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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보다 더 아래
김승일
아침달 2024.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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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지옥에서 만나서 같이 놀아요, 제발.
『에듀케이션』 김승일 시인의 지옥 여행기. 이 에세이의 지옥은 신화 속 장소가 아닌 양재천, 홍대 라이브 클럽이나 작품 속에서 발견된다. 시인의 삶과 주변 곳곳에서 포착한 이 지옥들은 고통과 죄의식으로 차 있지만, 어딘가 익숙하고 가깝다. 이 새로운 지옥으로 기꺼이 건너오시길.
2024.02.16. 에세이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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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지옥보다 더 아래
양재천
조합원
열쇠
자살한 자들의 지옥
가장 좋은 목표
다음으로
하얀 방
엎질러진 물들
아름다움
동요 부르는 자들
애프터썬
실거주 공간 낭비 지옥
틀린 예감
You can never go home again
울타리
여기서 살 거야
어느편도 아닌 지옥
지옥으로 보낸 한 철
무인도의 왕 최원석
급식소
귀신동굴
천국
카론
케르베로스
감옥이 있어서 행복해
모스크바 공항
나는 모스크바에서 바뀌었다
유리 덮개 속 단풍나무
탈옥
침묵의 세계
도보 여행
운문사
아주 가끔 소망한 것
아르바이트
탈영병
악어
지옥에서의 인기

저자 소개 1

1987년 경기도 과천에서 태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9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시단에 나왔다. 《1월의 책: 죽고 싶은 김승일》은 2014년 11월부터 2015년 1월까지 김승일 시인이 쓴 글을 엮은 책이다. 3개월 동안 발표한 시와 에세이를 모두 모았고, 미공개 편지와 일기글 77편을 실었다. 김승일의 작품으로는 시집 《에듀케이션》(2011), 《여기까지 인용하세요》(2020), 《항상 조금 추운 극장》(2022), 산문집 《지옥보다 더 아래》(2024) 등이 있다. 2016년 제19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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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198g | 110*170*15mm
ISBN13
9791189467968

책 속으로

지옥이라는 단어가 주는 다양한 느낌이나 의미가 전부 마음에 든다. 죄의 대가로서의 공간, 우울한 곳, 신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공간, 무신론자가 가는 곳,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과학적인 증거를 확인할 수 있는 곳, 시끄러운 곳,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 무서운 곳, 안전한 곳, 자꾸 생각나는 곳, 고문당하는 곳, 빠져나올 수 없는 곳, 빠져나와야만 하는 곳, 녹조가 낀 해변, 젖과 꿀이 넘치는 곳, 잊어버린 기억, 다른 차원, 땅 밑에 있는 세상, 하얀 방, 지금 바로 여기, 기다리는 곳, 영원히 일하는 곳, 영원히 쉬는 곳, 낙원의 다른 이름 등등…… 문제는 이렇게 많은 느낌이나 의미를 내가 개별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거다. 지옥을 호명하거나 느낄 때, 나는 종종 이 모든 정보들을 한꺼번에 소환한다. 지옥은 엉망진창이다. 나는 항상 내 시의 화자가 지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매번 그들에게 거긴 아직 지옥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지옥보다 더 아래』는 내 화자들이 가야 하는 곳에 대한 책이다.
---「지옥보다 더 아래」중에서

세 사람이 딱이다. 네 사람은 너무 많다. 그래서 삼총사라는 말이 있는 것 같다. 지옥엔 항상 한 테이블에 네 사람 이상 모여 있을 것이다. 모여 있다…… 지옥에선 모여 있다. 아마 딱 네 사람만 모여 있는 일이 잦을 것이다. 한 고문대에 네 사람이 모여 있을 것이다. 군중의 지옥도 괴롭겠지만 세 사람을 초과했다는 것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 것은 네 사람이니까. 네 사람의 지옥이 있을 거다. 네 사람이 되는 순간, 삼총사가 아니게 되는 순간(물론 뒤마의 삼총사는 네 사람이다), 우리는 나머지 한 사람이 꺼져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내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 내가 유년을 보낸 곳은 과천이라는 소도시였고, 거기가 바로 양재천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양재천의 발원지는 관악산이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곳, 과천에서 강남으로 천이 뻗어나가기 시작하는 곳에서 우리는 놀았다. 정확히는 나를 제외한 셋이 먼저 와서 놀고 있었다. 나는 먼저 놀고 있는 셋 중의 둘과 내가 가장 친한 친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늦게 도착하고 보니 자기들이 삼총사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놀고 싶으면 놀아도 괜찮아.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만이 삼총사라는 것은 바뀌지 않지. 나는 그중 한 명의 명예를 실추시켜서 내가 다시 삼총사에 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속상함을 무릅쓰고 양재천에 들어갔다.
---「양재천」중에서

그가 처음 내 앞에서 죽으면 나무가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나는 “당연히 나무가 되면 좋지, 나무는…… 어쩐지 좋은 존재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선생님이 나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의식적으로 그렇게 바랐던 건 아니었다. 반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저절로 튀어나왔다. 형언할 수 없는 적의였다.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선생님이 나무가 되는 걸 싫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난 그냥…… 이유 없이 나무가 싫었다. 선생님이 죽고, 자살자의 숲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의 사다리라는 개념을 통해 자연의 모든 물체를 계급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가 식물을 동물보다 아래에 둔 것을 알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윤영선의 학생이었다면,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이유 모를 적의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었겠지. 나무는 식물이니까. 그래서 그냥 선생님이 나무보다는 거북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살한 자들의 지옥」중에서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이나 대단한 예술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 아름다움이란 엄청나게 멋진 게 아니라, 아주 조금 좋은 것에 불과하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아주 조금 좋은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아주 조금 좋은 것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싫지 않다. 하지만 여행의 대단원에서 아주 조금 좋은 것을 만났을 때의 기분은 그야말로 끔찍하다. 옆에 낭만적인 사람이 있다면 더더욱 끔찍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낭만적이고, 나를 슬프게 한다. 그들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아름다움」중에서

