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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이어가는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 근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으로 한국 문학을 다시, 또 함께 보자는 의미를 담은 시리즈 ‘소설, 잇다‘ 첫 번째 책. 폭로와 분노로 세상의 편견을 넘어가려 하는 백신애 작가와, 사랑의 힘으로 억압을 벗어나고자 하는 최진영 작가의 연대가 이어진다. 다음 책도 궁금해지는 시리즈. - 소설 PD 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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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하여
백신애 소설 광인수기 혼명에서 아름다운 노을 최진영 소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에세이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 해설 미친 여자들의 사랑의 실험_이지은(문학평론가) |
박계화(朴啓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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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빌어먹을 낮잠 잘 하느님은 저를 위해주고 겁내 하면 할수록 점점 더 건방이 늘고 심술이 늘어가더라.
나를 영 사람으로 여기지 않더라. 내가 모두 팔자로 돌리고 좋으나 궂으나 좋다고만 하니까 아주 나를 바보로 아는 모양이지, 이 지경을 만드는 것을 보면…… 아이고 아이고 흑흑…… ---「광인수기」중에서 어머니의 눈물입니다! 조용한 어머니의 눈물은 나에게서 모든 용기를 앗아가는 무기였습니다. 그 눈물은 오직 나에게 안일을 주려는 지극한 사랑이 근원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털끝만치도 나를 이해해주려고는 생각지 않아요. 다만 끝없이 사랑할 줄만 압니다. 그 사랑을 감수하지 않을 듯한 불안에 항상 슬퍼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달래보며 온갖 정성을 다해줍니다. ---「혼명에서」중에서 내년 봄 삼월! S! 그때 당신에게 말할 결론이 이 밤에 나타났어요. 그리고 나는 내가 취할 바 길을 분명히 알아냈습니다. 나에게도 신념이 생겼습니다. S! 나에게도 갈 길이 명백히 나타났어요. ---「혼명에서」중에서 ‘네가 어미냐! 네 아들이 지금 열여섯 살이나 되었다.’ 라고 외치는 듯하여 나는 깜짝 놀란 듯 휙 돌아서서 달아나듯 골목쟁이를 뛰어나오고 말았어요. 내 아들에게 대할 때 지극히 청정한 어머니로서 아니면 도저히 허락할 수 없다고 내 스스로가 느꼈던 탓입니다. ---「아름다운 노을」중에서 소년은 내 얼굴을 두 손 사이에 넣어 치켜들어 나무 위를 보여줍니다. 나뭇가지에 이름 없는 두 마리 새가 정답게 지저귀며 가지런히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잊고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꼭 껴안았답니다. 서로 뺨을 마주 대고…… ---「아름다운 노을」중에서 즐거운 퇴근길에 우울한 소리나 하고, 미안해요. 나도 매일 하는 생각인데요, 뭐. 무슨 일 하는지 물어봐도 돼요? 아아뇨. 그럼 난 뭘 물어볼 수 있어요? 나는 조금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생각에 잠겼던 순희 씨가 걸음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나 보고 싶었어요? 같은 질문? 바람이 불어 우리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중에서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건 바로 이런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는 것. 비슷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 나에게 기쁜 마음을, 심심한 마음을, 힘든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외롭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망하고 계속 망할 뿐이라는 평범한 삶을 기꺼이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중에서 나의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으며 누군가는 나의 글에 공감하는 상황을 ‘기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나는 지금 꾹 참고 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제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적이 아니다. 그런 사실이 나를 일으킨다. ---「에세이_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중에서 흥미로운 점은 여자들의 광기가 발생하는 근원에 사랑이, 배신으로 인한 절망이든 매혹으로 인한 정열이든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이 정한 이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의 에너지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표출하지 못하게 하는 현실의 모순이 여자들을 미치게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 실린 소설들을 규정할 수 없고 표출할 수 없었던 감정에 대한 여자들의 실험이라 명명해보는 건 어떨까. 미친 여자들의 사랑의 실험. ---「해설_미친 여자들의 사랑의 실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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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몸에서 삶의 먼지를 활활 털고
