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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은 달빛 아래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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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1. 센트럴 파크 2. 돌아온 탕자 3. 고삐 풀린 뇌 4. 짝짓기에 적합한 마음 5. 장식의 천재 6. 홍적새의 구애 7. 우리 몸에 새겨진 증거들 8. 유혹의 예술 9. 훌륭한 양육의 미덕 10. 시라노와 셰헤라자드 11. 구애를 위한 위트 12. 에필로그 감사의 말 용어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인명 일람표 용어 일람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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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번식 성공이 진화의 토대임을 기억해야 한다. 마음은 스위스 군용 칼이나 군사작전 사령부로서는 좀체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타인의 뇌를 자극하기 위해 고안된 엔터테인먼트시스템으로서는 훨씬 감이 잘 잡힌다. 장식으로서의 마음 이론은 바로 이러한 직관에 잘 들어맞는다.
-여성들은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과일, 채소, 괴경식물, 딸기, 나무열매 등을 채집했다. 남성들은 짐승을 사냥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했지만, 대체로는 아무것도 잡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와 보다 실용적인 여성들에게 얌 몇 뿌리를 얻어먹기 일쑤였다. 그들은 일주일에 20시간에서 30시간만 일해도 먹고살 식량을 구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주말도 없고 유급휴가도 없었지만, 여가시간은 우리보다 훨씬 많았다. 이따금 포식자, 기생충, 세균의 공격을 받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오늘날의 우리가 길을 건너는 것만큼이나 익숙하게 이 위험들을 헤쳐 나갔다. 자연은 ‘피로 물든 이빨과 발톱’이 아니다. 평상시에는 차라리 권태롭기까지하다. 포식자들은 보통 어린아이, 병든 자, 늙은이와 멍청이만 잡아먹는다. 병도 아무 때나 걸리는 것이 아니라, 대개 못 먹고 다쳐서 약해졌을 때 걸린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 조상들이 하루 종일 살아남을 걱정만 하면서 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종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는 그들의 일상에서 죽음의 위험이 극히 적었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고등한 유인원들처럼 그들도 인생의 대부분을 사회생활과 성적인 문제들을 붙안고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 여성은 진화의 역사 이래 가장 덩치가 큰 영장류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한 잡식성 동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인간 여성들에게는 자신보다 고작 10% 클 뿐인 남자친구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호미니드 여성들은 부권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과장된 허약함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포식자와 맞선 원시인 여성의 모습이 궁금한가? 그렇다면 울먹이면서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 마릴린 먼로일랑 잊어버리고, 테니스 라켓 대신 횃불을 휘두르는 슈테피 그라프를 상상해 보라. -하지만 여성에게 오롯이 물질적인 이익만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성의 많은 구애행위들도 대개는 적응도 지표로서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종에서 수컷들은 구애하는 동안 암컷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밑들이 수컷은 자신이 잡은 먹이를 암컷에게 준다. 우리 남성 조상들도 여성에게 사냥한 고기를 나누어 주었다. 최근까지 현대사회의 남성들은 살림에 필요한 돈의 전부를 벌어 왔다. 이것들은 모두 여성들이 좋은 유전자보다 좋은 식량을 원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밑들이 수컷은 암컷에게 알을 낳는 데 필요한 칼로리의 상당량을 제공한다. 