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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7
짧은 차례 8 긴 차례 11 그림 목록 17 표지 설명 23 머리말 28 Section I 꼬임과 엉킴(Snags & Snarls) 1. 자기지시 문장에 대하여 43 2. 자기지시 문장: 후속편 75 3. 바이러스성 문장과 자기복제 구조에 대하여 111 4. 노믹: 법칙의 재귀성을 이용한 자기수정 게임 143 Section II 의미와 사회(Sense & Society) 5. 세계관의 충돌: 『스켑티컬 인콰이어러』 대 『내셔널 인콰이어러』 175 6. 수각상실에 대하여 213 7. 의식 제고가 낳은 기본 낱말과 이미지의 변화 245 *8. 언어의 순수성에 대한 사람서 281 Section III 스파크 일으키기와 미끄러지기(Sparking & Slipping) 9. 프레데리크 쇼팽 음악의 패턴, 시, 힘 301 10. 파르케 데포르마시옹: 섬세하고 정교한 예술형식 326 11. 순 난센스 358 12. 주제의 변주야말로 창조성의 핵심 388 *13. 메타폰트, 메타수학, 메타물리학: 도널드 크누스의 논문 「메타폰트의 개념」에 대한 논평 429 Section IV 구조와 묘함(Structure & Strangeness) 14. 매직큐브학 489 15. 루비콘강 건너기에 대하여 530 16. 수학적 혼돈과 묘한 끌개 580 17. 리스프: 원자와 리스트 625 18. 리스프: 리스트와 재귀 647 19. 리스프: 재귀와 일반성 670 20.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원리와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 719 Section V 정신과 기질(Spirit & Substrate) *21. 『앨런 튜링의 이미테이션 게임』 서평 759 22. 튜링 검사에 대한 대화 773 23. 창조성의 기계화라는 겉보기 역설에 대하여 828 24. 인간의 생각과 기계의 생각에서의 유추와 역할 860 *25. 주개골 안에서 누가 누굴 조종하나? 또는 ‘나’라는 낱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946 *26. 불의 꿈에서 깨어나기, 또는 연산으로서의 아인지 989 Section VI 선택과 안정성(Selection & Stability) 27. 유전부호는 자의적일까? 1045 28. 되치기, 과시, 일격, 평범: 수를 이용한 심리 게임 1087 29. 수감자의 딜레마 컴퓨터 대회와 협력의 진화 1110 Section VII 분별과 생존(Sanity & Survival) 30. 초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딜레마에서 다다익선 복권까지 1145 31. 비합리성은 만악의 제곱근이다 1173 *32. 해피턴 이야기 1189 *33. 내면 목소리의 소란, 또는 ‘나’라는 낱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1211 감사의 글 1235 옮긴이의 말 1243 참고 문헌 1249 인용 출처 1272 찾아보기 1276 [ *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메타마법적 테마들」 칼럼으로 발표되지 않은 글.] |
Douglas Richard Hofstad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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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마법적’은 무슨 뜻일까? 내가 생각하는 의미는 ‘마법을 한 차원 넘어서기’다. 여기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 한편으로 이 낱말은 ‘초마법적’, 즉 상위 차원의 마법을 의미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법 이면에 언제나 비마법적인 것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마법의 마법적 측면임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것이 당신을 위한 메타마법이다! 이런 발상에는 ‘진실은 허구보다 힘이 세다’라는 낯익지만 힘센 격언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나의 ‘메타마법적 테마들’은 뜻밖의 장소에 종종 마법이 숨어 있고 반대로 누구나 예상하는 장소에 좀처럼 마법이 숨어 있지 않음을 보여 주려는 가드너적 시도다.
--- p.45 에피메니데스 역설을 출발점 삼아 이 매혹적인 나라에 뛰어들어 보자. ‘스스로의 토대를 허무는 문장’이라는 주제에는 수많은 변주가 있다. 아래 두 문장을 생각해 보라. * 이 문장은 에피메니데스 역설을 표방하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 * 이 문장은 자기모순인데, 실은 그렇지 않다! “이 명령을 거역하라”라는 명령을 받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문장의 에피메니데스적 성격은 잠시 골머리를 썩여야 알아차릴 수 있다. “이 문장에는 정확히 세 게의 옷타가 있다.” 여기서 유쾌한 반발 효과가 생긴다. --- p.47 밈에 대해 곱씹다 보면 찰나적으로 반짝거리는 스파크 패턴이 뇌에서 뇌로 뛰어다니며 “저요, 저요!” 하고 외치는 장면이 떠오른다. 월턴과 고잉의 편지는 이 이미지를 흥미롭게 강화했다. 이를테면 월턴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바이러스성 문장 - “저를 읽어 줘요!”와 “저를 복제해줘요!” - 으로 시작하여 금세 복잡한 변이로 이동하는데, 어르든(“저를 복제해 주면 세 가지 소원을 들어 드릴게요!”) 으르든(“저를 읽어 주지 않으면 저주를 내릴 거예요!”) 