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서론 7
1장 잘 쓴 글 25 2장 세상으로 난 창 61 3장 지식의 저주 119 4장 그물, 나무, 줄 157 5장 일관성의 호 271 6장 옳고 그름 가리기 359 감사의 말 576 용어 해설 580 후주 599 참고 문헌 615 도판 저작권 627 옮긴이 후기 629 찾아보기 632 |
Steven Pinker
스티븐 핑커의 다른 상품
김명남의 다른 상품
핑커가 말하는 좋은 글쓰기의 가치
이처럼 고전적 글쓰기 지침서에서 불만을 느끼게 된 나머지, 나는 21세기에 맞는 글쓰기 지침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야심만만하게도 『영어 글쓰기의 기본』을 대체할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은 아니고, 하물며 내게 그럴 능력이 있다는 말은 더욱더 아니다. 어차피 독자들이 글쓰기 지침서를 딱 한 권만이 아니라 더 많이 읽는다면 더 좋을 테고, 스트렁크와 화이트(보통 두 사람을 공저자로 여겨서 이렇게 함께 부른다.)의 조언은 여전히 매력적인 만큼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유효한 것도 많다. 하지만 그중에는 유효하지 않은 것도 많다. 스트렁크는 1869년에 태어났다. 오늘날의 작가들이 전화가 발명되기 전(인터넷은 말할 것도 없다.), 현대 언어학과 인지 과학이 탄생하기 전, 20세기 후반 세계를 휩쓴 탈격식화(informalization)의 물결을 경험하기 전에 글쓰기 감각을 발달시켰던 사람의 조언에만 의지하여 기술을 닦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한 21세기의 글쓰기 지침서는 옛 지침서들처럼 무턱대고 강권하는 태도를 취할 수가 없다. 요즘 작가들은 과학적 회의주의 정신과 권위를 의심하는 정서를 품고 있다. 요즘 작가들은 “죽 그렇게 해 왔으니까.”, “내가 그렇다고 말하면 그런 거야.” 하는 말로는 만족하지 않을 것이고, 나이가 아무리 어린들 조언자에게 얕잡아 보일 이유가 없다. 이들은 남들이 자신에게 떠안기는 모든 조언에 마땅히 합당한 이유가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 이유를 제공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라틴 어와의 엉성한 비유에 의존했던 전통 분류학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문법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사람이 독서를 할 때 그 머릿속이 어떻게 활동하는가에 관한 연구 결과를 많이 갖고 있다. 독자가 문장의 한 구절을 파악할 때 그의 기억력에 가해지는 부담이 어떻게 늘었다 줄었다 하는지, 그가 그 구절의 의미를 이해할 때 그의 지식이 어떻게 늘어나는지, 그가 잠깐 갈피를 잃도록 만드는 문장 속 막다른 골목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안다. 그리고 언어 역사 연구와 비평 연구도 잔뜩 갖고 있으므로, 이제 명료함과 우아함과 감정적 효과를 높여 주는 좋은 규칙들과 신화나 오해에 기반한 거짓 규칙들을 구별할 수 있다. 나는 어법에 관한 교조적 원칙을 합리성과 증거로 대체함으로써, 비단 서투른 조언을 제공하지 않는 데 그칠 뿐 아니라 내 조언이 그냥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을 무턱대고 나열한 목록보다는 여러분이 기억하기에도 더 쉽게 만들고 싶다. 규칙의 근거를 알려주는 것은 작가나 편집자가 그 규칙을 분별하여 적용하도록, 즉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규칙인지 유념하며 적용하도록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글쓰기의 감각(The sense of style)”이라는 제목에는 이중 의미가 있다. 감각(sense)이라는 단어는 ‘시각 감각’이나 ‘유머 감각’처럼 인간의 어떤 정신 능력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잘 씌어진 글을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을 가리키는 셈이다. 한편 이 단어는 ‘난센스(nonsense)’와 반대되는 의미에서 ‘상식’을 뜻할 수도 있는데, 이 책의 경우에는 글의 품질을 높여 주는 타당한 원칙들과 전통으로 전수되었지만 미신이나 집착이나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 어법들, 글쓰기 세계의 입문 심사에 지나지 않는 시시콜콜한 규칙들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리키는 셈이다. 『글쓰기의 감각』은 붙임표 사용이나 대문자 표기 따위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대한 답을 모두 알려주는 참고서가 아니다. 