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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19
1장 레오, 에르나, 그리고 보비 보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41 2장 조지, 그리고 빈을 향한 참을 수 없는 그리움 68 3장 게르트루드와 아이크만의 피아노들 89 4장 탈출의 수단: 알리스와 베스트반호프 115 5장 보비와 조지의 망명 생활 136 6장 지크프리트, 파울라, 그리고 영국 입성 161 7장 구조와 감금: 영국에서의 억류 188 8장 상하이 208 9장 프레드와 아우슈비츠까지의 발자국 237 10장 저항과 고모할머니 말치 285 11장 조지와 빈으로의 귀환 323 12장 리스베트와 살고자 하는 의지 356 에필로그 400 감사의 말 407 사진 출처 413 저자 주석 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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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스는 방금 끝난 한 삶에 대해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공포에 사로잡힌 열한 살 난민으로 영국에 발을 디딘 아버지와의 첫 만남 이후 나이가 들어가는 성인 남자의 내면에 옹크리고 앉은 겁에 질린 소년을 그녀는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 p.28 빈의 유대인 어린이들을 위한 1938년 〈맨체스터 가디언〉 광고는 그날의 라디오 프로그램 안내와 십자퍼즐, 영국공군의 조종사 모집 공고, 그리고 주택, 우표, 악기, 금융서비스 따위 온갖 판촉광고들과 나란히 실렸다. 아이들 광고들은 다른 것들과 비슷해 보였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의 것이었다. 짧은 문구 안에서 아들, 딸 들을 살리려고 미친 듯 몸부림치는 부모들의 호소였다. --- p.68 빈의 유대인 가정들에게 당시 핵심 단어는 ‘움슐룽’ 즉 재훈련이었다. 성인과 십대 후반 청소년 대다수가 떠나야 하는 날을 예감하면서 타국에서 써먹을 만한 기술을 앞을 다투어 습득했다. 할아버지 레오는 가위와 이발기를 사서 기초 이발 기술을 배웠고 수십 년 후에 내 머리를 깎는 데 활용했다. 할머니 오미는 빈의 많은 여성처럼 요리를 배워 어느 영국 가정의 ‘아래층’ 생활에 대비했다. --- p.104 발리는 영국에서 좋은 첫인상을 심어줄 수 있게 잿빛 두더지 모피 칼라가 달린 두꺼운 모직코트를 딸에게 사 입히고 돼지가죽 여행 가방과 커다란 짐가방에 배낭까지 챙겨 보냈다. 가방들 속엔 여행 중 배곯지 말라고 먹을 걸 잔뜩 채운 바람에 너무 무거워 게르티의 허리가 휘청일 정도였다. --- p.130 다시 기차에 오른 조지는 어린 자신으로서는 상상조차 버거운 미래를 향해 흘러가는 대로 몸을 내맡겼다. 돌아보면 오스텐드에서 건넌 바다도, 그 이후의 기차여행도 기억나지 않았고 다만 자신의 일부분이 철로에 남겨지는 것 같던 느낌만이 생생했다. 물리적인 물건들 가운데 잃어서 아까운 것은 우표모음뿐이었다. 진정한 상실감은 조국, 소속감, 그리고 사춘기의 천진함을 잃은 데서 왔다. --- p.135 “이런 회상의 순간, 나는 내가 열세 살에서 더 돼봐야 열여섯 살 된 소년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깜빡 잊는다. 나는 마치 성인의 삶을 기억하는 듯한데 그건 아마도 내게 부과된 임무들이 성인의 것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이렇게 썼다. “이민과 그걸 둘러싼 사건들이 우리 세대로부터 사춘기를 앗아갔다고 나는 늘 느껴왔다. --- p.159 “눈물을 흘리기엔 너무 자란 것 같았지만 이게 내 청춘의 마지막을 뜻한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프레드는 이렇게 썼다. 빈을 떠나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역 플랫폼에서의 작별은 삶의 전환점이었다. 어린 시절의 결정적 종지부일 뿐만 아니라 안전과 확실성의 끝이기도 했다.--- p.248〈맨체스터 가디언〉 광고의 다른 아이들 중에 자살한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회고담을 들여다보고 후손들과 대화해본 결과, 공통된 맥락이 나타났다. 그들 모두 빈으로부터의 짐을, 상실의 무게와 생존자의 죄책감을 지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 p.359 이 아이들은 십대 초반에 영국에 도착해서 거의 모르는 언어로 소통하며 낯선 나라의 관료체제를 거쳐 그들의 부모를 살려내야 한다는 책임을 떠안고 있었다. 성과 없이 지나가는 하루는 부모가 두들겨 맞거나 다하우로 실려가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는 또 하나의 하루였다. 