어느 쪽도 약속을 지킬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물론 월턴이 지적하듯 이것은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생존 가능성의 유일한 최종 판단 기준은 밈 풀에서의 생존이니 말이다. 사랑과 전쟁에서는 모든 것이 정당화되며 전쟁에는 생존을 위한 영원한 전투도 포함된다. 관념권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생물권 못지않게 치열하다. --- p.117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까? 열린 마음과 어리석음의 경계는 어디일까? 닫힌 마음과 어리석음의 경계는? 최적의 균형점은 어디일까? 그것은 내가 답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심오한 질문이다. (…) 내 입장이 그의 입장보다 더 옳다거나 그의 입장이 내 입장보다 더 옳다고 입증할 방법은 전혀 없다. 하지만 그런 판단을 정식화할 적절한 이론이 전혀 없을지언정 우리는 모두 그런 의사결정을 내리는 존재의 걸어 다니는 화신이며, 앞으로 수백만 년이 지나도록 형식주의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린다. 그런 판단에는 음식, 음악, 예술, 과학 등에 대한 모든 취향의 문제가 포함된다. 우리는 자신이 그런 판단을 어떻게 내리는지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좌고우면의 늪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신속함을 희생하지 않고도 더 많은 정보에 기반하여 빠른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무엇이든 엄청나게 중요하다. 나는 『스켑티컬 인콰이어러』가 그 용도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며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추천한다. --- p.212 음악과 미술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을 받으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주된 차이는 뭐니 뭐니 해도 시간성이다. 음악작품은 본질적으로 시간과 관계가 있지만 미술작품은 그렇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악곡을 이루는 소리들은 특정 순서와 특정 속도로 연주하고 듣도록 의도되었다. 그러므로 음악은 기본적으로 1차원이며 우리 존재의 리듬에 묶여 있다. 이에 반해 미술작품은 일반적으로 2차원이거나 3차원이다. 그림과 조각에서는 눈으로 따라가야 하는 내재적 ‘일람 순서’를 찾아보기 힘들다. 모빌을 비롯한 키네틱 아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특정한 최초 상태나 최후 상태, 중간 단계는 없을 때가 많다. 아무 때나 감상해도 상관없다. --- p.326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까운 진전을 거듭거듭 철회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껏 성취한 가시적 질서를 부분적으로나마 임시로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결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 pp.489-450 정지문제와 자기관찰 프로그램 개념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우리가 인공지능을 구축하려고 시도할 때 자기관찰 시스템을 수학적으로 완벽하게 만드는 일보다는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는 일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이 지능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어떤 프로그램도 완벽한 자기관찰자가 될 수 없고 상상 가능한 어떤 무한후퇴에서도 스스로를 잡아챌 수 없다고 말하는 수학 공리가 있더라도, 그것은 완벽한 지능이 도달 불가능하다는 진술에 불과하다. 이것은 우리에게 좌절보다는 기쁨을 선사한다. 어떤 사람이 얼마 있다가 유한한 프로그램을 내놓고 떳떳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무척 끔찍하고 실망스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봐들, 마침내 여기 있어. 지능의 대단원, 완벽한 지능을 가진 프로그램이야.” --- pp.842-843 저는 ‘기술적 명령’이 인류를 멸종으로 몰아간다고 믿습니다. 점점 더 끔찍한 무기가 생산되어야 하는 이유는 다만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정신 나간 헛짓거리를 정당화하려고 그 무기를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억지’나 ‘세력균형’ 같은 비유에 근거한 패러다임의 ‘논리’에서 모든 구멍을 틀어막아 난공불락으로 만드는 것이 급선무가 됩니다. 저는 군비경쟁의 악순환에서 지성이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통치자들은 자신이 결정을 내린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들이 C(협력) 행위자라면 지금의 자리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임기 중에 C를 시작한다면 탄핵되거나 축출되거나 암살당할 것입니다. 이것은 D(배신) 행위자가 선택된다는 뜻일까요?