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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이 그럼에도 혼자인 당신을 위해
발랄한 도시적 상상력으로 인간관계를 탐구하며 세련된 어법으로 무장한 작가 정이현. 단편보다 짧은 11편의 짧은 소설에서 도시 생활자의 삶과 고민을 간파해 낸다. 서늘하고도 다정한 작가의 목소리는 혼자인 순간순간을 버티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위로한다
2014.04.29.
소설/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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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견디다 비밀의 화원 이미자를 만나러 가다 또다시 크리스마스 시티투어버스 폭설 아일랜드 모두 다 집이 있다 그 여름의 끝 별 안녕이라는 말 대신 |
鄭梨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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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도시는 수십만 개의, 좁고 더 좁고 더더 좁은 골목들로 이루어진 곳이다. 그 골목을 혼자 걷고 있는 사람에 대하여, 살짝 웅크린 어깨와 보풀이 일어난 카디건과 주머니 속에 정물처럼 가만히 들어 있는 한쪽 손에 대하여 쓰고 싶었다. 그들이 잠시 혼자였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하여.
-7쪽 불가능한 것을 일찌감치 단념하는 데에 우리는 모두 익숙해져 있었다. -64쪽 그때껏 나는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 누워서만 울 수 있는 어른이 됐다. -70쪽 이럴 때 누군가 툭 어깨를 치며 “같이 가자!”고 말해주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면 든든할까? 하지만 혼자도 나쁘지 않았다. -121쪽 단지 태어난 해가 똑같다는 이유로 처음 보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나이. 그럴듯한 이유도 없이 급히 마신 술에 취해 자정의 대학로 골목 한 귀퉁이에서 부둥켜안고 울 수 있는 나이. 그러다 권태로워지면 어디로든 훌쩍 도망가버릴 수 있는 나이. 누가 도망가버렸다는 풍문을 들어도 아랑곳하지 않을 수 있는 나이. 무책임이 아직은 용서되는 나이. 그 스물두 살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144쪽 그해 봄과 여름의 경계에서 내가 춥고 겁에 질려 있었다면, 춥고 겁에 질린 사람이 오직 나 하나뿐인 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148~149쪽 ---본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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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혼자였던 바로 그 순간에 대하여 쓰고 싶었다”
혼자 있다는 건 곧 견디는 순간이다 11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전부가 ‘혼자’라는 물리적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부모, 친구, 남편, 애인이 있다. 그들이 혼자라는 건 감정의 문제다. 인물들은 순간순간 찾아오는 일상의 균열을 ‘혼자인 순간’이라고 느낀다. 오롯이 혼자인 것 같은 불안한 시간은 곧 견디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버티며 일상을 살아나가는 양상은 제각각 다르다. 「견디다」의 ‘그녀’는 대학 4학년 겨울방학 중 열두 번째 이력서를 쓴 끝에 가정방문 교사로 취직한다. 교사로 일하려면 먼저 백오십만 원짜리 교재를 구입해야 한다는 말에도 쉽사리 거취를 결정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지인에게 빌려준 이천만 원 대신 데려온 개 ‘이천이’처럼 목줄을 끌러줘도 가고 싶은 곳, 가야 할 곳으로 가지 못한다. SNS 속 또 다른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비밀의 화원」은 종일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아내의 이야기다. 뭔가를 감추듯 스마트폰을 숨기는 아내의 행동이 꺼림칙했던 ‘나’는 아내의 스마트폰 속 페이스북을 몰래 훔쳐본다. 그런데 그곳에 아내는 없었다. 아내가 아닌, 아내 스스로 되고 싶었던 누군가가 있을 뿐. 스스로 꾸며낸 배역을 진짜인 척 살아가는 아내는 대체 누구인 거냐고 ‘나’는 묻는다. 「폭설」 속 결혼을 약속한 ‘여자’와 ‘남자’는 겨울 산으로 여행을 계획한다. 하필 그 지역에 폭설이 내리자 ‘여자’는 차를 돌리자고 말리지만 ‘남자’는 고집스럽게 여행을 강행한다. 곁에서 불안해하는 ‘여자’에게 퉁명스럽게 대꾸하다 결국 화를 내는 ‘남자’는 그간 ‘여자’가 알아온 모습과 사뭇 다르다.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이미자를 만나러 가다」의 ‘나’는 우연히 SNS 동창 모임을 알게 된다. 곧 게시판에서 놀라운 이름을 발견하는데, 그 공간에서 터줏대감 역할을 하고 있는 ‘이미자’다. 어린 시절 ‘이미자’는 모두의 ‘따’였다. 그런데도 모두들 그때의 일을 까맣게 잊은 듯 “간지러운” 댓글을 주고받는다. ‘이미자’로 인해 열두 살의 기억을 호출한 ‘나’는 현재의 자신을 직시한다. 6학년 때의 내가 어떤 아이였는지 아무리 애써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색깔이 뭐였는지, 뭐가 되고 싶었는지, 무슨 꿈을 꿨는지. (…) 서른다섯 살의 나는 평범한 회사의 직장인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남편, 아이, 내 소유의 아파트 같은 것, 남 보랄 것, 내세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여전히 어디로 가는지를 몰랐다. 내가 확신하는 건, 지금의 내가 실은 그때의 나로부터 거의 변하지 않았다는 절망적 사실뿐이었다. ―「이미자를 만나러 가다」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들, 같이 갈 누군가를 찾지 못해 혼자인 사람들을 작가 특유의 섬세한 눈과 예민한 손끝으로 그려낸 이 작품들은 원고지 20~30매 분량의 이야기임에도 충분한 몰입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림과 어우러진 이야기 한 편 한 편이 모두 지금 혼자인 당신에게 건네는 메시지인 셈이다. “들꽃처럼 당신은 잘 살아야 합니다” 쓸쓸한 존재를 감싸 안아주는 목소리 서울 시내와 언저리를 뱅글뱅글 도는 사이 3년이 지났다. 그새 서른다섯이 넘었다. 마이너스 통장은 변한 게 없었지만 근근이일지라도 한 달 한 달 살아졌다. 어떻게든 살아진다는 건 만만찮은 일임을 이제 그는 잘 알았다. ―「별」에서 우리는 “근근이일지라도”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쉽사리 설명할 수 없는 불안함 속에서 겁에 질려 있는 건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시티투어버스」의 희정은 12월 31일에 남자 친구와 이별했다. 그리고 꼭 1년 뒤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한다. S시로 떠난 희정은 오롯이 혼자가 되기 위해 떠난 길에서조차 막막해지지 않으려고 부러 시티투어버스를 타리라는 목적을 만든다. 한편, 준비하던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정훈은 여자 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고 혼자 S시로 떠난다. 각자 혼자였던 그 둘이 맞닥뜨리는 순간이다. 그래도, 혼자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그들은 동시에 생각했다. 시작이었다. ―「시티투어버스」에서 쓸쓸한 존재를 감싸 안아주는 작가의 목소리는 그러므로 잠시 혼자인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혼자인 순간은 마치 통과의례처럼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는 둘이 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며 둘의 시작이기도 하므로. 나는 당신을 잘 모르지만, 당신이 무척 섬세하고 강인한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들꽃처럼 당신은 잘 살아야 합니다. 나도 그러겠습니다. ―「안녕이라는 말 대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