현대의 남성들은 자본주의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돈을 여성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하지만 우리 남성 조상들이 공급한 고기는 여성과 자식이 필요로 하는 전체 에너지량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임신한 호미니드 여성은 280일 동안 하루에 4파운드, 총 1천 파운드의 음식을 필요로 했다. 호미니드 남성이 한 달 남짓한 구애기간 동안 그녀에게 10파운드의 고기를 제공했다면, 이것은 수렵채집인들로서는 적지 않은 양이다. 하지만 임신기간 동안 필요한 총 음식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양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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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택의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마음과 여성의 마음을 비슷하게 만드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 요인은 ‘남녀간의 유전적 상관성’이다. 모든 종에서 암컷의 유전자와 수컷의 유전자는 거의 똑같다. 암수 사이에 높은 유전적 상관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령 인간 남녀는 22쌍의 염색체가 똑같고, 단 한 쌍, 즉 X, Y 성염색체만 다르다. …[중략]… 암수에 상관없이 새끼들은 모두 성적으로 매력적인아비로부터 평균 이상의 긴 꼬리를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꼬리 길이가 길어지는 속도도 두 성에서 동일하다. 또한 암수를 막론하고 모든 새끼들이 어미로부터 긴 꼬리를 좋아하는 성적 선호를 물려받는다. 말하자면 암컷의 꼬리 길이는 수컷의 꼬리 길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진화하고, 수컷의 성적 선호는 암컷의 성적 선호에 편승하여 진화하는 것이다.
-부모 양쪽이 평균 수치의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고 치자. 각각은 자기 유전자의 절반을 자식에게 준다. 자식의 대부분은 부모가 가지고 있는 개수와 똑같은 돌연변이를 물려받는다. 하지만 자식들 중 몇몇은 운이 좋을 수도 있다. 운 좋은 자식은 아비로부터도 평균 이하의 돌연변이를 받고 어미로부터도 평균 이하의 돌연변이를 물려받는다. 운 좋은 자식은 이렇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품질 좋은 유전자들 덕분에 효과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돌연변이가 적은 그들의 유전자들은 다음 세대로 성공적으로 전파된다. 하지만 운이 나쁜 자식들도 있다. 운 나쁜 자식은 양쪽 부모로부터 모두 평균 이상의 돌연변이를 물려받는다. 따라서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거나 어려서 죽을 수도 있다. 죽는 자식은 대량의 돌연변이와 함께 진화의 망각 속에 묻힌다. -성선택에서는 동물들의 감각능력과, 선택 대상인 잠재적 짝들의 돌연변이 수준을 이어줄 연결고리가 필요한데, 적응도 지표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적응도 지표는 적응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형질들이기 때문이다. 적응도 지표가 드러내는 형질들만이 짝 고르기에서 환영받을 수 있고, 짝 고르기에 의해 환영받은 형질들만이 성선택을 통해 진화한다. 적응도 지표는 성선택이 해로운 돌연변이를 걸러낼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종의 유전자 조리다. 섹스를 바라보는 이와 같은 돌연변이 중심적 관점에서는 성적 장식이나 구애행위도 적응도 지표로서 진화한다. -인간의 뇌가 다른 유인원들의 뇌와 달리 사치스럽게 커진 이유는 이런 뇌가 생존이나 자식 양육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유전자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선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뇌는 복잡해질수록 고장 나기 쉽다. 인간의 뇌는 너무나 복잡해서 돌연변이에 의해 쉽게 손상을 입는다. 또 이렇게 커다란 뇌는 생리적으로 사치다. 