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지만 진화의 시간척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호모사피엔스가 사라진다고 해서 세상이 멸망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인간중심주의자인 제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 pp.1138-1139 협력하는 선택지가 어떤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인 반면 배신은 협력자의 노고 덕분에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는 결실을 거저 얻는 것일 수도 있다. 배신의 전형적 예는 아래와 같다. * 화창한 여름날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요란하게 음악을 트는 것 * 일단정지 해야 하는 교차로에서 다른 차들이 정지 할 거라 생각하여 자신은 속력을 줄이지 않는 것 * “표 하나로 변화를 일으킬 수 없어”라며 중요한 투표에 불참한 일을 변명하는 것 * 인구 폭발 시대에 산아제한의 의무를 남들에게 떠넘긴 채 열 명의 자녀를 낳는 것 많은 사람이 결부되어 있을 때 사람들은 자기가 내린 결정이 겉보기에는 매우 특이하더라도 실은 매우 전형적이며 대규모로 여러 번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리하여 각 부부는 자녀를 몇명 낳을지에 대한 자신들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결정이 독자적이고 사적이라고 느끼더라도 이 결정이 인구 폭발을 낳는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유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봐야 소용없다는 ‘개인적’ 판단들은 거대한 무관심의 추세를 이루며 이렇게 배가된 무관심은 집단 차원의 광기로 이어진다. 한마디로 개인 차원의 무관심은 군중 차원의 광기로 번역된다. --- pp.1174-1175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루는 모순덩어리는 여전히 종종 아름답고 귀중한 무언가로 바뀝니다. 속되고 무도한 측면에서 생겨나는 위협으로부터 성스럽고 아름다운 측면을 보전하는 것은 우리가 끌어낼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공명하며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많은 아자아와 내면의 목소리가 가진 힘을 동원해야 합니다. --- p.12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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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델, 에셔, 바흐』를 잇는 또 하나의 걸작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연재된 전설적인 칼럼 모음집 언어유희와 퍼즐, 수학과 양자역학, 철학과 예술, 인공지능까지 ‘사고의 본질’을 추적하는 마법 같은 여정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수상작 『괴델, 에셔, 바흐』의 저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또 다른 대표작 『사고의 유희』(원제: Metamagical Themas)가 북이십일 아르테에서 출간되었다. 유서 깊은 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서 ‘유희 수학’의 대가 마틴 가드너의 뒤를 이어 연재한 칼럼을 엮은 책으로, 언어·수학·과학·예술·철학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서른세 편의 글을 통해 인간 지능과 마음의 패턴, 창조성의 본질을 탐구한다. 1332쪽에 이르는 이번 완역본은 전임자 가드너의 칼럼을 묶은 『수학의 유희』와 함께 출간되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을 대표하는 두 연재를 국내 최초로 나란히 소개한다. 아르테의 논픽션 학술 총서 ‘필로스 시리즈’의 50번째 권이라는 점에서도 뜻깊다. 더글러스 호프스태터(Douglas R. Hofstadter)는 1979년 『괴델, 에셔, 바흐: 영원한 황금 노끈』(원제:Gödel, Escher, Bach)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동시에 수상한, 현대 지성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수학과 음악, 미술, 언어, 인지과학을 가로지르며 인간의 의식과 지능의 본질을 탐구해 온 그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영역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구조와 패턴을 발견해 내는 독창적인 사유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번에 출간된 『사고의 유희』는 호프스태터가 수학자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의 뒤를 이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연재한 칼럼을 엮어, 새롭게 집필한 글과 후기를 더해 집대성한 책이다. 23년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서 ‘Mathematical Games(수학 게임)’를 연재하며 ‘유희 수학’의 황금기를 이끈 전임자 가드너의 바통을 이어받아, 호프스태터는 칼럼 ‘Metamagical Themas(메타마법적 테마들)’를 연재하며 사유의 무대를 인간의 의식과 창조성, 그리고 인공지능의 영역으로 넓혔다. 