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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메모가 있었다
메모의 발명 기록, 인쇄, 출판 르네상스-인간, 보편적 천재 레오나르도는 메모를 발명했는가? 조망의 발견 메모, 기억, 망각 - 메모에 관한 이론 1 정신, 몸, 메모 - 메모에 관한 이론 2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사용할 수 있다” 메모로 생각하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받아 적을 것을 요구하다 메모, 수기 원고, 타자 원고 축구의 정신으로부터 탄생한 쪽지 - 메모에 관한 이론 3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극장 가기 - 메모에 관한 이론 4 사적인, 널리 알려진, 광적인 마지막 쪽지 손으로 쓰인 책 명상과 두더지 털가죽 손, 필체, 자신 미헬 또 너냐: 가계부, 연습장, 공책 바로크 시대의 자기 글쓰기 우둔함, 산만함, 무성의, 궤변, 서투름, 재치 목록에서 책으로 - 메모에 관한 이론 5 책과 함께 실험하기 텅 빈 메모장 상자 속의 메모 메모지의 악몽 메모 상자 발췌 독해의 기술에서 관리의 기술로 색인 카드화 작업의 야생 형태 데이터 삭제 벽에 쓴 메모 그래피티, 벽, 손 보론: 힙합의 철학 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 메모에 관한 이론 6 빈 궁전 이름 쓰기 학파 또는 15분의 유명세 “천천히!” 고대의 낙서 벽에 쓰인 뉴스: 악타 디우르나 말하는 조각상 밟을 수 있는 메모 마루판 밑의 비밀 호헨트빌 창고, 감옥, 벽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틀리에 삶을 메모하다 커뮤니케이션은 흐른다 은행 강도 디지털 시대의 메모 커뮤니케이션은 흐름 속에 있다 주석 도판 목록 참고 문헌 색인 |
Hektor Haarko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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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는 어떤 점에서 생각과 닮았는가? 뒤죽박죽 엉켜 있는 메모 더미, 그러니까 짧은 문장이나 최소한의 경구 형태로 쓰인 메모가 우리에게 그토록 익숙한 것은 우리의 생각 자체가 즉흥적이고 야생적이며, 무질서하고 우연적이기 때문일까? 메모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을 거의 이상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우리 정신의 활동 과정은 거대한 보고서나 논문 또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소설 형태가 아니다. 인간 정신은 가장 미미한 메모와 쪽지의 형태로 작동한다. 우리의 뇌는 메모 상자이며, 우리의 생각은 메모가 꾸는 꿈이다.
--- p.14 손상될 위험이 높은 포스트잇에 여전히 정말 중요한 메모가 적히고 있다. 정보의 저장은 어쩌면 더 효과적인 삭제를 위한 형식이 아닐까? 우리는 앞으로 이 물음에 관해서도 탐색할 것이다. 우리는 메모지라는 하드웨어의 존재 자체를 쉽고 빠르게 잊어버린다. 쪽지 위에 적은 내용 또한 금방 잊어버린다. 우리가 메모를 작성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잊기 위해 그 내용을 메모지 위에 적는다. 미디어는 기억을 위해서가 아니라, 망각을 위해 거기에 있다. 미디어가 보편적일수록 망각 또한 보편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화적 기억이 가장 큰 규모로, 집중적으로 삭제되는 데 메모지는 공동 책임이 있다. 내가 이걸 어디에 적어 두었더라? --- p.23 레오나르도가 남긴 개별 메모장과 구절은 이따금 연속적이고 일관된 글을 구성하기도 했지만, 절대다수는 이질적인 텍스트로 이루어진 괴물이었고 체계적인 편집과 인쇄에 강력히 저항했다. 프란체스코 멜치와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레오나르도의 메모는 낯설고 통제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재의 시각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 우리는 다층적이며, 덮어쓰고, 덧붙여 쓰는 방식으로 구성된 텍스트나 하이퍼텍스트를 알고 있다. 우리가 이런 텍스트를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하더라도, 처리할 수는 있다. 다빈치의 메모는 일정 정도 동시대적이며 현대적이다. 그렇지만 레오나르도의 메모가 오늘날의 현대적이고 포스트모던적이며, 네오모더니즘적인 최신 기록 시스템의 선구적 사례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의 기록에는 복잡하게 얽힌 전승의 역사가 있으며 메모가 순조롭게 계승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우리에게 전달된 내용에는 결함이 있다. 그렇지만 그의 메모는 현재와 미래의 글쓰기 및 메모 형식을 위한 청사진이 될 수 있다. 현대의 세계 및 생각은 그 자체로 끊임없이 복잡해지고 있다. 