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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남길순

처서
나리꽃 필 무렵
짱뚱어
커다란 원
친절한 의사
런닝맨
가물치
이모
산문|순천만 일기

2 김한규

컨테이너
지키는 사람 뒤에서
U턴하며 U턴하지 않겠다는 숀펜
택시를 탔어, 어디로 가는 택시 맞아?
뭉치
가스통
지나왔습니까?
밤길에는 표지병이 보일 겁니다
산문|숨는 연습

3 문저온

가지 않고
염소
새는 나에게 어떻게 왔나
화상
예술적인 운동장
독백에 대하 여─토(吐)
어둠을 찍을 때도 빛은 필요하였다
연극
산문|열무와 잎사귀와 달팽이

4 박영기

부추 같은 우울
충분한 휴식
오후의 동물원
흰 낙타 이야기
훔친 시
게와 파도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빠른 방법
양파
산문|상상 속의 그 무엇

5 조행래

식도락
칼잠
붕괴
양생(養生)
활개
산책
생장
낮은 자세
산문|불꽃놀이하는 사람들

6 서연우

남겨진 죽음들
터널을 지나는 동안
삭도를 타고
고라니
메타세쿼이아를 베는 굉음
눈사람
삼호로 교차로
누군가는 여전히 치열하게 싸우고
산문|국민체조

7 심선자

퇴근
크로와상
벽은 알지
밤에
우리들의 방
어느 골목에서 놓친 것들
모습
공을 보세요
산문|엉망이라도 괜찮은가

해설

차이의 장소에서 듣는 시인들의 목소리
─이병국(시인·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7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순천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2012년 《시로여는세상》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분홍의 시작』 합동시집 『시골시인-Q』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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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경상남도 하동에서 태어났다. 2017년 [영남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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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2015년 《발견》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치병소요록』, 합동시집 『시골시인-Q』가 있다.

문저온의 다른 상품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2007년 『시와사상』에 「불협화음」 외 4편으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딴전을 피우는 일곱 마리 민달팽이에게』를 발매하였다.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다. 2012년 《시사사》 신인추천작품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라그랑주 포인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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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192g | 125*210*20mm
ISBN13
9791192333977

책 속으로

어른들은 모이기만 하면 독한 담배를 피운다
여기저기 미쳐 자빠진 풀이
쓰러져 일어서려 하지 않는다

살이 오른 수탉은
버찌를 주워 먹은 듯 부리와 혀가 까맣다

때죽을 따 던지며 놀다
심드렁하게 돌로 찧는다

물고기가 하얗게 배를 뒤집으며 떠오른다

나만 모르는 소문이
숲 군데군데
고개를 쳐들고 피어올라 있다
---「남길순 시_나리꽃 필 무렵」중에서

집중과 몰입이 진실 가까이 다가가도록 열심히 살고 열심히 쓰세요, 새를 보고 있으면 가만히 떠오르는 말이 있다.
자연과 가까이 있다 보면 몸이 시를 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몸은 정직하다. 꽃을 피우기 위해 서 있는 식물처럼 서서 쓴다. 실감이 쓴다. 말이 나오는 대로 지껄이다가 짱뚱어와 가물치를 쓴다. 진실아, 도망가라. 상처도 흉터도 없이 달아나는 날것을 쓰다가 끝까지 따라가지 못한다.
---「남길순 산문_순천만 일기」중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사람이 잔을 내려놓았다 탁자의 물기가 컵을 슬쩍 밀고 있다 점심때가 지난다 지나가고 있다 가까이서 베니어합판으로 만든 문이 흔들린다 그 위에 젖은 양말이 걸려 있다 빨랫줄은 보이지 않고 비가 눈으로 바뀌면서 눈이 비로 바뀌는 과정이다 밀가루가 반죽이 될 때까지는 예상할 필요가 없다 전기 패널의 온도를 올려야 할지도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닌데 온도는 예감된다 지나가면서 지나오는 이 마을은 성냥 한 개비면 충분한가 아직 어둠은 보이지 않는다 어두워질 것이라는 예감은 산 너머에 머물러 있다
---「김한규 시_지나왔습니까?」중에서

그러나 나는 언제나 생활이 문제였다. 그렇게 떠도는 동안 무엇인가 내게서 자꾸만 떨어져 나가고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생활과 생활 사이에서 삶의 어떤 다른 영역이 있을 것이라는 상상과 환상. 그러나 그 영역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또 외부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충분히 외부인데 다시 외부로 가는 것이 가능한가. 견딜 수 있는 것. 다시 말해 이것은 숨으려고 하는 이야기다.
---「김한규 산문_숨는 연습」중에서

덫을 놓았던가, 내가?