흥미롭게도 칼럼의 연재명이자 책의 원제인 ‘Metamagical Themas’는 전임자의 연재명 ‘Mathematical Games’의 철자를 절묘하게 재배열한 애너그램(어구전철)이자 ‘메타-마법적 사고’라는 뜻을 품은 유쾌한 말장난이다. 단순한 언어유희를 넘어 가드너가 닦아 놓은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더 거대한 질문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 담겨 있다. 그런 만큼 『사고의 유희』와 동시 출간되는 마틴 가드너의『수학의 유희』와 함께 읽으면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을 대표했던 전설적인 두 칼럼이 어떻게 하나의 지적 계보를 이루며 오늘날의 교양을 빚어냈는지 더욱 선명하게 살펴볼 수 있다. 이번 한국어판은 『직관펌프』 『말레이 제도』 『향모를 땋으며』등 과학·철학 분야의 주요 저작을 우리말로 옮겨 온 번역가 노승영이 번역을 맡았다. 역자는 해제에서 『사고의 유희』를 “『괴델, 에셔, 바흐』를 여는 열쇠 같은 책”이라 소개하며, “가장 추상적인 세계와 가장 구체적인 세계를 연결하는 책”이라 평한다. 정교한 번역과 풍부한 주석, 충실한 해제는 그 열쇠를 독자에게 건네며 호프스태터의 사유를 한층 가까이에서 따라갈 수 있도록 돕는다. 루빅스 큐브에서 인공지능, 그리고 인류의 미래까지 생성형 AI 시대를 수십 년 앞서 질문한 인간 지능의 불완전성과 위대함 『사고의 유희』는 언어유희와 수학, 예술과 인공지능, 게임이론과 양자역학 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서른세 편의 주제들을 담고 있다. 말장난으로 시작해 ‘핵전쟁을 막는 법’으로 끝나는 이 책의 차례는 얼핏 중구난방처럼 보이지만, 흩어진 주제들은 결국 하나의 구조로 연결된다. 책의 서막을 여는 도입부에서 저자는 ‘자기 지시’와 ‘재귀’라는 개념을 출발점 삼아(1장), 밈(meme)과 자기복제 구조를 탐구하며(3장), 헛소리와 유사과학에 대한 비판(5장), 언어와 사회를 둘러싼 문제(8장)로 사유를 확장해 나간다. 이어 저자는 생성형 AI 시대인 오늘날의 화두인 ‘창조성’의 본질을 파고든다. 창조성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아니라, 기존의 관념과 패턴을 새롭게 연결하고 변주하는 과정임을 보인다.(10장, 12장) 이러한 통찰은 기계와 인간 사고의 차이를 탐구하는 논의로 이어진다.(22장~24장) 기계는 인간의 창의성을 어디까지 닮을 수 있는가? 40여 년 전에 제기된 이 물음은 거대언어모델(LLM)이 일상이 된 오늘에도 조금도 낡지 않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사유는 삶과 사회를 향한다. 가령 ‘매직큐브학’을 다루는 장에서 저자는 루빅스 큐브를 맞추는 과정에 빗대어 “지금껏 성취한 가시적 질서를 부분적으로나마 임시로 무너뜨리지 않고서는 결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14장) 더 큰 통찰을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를 기꺼이 허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통찰은 감자의 딜레마와 협력의 진화를 다루는 논의(29장)를 거쳐 사회적 선택과 공동체의 생존을 다루는 후반부(30장~33장)로 이어지며, 자원문제·인구문제·군비경쟁 등 인류가 직면한 과제까지 사유의 폭을 넓혀 간다. 이 방대한 여정이 향하는 종착지는 인간 지능의 본질이자 인류의 미래다. 호프스태터는 지능을 완벽한 공리계가 아니라, 복잡한 현실 속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수정하는 ‘자기관찰 시스템’으로 이해한다.(26장) 불완전함을 성찰하고 모순을 내면에 품을 수 있기에 지성은 특별한 가능성을 지닌다는 존재론적 선언이다. 언어유희와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루빅스 큐브와 수감자의 딜레마, 인공지능과 핵전쟁처럼 서로 멀리 떨어져 보이는 주제들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며 마침내 하나의 거대한 순환 구조를 완성한다. “사유는 놀이가 될 수 있다. 그걸 증명한 책.” 『괴델, 에셔, 바흐』의 문을 여는 열쇠이자 가장 친절한 입문서 ‘공부’와 ‘놀이’의 경계를 허무는 메타적 사유 『괴델, 에셔, 바흐』가 매우 복잡한 하나의 주제에 대한 정교한 푸가라면, 『사고의 유희』는 여러 주제를 아우르는 환상곡이다. - 더글러스 호프스태터 호프스태터의 사유 세계가 궁금하지만 『괴델, 에셔, 바흐』의 압도적인 두께와 난해함에 선뜻 엄두를 내지 못했다면 『사고의 유희』가 더없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촘촘하고 거대한 사유의 탑을 쌓아 올렸던 전작과 달리, 이 책은 그 세계를 자유롭게 거닐도록 이끈다. 저자 스스로도 이 차이를 음악에 빗대어 설명한다. 『괴델, 에셔, 바흐』가 “하나의 복잡한 주제를 정교하게 변주하는 푸가”라면, 『사고의 유희』는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아우르는 환상곡”이라는 것. 전작이 웅장한 사고의 시였다면 이번 책은 다정한 사고의 산문에 가깝다. 자유로운 형식 안에서 ‘공부’와 ‘놀이’의 경계도 자연스럽게 허물어진다. “‘참’과 ‘거짓’의 의미가 뒤바뀌면 이 문장은 거짓일 것이다.” 같은 유쾌한 말장난과 수수께끼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어느새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게임이론, 루빅스 큐브, 음악, 프로그래밍 언어 리스프(LISP)로 이어진다. 언어유희를 따라 웃다 보면 난해한 수학을 이해하게 되고, 루빅스 큐브를 맞추다 보면 재귀 알고리즘의 원리를 자연스레 깨닫는 식이다. 퍼즐을 풀듯 개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생각이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흩어져 있던 질문들이 하나의 패턴을 이루기 시작한다. 