아직 문장 작성의 기본조차 익히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학습서도 아니다. 여느 고전적 글쓰기 지침서처럼, 이 책은 쓸 줄은 알지만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과제 보고서의 질을 높이고 싶은 학생, 블로그나 칼럼이나 리뷰를 쓰고 싶은 비평가 혹은 기자 지망생, 자신이 구사하는 잘못된 학계 언어, 관료 언어, 기업 언어, 법조계 언어, 의학계 언어, 관공서 언어를 치료하고 싶은 전문가가 그런 사람들이다. 또한 이 책은 글쓰기에 관한 조언을 구하지는 않지만 언어와 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 언어는 어떤 상황에서 최선으로 기능하는가를 이해하고자 할 때 인간 정신을 연구하는 과학들이 어떤 도움을 주는가 하는 문제에 흥미가 있는 독자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나는 논픽션, 그중에서도 특히 명료함과 일관성을 최우선으로 중시하는 장르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하지만 고전 지침서의 저자들과는 달리, 이런 덕목이 곧 평범한 단어, 간소한 표현, 격식 있는 문체와 동일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명료하되 화려하게 쓸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비록 논픽션에 집중한 이야기이기는 해도 내 설명은 픽션을 쓰는 작가들에게도 유용할 텐데, 왜냐하면 많은 글쓰기 원칙은 글이 다루는 세계가 현실 세계이든 가상 세계이든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나는 또 시인이나 웅변가처럼 평범한 산문의 규범을 어겨서 수사적 효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일단 규범을 알아야 하는 그 밖의 창조적 문장가들에게도 내 설명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요즘 누가 글쓰기를 신경이라도 쓰느냐고. 그런 사람들은 오늘날의 인터넷이, 그러니까 문자 메시지와 트위터가, 이메일과 채팅방이 영어에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고 여긴다. 그야 물론 글쓰기의 기술은 스마트폰과 웹이 등장하기 전부터도 쇠퇴해 왔다. 다들 그 시절을 기억하지 않나? 청소년들이 유창하게 이어지는 단락으로 말하고, 관료들이 쉬운 영어로 문서를 쓰고, 모든 학술 논문들이 에세이라는 예술 형식의 걸작이었던 1980년대를? (아니면 그게 1970년대였던가?) 인터넷이 글을 망친다는 이론의 허점은, 당연하게도, 나쁜 글은 과거 모든 시대에 독자를 괴롭혔다는 점이다. 스트렁크 교수만 해도 젊은 엘윈 브룩스 화이트가 코넬 대학교에서 자신의 영어 수업을 듣던 1918년에 진작 이 문제에 어떻게든 대처해 보려고 애쓰지 않았던가. 오늘날의 종말론자들이 간과하는 점이 하나 있다. 그들이 개탄하는 경향성이란 사실 라디오, 전화, 텔레비전 같은 구어 매체가 문어 매체에 밀려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사람들은 거꾸로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언어를 망친다고 한탄했다. 현재 우리의 사회 생활과 문화 생활에서 기본 통화로 유통되는 언어는,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가 안 되는 수준으로, 글(written word)이다. 그리고 그 글이 전부 인터넷의 문맹에 가까운 트롤들이 지르는 큰소리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서핑을 조금만 해 봐도 알 수 있다. 많은 인터넷 사용자가 명료하고, 문법에 맞고, 철자와 문장 부호가 제대로 적힌 언어를 귀하게 여긴다. 비단 종이책이나 기존 매체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온라인 잡지, 블로그, 위키피디아 항목, 구매자 평가, 심지어 적잖은 비율의 이메일에서도 그렇다. 조사에 따르면, 요즘 대학생들은 이전 세대 대학생들보다 글을 오히려 더 많이 쓰고 한 페이지당 저지르는 실수도 옛날보다 더 많지 않다고 한다. 도시 전설과는 달리, 학생들이 보고서에 스마일리(Smiley) 이모티콘이나 IMHO(Im My Humble Opinion, 사견으로)나 L8TR(Later, 나중에 봐) 같은 문자 메시지용 약어를 남발하지도 않는다. 최소한 이전 세대가 전보문을 작성할 때 손에 익은 버릇 탓에 다른 글에서도 전치사나 관사를 빠뜨렸던 것보다 더 자주 그러지는 않는다. 인터넷 세대 사람들도 여느 언어 사용자들처럼 상황과 청중에 맞게 표현을 고를 줄 알며, 격식 있는 글에서는 어떤 표현이 적절한가 하는 감각을 갖추고 있다. 글쓰기는 여전히 중요하다. 그 이유는 적어도 세 가지이다. 