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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문학대표시선

책소개

목차

4 시인의 말

1부 바다

12 3월의 아라비아
14 7월 밤의 항해
17 바다
19 가거도
21 곡생曲生
23 가거도에서
25 꿈꿈
27 남양의 하루
29 대양에서
31 둔주곡遁走曲
33 묘박錨泊
35 무지개 꿈
37 바람 장미WIND ROSE
38 함께한 바다
40 항해
42 연안沿岸
44 배에서
46 사람 낚는 어부
48 비구름
50 빛의 미로
52 사랑의 거울
54 월광 단상月光 斷想
56 연륜
58 물에 비친 자화상
60 삶의 바다
61 표류
63 미시시피강에서
66 북해에서 홍해로
68 적도제
70 적도의 노래
72 적도에서

2부 자연의 꽃

76 꽃 생각
78 겹꽃
80 그대가
81 금새우난초
82 꽃
84 꼭두서니
86 노루귀꽃
87 꽃과 함께
88 누리장나무
90 꽃길
91 동백꽃
92 꽃을 보며
93 때죽나무꽃
94 꽃을 찾는 나비처럼
96 무궁화
98 민들레
100 벚꽃 십 리 길
102 별꽃
104 부초浮草
106 삶의 꽃
108 송악
110 술패랭이꽃
111 배롱나무
112 야생화
114 얼음새꽃
115 올괴불나무꽃
116 인동초
118 자연의 꽃
120 짚신나물꽃
122 창질경이
124 칡

3부 거대한 시계

128 그곳은 어떤가요
130 거대한 시계
132 2021 만재도
133 가볍게 걷는 거야
134 감상感傷
135 만남의 길
136 꿈 이야기
138 봄의 산책
140 탐조探鳥
142 종이집
144 불면不眠
146 탈피
148 고독사 피하기
150 별빛
151 경유지
152 개울가의 조약돌
154 고드름
155 보물찾기
156 뚝배기
158 바위
160 박물관
162 병病
164 꿈길
166 과부하
167 덮개
168 괜찮아요
170 꿈의 눈길
173 맥
174 동토에 훈풍을
176 민달팽이

180 해설 바다와 꽃 그리고 바람의 노래 | 이훈식

저자 소개 1

- 1961년 출생. 광주광역시 - 국립 목포해양전문대학(現 국립 목포해양대학교) 항해학과 졸업 - 2021년 서정문학 신인상 수상 - 서정문학 작가회 회원 - 서정문학 운영위원 - 한국문인협회 시 분과 회원 - 공저 「한국대표 서정시선 12, 13, 14」, 「서정 뜨락에 핀 꽃」 - 시집 「바다에 꽃빛 비치고」, 「공명(共鳴)의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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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193쪽 | 308g | 130*210*20mm
ISBN13
9791191155402

