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을 대신하여
폴리아모리 유니베르스타 이명현 떨리는 손 이은희 고리 김창규 동방홍 원정기 이종필 귀환 정경숙 곽재식의 감상평 |
하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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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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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SF의 탄생-새롭고 재미있고 독특하고 후련한
천문학자 이명현의 「폴리아모리 유니베르스타」는 전파천문학자 부부의 딸인 ‘나’가 어린 시절 별과 우주에 대한 동경으로 시작해 외계 지적 생명체가 있는 행성에 우주 돛대를 쏘아 올리는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과학자로 성장하는 삶을 다룬다. 작품 제목에도 나오는 ‘폴리아모리’는 현실에서는 일부일처제에 반하는 다자연애로 색안경을 끼고 보지만, 이명현 작가의 작품에서는 새로운 공동체 개념인 ‘비독점적 사랑’을 나누는 관계로 등장한다. 또한 ‘나’가 참여하는 프로젝트의 이름이 바로 ‘폴리아모리 유니베르스타’인데 이는 우주적 비독점적 사랑이라는 뜻으로 우주 여행은 평화로워야 하며 다른 외계 행성에서도 이런 태도를 견지하자는 실천력을 갖고 있다. 작가는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사후에 개인의 가장 내밀하고 핵심적인 정신 정보를 어떻게 아카이빙하고 그것을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융합하는지에 관해 SF적인 상상력과 뛰어난 감수성으로 완성시킨다. 읽다 보면 ‘별 먼지’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아름다움’, 그리고 ‘우주적 비독점 사랑’을 주인공 소녀처럼 삶의 등대로 삼게 될 것이다. 표제작 이은희의 「떨리는 손」은 우리 사회에서 끊임없는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성평등 문제를 호모 사피엔스 종의 진화와 연결해 비틀어 보여준다. 현재 행성법에서는 임성평등법이 유지되고 있는데, 바로 ‘임신 출산 및 수유와 양육에 있어 부모 양쪽의 성별에 상관없이 부담을 공평하게 나누는 법안’이다. 헤이즐과 실버 역시 이 법에 맞게 피치라는 이름의 아기를 양육하고 있다. 인공 유축기에 젖을 짜 모으던 헤이즐은 깜빡 잠이 들고 그사이 아기 울음소리에 잠이 깬 실버가 배고파 우는 피치를 안고 헤이즐에게 젖을 먹이라고 한다. 깜짝 놀라 잠이 깬 헤이즐은 일어나다 젖을 다 쏟아버리고 젖냄새를 맡은 아기가 젖꼭지를 깨물자 화들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아기 엉덩이를 꼬집으며 부부의 싸움이 시작된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지만 여기에는 깜찍한 반전이 숨어 있다. 그리고 더 놀라운 반전은 이들 가족의 정체가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에 드러난다. 결국 인류 멸종의 원인으로까지 입증되는 이 이야기는 과학 기술의 적용과 SF적 장치로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 편견, 성 불평등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재치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그야말로 소설 읽는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다. SF 작가로 다수의 상을 받고, SF 심사와 강의까지 진행하며 다양한 창작 활동을 펼치는 김창규 작가는 과학자들과의 협업에 기꺼이 참여하며 스스로 변화를 꾀했다. 과학자들이 쓴SF와 균형을 맞추려고 지금껏 해왔던 작업과는 달리 판타지에 도전했다. 이 책의 감상평을 쓴 곽재식 작가에 따르면「고리」에는 ‘신비한 상점’ 같은 이상한 ‘수선집’이 등장하고 한때 전 국민을 사로잡은 미국 TV 시리즈 [환상 특급]의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겉보기엔 상가 건물 지하의 낡은 수선집이지만 거기엔 찾고 싶은 사람이 입던 옷과 찾으려는 사람의 옷에서 실을 빼내 고리를 만들고 거기에 불을 붙여 불길이 향하는 방향으로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있다. 또 어떤 사고나 위험에서도 항상 혼자만 다치지 않고 살아남는 사람도 있다. 그는 연인이 아프자 자신 때문에 죽을까 봐 더는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삶을 마감하려 한다. 