴 만하다. 나는 대중이 매우 수준 높은 재미를 원한다고 믿는다. 재미있는 게 좋다고 대중은 위악적인 태도로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재미가 매우 만족되기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다. 그 재미를 제공하는 방법은 역시 우리의 문제를 정면으로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여러 사람이 지적하듯이 논란의 여지가 많다. 기존의 상식과 다른 주장이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위에 예를 든 <서편제> 와 <쉬리> 의 경우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나는 단지 한국적인 것의 판단 기준에 대해 한 가지를 제시했을 뿐이다. 독자들과 평자들의 반론이 타당하다면 기꺼이 내 주장을 수정해서, 그 수정된 견해를 별도의 단행본으로 내놓고 싶다. 그 책은 나와 독자 모두의 정신적 성장의 증거가 될 것이다. 아무쪼록 많은 독자들이 비판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