그들은 제국에서 일어나는 사태의 가속도에 맞서 달렸으며 불과 몇 달 안으로 성공해야만 했다. 1939년 9월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고 결과적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하게 되면서 서쪽 탈출로는 봉쇄됐고 아이들이 붙들고 있던 부모와의 끈은 재회에의 희망과 함께 끊겼다. --- p.360 기록저장소와 개인기록들을 뒤져봤지만 아버지가 우리를 떠나기로 한 결정에 대한 설명 또는 변명이 되어줄 어떤 것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안고 살았던 고통과 두려움에 대한, 아버지의 미묘한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 전까지 그 긴 세월 동안 알아차리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이해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묻기로, 자신의 개인사에서 어린 시절을 지워버리기로 마음먹은 후부터 부초처럼 외로웠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가 있다. --- p.406 홀로코스트와 전쟁에 대한 우리의 집단적인 기억은 아무리 암울해 보일지라도 여전히 낙관적이다. 우리가 듣는 이야기들은 생존자들이 들려준다. 따라서 각각의 안에 진주가 담겨 있듯 일종의 해피엔딩인 것이다. 죽은 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기에 역사의 이야기는 희망을 향해 기울어진다. 그조차도 아니면 아마 견딜 수 없을 것이다. --- p.4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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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본 홀로코스트의 역사
조상 대대로 오스트리아에 살며 그곳을 자신의 조국으로 생각해온 빈의 유대인들에게 나치의 오스트리아 합병은 모든 걸 파괴하는 근원적 파국이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이웃으로부터 고발당하고 생존 자체가 위태롭게 되자, 부모들은 어린 자식이라도 해외로 탈출시킬 방안을 다방면으로 모색했다. 본인들의 안위도 위태로웠으나 해외에 연고가 있지 않으면 이주 허가를 받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삶의 터전을 정리하고 옮겨가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기에,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아이라도 우선 살려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이 먼저 탈출시키고, 뒤따라 자신들도 탈출하여 가족이 재결합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자 당연한 희망이었다. 1938년, 빈의 유대인공동체 조직인 IKG의 기획하에, 빈과 오랫동안 섬유무역으로 유대관계가 있던 영국 맨체스터를 우선 대상지로, 빈의 유대인 부모들은 그곳의 일간지 〈맨체스터 가디언〉에 광고를 게재하기 시작했다. 대개 11~14세인 자신들의 아이를 교육시켜줄 ‘친절한 분’을 찾는다는 광고였다. 명분은 교육이었으나 받아주기만을 간구하는 절실한 기도였다. 그사이 아이들은 서둘러 영어를 배우고, 부모들은 타국에서 구직할 때 도움 될 기술들을 익혔다. 한 달 두 달을 애태우며 기다린 끝에 영국 가정과 연결된 아이는 홀로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빈을 떠나 기차를 타고 영국 땅으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만난 가정에서 짧게는 몇 달부터, 길게는 성인이 될 때까지 성장했다. 부모도 가까스로 탈출하여 가족이 다시 만난 경우는 매우 행운이었지만, 애타게 기다리던 부모가 수용소로 끌려가 죽었다는 소식을 몇 년 후에야 듣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홀로코스트에서 아이 본인들은 그나마 살아남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그 아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 광고는 아이들에게 생명의 연결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가족으로부터 떼어내 낯선 세계로 몰고 와 혼자 길을 찾아가라고 떼미는 격류였으니까. 이 책은 광기의 시대인 1938년 여름 〈맨체스터 가디언〉에 “훌륭한 빈 가문 출신의 총명한 11세 남자아이”로 광고된 로베르트 보거를 비롯한 일곱 명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개인의 잊힌 역사에 관한 생생한 기록이다. 빈의 유대인 아이들이 홀로코스트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해준 광고 1938년 나치가 빈을 병합한 후, 저자의 아버지 보비 보거가 길거리에서 나치 돌격대에 뒤쫓긴 사건이 발생하자 할아버지인 레오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빈에서 내보낼 각오를 했다. “훌륭한 빈 가문 출신의 제 아들, 총명한 11세 남자아이를 교육시켜줄” 친절한 분을 찾는다는 할아버지의 호소는 그런 유의 광고가 줄을 잇기 시작한 초기에 〈맨체스터 가디언〉에 게재됐다. 