사치스럽고 복잡한 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언어와 예술 같은 행동을 통해, 우리는 잠재적 짝에게 적응도를 과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선택이 짝짓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마음을 좋아했다면, 우리의 창조적 지능은 생존이익 때문에 진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을 할 때 돌연변이가 쉽게 노출되도록 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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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전개되는 밀러의 성선택론을 뒷받침하는 얼개는 크게 다음 세 가지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고삐 풀린 질주 이론, 둘째는 적응도 지표이론과 핸디캡원리, 셋째는 감각편향 이론이다. 이 책의 3-5장은 각각 한 장씩을 할애하여 이 세 가지 이론을 설명하고, 그 한계를 짚어본다. 6장에서는 홍적세의 삶과 구애환경의 윤곽을 그린 다음, 이 세 가지 이론을 통합하여 이 시기에 실제로 벌어졌던 인간의 짝짓기 양상을 살펴보면서 인간이 만들어지는 진화과정의 세목들을 뜯어본다. 7-11장은 인간의 몸, 예술(특히 미술), 도덕, 언어, 창의적 지능에 각각 한 장씩을 할애하여 그 진화과정에 자신의 이론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론구성, 현장 재현, 증거 제시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고삐 풀린 질주이론은 앞서 말한 양성되먹임 과정에 의해 가속화되는 급속한 진화 과정이다. 인간의 뇌가 3배로 커지는 데 200만년이 걸렸다. 일반적인 진화 과정으로 보면 이것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다. 이러한 빠른 속도 덕분에 고삐 풀린 질주이론은 급속한 종 분화를 설명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이를 테면 인간이 다른 영장류로부터 전혀 다른 모습, 다른 뇌를 갖추는 과정을 훌륭하게 설명한다. 그런데 이 이론은 세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하나는 그 속도 자체가 너무 빠르다는 점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순수하게 고삐 풀린 질주 이론은 200만년이 아니라 2만년 동안에 인간의 뇌를 3배로 키워놓았어야 한다. 두 번째는 방향성이다. 인간의 뇌는 지속적으로 커지는 쪽으로만 진화했다. 그런데 질주 이론에는 방향에 대한 편견이 없다. 뇌가 작아지는 쪽으로도 얼마든지 진화할 수 있다. 때문에 인간 뇌의 지속적인 팽창 추세를 설명하지 못한다. 세 번째는 질주 과정은 암수간에 커다란 성 차이를 만들어 내야 한다. 말하자면 남성의 뇌가 인간의 뇌로 진화하는 동안, 여성의 뇌는 여전히 침팬지의 뇌에 머물러 있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그렇지 않다. 남녀의 일반지능에는 별 차이가 없다.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와 암컷 공작의 칙칙한 꼬리 사이의 차이와 같은 그러한 차이가 인간 남녀의 뇌에는 나타나지 않는지를 질주이론은 설명하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밀러는 다단계 뇌 팽창, 감각편향 이론, 남녀의 상호선택을 내놓는다. 다단계 뇌 팽창이란 단 한 번의 지속적인 질주가 아니라 여러 차례 정체와 팽창을 반복하는 과정을 설정함으로써 질주의 속도를 늦춘다. 이것은 호미니드의 두개골 화석증거들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감각편향 이론은 질주에 방향성을 부여한다. 암컷의 감각은 성적 선호를 구성하는 요소다. 이 감각에 어필하는 형질이 진화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가령 퉁가라개구리 암컷은 800헤르츠 안팎의 주파수를 잘 포착하는 귀를 가지고 있다. 이 주파수대의 구애울음을 울지 못하는 수컷은 짝을 찾기가 어렵다. 포유류의 눈은 사물의 모서리를 탐지함으로써 사물을 분간한다. 많은 모서리를 가진 물체가 1차 시각피질을 더 잘 흥분시킨다. 줄무늬, 눈꼴무늬 같은 화려한 장식을 가진 수컷이 암컷에 어필하는 이유다. 영장류는 잘 익은 과일을 빨리 포착하기 위해 밝은 색깔에 반응하는 눈을 가졌다. 이와 같은 감각 편향은 섹스 파트너를 고르는 데 일정한 방향성을 갖게 만든다. 수컷은 과시하고 암컷이 고른다는 다윈의 성선택론은 인간의 짝짓기에는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여자만이 아니라 남자도 짝을 신중하게 고른다. 인간의 성적 관계는 완전한 일부다처제가 아니며, 남자도 일정하게 자식에 대한 부양투자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성적 행동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장기적인 관계에서는 서로 잠재적 짝의 지능에 관심이 많다. 이러한 상호선택은 남녀의 지능을 비슷하게 진화시킨다. 적응도 지표 이론과 그와 결합된 핸디캡 원리는 이 책의 중심을 이루는 이론이다. 적응도 지표이론을 제기한 사람은 피셔 킹이며, 핸디캡 원리는 자하비에 의해 제안되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공작수컷은 긴 꼬리와 화려한 눈꼴무늬를 진화시켰다. 