나는 새의 반을 삼키고 구역질을 한다
새의 반을 뱉고
새는 나를 떠나간다

덫을 놓았던가, 새가?

새와 나는
새를 공평하게 나누어 가진다

식도를 타고
새가 나를 통과한다
---「문저온 시_새는 나에게 어떻게 왔나」중에서

나는 가위를 꺼내 달팽이가 붙은 잎사귀 끝을 잘랐다. 북쪽 창을 열고 서늘한 밤공기 속으로 던졌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좀 이상한 생각이었지만, 나는 3층 높이를 잎사귀가 사뿐히 내려앉기를, 잎사귀에 앉은 채로 그가 지상에 가볍게 도착하기를 바랐다.
(중략)
아침에 주차장 바닥에 코를 박고 달팽이를 찾았다. 참 나, 당신이 달팽이라면 밤새 어디로도 가지 않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겠는가? 그러나 찾았다. 시들어서 쭈글쭈글해진 열무 잎사귀 조각만 바닥에 붙어 있었다. 달팽이는 깨지지도 밟히지도 않았다!
---「문저온 산문_열무와 잎사귀와 달팽이」중에서

애벌레 쪼다 고양이에게 심장 찢기는 새이고 싶다
하늘에서 까마귀 깃털처럼 바람을 타고 싶다
먹구름처럼 겨울 강물에 떠 있는 청둥오리이고 싶다
긴 세 개 발가락으로 늪지대를 성큼성큼 걷고 싶다
물꿩처럼 살아 보고 싶다 수꿩 말고 암꿩으로
멍석만 한 가시연잎 위 여러 개 둥지를 틀고 싶다
둥지마다 다른 수컷 알을 낳아 그 수컷이 포란하게 하고 싶다
모서리 죄다 깎여 매끄럽고 둥근 알은 깨 버리고 싶다
---「박영기 시_훔친 시」중에서

바닥이라는 말보다 본색이라는 말이 좋다. 본색이라는 말보다 본질이라는 말이 좋다. 본질이라는 말보다 기질이라는 말이 더 좋다. 기질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물속에서 발을 부단히 움직이며 물 위에 떠 있다. 바닥을 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저 인간 바닥이 보이네.’ 감추려고 애를 써도 바닥은 드러나고 만다. 헛힘 쓰지 말자. 몸에 힘을 빼고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박영기 산문_상상 속의 그 무엇」중에서

지금 빠지는 머리칼과 이전에 빠진 머리칼이 떼로 드잡이하는 수채 앞에서 기세가 수세에 몰리면서 아무것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그러나 칼날만큼의 틈이 수위를 얇게 저미면서

끝내 비우지도 넘치지도 못하고 빠진 만큼 채워지는 속도 녹슨 창살의 밀도와 매달린 비누가 녹는 온도 한도와 초과가 끝도 없이 연장 결별한다던 살과 비듬이 거품 속에서 서로 껴안고 미끈거리는 삶과 죽음 흉내를 내면서
---「조행래 시_생장」중에서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이 서로 깊거나 얕게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불꽃놀이는 그것들과 별개로 이루어지는 이벤트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다른 팀과 분리되어 따로 행동하면서 과묵했다. 외로움으로 맺어진 작은 공동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림자처럼 검은 옷을 입은 그들은, 전투와 죽음이 키워내는 낭만이 사라져 버린 현재의 기이한 전장을 활보하는, 지난 세기의 용병들 같았다. 국가도 민족도 믿지 않고, 오로지 생계를 위해 싸우며 하루하루를 계산하는 사람들. 이곳의 축제가 끝나면 저기서 다시 시작될 축제를 향해 장비를 챙겨 떠났다.
어떤 때는 하늘을 채운 짙은 어둠의 틈에 한 줌의 빛을 뿌려 놓고 밤을 경작하는 사람들 같기도 했다.
---「조행래 산문_불꽃놀이하는 사람들」중에서

죽음을 문 구석은 문전성시다
땅을 보고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며
구석의 바깥으로 넘어가는 마음 급한 냄새를 다독이고
발로 비비고 침을 덜어낸다
몸이 사라지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에도
구석은 모였다 사라졌다 모이고 사라지는 사람들이다
이런 격조에 맞는 쓰레기통은 어디에 있는가
늘 그랬듯이 버리지 않는 척 버리는
---「서연우 시_남겨진 죽음들」중에서

정말 잊지 못하는 것은 그때 딱 한 번 빼먹은 국민체조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아침에 한 번도 빼먹지 않고 그때 그 국민체조를 합니다. 국가대표 체조선수들을 따라 숨쉬기할 때, 목 운동을 할 때, 어깨에서 목에서 우두둑우두둑 엉겨 붙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태양이 솟구쳐 오릅니다.
---「서연우 산문_국민체조」중에서