한국의 대형 종교 건물은 마치 대학교 건물 같다. 한적한 시간이나 계절에는 그 넓은 공간이 전부 버려진 채 존재한다는 것이 닮았다.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 오후 6시 이후의 대학교 건물은 아주 쓸모없다. 대형 교회나 현대식 사찰은 일요일이 아니면 거의 텅텅 비어 있다. 그래도 종교 건물이 대학 건물보다 나은 건, 종교 건물은 텅텅 비어 있는 시간에도 뭔가 신비로운 아우라를 풍긴다는 거다. 대학 건물은 언캐니할 때가 종종 있는데, 종교 건물엔 포근함이 있다. 어쩌면 난방이 잘 되어서일까. 그것도 맞지만 뭔가가 더 있다. 외부인은 모른다. 한국의 대형 종교 건물은 지루하고 아늑하다. 문제는 그 아늑함을 속 편히 즐길 수 없다는 데 있다. 뭔가 끔찍한 것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의 대형 종교 건물에선 내부인도 결코 내부인이 될 수 없다. 대형 종교 건물에는 항상 우리가 알 수 없고, 갈 수 없는 어떤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실거주 공간 낭비 지옥」중에서

출판사 리뷰

엉망진창인 이 지옥에서
너를 찾아 헤매는 여정


가장 먼저 김승일은 말한다. “나는 지옥이 무엇인지 모른다.”라고. 그는 지옥의 존재 유무부터 회의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지옥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지옥을, 지옥이라는 단어가 주는 다양한 느낌과 쓰임새를, 지옥이 등장하는 작품 등을 그는 좋아한다.

죄의 대가로서의 공간, 우울한 곳, 무신론자가 가는 곳, 무서운 곳, 고문당하는 곳, 빠져나올 수 없는 곳, 녹조 낀 해변, 젖과 꿀이 넘치는 곳, 잊어버린 기억, 땅 밑의 세상, 하얀 방 등등…… 그는 지옥이 가진 수많은 정의와 느낌에 관해 말하면서도 그것들을 개별적인 것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옥은 엉망진창”이라고. 따라서 여러 단편들로 이어지는 그의 산문은 웃기고, 어이없고, 놀랍고, 기이하고, 으스스하고, 무섭고, 끔찍하고, 감동적이고, 슬픈 감정들이 마구 뒤섞인 여행기 혹은 일기처럼 보인다.

『지옥보다 더 아래』는 무엇보다도 김승일이 삶과 문학에서 만난 여러 인물과 장소, 그리고 그들 속에서 보낸 시간에 관한 책이다. 그는 인도의 마을 함피를 여행하다가 돈을 밝히는 하누만이라는 아이를 만나 도움받은 대가로 돈을 뜯기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만난 지프차 운전사에게 시달리다 덤터기를 쓰면서 아케론강의 카론을 떠올리기도 한다. 좁은 땅덩어리인지라 부동산 문제로 늘 골머리를 앓는 한국에서, 예배 시간 외에는 그 넓은 공간이 대부분 버려진 채 존재하는 대형 종교 건물들을 보며 지옥을 떠올리는 대목은 자못 해학적이다. 그렇기에 김승일이 들려주는 그 이야기들은 “인간이 지옥”이라거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지옥”이라는 세간에 떠도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인간의 삶과 문화 속에 녹아 있는 지옥을 자신이 만들어낸 지옥과 겹쳐 보이며 지옥을 한층 풍요롭게 만드는 지옥의 이야기꾼이다.

김승일이 만든 지옥은 그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시 속 화자들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그는 종종 자신의 지옥과 관계된 자신의 시를 인용한다. 첫 시집 『에듀케이션』에 수록되어 있는 시 「조합원」은 양재천에 관한 시다. 시에서 그려지는 바와 같이, 그는 세 명의 친구와 함께 양재천에서 놀았던 과거를 떠올린다. 지독한 물비린내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또 친구들이 은근히 자신을 덤 취급하는 것이 싫으면서도, 무리에 끼고 싶어 괴로움을 참아냈던 시간을 그는 떠올린다. “거기가 내 지옥이었다.” 양재천에서 느꼈던 비린내, 미지근한 온도, 구역질 나는 감각 들은 병실에서 죽어가는 할머니가 뱉는 가래를 떠올리게 하고, 할머니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공상에 몰두하던 어린 김승일을 만난다. 화자를 대신해 독자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이 이야기를 읽고 나면 그의 시는 조금 달리 보인다. 그밖에도 「가장 좋은 목표」, 「무인도의 왕 최원석」, 「나는 모스크바에서 바뀌었다」 등등의 시와 관계된 지옥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은 기존에 읽었던 그의 시가 새롭게 읽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시집 『여기까지 인용하세요』에 수록된 「그럼 안녕」이라는 시에서 “그래 여러분. 지옥에서 만납시다. 생각을 들고. 아직 지옥이 없어서 지옥부터 만들 것이다.”라고 김승일은 쓴 바 있다. 『지옥보다 더 아래』는 그가 만든 지옥이다. 여러분을 만나기 위해. 그는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다. 익살스러운 미소와 번뜩이는 눈으로. 자신이 그저 말 많고 귀찮은 사람은 아닐까 조금 염려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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