첫째, 잘 쓴 글은 작성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도록 해 주고, 독자가 인생의 귀중한 시간을 흐리멍덩한 글을 해독하는 데 낭비하지 않도록 해 준다. 독자의 그런 노력이 실패할 경우, 결과가 자칫 참담할 수도 있다. 스트렁크와 화이트의 말을 떠올려보라. “고속 도로 표지판의 허술한 표현 때문에 벌어진 사망 사고, 좋은 의도로 쓴 편지에서 잘못 배치된 한 구절 때문에 마음이 산산이 부서진 연인, 전보의 애매한 문구 때문에 기차역에서 만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을 만나지 못한 여행자의 곤혹스러움.” 정부와 기업은 각종 문서의 문장을 조금만 더 명료하게 만들면 실수와 좌절과 낭비를 크게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최근에는 명료한 언어 사용을 법으로 정해 둔 나라도 많이 생겼다. 둘째, 잘 쓴 글은 신뢰를 얻는다. 글쓴이가 문장의 일관성과 정확성에 신경 썼다고 느낀 독자는 글로써 확인하기가 그것보다 어려운 다른 측면들에서도 글쓴이가 똑같은 미덕을 존중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어느 회사의 기술 담당 임원은 지원서에 문법 및 구두법 실수가 많은 구직자를 퇴짜 놓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It’s를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우는 데 20년 넘게 걸리는 사람이라면, 글쎄요, 전 그런 학습 곡선은 성에 차지 않습니다.” 이런데도 문장 공부를 다시 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데이트 상대를 찾아 주는 웹사이트 오케이큐피드(OkCupid)에서 회원 자기 소개 글의 문법과 철자가 엉망인 것은 “큰 매력 감소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뉴스를 떠올려보라. 한 회원은 이렇게 말했다. “여자와 데이트하고 싶다고 해서 제인 오스틴급으로 잘 써야 할 필요는 없겠죠. 하지만 되도록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어요?” 마지막으로, 잘 쓴 글은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한다. 읽고 쓰기를 즐기는 독자에게 명쾌한 문장, 매혹적인 비유, 재치 있는 여담, 절묘한 표현은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할 만하다. 그리고 1장에서 보겠지만,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이 미덕이야말로 우리가 글쓰기 연습이라는 실용적 노력을 기울일 때 그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지점이다. -서론에서 옮긴이 후기에서 기계에게 의존할 수 없는 것 번역가들이 가끔 푸념처럼 서로 하는 말이 있다. 어떤 글이 정말 잘 쓰였는지 아닌지는 그냥 읽어서는 잘 모르고, 번역해 보아야 비로소 알게 된다는 것이다. 책을 술술 읽어 내려갈 때는 참 잘 쓴 글인 것 같았는데 막상 번역하려고 하면 여기저기 불명확하거나 부정확한 문장에 턱턱 걸리는 경험을 나도 종종 한다. 왜 그럴까? 아마도 번역이 엄청나게 깊은 수준의 읽기라서 그럴 것이다. 글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문장도 구성도, 그 글을 한 줄도 빼놓지 않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다른 언어로 옮겨야 하는 번역가만큼 면밀하게 파고들어 감상하는 독자는 또 없다. 20년 가까이 100여 권의 영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나는 잘 쓴 글과 허술한 글과 언뜻 잘 쓴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번역해 보면 숭숭 구멍이 느껴지는 글을 다양하게 만났다. 잘 쓴 글은 무엇보다도 번역 과정이 명쾌하고 수월했던 기억으로 남는다. 그렇게 기억에 남는 글 중에서도 내가 첫손가락으로 꼽을 책은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한국어판이 1,000쪽이 넘을 만큼 두껍고 내용도 방대한데, 그것을 옮기는 반년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별다른 어려움도 없었다. 그것은 저자가 주제를 자신만만하고 명료하게 해설했기 때문이고, 긴 책의 적재적소에 사례와 통계를 배치하여 리듬감을 주었기 때문이고, 기초적인 차원에서 문법이 틀린 문장 따위도 없었기 때문이다. 번역가로서 경험을 걸고 말하는데, 이렇게 잘 씀으로써 번역가를 도와주는 작가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니 스티븐 핑커가 글쓰기 지침서를 쓴 것은, 적어도 내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핑커는 『아메리칸 헤리티지 사전』에 기여하는 ‘어법 패널’의 의장이기도 했으니 자격은 충분하다. 