엄마는 떨어진 인형의 눈알을 꿰매고 있다 잠도 자지 않고서, 인형을 다 만들면 엄마, 어디 가지 마세요 우리는 사랑으로 태어났잖아요

푹푹한 솜이불 위 먼지가 폴폴, 우리가 뛰어놀기 좋은 곳, 우리의 꿈은 여기에서 만들어진다

이 광경은 무덤까지 지워지지 않는다
---「심선자 시_밤에」중에서

동전을 던져서 앞이 나오면 집을 나갈 거라고 결심했던 밤이었다. 언니가 갑자기 친절해졌다. 마치 내 일기를 몰래 훔쳐본 사람처럼. 우리가 태어나는 건 우리가 모르는 얘기다. 나는 아침마다 눈을 감고 걸어 다녔다. 신발도 없이. 그러면 밑을 보고 다니라는 말이 들렸다.
네 삶이 엉망진창이라고 말한 것, 내가 미안해, 언니. 우린 한줄기에서 자란 나뭇가지야. 언젠간 모두 잘려 나갈 거야. 우린 여기서 떨어질 거야. 바닥에서 만나.

---「심선자 산문_엉망이라도 괜찮은가」중에서

출판사 리뷰

일곱 색깔 시골시인이 담아낸 이 시대의 질문들(Q)
?지금, 이 사건의 장소에서 시작하는 시


일곱 명의 시인 남길순·김한규·문저온·박영기·조행래·서연우·심선자가 참여한 합동시집 『시골시인-Q』가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출간되었다. 이들은 진주, 순천, 창원 등 각지에서 살고 있지만 경남 진주에서 오랜 기간 흩어짐과 모임의 반복 속에서 각자의 시가 되는 자리를 만들었고 그 자리를 ‘사건의 장소’라 불렀다.

서로 추구하는 시의 세계가 다른 이들이 각자의 색깔을 내며 나로부터 확장해 가는 질문 (Question)을 멈추지 않고, 낡지 않게 쓰겠다며 다짐한다. ‘시인의 말’에서 밝히고 있듯 ‘시골시인-Q’의 Q는 완전체 ‘O’를 찌르거나 뚫고 나오는 가시 같은 ‘Q’이며, 완전체에 머물러 빤한 세계를 구축하는 시가 아닌 혼돈과 미완성과 무구한 상상력을 담는 시를 추구한다. 비평가 콜린 윌슨은 “아웃사이더는 깨어나서 혼돈을 본 인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아웃사이더란 남들이 보지 않는(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본” 이들일 텐데, 그런 점에서 이 일곱 시인은 오롯이 본인이 발 딛고 선 자리에서 그 장소와 결부된 능동적인 경험과 기억을 시로써 길어 올린다.

이 시집은 도시, 더 나아가 서울과 대비되는 공간으로서의 시골(로 상상되는 지역/지방)에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 가는 시인의 다채로움을 알리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활동은 개별 시인의 단독성이 상호 통섭하여 다자성 충만한 관계의 양태로 드러나며, 이를 시로 표현함으로써 다성성을 감각할 수 있도록 한다. 다시 말하면 시인의 개별적 경험과 사유가 개인의 자기 창조 경험을 넘어 타인과의 능동적 관계 맺음을 통해 시적 차이를 생성하고 이를 다시 하나의 경향으로 형성하는 힘을 구성하는 데 시집의 중핵이 놓인 것이다. 그로 인해 시는 발생의 새로움을 향한 변화의 사건이 되어 활력적 유희를 지니게 된다. ‘시골시인-Q’라는 제하에 모인 남길순, 김한규, 문저온, 박영기, 조행래, 서연우, 심선자 시인이 각각 구성해낸 세계는 그들의 단독성에 기반을 둔 자기표현이면서 존재의 공통 구성으로서의 삶의 형상을 상호 통섭적인 관계를 통해 생성하는 역동적 차이의 장소인 셈이다.
- 이병국 해설, 「차이의 장소에서 듣는 시인들의 목소리」 부분

남길순 시인은 생명을 가진 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고통으로, 죽음으로 전이되는 순간을 강렬한 전율로 그려내며, 그로 인한 충동이 야기하는 비애를 감각적으로 묘파한다. 김한규 시인은 동음이의어와 비문(非文)을 통한 비틀기, 부정의 형식적 미학을 통해 삶을 낯설게 바라본다. 김한규가 쓰는 부정의 형식은 시적 주체가 부정의한 세계로부터 “냄새의 뒷전”(「뭉치」)으로 전락하여 잉여적 존재가 되는 것을 거부하는 숨기이자 쓰기의 방법론적 수행이다.