이것은 생존에 불리한 조건들을 구성한다. 포식자의 눈에 잘 띄고, 도망치기에 거추장스럽다. 이것들은 생존에 핸디캡이다. 이러한 핸디캡은 적응도가 낮은 수컷들로서는 감당하기에 부담스러운 요소들이다. 적응도가 높은 수컷들만이 으스대며 과시할 수 있다. 따라서 공작수컷의 길고 화려한 꽁지깃은 그 개체의 적응도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것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과시소비이론’과 흡사하다. 가난한 남자가 약혼자에게 5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다간 결혼도 하기 전에 파산하고 말 것이다. 그것은 부자들만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인간은 서로 말을 많이 하기 위해 경쟁한다. 여자가 있는 경우는 더 심해진다. 말은 정보의 유출이다. 무상으로 타인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에너지를 이타주의에 낭비하는 꼴이다. 생존주의로는 설명이 안 된다. 도덕도 마찬가지다. 도덕은 자기희생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다. 이기적 유전자 관점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러한 예들 역시 수컷 공작의 긴 꼬리와 유사한 적응도 지표이자 핸디캡이다. 적응도가 떨어지는 개체로서는 이러한 핸디캡을 감당하기 어렵다. 밀러는 이와 같이 고삐 풀린 질주이론, 적응도 지표 이론과 핸디캡 원리, 감각 편향 이론을 축으로 유성생식하는 동물들 일반과 인간의 성선택을 설명해 간다. 7-11장에서는 인간의 성선택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러한 과정이 어떻게 인간의 오늘날의 모습을 진화시켰는지를 꼼꼼하게 형상화한다. 여자의 엉덩이와 유방, 좀체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클리토리스도, 남자의 영장류로서는 특이하게 긴 페니스와 보통 크기의 음경도,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 미술 작품을 제작하느라 온 정성을 다 들이는 예술가들도, 생존기능을 훨씬 넘어선 인간의 화려한 언어, 자기 과시적 허풍, 학회에서 연사가 되기 위해 애쓰는 남성 연구자들의 물밑 경쟁도, 자선단체에 거금을 쾌척하는 자선가들의 선심 경쟁도 결코 밀러의 성선택론의 과녁을 벗어나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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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성선택론인가?
100명에게 물어보라. 진화가 뭐냐고. 아마 대부분 자연선택의 결과라고 대답할 것이다. 다시 물어보라. 자연선택이 뭐냐고.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자생존’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밀러의 대답은 다르다. 그는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5억 년 전, 눈과 뇌를 지닌 동물이 처음 진화한 이래 우리 유전자가 매 세대마다 불패의 성관계를 이어온 덕분이다. 우리 유전자는 매 세대마다 짝 고르기라고 불리는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인간의 진화란 결국 이 관문이 어떻게 새로운 보안시스템을 진화시켰는가에 대한 이야기며, 우리의 마음이 갈수록 삼엄해지는 문지기를 홀려 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어떻게 진화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상대의 유전자의 품질을 염두에 두고 선택권을 행사하는 쪽은 감별능력을 향상시키고, 선택되는 쪽에서는 감별사의 식별기능을 속여 번식에 이르는 관문을 통과하려 한다는 것이다. 밀러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 조상들이 낮에 부딪쳤던 생존 문제들에 관심을 가졌지만, 나는 그들이 겪었던 구애의 고민들을 풀어 보고 싶었다. 시적 언어를 빌면, 나는 인간의 마음은 달빛 아래서 진화했다고 믿는다.”라고 썼을 때, 그가 풀어보고자 했던 구애의 고민은 바로 이 밀고 당김의 과정을 지배하는 메커니즘이었다. 그는 용어의 재정의로부터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193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 생물학계에서는 자연선택을 “한 유전자가 생존이나 번식 측면에서 다른 유전자보다 경쟁력을 갖도록 유도하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연선택은 ‘적자생존’과 동일시된다. 