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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연합과 진보가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든다
인도 지도 책 속의 인도 역사 서론: 민주주의의 불꽃이 사그라지고 있다 1. 인도 민주주의의 실체 2. 신자유주의 시대의 파시즘 3. 그의 숨통을 끊어야 한다: 의회 공격 사건에 대한 전혀 다른 이야기 4. 특종: 우겨라, 그러면 진실이 되리라 5. 고문과 자백의 상관관계 6. 베이비 부시, 꺼져 7. 동물농장Ⅱ: 조지 부시의 속내 8. 왕궁의 스캔들 9. 메뚜기 소리를 듣다: 인종 학살의 시대 10. 아자디 11. 11월은 9월이 아니다 12. 브리핑 원고 출처 주 찾아보기 |
Arundhati R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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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묻고 싶은 것은 우리가 민주주의에 무슨 짓을 했는가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무엇으로 둔갑시킨 걸까? 민주주의를 남용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민주주의가 공허해지고 의미를 상실한다면? 민주주의의 모든 기구가 무시무시한 괴물로 변하면 어떻게 될까?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 한 마리의 육식동물로 합체하여 빈곤하고 제한된 상상력으로 오로지 이윤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 흐름을 바꿀 수 있을까? 돌연변이를 일으킨 생명체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본문 17페이지 오늘날, 진보와 발전 따위의 단어는 경제 ‘개혁’, 규제 철폐, 민영화와 동의어가 되었다. ‘자유’는 ‘선택의 자유’를 의미하게 되었다. 인간 정신이 아니라 겨드랑이 탈취제에나 쓰는 말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시장은 일용품을 사는 곳을 뜻하지 않는다. ‘시장’은 얼굴 없는 기업들이 거래하고 ‘미래(선물先物)’를 사고파는 초국적 공간이다. 한편 ‘정의’는 오로지 ‘인권’만을 뜻하는 말이 되어버렸다(그마저도 사람들은 ‘많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언어를 징발하여 무기로 삼고, 자신의 의도를 숨기는 것으로도 모자라 원래와 정반대의 의미를 부여하는 자들의 언어도단 기법은 새로운 통치 체제의 제왕들이 거둔 가장 빛나는 전략적 승리로 손꼽힌다. 이를 통해 비판자를 소외시키고, 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그들을 ‘반反진보’, ‘반발전’, ‘반개혁’, (물론) ‘반민족’ 따위의 온갖 부정적인 단어로 덧칠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강을 살리거나 숲을 지키자고 말하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진보를 믿지 않는가?” 댐 건설로 쫓겨난 수몰민과 개발로 밀려난 철거민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다른 발전 모델이 있나?” 정부가 국민에게 기초 교육, 의료, 사회보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대꾸한다. “시장에 반대하는군.” 바보가 아니고서야 누가 시장에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본문 20~21페이지 날로 커져만 가던 파키스탄을 향한 적개심은 급기야 국경을 되넘어 인도 내부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힌두 공동체와 무슬림 공동체 사이에 그나마 남아 있던 조화와 관용의 흔적을 베어버렸다. 지옥에서 온 신의 사자들이 대중의 상상력을 옭아맸다. 그들을 불러들인 것은 우리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 적개심이 커질 때마다 인도 안에서는 무슬림을 향한 적개심이 덩달아 커졌다. 파키스탄을 저주할 때마다 우리는 자신에게, 우리의 삶의 방식에, 우리의 다채롭고 오랜 문명에, 인도를 파키스탄과 구별하는 모든 것에 생채기를 낸다. -본문 63페이지 새로운 분리주의 운동이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신新분리주의’라고 부르면 되려나? 이 분리주의는 구舊분리주의와 정반대다. 전혀 딴 경제, 전혀 딴 나라, 전혀 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 편 행세를 한다. 소수집단이 다수에게서 땅과 강, 물, 자유, 안전, 존엄, 저항권을 비롯한 기본권, 한마디로 모든 것을 빼앗아 막대한 부를 누리는 분리주의인 것이다. 영토를 경계로 하는 수평적 분리주의가 아니라 수직적 분리주의다. 빛나는 인도를 남루한 인도와 분리하는 것, 공기업 인도를 주식회사 인도와 분리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짜 구조조정이다. -본문 80페이지 조지 부시: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는 급변하는 아시아에서, 커져만 가는 폭력과 환경 파괴에 한몫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도 그런 것 좋아합니다. 교토에서 그 멍청이들이 지껄이는 소리 들으셨죠? 이니아에는 식수로 쓸 수 있는 강이 하나도 없고 지하수도 고갈되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시원하고 맛도 좋은 코카콜라가 있잖아요. 여러분은 근사한 쇼핑몰에 가서 무엇이든 살 수 있습니다. 돈만 있다면요. 부유한 이니언의 생활수준이 빠르게 신장되고 있으며 이니언 CEO의 연봉이 서구 기업에 맞먹을 정도가 되었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정말 근사한 일입니다. 미국에서는 CEO에게 보조금을 줍니다. 오냐오냐하면 버릇 나빠진다지만, 사랑하는데 어떡합니까? 우리는 기업농도 사랑합니다. 보조금으로 수십 억 달러를 줍니다.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깡마르고 가난하고 툭하면 목숨을 끊는 당신네 농부들과는 다릅니다. 이니아 농부들은 보조금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요. 프로작이나 먹이세요. 미국 제약 회사들이 수입을 더 올리게요.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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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인도는 진짜 인도가 아니다