문저온 시인의 시적 주체는 “달팽이 한 마리”의 삶을 얹고 “좀 멀리, 좀 가볍게 그러나 팔랑 뒤집히면서, 비행과 낙하 사이를”(「열무와 잎사귀와 달팽이」) 유영하며 활력적 유희의 장소인 ‘시’를 발화하고자 한다. 박영기 시인은 “달랑게들이 집게발로 모래를 퍼/입술로 꾹꾹 다”져 “모래구슬”(「게와 파도」)을 빚어내는 것처럼 갈망하고 위로하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살고, 삶을 쓰는 주체의 기투이자 분명한 자기 증명임을 노래한다.

조행래 시인은 “어디에도 소용되지 않”는 “허공에 싹을 틔”우며(「생장」) “새로이 차오르는 무게를 다시, 아주 낡은 자세로”(「낮은 자세」) 감당하고 추구하는 시인의 실존과 형상을 빚어낸다. 서연우 시인이 응시하는 대상은 ‘구석’에 놓인 존재다. 구석은 내몰린 자들의 공간이며 의미를 지니지 못한 소외된 이들이 공동화된 장소인데, 서연우는 ‘남겨진 죽음’으로 간주되는 삶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고발하며, 인간의 일상에 나타나는 ‘새로운 폐허’에 주목한다. 심선자 시인은 불안, 자기분열의 상처와 고통에 귀 기울임으로써 역설적이게도 희미한 존재로서의 자신을 긍정하고, 아울러 병든 타자를 감싸 안는 윤리를 보인다.

추천사를 쓴 이영광 시인이 표현하듯 이 “시인들의 골똘한 내면에서는 불분명한 것을, 불분명하게 분명히 적으려는 시도가 우글거”린다. 이 우글거림이야말로 아웃사이더의 호쾌한 몸짓이며, 자유 그 자체일 것이다.

시인의 말

‘시골시인 Q’는 나로부터 확장해 가는 질문(Question)이다.
그러니까 낡아 가지 않고 질문을 멈추지 않겠다는 Q이다.
Q는 완전체 O를 찌르거나
뚫고 나오는 가시 같은 것이기도 하다.

2023년 7월

추천평

이 앤솔러지는 생각하고 적은 말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적은 말, 벼려낸 말과 솟아난 말, 아는 말과 모르는 말의 다발들이, 서로 어긋나고 침투하며 들끓는 경연장 같다. 정신을 잃을 수 없는 지점에서 말들은 사실에 부합하려 하기도 하고, 정신을 차리고 견딜 수 없는 자리에서는 진저리 치며 뒤틀리고 비산하기도 한다. 어떤 시들은 정결한 심리적 에너지를 끌어모아 스스로 시적 발화를 이루어 타오르고, 어떤 시들은 먼 행간들에 명운을 걸고 낯선 상상의 허방에 결단하듯 몸을 던진다. 또 어떤 시들은 틀리게 더듬거리고 거꾸로 중얼거리려 애쓰면서, 즉 문법을 깨거나 의미를 흩트리면서 강박적인 비문과 오문을 타고 어딘가로 가 보려 한다. 대립적인 이미지들의 병치와 이질적인 장면들의 전치를 통해 개별 부스들은 물론, 시집 전체는 어떤 긴장된 미지의 풍경을 현시하는 듯하다. 시인들이 미지에 스치려 하는 것은 미지가 시인들의 영혼 속에서 불분명하게 숨 쉬며 운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시인들의 골똘한 내면에서는 불분명한 것을, 불분명하게 분명히 적으려는 시도가 우글거리는 걸까. 그런데도 “말이 나오는 대로” 의식을 방임하고, “독백은 고백이 아”닌 곳에서 “진실”이라는 몸의 신음을 찾아 헤매며 정신의 모험을 거듭하지만, “여기서 일어난 일은 일도 아니”라는 천진성이 풍경의 배후를 떠받치고 있다.

시인은, 분투하면서도 제가 분투하는 줄 모르는 자이다. 그는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면서도 바닥을 치는 일의 어려움을 절감하는 이의 겸허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해체는 특별히 어렵지도, 그저 쉽지도 않은 작업이다. 감각의 착란과 의식의 뒤틀림이 이 정신없는 상상의 모험가들에게 왜 중요한가. 시가 늘 인간과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 보여 주지 않고, 안 보이는 그대로 보여 주려 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이 앤솔러지를, 떠듬떠듬 오래 읽었다. - 이영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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