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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제1부 파스칼의 삶과 학문 제1장 수학자 파스칼? 제2장 과학자 파스칼? 제3장 신학자 파스칼? 제4장 문학자 파스칼? 제2부 파스칼의 내기 나가는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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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늘 같았다. 확실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하나 걸러내 명백하게 옳은 것을 얻어내는 방법이었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습관이 되고 인격이 되고 나중에는 삶이 되었다. 진리에 대한 열정에 온통 사로잡혀 한 번 씨름을 시작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았다. 파스칼이 어려서부터 보인 특이한 점은 언제나 원리를 알고 싶어 했다는 점이다. 자연과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설명해주는 아버지에게 어린 파스칼은 항상 왜 그런지, 그렇게 되는 '이유'가 뭔지 묻곤 했다.
--- p.34~35 기본적인 통찰은 포퍼와 똑같다. 그래서 파스칼을 포퍼 이론의 선구자로 보기도 한다. 다만 포퍼처럼 체계적인 과학철학의 원리로 발전시킬 겨를이 없었을 뿐이다. 반증 가능성 원리를 담은 이 짧은 구절이 파스칼 당대와 오늘날의 과학계에 전하는 메시지는 크다. 적어도 과학 분야에서는 아무리 보편성을 가진 주장이라도 단 하나의 예외에 의해 무너질 수 있음을 분명하게 밝힌 것이다. 자연의 진공 혐오가 아무리 오래된 진리라 해도 자연 상태에서 진공이 단 한 번 생기는 순간 옛 신화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 파스칼의 명확한 입장이었다. --- p.106 니체는 평생 파스칼을 흠모했다. 쇼펜하우어를 통해 파스칼을 접하게 된 만큼 이 세상의 가치를 부인한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파스칼의 성찰은 니체의 철학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니체 본인도 "내 핏줄에는 파스칼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솔직하게 썼다. 그렇지만 한 가지가 끝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파스칼이 가진 기독교 신앙 곧 "(사람은) 어리석게 되어야 한다(il faut s'abetir)"는 원리였다. 니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긴 인간다움을 포기하라는 권고다. 확고한 지성의 소유자 파스칼이 그렇게 돼 버린 것은 원죄 교리 때문이라고 니체는 분석한다. 기독교가 파스칼로 하여금 원죄가 인간의 지성을 파괴했다고 믿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니체는 기독교를 "비인간적인 잔인함 가운데 가장 소름 끼치는 형태"라 불렀다. 정확한 판단이다. 이 원죄 교리가 사실 파스칼의 인간 이해의 핵심이었다. 파스칼이 그런 입장을 취한 이유는 간단하다. 기독교 신앙 없이는 자연도 역사도 모두 "괴물 및 혼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파스칼은 진리를 위해 자연과 역사와 인간을 부인해야만 했고 니체는 그런 식으로 "파스칼을 망가뜨린 기독교를 용서할 수 없다"고 분개했던 것이다. --- p.162~163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은 단순히 우주의 광대함 때문이 아니었다. 광대함보다 두려운 것은 무의미였다. 파스칼이 본 인간은 "내버려진(abandonn?)" 존재였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가 인간 실존의 특징으로 규정한 '던져짐(Geworfenheit)'을 300년이나 앞서 말한 것이다. 그렇게 침묵하는 우주는 우주의 한 구석에 내팽개쳐진 우리에게 "누가 거기 두었는지, 무얼 하러 왔는지, 죽으면 어떻게 될 건지" 말해주지 않는다. 우린 한 마디로 "맹목"이며, 인간 존재의 맹목성은 곧 우리의 "비참함"이다.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고" 또 "절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p.189 파스칼이 왜 이리 흥분했을까? 진리라 했다. 진리!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 유보해두자 했던 바로 그것이다. 이성의 무능함 때문에 진리는 알 수 없으니 그 문제는 일단 접어두고 어느 쪽이 행복을 주는지 그것부터 찾아보기로 했는데 결론에 와서 진리와 만났다. 행복을 찾아 먼 길을 왔는데 도착해 보니 진리도 거기 함께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 진리를 제쳐두고 행복부터 찾으려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을 너무 나무라지 말자. 행복을 추구하는 그것이 진리로 가는 길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행복을 찾는 그 길이 결국 이성을 가진 사람이 내릴 올바른 결정이었구나. 파스칼도 "진리를 아는 것과 행복하게 되는 것"을 늘 함께 말한다. 사실 끝에 와 만난 게 아니라 줄곧 함께 왔다. 이성이 알 수 없는 문제지만 답을 찾아가는 과정 단계 단계마다 이성의 동의를 얻고 때로는 지침도 구했다. 진리는 알 수 없으니 행복부터 우선 찾아보자 한 것도 이성의 판단이었고 그 행복을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쪽에서 찾기로 한 것도 이성의 결정이었다. --- p.3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