‘인도’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어떤 이들은 IT 업계에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떠오르는 신흥 경제 대국을 떠올릴 것이고, 어떤 이들은 발리우드 영화와 이국적인 음악을 떠올릴 것이며, 또 어떤 이들은 요가를, 불교와 힌두교를, 모험과 히피로 가득 찬 배낭여행지를 또는 얼마 전 발생했던 성폭행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이 모두가 인도를 설명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인도의 진짜 모습을 정확히 설명해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도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과 인도로 떠나는 여행자들의 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지금, 이제 우리는 각종 이미지로 덧입혀진 인도의 가면을 벗겨 그 뒤에 숨겨진 인도의 진짜 모습을 알아야 한다. 바로 이 작업에, 2014년 《타임》지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한 아룬다티 로이가 착수했다. 아룬다티 로이, 정치 평론을 문학으로 승화하다 아룬다티 로이는 두 가지 정체성의 소유자다. 우선 그녀는 1997년 《작은 것들의 신》으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작가이다. 또한 그녀는 《생존의 비용》,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 등 여러 편의 정치 평론을 쓰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운동가이기도 하다. 길담서원 대표 박성준 교수는 “아룬다티 로이에게 문학과 정치의 경계선은 무의미하다. 그녀는 탁월한 문체적 역량을 쏟아부어 문학으로 승화된 정치 평론을 쓴다”고 했고, 캐나다의 언론인이자 작가인 나오미 클라인은 “로이는 우리 시대 가장 자신만만하고 독창적인 사상가다”라고 말했다. 아룬다티 로이는 이 책에서 모국 인도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을 치밀하게 조사해 그 본질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동시에, 문장 하나하나에 작가로서의 문학적 역량을 담았다. 이 책에는 그녀의 희곡도 두 개 들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7장 ‘동물농장Ⅱ: 조지 부시의 속내’는 워싱턴 아시아학회에서 부시가 한 연설을 한 문장 한 문장 패러디하여 다시 쓴 것으로 그녀의 시니컬한 풍자와 유머로 가득 차 있다. 종교 갈등, 인종 학살, 빈부 격차로 얼룩진 인도의 민주주의 그렇다면 현재 인도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이슬람교도를 대놓고 탄압하고 있는 인도의 현 집권당 인도인민당은 2002년 구자라트에서 주도면밀하게 이슬람교도 2,000명 이상을 학살했다. 여자들은 윤간당하고 산 채로 불태워졌으며, 이슬람교도 15만 명이 집에서 쫓겨났다. 또한 신자유주의식 경제 발전을 맹목적으로 추구한 결과 빈부 격차는 갈수록 벌어져 인도 최대 부자인 무케시 암바니가 수백 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동시에 델리의 한 구석에서는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인도 정부는 2001년 인도 국회의사당에 테러 공격이 발생하자 거짓 증거를 날조해 무고한 사람을 테러범으로 지목한 후 사형시키기도 했다. 로이는 이 밖에도 카슈미르에서 일어난 대규모 봉기, 2008년 뭄바이 테러 공격 등 최근 인도에서 발생한 정치 사건들을 차분히 분석해 핵심을 짚으면서 사라진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고 열정적으로 외친다. 인도의 현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 이 책의 역자는 인도의 현실이 “과연 우리와는 먼 얘기일까?”라고 물으며 “인도는 대한민국의 모순과 갈등을 증폭하여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인도처럼 극적인 종교 갈등을 겪고 있지는 않지만 한국 내 외국인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을 향한 차별과 분노는 갈수록 커져간다. 부정부패는 더 이상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 되었으며, 국민들은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생각해 정부 발표와 언론 보도를 믿지 않는다. 합법적으로 시위를 벌인 사람이 경찰서로 연행되고, 빈부 격차는 세계의 그 어떤 나라 못지않다. 선거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고 해서 그 나라가 민주국가인 것은 아니다. “정의와 자유, 존엄을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민주국가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도의 어두운 현실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강요된 믿음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로이는 또한 이렇게 말한다. “끊임없이 지도자를 원망하는 국민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 지도자가 우리를 실망시키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가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게 도울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