따라서 글쓰기와 메모의 형식 또한 이런 복잡성을 질서 있게 반영해야만 한다. --- p.43 다빈치의 고유한 개별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메모와 메모장은 그저 하나의 수단이 아니라, 유일하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였다. 하지만 이 매체는 개인이 문제를 사회와 함께 공개적으로 다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자기 자신과 함께 생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메모장은 임의로 선택할 수 있는 필기구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메모할 수 있는 주제의 보편성 때문에 보편적 인간에게 적합한 보편적 매체였다. --- pp.78-79 앤디 클라크(Andy Clark)와 데이비드 찰머스(David Chalmers)는 생각의 한계가 정말 우리의 육체, 그러니까 “피부와 두개골”을 통해 제한되는지를 알고 싶어 했다. 내재주의(internalism)는 정확히 그렇게 생각했고, 정신과 인식 활동이 오로지 뇌에서만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클락과 차머스는 사고실험을 통해 정확히 반대되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오토라는 남자를 상상해 보자. 오토는 밤낮 가리지 않고 메모장을 가지고 다녔으며,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즉시 기록했다. 그리고 지나간 정보를 찾고 싶을 때면 메모장을 살펴봤다. 클락과 차머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생물학적 기억이 하는 역할을 오토의 경우에는 메모장이 한다. 그저 몸 밖에 있다는 것만 다르다. 메모장은 항상 사용 가능하며, 그 안의 내용은 모든 면에서 오토의 확신과 일치한다. 클락과 차머스는 오토와 메모장의 연결을 “연결된 시스템(coupled system)”이라고 칭했다. 오토의 메모장은 알츠하이머를 앓지 않는 인간의 경우 자연의 뇌가 하는 것과 완전히 상응하는 기능, 즉 확장된 마음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 p.127 비트겐슈타인은 메모장의 오른쪽 면에는 암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는 사회의 양면성을 명확히 드러낸다. 오른쪽 면에서는 그의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발언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반면 그는 왼쪽 면에는 항상 비밀 글씨로 글을 썼다. 여기에는 격식 없는 내용이 많으며 전우, 독서, 자기 영혼의 상태, 이미 언급했던 성생활에 대한 일지 등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 내용의 경우 비트겐슈타인은 추가 장치를 하나 더 두어 독해할 수 없게 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위를 뜻하는 통용어에서 첫 글자만 쓰고, 그 뒤에는 점으로 기록했다(“o…”).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로 자신의 성생활을 표현하는 데 한계에 도달했던 것이 분명하다. --- pp.157-158 비트겐슈타인이 평생 철학적 성격의 다른 책을 출판하지 않은 것은 레오나르도의 경우와는 달리 도달할 수 없는 완벽주의나 작업을 끝내는 데 취약한 성격과는 무관해 보인다. 오히려 비트겐슈타인의 경우는 무엇인가를 끝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새로운 종류의 상상을 했던 것 같다. 그의 생각은 21세기의 사유를 예견한다. --- p.180 우리는 자신만의 달팽이 집을 살아가며, 벽을 가득 칠한다. 이 집은 우리가 늘 끌고 다니는 사적 매체, 바로 메모장이다. 과거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을 규명했다. 우리는 사적 영역의 구조변동 또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우리의 미디어 사용은 계속해서 더욱 사적으로 변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비사회성과 디지털 사회의 정신병리에 속하는 자폐가 나타나고 있다. --- p.262 메모장은 종교적인, 아니 그보다 더 나은 책이다. 글쓰기 게임에는 영적인 측면이 있다. 글쓰기 게임의 영적 측면은 디지털 기기를 떠나며 생겨난 일종의 카타르시스 효과로 인해 발생한다. 메모 게임에 명상적 특색도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미셸 푸코도 이것을 강조했다. 그는 메모의 실천이 “자기 자신에 대한 기술”이나 “자기 자신에 대한 돌봄(le souci de soi)”에 속한다고 이야기했으며, 다른 곳에서는 수기로의 귀환을 “새로운 요가”라고 불렀다. 글쓰기 게임이 공공연하게 일어난다면, 그 내용 자체가 공개되지 않고 비트겐슈타인의 상자 속 딱정벌레처럼 사적인 것으로 남아 있더라도 쓰기 및 메모 게임의 이런 형식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다. --- pp.291-292 누군가에게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해도, 그에게는 여전히 생각과 메모가 남아 있다. 자기-글쓰기는 그 자신을 계속해서 삶에 붙어 있게 한다. --- p.404 책에서 에세이로, 블로그에서 마이크로 블로그로, 서사시에서 단편으로. 