『글쓰기의 감각』에서 핑커가 알려주는 것은 논픽션 글쓰기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스타일이다. 핑커는 글의 거시적 구성부터 미시적 문법 문제까지 두루 다룬다. 그중 어떤 글이 잘 쓴 글인지 보여 주고 왜 사람들이 나쁜 글을 쓰는지 분석한 1∼3장과 5장은 언어와 무관하게 모든 독자에게 도움이 될 내용이다. 구문과 단어를 다룬 4장과 6장은 영어에 해당하는 내용이라서 영어 글쓰기가 목적이 아닌 독자라면 건너뛰어도 좋지만, 중간중간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조언이 있으니 가급적 읽어 보시기를 권한다. 특히 책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2장과 3장은 언어를 불문하고 세상의 모든 작가에게 강제로라도 읽히고 싶은 내용이다. 핑커는 가령 “수동태를 쓰지 마라.”라는 조언 같은 것을 절대적 진리로 주장하는 교조주의자가 아니고(이 대목에서 한국어 번역가인 나 또한 얼마나 속이 후련했는지!), 오히려 규칙과 관습에 얽매이는 원칙주의자가 좋은 글을 망친다고 보는 실용주의자이다. 또한 명쾌함을 지향한다고 해서 때로 화려하고 섬세하게 쓰지 못할 것은 없다고 말하는데, 다름 아닌 핑커 자신의 글이 그 좋은 예이다. 정말로, 『글쓰기의 감각』은 자신의 주장에 스스로 사례가 되어 보이는 책이다. 글쓰기 지침서도 재미있고 명쾌하게 쓸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 주는 책이다. 최근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과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이 급속하게 발전한 덕분에, 누구나 글쓰기에 관련된 갖가지 작업을 기계에 맡겨서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번역뿐 아니라 교정, 요약, 자료 탐색, 구성도 벌써 기계가 거들어 주고 있다. 이런 시대에 글쓰기를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더구나 한국어도 아닌 영어 글쓰기를? 하지만 직접 기계를 활용하여 글을 써 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텐데, 이런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더 필요한 것이 ‘무엇이 좋은 글인가?’ 하는 기준이다. 무엇이 좋은 글인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만이 기계에게 좋은 글을 쓰도록 지시할 수 있고, 기계가 써낸 글에서 무엇이 부족한지 가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서 마지막까지 타인에게 혹은 기계에게 의존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감각이다. “얼마나 탁월한 사상가이자 작가인지 …… 핑커는 별이다. 핑커를 가진 것은 과학계의 행운이다.” -리처드 도킨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핑커처럼 생생하고 명쾌하게 인지 과학을 대중에게 알릴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탐구적이고, 독창적이고, 대담하고, 장난스럽다.” -〈뉴욕 타임스〉 “핑커는 정말로 아름답게 쓴다.” -〈이코노미스트〉 |
“영어가 타락하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우아하고 명료하게 때려눕히는 책이다. 핑커는 21세기 작가들이 스트렁크와 화이트의 책처럼 참고할 안내서를 쓰면서도 근거 없는 거짓 규칙들은 신경 쓰지 말라고 똑똑히 말해 준다.” - 존 맥워터 (언어학자이자 『근사하고 잡스러운 우리 영어의 숨은 역사(Our Magnificent Bastard Tongue)』, 『바벨의 힘(The Power of Babel)』의 저자)
|
“대단한 책이다! 오직 스티븐 핑커만이 이런 놀라운 책을 쓸 수 있고, 그가 정말로 쓴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핑커는 “좋은 글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뒤집어놓는다.”라고 적었는데, 『글쓰기의 감각』을 읽은 독자는 좋은 글에 대한 생각이 뒤집힐 것이다. 핑커의 탐구심과 즐거움이 모든 내용을 명료하게 밝히며, 결국 우리는 좋은 글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들어 준다는 그의 말을 믿게 된다.” - 퍼트리샤 T. 오코너 (『나 슬프도다((伊)Woe Is I(伊))』의 저자이자 스튜어트 켈러먼과 함께 『그럴듯한 것의 기원: 영어의 신화와 착각((伊)Origins of the Specious(伊))』의 공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