책 속으로

입춘도 지난 3월의 아침
승리욕 찬 꿈에 깨어나 밖에 나섰다.
얼마를 두고 현실의 슬픔이 꿈에 투영되어
환하고 따스한 촉감의 아침햇살로 다가섰다.
배 옆 항구의 바다에는 수많은 치어가
햇빛을 경축하며 부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두색 바다에서 눈을 떼
한 마리 부드러운 날갯짓의 갈매기를 보았다.
잔잔한 바다 위에 자유로운 선회뿐
날쌔게 바다를 덮치지 않았다
나의 낚시를 꺼리는 조용한 시선 위로
강한 햇살을 눈부시게 던지며 지나간다.
머리를 들어 깃발에 새겨진 칼을 보았다.
바람은 긴 칼을 펄럭이며 연안을 겨누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 바다를 보니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치어들을 경호하듯 따르고 있었다
갈매기의 날갯짓이 빨라질 때
의식적으로 칼을 바라보았다.
칼은 여전히 물건이 쌓인 부두를 겨누고 있었다.
감당치 못할 변화를 부르지 않고
삶은 여유를 주듯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깃발 근처에 하늘을 향해 배부르고
땅을 향해 배고픈 달이
비스듬히 세월의 모서리로 찍을 듯이 떠 있다.
비켜선 의식을 찍을 듯이
찾지 않고 저만치 두는 자연을 몰듯이
닳아진 봇짐 품고 그만 길 떠나듯이
한편 정열의 태양을 앞서가고
나의 그림자는 달을 향해가듯 뻗지만
오늘의 물음표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까?
뜨지 못해 짙게 퍼져 파도처럼 일렁인다.
---「3월의 아라비아」중에서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남동으로 희망봉을 향하여
바람을 안고 배는 달린다.
답답하여 윙 브리지로 나와 보니
더욱이 밝은 동그란 달은
마주 오는 구름을 헤치고
파도를 헤치며 가는 배 위로
일상의 시선을 차고 떠서
밝은 눈으로 지켜보며 함께한다.
7월 밤에
무언가 일곱을 헤아려 본다.
달 별 구름 바람 파도 배
그리고… 나
모두가 함께 서 있다
그리고 바다 위에 삶을 물들인다.
7월 밤의 항해
얼마 남은 시간이 지나면 보름
나의 시선은 밝은 달밤에
파도의 부서진 몇 가지 색을 생각하고
외로움으로 쓸쓸히 받아들이며
먼 수평선을 지켜본다.
동남으로 향하며 차츰 추워지며
바람은 세게 스며들어온 듯 차고
움츠러들며 한순간 대자연을 둘러본다.
천체의 항해와 배의 항해
바람이 불어 구름이 가듯
그들은 꿋꿋이 함께 항해한다.
파도가 거세 배가 요동칠 때도
파괴의 충돌이 없는 그들의 이상의 항해를
바닷물 겪은 바람이 곁에서 읊조린다.
천체는 항해하는 것
생의 배도 항해하는 것
시대는 조류와 바람처럼 흐르는 것
인생처럼 중요한 것은 항해하는 것
요동하는 항해는
부딪혀 부서질까 걱정되는 현상일 뿐
때로 간격을 지나 접촉은
파괴 아닌 창조를 위하나니
자연을 바라보는 7월 밤에는
사랑하고픈 이에게 시를 띄워보련다
그리고
아름다운 의지로
항해하는 삶을 기꺼이 맞이하련다
물이 바다로 모이고
다시 땅으로 비가 내리듯
어디로 가도 반가운 온 세상 곳곳으로
---「7월 밤의 항해」중에서

충돌로 패여 깊은 상심은
오랜 시간이 지나
부드러운 생명을 키우려고
애써 짙푸른 고독을 담았다.
저 멀리 흐르다 지친
메마른 감성에 닿으려
뜨겁게 피어올라 비를 내리고
자신의 갈증도 마다하지 않고
모두를 껴안은 바다는
다른 세상처럼
모질게 외면하고 각질화되는 삶이
바다를 꺼리고 두려워할 때도
파도의 하얀 영혼을 보낸다.
부서져 떠오르는 슬픈 영혼
흐르다 모여 동화되었다가
그 옛날 함께한 바람과의 조우로
방울방울 순간으로 기억하는데
이내 시야에서 사라질지라도
그 영혼에 손 내밀어
우리의 세상이 다시 젖줄이 되어
웃으며 다시 바다를 바라보아야 해
세상도 활기를 찾으면
또다시 바다는 승화하고
생명의 근원인 바다는
또 다른 만남을 찾아 떠나는 것을
그 깊은 고독을 쪼개고 나누어
드넓은 삶을 꽃피우려는 것을
---「바다」중에서

그 옛날 불린 이름처럼
아름답고 아름다운 섬
가가도로 몇몇 발걸음도
벅찬 감동으로 접어들고
오롯이 희망으로 맞이하네

아침 신선한 빛이 흘러
호흡처럼 다가오는 숨
사랑 노래 고운 인연 쌓고
이웃의 희망 안고 들어와
오가며 거하는 삶이 되었네
한낮 바다의 깊은 정열
다양한 표출을 꿈꾸며
서남해의 울창한 터전으로
태고연한 빛과 숨결로
독실산 우뚝 솟아 안아주네

