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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lawa Szymbors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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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의 목소리로 읊어주는 삶의 한 페이지
“그들을 이어준 것은 갑작스러운 감정이라고 둘은 확신했다”라는 문장으로 시는 시작한다. 이제 막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우연이 하는 말이다. 그들은 확신한다지만, 과연 그들의 만남이 이번이 처음일까? 우연은 물음표를 던진다. 그리고 이 물음표는 시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전에 우리는 서로 몰랐지/그러니 우리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들이 생각한다면,/오래전부터 이들이 함께 지나쳤던/거리와 복도와 계단은 이걸 뭐라고 할까?” 우연은 그들이 첫눈에 반하게 된 건 오랫동안 엮이고 엮인 일들이 쌓여서 이뤄진 결과라는 사실을 늘어놓고 싶다. 어느 거리에서 우연히 지나치고, 어느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치고, 어느 계단에서는 우연히 엇갈렸겠지만, 그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물론 그들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도 우연은 알고 있다. 그러고는 자신의 장난들을 고백한다. “만약 아주 옛날부터 우연이 그들을 가지고 놀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너무나 이상하겠지” 운명으로 바뀌기 전까지 우연은 그들을 가깝게 했다가 멀어지게 하고, 그들의 길을 가로막아 섰다가 풀쩍 뛰어 옆으로 비켜 주기도 한다. 입을 틀어막고 키득거리면서 그들을 지켜보는 우연의 존재라니. 쉼보르스카가 아니면 누가 이런 엄청난 상상을 할 수 있을까? 담담한 독백과 어우러지는 서정적인 풍경 이처럼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첫눈에 반한 사랑』은 이탈리아 작가 베아트리체 가스카 퀘이라차의 일러스트와 만나 환상적이면서도 쓸쓸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표지에는 도로 위를 나란히 걷는 두 남녀의 그림자가 그려져 있는데, 사랑이라는 섬세하고도 입체적인 감정과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각 장면마다 거칠지만 단정해 보이는 그의 그림체는 쉼보르스카의 시와도 닮아있다. 마냥 밝지도, 마냥 어둡지도 않은 느낌. 과연 이제 막 시작된 연인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우연의 독백을 담기에 꼭 알맞다. 원래 폴란드에서 출간된 원서는 아코디언북 형태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첫 장부터 그림이 계속 이어져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시에서 이야기하는 메시지처럼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의도한 걸 수 있지만, 국내 버전은 독자의 가독성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아코디언 형태를 과감하게 포기했다. 대신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 보았으면 하는 장면 두 군데를 대문 접지로 제작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마다 시와 그림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오래 머물러 있어보길 권한다. 모든 시작은 시작이 아니었다는 걸 알기까지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폴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시인이다. 스웨덴 한림원이 쉼보르스카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발표하면서 “모차르트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고 극찬한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쉼보르스카는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단어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를 갖는 시어(詩語)의 세계에서는 그 어느 것 하나도 평범하거나 일상적이지 않습니다. 그 어떤 바위도, 그리고 그 위를 유유히 흘러가는 그 어떤 구름도, 그 어떤 날도,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그 어떤 밤도 아니,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존재도.” 시인이라면 ‘모르겠다’는 의문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그의 말처럼, 『첫눈에 반한 사랑』도 이러한 시도의 연장선에서 탄생한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와의 첫 만남이 정말 처음이었는지 모르는 일이고, 어떤 대단한 결정이 단순히 갑작스러운 판단으로 내린 게 아닐지 모른다. 우리가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가고 어떤 결심을 내리는 것들이 모두 실은 예정되어 있던 결과일지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할 뿐, 아마 우연은 알고 있지 않을까.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우연의 존재를 떠올리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 그림책은 우리의 일상에 작은 파도가 되어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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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보르스카의 시는 ‘좋은 대화’처럼 기분을 바꿔 놓는다. 일상의 단면을 평이한 언어로 응축해 보여 주는데, 예리한 시각과 통찰에 무릎을 치게 된다. 이번에는 첫눈에 반한 사랑이라는 불꽃의 순간을 낙엽과 계단과 문고리의 관점에서 탐문한다. 이 그림책을 덮고 나면 우린 아무것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법에 걸릴 것이다. 세계의 무심한 운행을 ‘우연의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언어의 마에스트로! 쉼보르스카 월드의 초대장이 여기 도착했다. - 은유 (작가,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쓰기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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