우리의 미디어 또는 미디어 사용은 짧아진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미디어 게임이 짧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글쓰기는 생각을 의미한다. 우리의 기록 행위와 글쓰기 게임이 짧아지면서 생각 또한 축소된다. 글쓰기가 문제의 해결이라면, 텍스트가 짧아지면 문제는 커진다. 또한 생각은 짧아진다고 해서 단순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텍스트와 생각이 짧아지는 경향은 복잡화 또는 과잉 복잡화 추세를 내포하고 있다. 조금 길지만 일관성이 있던 글이 여러 개 교차점과 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된 짧고 일관성 없는 수많은 글쓰기 게임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결 가능한 경우의 수는 개별 요소들의 수와 함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 pp.458-459 아르노 슈미트의 메모 색인화 방식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서지학적 작업 기법의 연장선에 있다. 메모 상자는 문헌의 세계를 사무실의 세계와 결합한다. 인쇄 시대가 시작된 이후로 메모 상자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는 그 자체로 고유한 역사다. --- p.481 하지만 야생은 자신의 길을 연다. 메모지에 적힌 생각은 예상치 못한 경로를 택해 완전히 새로운 가상의 세계로 이어진다. 해체되어 색인 카드로 들어간 책은 순수문학에도 강한 영향을 미쳤다. 모저와 장 파울 이전부터 메모 상자는 세계 문학 작품의 산실이었다. 특히 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복도를 따라 작가들이 남긴 글이 가득한 마르바흐독일문헌아카이브는 문학이 메모 상자의 정신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다. 그렇지만 텍스트와 텍스트 구조 속의 은유적 결합 체계는 잘 파악된 반면, 시와 색인 카드 체계 사이의 연관성은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에서 여전히 더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 --- p.511 이런 개인 미디어 사용자를 위한 메모 및 메모 정리 소프트웨어가 이미 어지러울 만큼 많다. 간단한 메모 작성 프로그램부터 정교한 그래픽 마인드 매핑 소프트웨어와 복잡한 데이터베이스 솔루션까지 다양하다. 공공도서관에는 온라인 공공 접속 카탈로그(Online Public Access Catalogue, OPAC)가 도입되어 아날로그 방식의 색인 카드 상자를 잊힌 매체로 만들었다. 오늘날의 메모 상자는 디지털이며, 회로가 나무 상자를 대신하게 되었다. 이때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의 불확실한 내구성은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자료 보관 문제를 가져왔다. 우리는 돌이나 나무, 양피지나 종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 잘 알고 있지만, CD-ROM이나 USB 스틱 또는 하드 드라이브가 정보를 얼마나 오래 보관할 수 있는지는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한다. 못해도 일부 데이터가 손실될 가능성이 높아 지속적으로 재기록해야만 한다. 어쩌면 오늘의 저장 매체도 내일은 잊힌 매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도전은 이미 문 앞에, 또는 USB 슬롯 바로 앞에 와 있다. 조망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미디어 제품, 가정용 하드디스크 드라이브의 용량, 클라우드 컴퓨팅의 거의 무한한 저장 가능성으로 인해 이전에 메모 상자가 답하려 했던 오래된 질문에 완전히 새로운 대답이 요구되고 있다. --- pp.530-531 랩이 말로 하는 노래 속에 자아를 표현했다면, 그라피티는 건물 외벽에 자아를 표현했다. 메모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한다면, 자신의 이름을 태깅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전체 예술 가운데 그라피티에 남아 있는 것은 자기의 서명뿐이다. 그라피티에 있어 자기 자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 p.554 모저는 징엔에 있는 요새의 감옥에서 우리의 생각 또한 우리의 글쓰기 도구에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생각과 글쓰기는 변증법적으로 서로를 참조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여기서 오히려 “정신 기술의 선험성”을 이야기하거나 쓸 수 있다. 모저는 3차원 메모장을, 걸어 다닐 수 있는 생각의 방을, 글을 쓰는 “고요한 장소”를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호헨트빌의 정치범 감옥은 생각 그 자체를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하나의 사유 공간, 사고의 골방, 뇌의 거실, 시냅스의 궁전, 집중의 창고로 만들었다. 