어두움 짙어지는 적막함
고독도 아름답게 보듬어
인연으로 맞이하는 풍경
흐릿해도 숨 쉬는 본성을
잊지 않고 아름답게 꿈꾸네
---「가거도」중에서

남반구에서 북동으로 항해하며
떠오르는 강한 빛의 오전
눈부시어 비낀 주위로 시선을 옮기며
순수치 못하다는 생각으로 문을 닫고
십여 평의 조타실을 배회한다.
자기 것 아닌 것에 욕심을 내고
그저 받아들이고
궁극적으로 자신을 잃어버리는 생
강한 빛을 마주하다
감다 만 눈으로
기다랗게 짜인 곡선을 보았다.
뱀의 허물 같은
그 허상의 곡선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꿈틀거리며 부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원죄처럼 망막에 부각된
순수치 못한 서로를 얽어매는 사슬
황혼 녘 구름 속에 스민
부분의 무지갯빛도 흩어져
하루의 끝이 되어 자연에 맴돌 때
그것은 그물처럼
고독을 포획하려는 듯
자유를 포획하려는 듯
어느덧 투망하여
어두움 속에서
어탁 같은 성과를 건져 올리고
하루를 잇는 박명 속에서
아픈 생을 건져 올렸다
그리고 눈부신 낮에는
갈라져서 염려되는 곳으로 와
그만 회복시키려는 듯 끝을 잇는다.

---「곡생曲生」중에서

출판사 리뷰

바다와 꽃 그리고 바람의 노래
― 이훈식(서정문학 발행인, 시인)


김덕진 시인의 첫 시집 출간을 먼저 축하드린다. 1부 바다, 2부 자연의 꽃, 3부 거대한 시계로 나누어진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참 많이도 외로웠고, 그 외로움이 삶의 자산이 되었고, 시어가 되었으며 경륜의 나이테로 그려져 있음을 보았다. 안으로만 삼킨 속울음이 승화된 시어들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제들이 적도를 건너게 하고 꽃으로 피어나게 했으며 작가 자신을 객관화시킨 그 정점에서 유유자적 관조하듯 곱게 담아낸 시어들이 세상을 향해 ‘나 여기 있소’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한 편의 시를 창조하기까지 애증을 잘라내고 가슴 붉었던 그리움의 언어로 형상화시키면서 마디마디 새겨놓은 김 시인의 깊은 사유가 저 바다 끝 검푸른 파도로 밀려오는듯 했다. 고통이 심하면 오히려 통증이 마비가 된다고 했던가. 아픔도 사랑도 깊이 가라앉히고 홀로 견딤을 깃발로 세운 김 시인의 시는 바로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세상을, 우주를, 인간을, 바라보는 구도의 길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시는 은유요, 함축이요를 떠나 소재가 주는 이미지를 의식의 틀 안에서 자유롭게 펼쳐낸 시들은 허영과 가식을 과감히 생략한 기법이고 필력이다.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피부적 표현이 아니라 깊은 상념을 침전시켰다 되새김질한 시어들에서는 연륜이 숨결로 묻어 있고 시향이 행간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살아오면서 차마 버릴 수 없는 이야기들을 가슴 조각으로 모아 두었다가 새 생명으로 탄생시킨 그간의 노력이 맑은 바다 그 수평선처럼 밝고 환하다. 언어는 그 작가의 사유이고 눈높이고 살아 온 삶의 한 단면이다. 화려한 기교와는 먼 단아한 시어들이 김 시인의 심성을 가늠하게 만든다.

독자들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나에게 쓰는 시, 그저 시가 좋아서 내 가슴에 새기듯 쓰는 시, 살다간 흔적으로만 남아도 좋을 시는 욕심이 없는 시이기에 난해하지도 않고 조금 어눌하고 투박해도 전혀 상관없다. 계층별 세대별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시는 어려운 어휘나 난해한 사유가 아니라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울림의 언어 그건 자신만의 색깔 자신만의 무늬를 가질 때 덤으로 찾아오는 결실이다.