생물학계에서는 ‘자연선택=자연선택+성선택’인 반면 그 외의 사람들에게 ‘자연선택=적자생존’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용어사용은 성선택에 대한 경시에서 비롯되었으며,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다윈의 용어사용법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한다. 다윈에게 자연선택은 “생존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화과정”이고, 성선택은 “번식경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화과정”이었다. 그가 성선택에 눈을 돌린 것은 자연선택이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서 부딪혔던 한계들 때문이었다. 알다시피 언어, 예술, 도덕, 창의성 등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특질들이다. 그런데 생존주의 관점은 무려 한 세기 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특질들을 설명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인간의 언어는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능 이상으로 복잡하게 진화했다. 예술은 생물학의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도덕은 식량을 구하고 포식자를 피하는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인간의 지능이 생존에 그토록 도움이 되었다면 왜 다른 유인원들은 그것을 진화시키지 않았는가? 특히 인간의 지능과 관련하여 그는 그것이 결코 생존을 위해 발달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의 논리는 간단하다. 인간의 뇌의 발달은 적어도 10만 년 전 현생인류의 등장과 더불어 완료되었다. 그러나 기술혁신, 농업의 발달, 인구팽창 등은 그로부터 9만년 이후에 일어난다. 진화는 당장 이익을 남기지 않는 미래를 위해 투자할 여력이 없다. 따라서 인간의 지능의 발전을 생존이익과 연결시키는 것은 틀렸다. 그는 자연선택과 다른 몇 가지 특징적 양상들을 거론하며 성선택론이 인간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임을 상기시킨다. 무엇보다도 짝 고르기를 통한 성선택은 생존을 위한 자연선택보다 훨씬 지능적인 과정이다. 자연선택에서 선택자들은 서식환경, 생태지위, 기생생물과 종 내의 경쟁자들이다. 이들의 선택에서 진화는 아무런 의지 없이 그냥 일어난다. 방향성, 일관성,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에 성선택에서 선택자는 자기 유전자의 확산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섹스 파트너의 유전자의 질이 평균적으로 자기 새끼의 유전자의 질의 절반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선택은 자연선택보다 훨씬 강력하고, 뛰어난 식별능력을 보인다. 성선택에서 섹스가 차별적, 선택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다.” 밀러의 표현을 그대로 빌면 “우리 종의 성 선택은 우리만큼 총명하다.” 둘째, 성선택에 의해 일어나는 진화는 그 속도가 매우 빠르다. 이것은 성적 선호와 그것이 좋아하는 유전적 형질이 서로 양성 되먹임(positive feedback) 작용을 하면서 진화를 가속화시키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조류 종의 암컷이 긴 꼬리를 가진 수컷을 좋아하는 성적 선호를 우연히 가지게 되었다고 하자. 이러한 성적 선호 역시 긴 꼬리와 마찬가지로 유전적 형질이다. 모든 암컷은 이 긴 꼬리를 가진 수컷과 교미하려 하며, 이 암컷이 낳는 새끼들은 이러한 성적 선호와 긴 꼬리 모두를 물려받게 된다. 성적 선호는 수컷 새끼에게서는 발현되지 않고, 긴 꼬리는 암컷 새끼들에게서 발현되지 않는다고 해도, 유전적 형질 자체는 가지게 된다. 수컷 새끼는 다시 동세대의 모든 암컷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따라서 성적 선호와 긴 꼬리 형질을 퍼뜨리게 된다. ■ 성선택론, 100년 동안의 유배 그렇다면 이러한 성선택론이 거의 100년 동안이나 외면당해 온 것은 무슨 까닭일까? 밀러는 대략 3가지 이유를 꼽고 있다. 첫째는 다윈이 살았던 빅토리아시대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다. 다윈의 가장 중요한 저작은 《종의 기원》과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다. 전자가 자연선택을 다루고 있다면 후자는 성선택을 다루고 있다. 《종의 기원》 이후 다윈은 더 이상 자연선택을 연구하지 않는다. 그 이후의 다윈의 연구와 집필은 모두 성선택론에 집중되어 있다. 때문에 다윈은 ‘자연선택론자’로서보다는 ‘성선택론자’로 자리매김되는 게 더 타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왜? 