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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판 서문
제1장 신문광고 제2장 카뷰레터 제3장 범신론 제4장 신의 지하실 제5장 보좌주교 제6장 메아스 제7장 전진! 제8장 준설선 위에서 제9장 축전 제10장 성녀 엘렌 제11장 첫 번째 충돌 제12장 사강사 제13장 연대기작가의 변명 제14장 풍요로운 나라 제15장 뜻밖의 파국 제16장 산 위에서 제17장 ‘해머와 별’ 제18장 야간편집국에서 제19장 시성 심문 제20장 세인트 킬다 섬 제21장 긴급전보 제22장 나이 든 애국자 제23장 아우크스부르크 전투 제24장 산악여단의 나폴레옹 제25장 이른바 최대의 전쟁 제26장 흐라데츠 크랄로베 전투 제27장 태평양의 산호초에서 제28장 일곱 채의 오두막에서 제29장 최후의 전투 제30장 모든 것의 끝 옮긴이의 말 |
Karel Cap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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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여쭙겠습니다.” 잠시 후 선장이 입을 열었다.
“저 위의 문명세계에서는 무엇 때문에 다투고 있는 겁니까? 뭔가 국경에 관한 문제?” “더 작은 일 때문일세.” “식민지?” “더 작은 것.” “그럼……, 통상조약 때문에?” “아니, 단지 진리를 위해서네.” “어떤 진리를 위해서?” “절대적 진리를 위해서. 알고 있겠지만, 어느 민족이나 절대적 진리를 갖고 싶어 하지 않나.” “흠.” 선장이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 그건 대체 뭘 말하는 겁니까?” “아무것도 아닐세. 그런 인간적 정열일세. 자네는 저쪽, 유럽과 지구 전체에 그러니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 그 신이 왔다는 사실을 들었는가?” “들었습니다.” “그게 모든 것의 원인일세.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어르신. 제 생각에 참된 신이라면 말입니다, 이 세상을 조화롭게 해줄 겁니다. 저쪽의 신은 참으로 정당한 신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아.” G. H. 본디가 말했다(명백하게 본디는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그리고 경험이 풍부한 인물과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어 기뻐하고 있었다). “자네에게 말하겠는데, 그건 참된 신이야. 하지만 이렇게 말해두기로 하지. 그 신은 너무 지나치게 위대해.”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네. 그 신은 무한이야. 거기에 재난의 씨앗이 있는 거야. 알겠는가? 사람들은 각자 그 신에 대해서 제멋대로 2, 3m씩 측정해서 자신의 것으로 삼고는, 그것이 신의 전체라 생각하고 있어. 요렇게 조그만 터럭이나 끝부분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 신 전체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 어떤가?” “아하, 그렇게 된 거로군.” 선장이 말했다. “그리고 각자가 신의 다른 부분을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 거였군.” “그렇다네. 신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확신하기 위해서 타인을 살해하는 걸세. 알겠는가? 자신이 신 전체, 진리의 전체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일이라는 바로 그 사실 때문일세.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자신과 다른 신, 다른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참지 못하는 걸세. 만약 그것을 용납한다면 자신이 신의 진리 가운데 겨우 몇 미터, 몇 리터, 몇 주머니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테니. 알겠는가?”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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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이념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
체코의 국민작가인 카렐 차페크의 첫 번째 장편소설 『절대제조공장』은 범신론에서 그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세상의 모든 물질 속에는 신이 나타나 있는데, 물질을 완전히 연소시켜(혹은 분리시켜)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카뷰레터의 등장으로 인해 그 물질 속에 갇혀 있던 비물질인 신(절대)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절대’는 획기적 에너지생산 장치인 카뷰레터의 보급과 함께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고 사람들은 그를 ‘절대’로 따르게 된다. 그러나 이쪽의 ‘절대’와 저쪽의 ‘절대’가 서로 다르기에, 즉 서로 다른 ‘절대’를 믿고 있기에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그것이 결국은 전 지구적인 전쟁으로 번지게 된다. 카렐 차페크는 종교적 범위에서 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으나 그 ‘절대’를 사람들 각자의 ‘신념’, ‘이념’, ‘믿음’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이야기에는 커다란 변함이 없다. 자신의 신념만이 절대 옳다는 생각, 자신의 이념만이 절대 진리라는 생각, 자신의 믿음만이 절대 선이라는 생각. 그러나 여기에는 이런 ‘절대’를 믿는 사람이 있고, 저기에는 저런 ‘절대’를 믿는 사람이 있다. 우리들의 길만이 ‘절대’라는 믿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분쟁들. 카렐 차페크는 이 소설을 통해서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 모든 방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들의 광적인 모습을 날카롭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그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제시한다. 그는 작품 속에서 “누군가가 가진 믿음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그만큼 더 격렬하게 경멸하게 돼. 하지만 가장 커다란 믿음은 인간에 대한 믿음일 거야.”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자신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요리법으로 요리한 양배추를 먹어보겠다고 말하는 신부님의 모습은 매우 상징적이다. 자칫 심각해지기 쉬운 이러한 이야기들을 카렐 차페크는 특유의 유머를 담아 아주 가벼운 터치로 묘사해나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모두 매우 비유적이고 상징적이어서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하나, 그 하나하나가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의미들을 생각하며 차근차근 읽어주셨으면 한다. 그러면 이념의 양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에 대한 해답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제에 대한 답도. 우리들이 믿고 있는 ‘절대’는 정말로 절대적인 존재이기에 우리에게 절대력을 행사하는 것일까? 혹시 그 ‘절대’는 우리 인간이 형체도 없는 그 무엇인가에 부여한 ‘절대’가 아닐까? 인간 스스로가 부여한 ‘절대’이기에 그 ‘절대’에 대한 부정은 자신에 대한 부정이 될 터이니, 그래서 그토록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절대’를 지키려 하는 것 아닐까? 나의 ‘절대’는 절대적인 ‘절대’인 걸까?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차렐 차페크의 형이자 작가, 삽화가로도 유명한 요제프 차페크의 삽화도 함께 수록했다. 더불어 감상하며 책 읽는 재미를 더하시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