요즘은 시인도 시를 읽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시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시를 머리로 쓰지 않고 가슴으로 긁어낸 시들은 그 생명력이 길 수밖에 없다. 지금은 무명작가라 해도 그런 것에 연연해하지 않는 작가의 우뚝 선 자부심이 그리운 때이다. 그런 면으로 보면 김덕진 시인의 시는 누구나 편안하게 읽을 수 있고 남들이 쉽게 겪을 수 없는 오랜 항해 생활에서 얻어진 신선한 시어들이 어느 때는 달빛 파도처럼 어느 때는 노도 같이 휘돌아 친다.

1부 바다

남반구에서 북동으로 항해하며
떠오르는 강한 빛의 오전
눈부시어 비낀 주위로 시선을 옮기며
순수치 못하다는 생각으로 문을 닫고
십여 평의 조타실을 배회한다.
자기 것 아닌 것에 욕심을 내고
그저 받아들이고
궁극적으로 자신을 잃어버리는 생
강한 빛을 마주하다
감다 만 눈으로
기다랗게 짜인 곡선을 보았다.
뱀의 허물 같은
그 허상의 곡선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꿈틀거리며 부영하고 있었다
― 「곡생曲生」 중에서-

무지개의 꿈은 하나로 되고 싶은 여로의 삶인가
나머지 반원은 솟아나지 않고
나타나지 않은 꿈이 되어
계획에 없었나 침묵으로 깊은 잠을 자고
가슴 설레게 하는 태어난 반원에는
태양의 환상 속에 고운 희망이 서려 있었네
― 「무지개 꿈」 중에서-

위의 시를 보면 한 시절을 바다에서 보낸 시인의 생생한 체험의 시어들이 꿈틀거리며 부영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 속에서 오는 그 괴리감을 스스로 굴곡진 생으로 표현한 언어는 어쩌면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반추해 보면서 그래도 해는 또다시 뜬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각인시켜보려는 시어들이 행마다 살아 움직인다.

시도 소설처럼 빈자리 읽기가 있다. 즉 행간에 숨겨둔 시인의 사유를 훔쳐보는 맛이 시를 읽어보는 참맛이기도 하다. 지구를 다 덮어버릴 것 같은 아니 이 세상을 다 삼켜버릴 것 같은 공포의 바다, 그러면서도 잠잠할 때는 평온의 곡선, 한없는 너그러움, 선망의 대상이기도 한 바다와 동고동락한 시인, 그 바다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시인은 실상에서 뱀의 허물 같은 허상을 보았고 조타실을 배회하는 자아를 객관화시킨 언어로 삶의 한 부분을 투영해 놓고 있다. 반원으로 하늘에 뜨는 무지개를 두고 나머지 반원은 비록 잠겨 있어 보이지 않지만 태양의 환상 속에 고운 희망으로 불러 낸 시인의 사유가 눈에 환하게 보인다. 시는 간접체험보다는 직접체험에서 우러난 시어들이 생동감을 더해 준다. 바다를 아는 시인만이 쓸 수 있는 시어에서 바다 향음이 물씬 묻어난다.

험난하고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 인간이 찾아야할 참된 덕목은 무엇인가? 한없는 욕심에 함몰되어가는 이 시대의 환경 속에서 김 시인은 나름대로 자신의 가치와 영역을 지나간 시간을 통해 현재를 들여다보며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 참다운 것인가를 되묻고 있다.