인지과학과 철학, 컴퓨터과학과 예술을 가로지르는 지적 횡단은 결국 우주의 온갖 규칙성을 받아들이고 창조해 내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본질로 수렴된다. 바로 그 과정에서 독자는 호프스태터의 사고방식 자체를 자연스럽게 닮아가게 된다. 두 권의 고전, 하나의 지적 계보 필로스 시리즈 50번째 권으로 만나는 호프스태터 『사고의 유희』는 『괴델, 에셔, 바흐』와 『사고의 본질』의 계보를 잇는 호프스태터 사유의 궤적을 가장 생생하게 펼쳐 보이는 책이다. 언어와 패턴에서 출발해 인간의 마음을 향해 온 그의 탐구는 평생 “내면의 불”을 좇아온 한 거장의 지적 여정 그 자체다. 1332쪽에 달하는 방대한 원전을 완역하고 노승영 번역가의 섬세한 해제를 더한 이번 한국어판은 호프스태터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충실한 정전이다. 마틴 가드너의 『수학의 유희』와 동시 출간된다는 사실은 이번 만남을 한층 더 특별하게 만든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지면을 빛낸 두 거장의 저작을 나란히 읽을 때, 비로소 현대 교양의 굵직한 지적 계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드너가 유쾌한 수학적 놀이로 지적 호기심의 불씨를 지폈다면, 호프스태터는 그 호기심을 이어받아 인간 사고의 작동 원리 깊숙한 곳까지 밀고 나간다. 정답 대신 스스로 생각의 연결고리를 찾게 만드는 이 책은 40여 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의 독자에게도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필로스 시리즈 50번째 권이라는 상징에 걸맞게, 책장을 덮은 뒤 독자의 마음에 남는 것은 단순한 정보의 파편이 아니다. 세상을 보다 “명료하고 정확하고 우아하게” 읽어내려 가려 했던 거장의 단단한 사유의 태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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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호프스태터 박사가 돌아왔다. 이 책은 남다른 아이디어와 기발한 우화, 철학적 질문과 루이스 캐럴풍의 언어유희로 가득한 글들을 황금 노끈처럼 유려하게 엮어 낸다. - 마틴 가드너 (수학자, 『수학의 유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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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칼럼집은 수학과 양자역학에서 진화 이론을 거쳐 인공지능, 인간 사유의 본성, 합리적 선택에 이르기까지 현대 과학의 거의 모든 매혹적이고 논쟁적인 영역을 종횡무진하며 하나로 엮어 낸다. 분야를 넘나드는 통찰이 어떻게 서로를 비추는지를 명쾌하게 보여 준다. - 대니얼 데닛 (터프츠대학교 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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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스태터는 점점 우리 시대의 햄릿이 되어 가고 있다. 그의 모든 말은 정확하면서도 중의적이고, 위안이 되면서도 도발적이며, 시적이면서도 야심차다. 그 무시무시한 통찰과 고통스러운 지적 탐구는 햄릿이 그러했듯 유머와 애정, 그리고 광기에 가까운 음악적 매혹으로 가득하다. - Leonard Bernstein (작곡가·사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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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울 것이 무척 많고 유쾌한 재미까지 있다. 『괴델, 에셔, 바흐』보다도 낫다. - 레이먼드 스멀리언 (이 책의 제목은 무엇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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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하게 야심차고 엄청나게 재미있다. - 《뉴욕타임스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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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규정하는 단어는 단연 ‘즐거움’이다. - 《시카고트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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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항해하는 것에 대해 상상해보라. 그런 이상에 가장 근접한 책. -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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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호프스태터는 시인의 영감 어린 광기를 지닌 과학자다. - 《뉴리퍼블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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