의사 전달자는 자신의 메시지를 매체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추정되거나 고안된 메시지의 수신자처럼 매체에 흡수되었다. 고립이라는 조건하에서 글을 쓰는 고충은 모저를 막지 못했다. 그는 영가에서 학술 논문에 이르기까지 항상 무엇인가를 어떻게든 써 왔다. 그의 메모가 짧아졌다거나, 문장의 연결성이 떨어졌다거나, 글이 중간에 끊기는 일이 늘어났다거나, 문체가 더 함축적으로 변했다는 징후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생각과 문체에 있어 현혹되지 않음으로써 영주의 자의적 통치에 저항했다. --- pp.642-643 게슈타포 감옥의 감방 벽에 있는 글씨는 대부분 긁어내거나, 선을 파내거나, 새긴 것이다. 뾰족하고 날카로운 모든 물건이 필기구로 동원되었다. 감방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쇠못, 나사, 판금 조각, 나무 막대기, 유리 및 거울 파편, 동전, 아마도 손톱으로 추정되는 것 등이 지저분한 감방에서 발견되었다. 하얀 표면에 “새겨 넣은” 부분과 날카롭게 긁힌 부분이 교대로 나타나는 글씨는 특정 각도에서 조명이 비출 때만 볼 수 있다. 글씨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 수평으로 쓰여 있다. 하지만 일부는 대각선 위 또는 아래로 적혀 있고, 어떤 경우는 완전히 기울어져 있거나 심지어 수직인 경우도 있다. 이런 글씨는 침상이나 바닥에 누워서 쓴 것으로 보인다. 어떤 작가는 아주 커다랗게 일 미터 정도를 성큼성큼 써 내려갔으며, 또 다른 작가들은 아주 가까이에서만 글자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정밀한 조각을 새기듯 썼다. --- p.646 인쇄된 책의 경우 쪽수, 목차, 제목이나 서문, 텍스트의 극적 구성을 위한 일반적 규칙 등을 통해 엔트로피가 제한적이다. 이와 비교해 메모는 엔트로피가 매우 높은 매체다. 메모를 작성하는 사람이 텍스트를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정렬해서 쓸 것인지, 얼마나 많은 의미를 기록에 담을 것이지, 단일한 알파벳 기호만을 사용하는지 아니면 줄을 치거나 색을 달리하거나 또는 콜라주 재료를 섞어서 다양한 기호가 담긴 텍스트를 만들 것인지 등은 외부에서 보았을 때 매우 무작위적이다. 우리는 완성된 텍스트를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난 문화 역사적 작업을 통해 평형 상태에 놓인 시스템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메모는 이와 다르게 끊임없이 비평형 상태에 놓여 있다. 완성된 텍스트가 “정신의 질서”를 표현하기 위한 매체라면, 메모는 “야생적 사고”를 위한 매체다. --- p.663 쿠렌니에미는 라이프 레코딩(life recording)이라는 자기만의 방식을 통해 자신의 삶을 기록하려 노력했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이 기록물을 다시 재생할 수 있는 기술적 설비가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그 자신도 이 삶의 기록물이 갖는 취약성을 분명히 인지했으며 체념한 듯이 인정했다. “이것은 데이터 삭제라는 간단한 명령을 통해 파괴될 수 있다.” 저장은 그 자체로 기억을 의미하지 않으며, 미디어는 망각을 위해 거기에 있다. --- p.675 소통 상대 없이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은 사회로부터 멀어져 비사회적인 것이 된다. 사회적 틀 바깥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사회의 규정을 지킬 필요가 없으며, 사회적인 것은 이미 규정의 개념 안에 분석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메모 게임은 규칙 없는 게임이며, 그렇기 때문에 메모를 탈관습적 글쓰기로 여길 수 있다. 메모는 예외 상태에서의 글쓰기다. 그리고 메모의 작성자는 사회적 규범과 관습을 완전히 무시해야만 하는 은행 강도와도 조금은 닮아 있다. 언어 게임이라는 아이디어는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 규칙 준수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누군가 글쓰기 게임 속에서 자기 자신만을 위해 무언가를 쓴다면, 그는 어떤 규칙도 따를 필요가 없다. 따라서 메모지 위에 쓰는 메모는 사적 언어와 사적 매체에 대한 전형적인 예,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필요가 전혀 없는 언어의 전형적인 예다. --- p.683 미디어는 기억이 아니라 망각을 위해 거기에 있고, 인간이 발명한 저장 기술 중 디지털을 이용한 저장보다 망각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없다. 저장 용량이 커질수록 잊히는 것도 더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처음부터 디지털 저장 장치라는 열반의 세계에 빠지지 않고 우리의 생각으로 다시 한번 귀환할 기회를 보존하기 위해, 아마 앞으로도 메모 패드, 쪽지, 메모장 같은 작은 저장 도구를 고수할 것이다. 