흐르며 잇듯 떠오르는 하루
먼 훗날의 잊힌 기억을 떠올리는가?
품어 환생하듯 구름이 솟고
또다시 감쌀 듯 비로 내리고
함께하는 적도의 삶을 본다
머물러 있을 줄 알았던 모든 것
가져 오가며 흐르는 삶 속에
진정 남겨 떠나야 할 것은 무엇인가?
적도는 깨우듯 출렁이고 있다
― 「적도에서」 중에서-

위의 시를 보면 적도를 지나며 망망대해의 일엽편주 같은 선상생활 속에서 김 시인은 생과 사의 경계를 보았고 짧은 한 생애가 찰나임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다. 하늘의 섭리 그 절대자 앞에 놓인 가냘픈 존재에 대한 자기 물음 또한 수없이 씹고 또 씹었을 김 시인, 그래서 누구보다 더 존재에 대한 사유의 폭이 사유의 깊이가 남달랐을 것 같다.

수시로 밀려드는 거센 파도 앞에 생존과 영욕에 대한 물음을 화두처럼 달고 살았을 김 시인. 깨어 있는 자만이 내일을 꿈꿀 수 있다는 말처럼 지는 노을에 물들었을 향수와 고독의 감성을 화려하게 색칠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수식어를 과감히 생략해 버린 평온한 바다 같은 시어가 제 몫을 다 하고 있음을 본다.

오랫동안 자신의 기억이라는 회로 속에서 잠자던 생각들을 옆 사람에게 속삭이는 듯한 작품들이 우리를 깨우듯 재생시키고 있다. 사실 시를 쓴다는 것은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행위이며 그걸 두고 우린 언어를 통한 구도자의 길이라고 한다.

2부 자연의 꽃

시는 시인의 자화상이다. 자연을 보고 꽃을 보고 다듬어 낸 사유는 시인의 세계이고 시인의 우주이다. 원죄처럼 가지고 사는 원초적 그리움의 이면은 아픔이요,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이다. 살면서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그리움의 원형이 시어로 그려질 때는 꽃이 작가 자신의 정체성의 한 부분이며 언제까지나 머물고 싶었던 순간들의 집합어이다.

2부에 있는 시들이 제목과 소재는 다르지만 주제는 한결같이 너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이미지의 시들이다. 그동안 삶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낮아지고 더 버리고자 애쓴 시어를 통해 김 시인 자신이 욕심 없이 살기를 얼마나 원했는가를 알 수가 있다. 시에서 화자는 작가 자신이다. 지나온 삶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는 시어들을 볼 때 청청한 성품 작은 것 하나에서 우주를 바라보고자 하는 사유가 가볍지 않다.

굴곡진 삶 속에서도 그 모든 걸 자기 안에서 승화시킨 시어들이 그간 경륜을 얘기해 주고 있다. 오랫동안 원고지를 잃고 살다가 책갈피로 끼어둔 낙엽 그 무늬 진 시간을 잊지 못했던 시인의 마음이 아픈 것은 아픔대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그 의미가 있다는 시인의 생각이 시적 대상이 되고 시인이 꿈꾸는 세계이다. 시인이 그 이름을 불러주면 죽어있던 꽃도 다시 꽃을 피운다. 실상과 허상을 알고 고락간에 그 간극을 경험과 연륜으로 채운 김 시인은 아픈 조개만이 찬란한 진주를 품는다는 것을 아는 시인이다.

바다에 묻힌 황금의 미련
꺼내어 씻고 또 씻는다
멀리 떠나고
새롭게 태어나
자라서 꽃을 피워 보이니
어찌 삶이 귀하지 않으랴
마음 가득 빛을
노래하는 금새우난초
― 「금새우난초」 중에서-

극단적 방향이 아닌 것을 알지만
운명처럼 뻗어가는 꼭두서니
대체로 열매 두 개씩 달리며
가까이서 마음 함께하자는 듯해
수고로운 방황이 전율케 하지만
생이 허무해서만 되겠나?
너도나도 나아가야 해
부서지지 않는 꿈속에 꼭두서니가 떠오른다.
― 「꼭두서니」 중에서-

처음엔 예상외로 꽃이 작아
지나치듯 잘 못 알아본 꽃
물어서라도 만나고픈 나의 마음을
꿈속으로 알아냈는지
눈빛으로 알아냈는지
밤하늘의 별처럼
여기저기 알리듯 하얗게 피었네
― 「별꽃」 중에서-