발 빠른 실행 덕분에, 그 광고는 나치 피해자들을 도울 길을 찾고 있던 영국 케어나폰의 빙글리 부부의 눈에 띄었다. 이 부부는 여름휴가 동안 갈 곳 없어진 유대인 선생을 집에 들여 머물게 했고, 뭐든 더 할 수 있기를 간구하던 참이었다. 영국과 오스트리아의 두 가정 사이에 서신 교환이 시작됐고, 양측이 서로를 안심시킬 사진들을 보냈으며, 동시에 빙글리 부부는 곧바로 보비의 비자취득 절차를 진행했고, 레오는 아들의 기차표와 여객선표 비용을 장만했다. 그렇게 영국으로 건너간 보비는 가난하지만 성실한 빙글리 부부의 집에서 성장하며 장학금 수혜자로 명문대학에 입학까지 했으나, 그때부터 감춰졌던 트라우마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결국, 결혼하여 자식을 보고 대학교수도 된 그의 삶은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 자살이라는 형태로 끝을 맺었다. 빈을 탈출한 지 사십오 년이 지났을 때였다.나치로부터의 탈출과 성장기의 고난에 대해 거의 듣지 못하고 자랐던 자식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평범한 영국 시민으로 살고자 했던 아버지의 삶이 서서히 잊히던 어느 날, 저자는 우연한 기회에 광고 한 토막을 보게 되고, “훌륭한 빈 가문 출신의 제 아들, 총명한 11세 남자아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게 된다. 그 광고를 계기로, 그는 가족의 기억을 파헤치고 전 세계 여러 지역의 회고록, 웹사이트, 기록 보관소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낯선 이들의 친절, 극복하지 못한 트라우마 이 책에는 보비 버거 외에 일곱 명의 아이들이 더 등장한다. 〈맨체스터 가디언〉의 후신인 〈가디언〉의 기자가 된 저자는 수많은 이메일과 통화와 자료 조사를 통해 이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탐색했다. 대부분 고인이 되었지만, 생존해있는 목격자와도 연결되어 귀한 얘기를 듣는 행운도 있었다. 신문의 3행짜리 광고 이면에 감추어진 이야기들은 영국에서 이스라엘, 프랑스, 미국, 상하이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고, 무수한 인연과 우연으로 얽혀졌다. 14세 소년으로 광고되었던 조지 맨들러는 낯선 곳에서 새 언어를 배우고 새 학교에 적응하는 와중에 부모와 여동생을 빈에서 탈출시켜야 하는 책임도 지고 있었다. 그는 회고록에 “이런 회상의 순간, 나는 내가 열세 살에서 더 돼봐야 열여섯 살 된 소년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깜빡 잊는다. 나는 마치 성인의 삶을 기억하는 듯한데, 그건 아마도 내게 부과된 임무들이 성인의 것이었기 때문이리라”고 썼다. 실망스러운 가정을 만난 열한 살 게르트루드는 부모가 그리울 때면 죽더라도 차라리 빈에 부모와 함께 있는 게 더 나았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회상했다. 살아남은 걸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 홀로코스트에서 죽은 자들을 생각하며 자신의 드라마틱한 삶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 보란 듯이 빈을 방문하여 감정적으로 복수하고 싶은 사람, 빈 근처에는 발도 딛고 싶지 않은 사람…등, 제각각 복잡한 내면을 지닌 채 평생을 살았지만, 그들 모두 한 가지만은 같은 마음이었다. 나치 치하 죽음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준 낯선 이의 도움을 죽을 때까지 감사하게 생각했다는 것. 그들의 이야기에서 저자가 확인한 사실도 있다. 폭력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고 전쟁의 진정한 이야기는 수년 수십 년 동안 이어진다는, 가족을 잃고 살아남은 상처받은 이들은 어떻게든 견디고 살아가지만 결국 후세대에 그 고통을 넘겨줄 뿐이라는 것. 이 책에 수록된 아이들의 사례는 탈출 과정의 경이와 그에 뒤따른 놀라운 여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운명과 그들이 빈에서부터 밟은 서로 다른 길들은 갖가지 방향으로 뻗어갔다. 사소한 연결고리도 놓치지 않은 저자의 취재 과정은 마치 사건을 추적해내는 드라마처럼 짜임새 있고, 홀로코스트 역사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 오늘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고 해도, 11~14세가량의 아이들이 홀로 짊어졌어야 할 짐이 얼마나 무거웠을지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아이들의 놀라운 용기가 희망과 함께 드러나는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