한번 쓴 내용을 언젠가 다시 발견해 생각 속에서 유용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여분의 기회, 이것이 바로 디지털 미디어에는 없지만 아날로그 메모장에는 존재하는 변증법이다. --- p.689 코뮤니칸트의 강은 결국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바다로 흘러든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드넓은 대양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나머지는 다른 메모에 적혀 있다. --- p.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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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메모가 있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끄적이는가? 우리가 몰랐던 메모에 대한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 현대의 디지털 메모까지 메모는 어떻게 문화를 이루었는가 인간의 사유 구조를 가장 많이 닮은 매체 ‘메모’를 통하여 인류의 사상/문화사를 들여다보는 여정 메모란 무엇인가? ‘메모’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쇼핑 목록, 차트, 낙서, 스케치, 초안, 색인 카드, 포스트잇 등.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메모를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빠르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흩어져 버리기 전에 두서없이 휘갈겨 쓴 것,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비정식적인 초안, 아무튼 본격적이지 않은 것. 메모는 정제되지 않은 생각을 위한 매체, 미디어다. 실제로 메모는 우리 머릿속 생각이 외화(外化)하는 첫 단계다. 그래서 누군가의 메모를 들여다보면, 그 사람의 가장 기초적인 사고방식까지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원초적인 매체 메모를 통하여 인류의 문화사라는 방대한 주제에 접근한다. “메모는 보편적인 미디어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인 미디어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미디어 및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관점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메모는 어떻게 지금까지의 인류의 문화를 이루었는가? 메모가 이끌어 갈 문화의 미래는 어떤 모습을 띠게 될까? 저널리스트이자 커뮤니케이션학자, 미디어학자인 저자 헥토어 하르쾨터는 ‘첫 메모의 문화사’를 집필하는 동시에, 메모라는 작고 평범한 매체에 대한 독창적인 철학을 제시한다. “만약 도처에 널려 있는 메모가 가진 긴 역사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메모가 기록의 가장 일차적이고 원형적인 형태이며, 더불어 메모지는 일차적 매체, 또는 원형적 매체라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문학의 초고이자 자연과학의 실험 노트이며, 현대의 아이디어 노트로 기능하는 메모는 단순한 매개체를 넘어 사고 그 자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융합된 복합적 사유의 형태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메모에 대한 두 가지 통념에 반박한다. 첫째는 미디어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존재한다는 통념이다. “메모는 비소통적인 매체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적이고 자의적이며 고유한 매체다. “이 책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잘 작성된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긁어 새겼거나, 휘갈겼거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끄적여 남긴 메모”를 다룬다. 둘째, 메모는 망각을 위한 미디어다. “우리는 잊기 위해 메모한다.” 이 책은 “매체는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 아니며, 미디어는 단순히 기억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록’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이 여정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로베르트 발저, 게오르크 크리스토프 리히텐베르크, 니클라스 루만, 아르노 슈미트 등 인류의 철학 사상과 문화예술 등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으며 고유한 메모 습관을 보여 준 거장들이 함께한다. 그들이 남긴 메모는 창조적 사고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해 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자료다. 