위에 “금새우난초”를 보면 씻고 또 씻고 새롭게 태어나 마음 가득 빛을 노래하니 어찌 삶이 귀하지 않으리. 금새우난초를 보고 읊은 시이지만 실제로는 금새우난초를 시인의 자신으로 의인화(擬人化-personification)시킨 기법이 돋보인다. 시는 의인화만 잘 시켜도 시의 반은 써진 것이라는 말이 있다. “꼭두서니” “별꽃”도 마찬가지이고 2부의 전체 시들의 정서와 작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작가의 사유, 경험, 감성이 문자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표출되고 있다. 우린 시인의 작품을 통해 시인 삶의 한 단면을 표백해 볼 수도 있고 또 사물을 대하는 인식과 생을 저울질해 보는 시인의 필력도 맛볼 수 있다. 화려하고 이름이 난 것보다는 숨어 있는 듯 피어있는 작은 꽃들을 보고 “생이 허무해서만 되겠나?” “물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나의 마음” 이러한 시어들은 바로 작가의 물음이고 대답이다. 우린 이 땅에 그냥 던져진 존재가 아니다. 자아에 대한 남다른 인식과 맞물린 김 시인의 그냥 흙 묻은 시어들이 여기저기 소박한 웃음으로 자신을 알리듯 하얗게 피어나 있다. 초야에 묻혀 사는 시인의 걸음이 여유롭다. 먼발치에서 바다 같은 마음으로 바라보면 슬픔도 슬픔이 아니고 아픔도 아픔이 아니다.

이 땅엔 유명세를 타는 훌륭한 시인도 많지만 이름도 빛도 없이 내 안에 그림 그리듯 사는 무명시인이 더 많다. 하지만 무명의 작품이 오히려 작품성도 뛰어나고 울림이 클 때도 많다. 에리히 프롬은 비록 사랑의 정의를 성숙한 사랑은 “고독을 해소하는 가장 생산적인 기술이다.”라고 말했지만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삶을 바라보는 가장 생산적인 기술이라고 덧붙이고 싶다.

김 시인은 시를 통해 버린 것이 얻은 것이요, 낮아짐이 곧 높아짐이며 이름 없음이 오히려 전 우주를 가진 사유라는 것을 시로써 우리에게 얘기해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도 숨김없이 벌거벗은 그대로 이순耳順이라는 시기를 지나며 이 세상에 하나뿐인 시어로 우리에게 온 김 시인에게 문운도 함께 오길 바래본다.

3부 거대한 시계

사람마다 삶을, 사랑을, 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 다르다. 그런데 다른 것은 다른것 뿐인데 우리 사회 한 쪽에선 나와 다른 것은 무조건 틀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김 시인의 시는 그런 면에서 보면 보편적 사고를 가지고 남과 다름을 시어를 통해 자기 애愛로 가꾸고 있음을 본다. 자기만의 세계가 없다면 시인이 아니다. 어찌 보면 외로운 섬 생활 속에서 홀로 고고한 삶의 여유와 마주보는 세상을 시로 창조해 내는 작업이야말로 새 생명의 가치이다. 그걸 알고 있는 시인이라 참 반갑다.

박범신 소설가는 삶의 결핍을 메꾸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시라는 것은 작가마다 다 다르겠지만 배설하지 않으면 질식할 것 같은 절실함에서 써지는 것이 시이기도 하다. 어쩌면 비명이라도 지르지 않으면 터져 버릴 것 같은 절망감의 소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 시인의 시는 지나간 시간을 반추해 보며 배려와 균형을 찾고 우리 서로 함께 함이 최고의 선善임을 얘기하고 있다.

