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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코넬 웨스트(Cornel West) 서문
랭든 B. 길키(Langdon B. Gillkey) 서문
1960년판 서문
서론

1 인간과 사회: 함께 살아가는 법
2 사회 생활을 위한 개인의 합리적 원천들
3 사회 생활을 위한 개인의 종교적 원천들
4 여러 민족의 도덕성
5 특권 계급의 윤리적 태도
6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윤리적 태도
7 혁명을 통한 정의
8 정치적 힘에 의한 정의
9 정치에서 도덕적 가치의 보존
10 개인의 도덕과 사회의 도덕 사이의 갈등

옮긴이의 글
옮긴이의 주

저자 소개 2

라인홀드 니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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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inhold Niebuhr

윤리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정치철학자인 니버는 1892년 미주리 주(州)의 라이트(Wright) 시에서 태어났으며, 에덴 신학교와 예일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디트로이트에서 13년 동안 목회활동을 했다. 1928년에는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 기독교 윤리학 교수로 부임하여 1960년에 은퇴할 때까지 머물렀다. 옥스퍼드,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등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1939년에 미국인으로서는 5번째로 에든버러대학(Edinburgh University)의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의 강단에 섰다. 그의 신학은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
윤리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정치철학자인 니버는 1892년 미주리 주(州)의 라이트(Wright) 시에서 태어났으며, 에덴 신학교와 예일 신학교에서 공부한 후 디트로이트에서 13년 동안 목회활동을 했다. 1928년에는 뉴욕의 유니온 신학교에 기독교 윤리학 교수로 부임하여 1960년에 은퇴할 때까지 머물렀다. 옥스퍼드,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등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1939년에 미국인으로서는 5번째로 에든버러대학(Edinburgh University)의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의 강단에 섰다. 그의 신학은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를 비롯하여 후대의 수많은 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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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HAN-WOO,李翰雨

1961년 부산 송도해수욕장 근처에서 태어나 여름만 되면 팬티만 입고 송도해수욕장을 오가던 개구장이였다. 중학교 때는 가방에 책 대신 야구 글러브를 넣고 다닐 정도로 야구에만 미쳐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교사 못지않은 선생님들한테 자주 맞아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1981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데모하다 얻어맞는 여학생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겁이 많아서인지 결국 혁명가의 꿈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1985년 대학원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했다. 마르크스에 대한 미련이 컸지만 대학원 과정 때 우연히 접하게 된 하이데거에
1961년 부산 송도해수욕장 근처에서 태어나 여름만 되면 팬티만 입고 송도해수욕장을 오가던 개구장이였다. 중학교 때는 가방에 책 대신 야구 글러브를 넣고 다닐 정도로 야구에만 미쳐 있었고, 고등학교 때는 영화 [친구]에 나오는 교사 못지않은 선생님들한테 자주 맞아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1981년 고려대학교에 입학해 데모하다 얻어맞는 여학생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겁이 많아서인지 결국 혁명가의 꿈을 접고 공부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1985년 대학원에 들어가 철학을 공부했다. 마르크스에 대한 미련이 컸지만 대학원 과정 때 우연히 접하게 된 하이데거에 매료되어 석사학위 논문으로 [마르틴 하이데거에 있어서 해석학의 문제]를 썼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 1985년부터 번역을 시작해 첫 작품으로 《헤겔 이후의 역사철학》을 냈다. 그 후 지금까지 평균 1년에 한 권 정도 번역 작업을 해왔다. 심지어 1988년부터 1990년까지 번역병으로 근무할 때에는 네 권을 번역해 계급마다 한 권씩 번역한 셈이 됐다. 번역은 나의 운명을 바꿔놓기까지 했다. 1990년 제대 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간 곳이 [중앙일보]의 《뉴스위크》였다. 그때 정식기자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의를 받고 ‘번역하는 기자’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기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삶은 점점 그쪽으로 몰고갔다. 1991년 《월간중앙》에 김용옥의 《대화》를 비판한 것이 계기가 돼 [문화일보] 학술 담당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번역하는 기자’에서 ‘기사 쓰는 기자’로 탈바꿈한 것이다. [문화일보] 기자 생활 만 3년째 되던 1994년 12월에 [조선일보]의 제의를 받았다. [조선일보] 학술 출판 담당기자로 일하면서 한국 지식인 사회의 명암을 볼 수 있을 만큼 봤다. 2001년부터 1년 동안 독일 뮌헨에서 연수 생활을 하면서 촌티도 많이 벗었다. [조선일보] 국제부에서 일했고, 지금은 경제사회연구원 사회문화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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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7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428쪽 | 153*224*30mm
ISBN13
9788931023527

출판사 리뷰

20C를 움직인 책, 개인-집단의 행동양태를 분석하고 사회적 정의 수립방안 제시

1932년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1892-1971)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은 당시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성적으로 역사를 이끌 수 있다는 미국 지식인들의 믿음을 뿌리에서부터 흔들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들도 사회내의 어느 집단에 속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모한다." 책의 제목이 그대로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이익을 희생해가면서 타인의 이익을 고려할 수도 있고, 때로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적이다. 이런 도덕심은 물론 교육에 의해 증진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는 종종 민족적-계급적-인종적 충동이나 집단적 이기심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미국경제가 공황에 빠지고 유럽에서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으려는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자유주의적 사회과학자나 종교가들은 미국사회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다.

사회학자들이나 교육자들은 인간의 합리성을 고양시킴으로써 집단적 이기심을 견제할 수 있다고 보았고, 종교적 이상주의자들은 양심에 호소하여 자선을 베풀게 함으로써 사회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니버는 이들이 사회조직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자선의 문제와 경제적 집단사이의 역학관계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집단 간의 관계는 윤리적이기보다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정치적 관계"이며 따라서 "사회집단 사이에 작용하는 운동의 강제성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특권계급의 집단적 이기심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부정의는 조정이나 타협에 의해 해결될 수는 없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사회집단의 악을 견제하기 위해 폭력이나 강제력을 사용 할 경우엔 이에 대해 다른 폭력이 나타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말하고,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개인의 도덕과 사회-정치적 정의가 양립하는 방향에서 그 해결이 모색되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이 나온 1932년 이래 2차세계대전, 냉전, 인종분쟁, 그리고 최근의 민족주의에 이르기까지 20세기의 지구촌사회는 니버가 '비도덕적 사회' 라고 부른 것보다 더욱 비도덕적으로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니버는 오히려 희망의 정치철학자이다.

니버는 미국 미주리에서 태어나 예일대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13년 동안 디트로이트에서 목사로 활동하다가 1928년부터 유니온 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20여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석사졸업이 전부였지만 18개의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니버는 많은 정치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클린턴 대통령은 자신의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준 5권의 책을 소개했다. 성경과 함께 든 것이 니버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이었다. 아더 슐레진저 2세, 조지 케넌, 맥조지 번디 등 50-60년대 미국정책을 이끌었던 브레인들은 니버를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사망한 NYT기자 제임스 레스턴도 "미국사회가 가진 아이러니를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니버에게 존경심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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