《종의 기원》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파장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 불러일으킨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수컷이 과시하고 암컷이 고른다’는 다윈의 성선택의 핵심 주장은 남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여자들이 온갖 치장을 하고 나와 서로 경쟁하는 당시의 성적 시장에서 도무지 잠꼬대 같은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증거를 들이대도 영국 신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학자들의 내숭이다. 성선택론은 결국 섹스에 대한 이야기니까. 당시의 학자들의 눈에 성선택론은 “그냥 무신론도 아니고 음란한 무신론이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20세기의 이데올로기와 미적 감각이다. 성선택론에서 성적 경쟁은 종 내의 경쟁이다. 이 경쟁은 종의 이익과는 무관하게 치닫는다. 아일랜드큰사슴은 너비 1.8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뿔을 발달시키는데, 결국 이것이 생존에 지나친 부담이 되어 멸종했다. 지나친 성적 장식이 종을 멸망으로 이르게 한 것이다. 20세기의 생물학자들에게 진화는 종의 이익에 부합되는 것이어야 했다. 그들은 종의 멸망을 초래하는 진화를 생각할 수도 없었다. 또 하나는 장식에 대한 경시다. 탈장식의 실용주의 미학의 입장에서 볼 때 주렁주렁 성적 장식을 달고 나와 잠재적 짝들을 유혹한다는 성선택론은 경멸 받아 마땅했다. 밀러에 따르면 다윈이 제시한 수많은 성선택론의 증거들은 한번도 진지하게 검토되고 반증된 적이 없다고 한다. 결국 성선택론의 복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도 페미니즘의 등장과 남성중심주의의 퇴조가 초래한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였다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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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선택론의 혁명, 당신의 인간관을 뒤집어 드립니다
이 책은 이미 생물학, 진화심리학 등을 연구하는 국내의 젊은 연구자들에게 제법 알려져 있고,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저작이다. 감수를 맡은 최재천 교수는 이 책의 출간 덕분에 비로소 우리나라에서도 본격적인 “성선택 담론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서울대에서 박사과정 중인 젊은 진화심리학자 장대익은 이 책을 읽고 ‘성선택의 철학’을 박사학위논문의 테마로 정하고는 런던에서 저자인 제프리 밀러와 여러 차례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었다고 한다. 또 진화심리학 전도사를 자처하며 여러 곳에 글을 기고하거나 강연을 하고 있는 김우재(포항공대 생명과학과 박사과정)는 이 책을 《이기적 유전자》와 같은 고전의 반열에 오를 책이라 단언했다. 저자인 제프리 밀러는 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데닛, 스티븐 핑커 등을 잇는 진화심리학계의 차세대 대표 학자이자 젊은 논객이다. 스티븐 핑커 등이 주로 생존주의 입장에서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반해 그는 성선택론을 설파한다. 이 책에서도 생존주의 입장에 대한 맹공을 펼치고 있다. 이 책은 완전히 새로운 타입의 과학책이다. 화려하면서도 적절한 비유를 통해 독자의 머릿속에 현대와 홍적세, 인문학과 자연과학, 과학과 일상을 넘나드는 광대무변의 풍경을 그려보여 준다. 책읽기의 본질이 재미, 글맛, 자기와 세상에 대한 이해의 확대라면, 이 책은 결코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인간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질문에 대한 거대담론이다. 번역서에서는 ‘섹스는 어떻게 인간본성을 만들었는가’라는 단도직입적인 부제를 달았지만, 원저의 부제를 직역하자면 ‘성선택은 어떻게 인간 본성의 진화를 형태지웠는가’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의 테마다. 밀러는 자연선택론에 곁다리처럼 끼어 있던 성선택론을 분리해 내어, 도리어 성선택을 자연선택을 압도하는 진화의 주된 동력으로 위치시킨다. 그리고는 이것을 다윈의 애초 의도에 부합할 뿐 아니라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는 데 올바른 입장이라고 주장한다. 한 장을 할애하여 100년 동안의 다윈주의의 유배와 금의환향의 과정을 상술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책은 혁명의 음모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김우재의 단언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가 과학에 기반하여 생명의 의미에 대한 온갖 형이상학적 논란을 전복시켰듯이, 이 책은 ‘인간 만들기’에 관한 온갖 억측들을 단숨에 전복시켜 버린다. 