또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메모와 글쓰기의 관행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도 짚어 나간다. 오늘날 디지털 노트 앱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체텔카스텐(색인 카드 시스템, 메모 상자)’의 발명도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우리의 사고와 소통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면밀히 분석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껏 무심히 지나쳤던 메모라는 행위가 인류의 문화사와 우리의 사유에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새로이 인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잊기 위해 메모한다.” 인류의 지식과 학문, 문화의 역사를 이룬 위대한 망각의 기술 ‘메모’를 조망하다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자. 우리는 왜 끄적이는가? 인간은 무엇을 위하여 메모하는가? 나중에 제대로 정리하여 작성할 요량으로 적어 두는 글감부터 며칠 뒤 슈퍼마켓에 갈 때 사 올 물품 목록까지 메모의 종류는 다양하다. 우리는 흔히 나중에 사용할 것을 염두에 두고 메모한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세간에는 ‘메모 잘하는 법, 메모를 잘 활용하는 법’에 대한 책들이 넘쳐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또한 그랬다. 그는 가히 ‘메모의 발명가’라 할 만큼 방대한 메모를 남겼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그는 매번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메모해야 했다. 자신이 앞서 무엇을 기록했는지를 전부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검토의 문제’다. 우리는 우리가 남긴 모든 메모를 전부 조망할 수 없기에 결국 망각하게 된다. 다빈치 사후 그의 방대한 메모는 세계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으며 상당량 유실되었다. 철학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철학자 중 한 사람이라 꼽을 수 있는 비트겐슈타인 역시 메모를 많이 했다. 그는 그 메모들을 적절히 편집하여 책으로 엮기 위해 시도하기도 했으나, 결국 실패하였다. 출판 작업을 위하여 앞서 남긴 메모로 돌아갈 때마다 그는 모든 것을 매번 새롭게 다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우리에게 그저 절망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쉽게 잊힌다는 메모의 속성이 우리에게 매번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메모와 함께라면 우리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얼마든지 새롭게 생각할 수 있다. 그저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 자유분방하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아무 종이 위에나 끄적거리기만 하면 된다. 마치 처음 해보는 생각들인 것처럼. 이 책은 망각을 장려하는 메모의 속성을 통해 인류의 문화사를 조망하는 최초의 시도다. 이전까지는 아무도 메모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탐구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바로 쉽게 잊힌다는 메모의 속성을 방증한다. 종이 위에 쓰인 메모부터 색인 카드 시스템, 벽이나 바닥에 긁어 새긴 3차원 메모까지 무질서하고 즉흥적이며 원초적이고 지극히 사적인, 인간의 사유를 가장 닮은 날것의 매체 메모 메모를 말함에 있어 그 자유분방한 형태와 형식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이 책은 과거의 사상가와 예술가 들이 남긴 것부터 현대에 쓰인 것까지 다양한 메모의 이미지를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다. 그 메모들이 정갈하게 기록된 경우는 거의 없다. 열과 행을 맞춰 쓰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의 메모 상하좌우에 전혀 상관없는 내용들이 나란히 기재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처럼 비선형적이고 비체계적이며, 자주 단절되는 메모는 아무렇게나 마구 내달리는 우리의 사유 구조를 많이 닮았다. 메모를 인간의 사유를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남긴 메모를 다양한 방법으로 관리할 수 있다. 리히텐베르크처럼 공책 여러 권에 쓰고 일련번호를 붙여 관리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메모를 가지고 작업하는 아주 독특한 방식을 보여 주었다. 그는 “메모를 정기적으로 정리해, 메모를 잘라 내거나 다른 종이에 베껴” 적었다. 