남겨두는 극으로 잇닿은
배려와 균형 같은 두 얼음 왕국
투명함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으랴
섭리의 삶이 사방으로 비쳐
허튼 가식을 심판하는 영역
더 나은 감사를 알기 위해
그윽이 은혜로운 빛을 받고
울 너머 미지로 보내며
그런 세상도 온전히 함께해야 한다
― 「거대한 시계」 중에서-

커서도 따라잡지 못하는 날
비쳐 오는 눈망울과 나래짓은

육신을 통해 대하는 세상에
우리의 날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어느 날 하나의 낙엽처럼
바람 속에 나래 비치면
무정함에 울리는 깨우침의 전령
더불어 슬픔에 젖어 들고
― 「탐조探鳥」 중에서-

사람은 살아오면서 깨닫게 된 사유의 폭만큼 사물을 인식하게 되고 인과론적 세계관을 가지게 된다. 대상과 사물을 지성으로 분별하면서도 시인은 그 분별을 뛰어넘어 감성이라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를 쓴다. 그래서 시는 해석이 아니라 그 느낌(정서 혹은 감성)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시는 작가의 산물이지만 대상과 사물을 객관화시킨 주관적 산물이다.

작가 자신을 내재화시킨 시어가 중의적 표현으로 그려져 독자들을 감동이나 깨달음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 시는 살아 있는 시가 된다. 불확실성이 가득한 세상에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소재의 그 의미를 새롭게 빚어내는 시인은 오늘도 가슴에 호롱불 밝혀놓고 하얗게 밤을 지새우는 천형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투명한 하늘 아래 감추고 숨길 것이 없는 섭리 앞에 김 시인은 남의 아픔이 내 아픔인 양 혼돈마저도 함께해야만 한다고 노래하고 있다. 일상에서 부딪쳐오는 모순을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로서 너와 내가 아니라 더불어 사는 우리임을 시어로 표출해 놓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날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우주라는 거대한 시계 앞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 낱말). 어느 날 하나의 낙엽처럼 지고 말 삶이 슬퍼도 깨우침의 저 거대한 전령의 소리를 잊지 말라는 시어들이 잔잔한 맥박으로 울린다.

죽은 듯한 사람에게
떠도는 영혼의 흐느낌을 불어 넣으려는 시간입니까
세상은 더욱 슬픔으로 짙어가고
자라면서 허무로 몸을 부딪치고
죽이면서 살아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꿈은 나를 재촉 하였습니다
늦지 않게 삶을 꾸리도록
악몽도 꾸게 하였고
이상한 꿈도 꾸게 하였습니다
또한 새로운 상황을 제시하는
꿈은 나의 삶과 함께하는 스승입니다
― 「꿈의 눈길」 중에서-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치열한 세상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명제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 이성마저도 물질로 계량되는 사회 속에서 허무로 몸을 부딪치고 서로 죽이면서도 살아가는 군상들을 보며 김 시인은 악몽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의 꿈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헛된 욕망으로 점철된 삶은 무너지게 되어있으며 오직 꿈을 통해 미래 지향적인 우리 세상을 만들자며 맑은 시어로 담아내고 있다. 시를 통해 토설해 내는 마음의 정화과정은 문학의 가치이고 바로 문학의 효용론이다. 김 시인의 꾸밈없는 진솔한 언어들이 많은 분들에게 널리 애송되었으면 좋겠다.

시는 작가의 분신이다. 최영희 소설가는 손가락으로 바위에 새기듯 글을 썼다고 했다. 시는 결국 시인의 눈높이며 피 작업이다. 김 시인의 시들은 올곧은 심성으로 형상화시킨 시들이 세월 따라 무늬져 있고 김 시인만의 독특한 색깔로 행간의 빈 자리를 채우고 있다. 남은 생애 더욱 갈고 닦아 우리 서정문단에 문향 가득한 시인으로 우뚝 서 계시길 기원해 본다.

김덕진 시인의 시 세계를 짧은 식견으로 평한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어찌보면 시 한 편에 시인의 전 생애가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는데 그저 몇 편을 가지고 시 전체를 논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시평은 그것을 해설하는 사람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밖에 없다. 그간 씻고 다듬어 낸 시들이 삶의 흔적이 되고 또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청량감을 주는 문향 가득한 시집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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