최소한의 진지한 책읽기의 수고를 들이기만 한다면 독자들은 그간의 인간관이 전면적으로 해체되어 재조립되는 통쾌한 충격을 맛볼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소 엉뚱한 비유지만, 흡사 《전환시대의 논리》가 386세대의 역사관을 뒤흔들어놓았던 것과 같은 그러한 충격을 준다. ■ 생물학 세기의 중심에 성선택론이 있다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라고 한다. 유전학, 분자생물학 등이 가져다주리라고 기대되는 엄청난 부가가치를 염두에 둔 말일 게다. 실제로 이들 분야는 기업들의 집중적인 연구비 지원을 받으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좀 다른 의미에서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생물학이 인류학, 철학, 언어학, 심리학, 사회학 등 인간을 연구하는 제 학문들과 소통하기 위한 튼튼한 다리가 활발하게 건설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성선택론이 있다. 성선택론을 처음 전개한 것이 다윈의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이었으니 무려 100년만의 화려한 복귀인 셈이다. 추천사에서 최재천 교수가 썼듯이 최근 행동생태학,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을 비롯한 세계 주요 생물학 저널들에 게재되는 논문의 70% 가량이 성선택론과 관련된 것들이라고 한다. 성선택론의 복귀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와 진화심리학의 대두가 큰 역할을 했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의 자기 복제를 진화의 중심에 위치시켰다. 유전자의 자기 복제라는 이기적 본능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생존’조차도 ‘번식’에 종속되는 하위항목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제프리 밀러의 표현을 빌면 “아무리 생존능력이 뛰어난 호미니드라 할지라도 섹스 파트너를 유혹하여 자식을 낳지 못한다면 결코 우리의 조상이 될 수 없었다.” 번식하지 못하는 생존은 진화상으로는 사멸이다. 인간의 진화에서 성선택이 가지는 중요성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화론에 입각하여 인간 마음의 현상들을 설명하는 진화심리학은 최근 10년 안팎 동안 인간학과 관련된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으며, 어느새 프로이트 심리학을 누르고 심리학의 주류로 잡았다. 진화심리학은 생물학과 철학, 언어학, 인류학 등의 인문학, 생물학과 경제학, 사회학 등의 사회과학을 잇는 튼튼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표적인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의 《언어본능Language Instinct》, 《빈 서판Blank Slate》, 대니얼 데닛의 《마음의 진화》, 데이빗 버스의 《욕망의 진화 The Evolution of Desire》 등이 번역 출간되었다. 진화심리학은 주로 생존주의 입장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 태도에서 보이는 남녀차이, 가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성선택론이 대단히 유효한 도구임을 보여주었다. 성선택론의 복귀와 관련하여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페미니즘과 여성 연구자들의 등장이다. 다윈의 성선택론의 핵심적인 주장 가운데 하나는 ‘수컷은 과시하고 암컷은 고른다’는 것이다. 이 암컷선택, 여성선택 주장은 다윈의 성선택이 남성중심의 문화, 학문 전통에서 외면당하는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다. 페미니즘과 여성생물학자의 등장은 이러한 편향된 시각을 조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 책의 감수를 맡기도 한 서울대의 최재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성선택론을 제대로 공부한 몇 안 되는 학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 그가 페미니즘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남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여성운동 단체로부터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수상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