니클라스 루만의 색인 카드 시스템처럼 각 메모들의 연결 고리를 만들 수도 있다. 또한 반드시 종이 위에만 메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른바 ‘3차원 메모’라 칭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공간 점유와 반항의 상징으로 공공기물의 벽 등에 스프레이로 그린 그라피티, 필기구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벽이나 마룻바닥을 긁어 새긴 메모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프랜시스 베이컨은 걸어 다닐 수 있는 메모장, 밟을 수 있는 메모를 창조했다. 온갖 쓰레기와 작업 재료, 중간 작업물들이 바닥에 층층이 퇴적된 그의 작업실은 영감이 샘솟는 곳, 그의 창조성이 극도로 발휘될 수 있는 3차원 메모장이었다. 이 책은 메모라는 미디어를 통해 인간의 생각이 우리 삶에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로써 우리의 삶이 얼마나 풍성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은 흐른다.” 디지털 시대 메모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이 책은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메모와 글쓰기의 관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피고, 그러한 변화가 인간의 사고와 커뮤니케이션에 미칠 영향을 탐구한다. 오늘날 우리가 메모하는 방식은 다변화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종이 위에 메모하지만, 휴대폰 등 디지털 메모장에 빠르게 기록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빚어 낼 미래는 지금과 어떻게 달라질까? 중요한 것은 디지털 시대에도 메모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전히 메모는 망각을 위한 미디어다. 디지털 시대에 급증하는 데이터량은 망각을 더욱 촉진, 심화할 것이다. 또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유비쿼터스 디지털화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엄청난 증가는 전 세계적인 의사전달 가능성의 증가가 아니라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 블로그나 유튜브 채널,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텍스트나 사진에서 생산되는 것은 자기 참조성 정도가 높은 자기 글쓰기다”. 커뮤니케이션은 수많은 망각과 독백 속에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종전처럼 잊어버리고 새로 쓰고 다시 쓰고 고쳐 쓰면서 앞으로의 문화사를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21세기에 메모는 우리에게 이제까지보다 더 큰 창조의 가능성을 약속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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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마저 AI에게 맡기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AI가 만들어 내는 결과는 끝내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인간의 생각 대부분은 비논리적으로 날아다닌다. 창조는 제멋대로 날아다니는 생각의 조각들을 연결해 새로운 메타언어를 만들어 낼 때 가능하다. 메모는 이렇게 ‘날아다니는 생각’을 붙잡아 편집하는 기술이다. 이 책은 그 창조적 기술이 인류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풍부한 사례와 함께 흥미롭게 보여 준다.
AI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보이는 시대일수록, 종이 한 장에 맥락 없이 끄적이는 메모는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창조적인 행위다. 이 책은 ‘AI 이후에도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시대적 질문에 가장 근원적인 답을 제시한다.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창조적 시선』 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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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의 문화사』는 대담하면서도 도발적인 두 가지 가설을 제시한다. 첫째, 미디어는 소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둘째, 기억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 《텔레폴리스(Telepo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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