쉬지 않고 달려가리다” 백신애에게 ‘자유’이자 ‘신념’이자 ‘예술혼’이었던, 사랑 「광인수기」는 광인(狂人)이 넋두리를 풀어내는 형식으로 서술된다. 비가 쏟아지는 날 자신의 팔자를 한탄하는 주인공 ‘나’는 동경 유학을 다녀온 남편을 두고 “교묘하게 이론만 갖다 붙여서 그저 합리화하려고만 하는 재주만 늘어”간다고 비판한다. 광인과 비광인의 어투를 오가는 ‘믿을 수 없는 화자’인 ‘나’는 남편의 불륜 현장을 급습한 대가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사회와 격리되었다가 ‘탈출’한다. 그럼에도 화자가 돌아가는 곳은, 남편에 의해 빼앗긴 아이들이 있는 ‘가정’이다. 「혼명에서」의 주인공 ‘나’는 이혼을 통해 “평화와 안심”을 얻게 되었지만, 가족들은 조용히 근신하며 여성으로서의 명예를 회복시키기를 요구한다. ‘나’에게 그들이 보이는 관심과 보호는 외부와 자신을 차단시킬 압박일 뿐이며, 또한 구속이다. ‘나’는 결국 집을 떠나 S를 처음 만나게 되는데, 그는 ‘나’에게 신념과 정체성을 찾도록 인도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곧 S의 부고가 들려오고, ‘나’는 그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쓴다. 작가 사후에 발표된 유작인 「아름다운 노을」에서 순희는 아들 또래의 소년 정규를 연모하고 있지만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게다가 아들 석주는 손이 없는 시댁에 양자로 보냈으며, 따라서 순희는 친정의 대를 이을 아들을 다시 낳아야 한다. 소년은 정혼자가 아들처럼 키운 친동생이다. 가부장제에 종속된 자신의 처지와 소년에 대한 사랑을 예술적 욕망으로 치환하려는 순희는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려다가도 아들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싶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보고 웃는 것. 비슷한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것.” 평범한 일상 속에서 반짝 빛을 내는 사랑의 순간 최진영의 소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의 이십 대 취준생인 ‘나’는 낮엔 도서관에서 공부를, 저녁엔 편의점과 펍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나’는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불안감이 수시로 찾아든다. ‘내가 원하는 건 취직, 월급, 적금, 월세에서 전세로. 근데 그런 건 삶의 기본 조건 아닌가?’ 하고 자문하면서. 그리고 ‘나’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순희를 만난다. 무례한 한 남자 손님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을 때 순희는 말을 거들어 도와주었다. 그날 순희는 딸의 가출한 친구의 행방을 수소문하고자 편의점에 들렀었다. 그 뒤 ‘나’는 순희와 또 한 번의 우연한 만남을 갖는다. 주말 아르바이트 장소인 펍에서였다. 우체국을 다니는 순희는 퇴근 후 펍에서 맥주를 한잔씩 하곤 했다. 거기서 ‘나’와 순희는 통성명을 하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음악이나 영화, 잠자기 전 하는 생각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자기 말에 웃음을 터뜨리는 순희를, 간간이 생각에 골몰한 표정을 짓는 순희를 보면서 ‘매혹’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그것은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무언가”를 전하려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그 순간은 내내 ‘나’의 의식을 휩싸고, 그렇게 ‘나’는 “순희 씨를 기다리는 사람”이 된다. 백신애와 최진영이 선택한 ‘사랑의 연대’가 우리 곁에서 “천천히,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최진영 작가의 소설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의 주인공은 우체국을 다니는 사십 대 ‘순희’와 취준생인 이십 대 여성 청년 ‘정규’다. 두 주인공의 이름과 나이 차이 등은 백신애의 「아름다운 노을」에서 가져왔으나, 「광인수기」와 「혼명에서」에서 착안한 듯한 설정도 엿보인다. 순희와 정규는 「광인수기」의 ‘나’와 같이 현실의 모순을 거침없이 폭로하기도 하고, 「혼명에서」에서 ‘나’가 ‘S’와의 반복되는 세 번의 우연한 만남으로 흠모의 마음을 품게 되는 것처럼, 이들 또한 세 번의 만남을 통해 서로를 향한 이끌림을 확인한다. 다만 최진영 작가는 「아름다운 노을」에서와 같이 강렬한 정념에 이끌리는 사랑이 아닌 “서서히 사로잡히는” 사랑을 그린다. 최진영 작가는 이번 작업에 대한 소회를 담은 에세이 「절반의 가능성, 절반의 희망」에서 1938년에 발표한 「광인수기」의 여성 화자를 두고 시간적 배경을 현대로 바꾸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을 것 같은 인물이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소설 도입부에 나오는 문장인 “나를 영 사람으로 여기지 않더라”에 여러 번 밑줄을 그으면서 “현재에도 어떤 자들에게 여성은 사람이 아닙니다. 여성을 무시하고 억압하려는 자들은 여전히 있습니다”라고 덧붙인다. 그럼에도 최진영은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다. 백신애를 비롯한 많은 여성 작가들이 앞서 글을 써주었기에, 현재에도 여전히 소설을 읽고 공감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그리고 그것은 ‘기적’이 아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