그리고 그런 연인을 찾기 위해 수소문하다 그 수선 가게를 찾아낸 사람이 있다. 윤추와 서희, 그리고 수선집 사장은 평범한 사람들일까? 아니면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이들일까? 어벤저스나 X맨 같은 슈퍼 히어로는 아니지만 자신을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는 존재로 여겼다가 그걸 다른 이를 위해 선하게 쓸 수 있는 능력으로 키워 나가는 신비한 이야기는 보통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의 불씨를 키워준다. 물리학자 이종필의 「동방홍 원정기」는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중국 무협소설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작품은 무대 자체가 ‘동방홍’이라는 중국집이다. 사건도 처음엔 대수롭지 않다. 고등과학원의 우주 연구원 노규홍은 지인들과 ‘동방홍’이라는 중국집에서 ‘타이쯔허주’라는 술을 마시기로 한다. 중국집 위치를 검색하던 노규홍은 우연히 ‘역사위키’라는 사이트에서 고구려군이 요서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동방홍이라는 성을 함락한 ‘동방홍 원정기’와 동방홍을 지키던 군대의 대장군 복대영이 성을 지키기 위해 자기 몸을 불살랐다는 얘기를 읽는다. 과학자지만 역사 덕후라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처음 알게 된 내용이라 출처를 의심하고 있던 차에 다음날 그 술을 대접한 출판사 사장이 갑작스레 죽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동방홍에서 즐겁게 술자리를 갖고 헤어졌던 사람들이 경찰 조사를 받기 위해 다시 ‘동방홍’에 모였다. 인원은 한 명이 줄어 열 명. 노규홍은 사장의 죽음이 복대영의 최후와 흡사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자신들이 다중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의심을 품는데…… 출판사 사람들과 필자들의 술자리 경험담을 무협풍의 SF로 완성한 이 작품은 엉뚱하면서도 유쾌하고 흥미롭다. 역사위키나 동방홍 원정기, 타이쯔허주와 관련한 사실은 모두 작가가 만들어낸 완벽한 허구지만 너무나 그럴싸해서 실제 정보처럼 읽힌다. 작가의 입담과 과학적 진실이 어우러진 엉뚱한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는 작가의 독특한 매력을 한껏 보여준다. 천문학자 정경숙의 「귀환」은 ‘지구에 어떻게 생명이 처음 생겨났는가’를 역으로 재조명한 이야기이다. 즉 외계 지적 생명체가 지구에 불시착한다면, 그리고 지구 환경이 그들에게 생존의 위협을 가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SF적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세계 최초로 미확인 심해 생물 연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는 연구원들은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갑자기 미생물 개체 수가 끊임없이 변종하는 바이러스처럼 계속 늘어나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이 미생물들은 연구원들을 숙주 삼아 변종하고 있던 외계 생명체였던 것. 산소에 취약한 외계인들은 지구에서 100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며 산소가 없는 인간의 몸속 장기로 들어가 자신들의 행성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들을 귀환하게 해줄 지구인들의 우주 과학 기술이 날로 발전하기만 바라며. 하지만 외계인들도 환경에 적응하는지 기생 생활 속에서 인간의 저열한 습성도 함께 습득해 간다. 간신히 자신들의 별로 귀환할 수 있게 된 이들 외계 생명체들이 우주선 안에서 벌이는 필사의 사투는 지구인의 습성과 흡사해 쓴웃음을 짓게 한다. 놀라운 것은 작품평을 쓴 곽재식에 따르면 실제 ‘범종설’이라는 것이 있는데 우주 이곳저곳을 떠도는 생명 물질이 우연히 한 행성에 떨어지게 되면 그 행성에서 생명이 자라나기 시작해 운 좋으면 그 행성을 뒤덮으며 진화한다는 학설이라고 한다. 과학적 지식과 SF적 상상력이 맞물려 빚어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가장 개인적인 영역의 일을 가장 창의적으로 보여주다 이제는 누구나 아는 경구가 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말을 또 한번 보여주는 것이 이들의 소설이다. 천문학자 이명현은 그야말로 어린 시절부터 별을 동경하던 소년이었고, 덕업일치를 이뤄 천문학자가 되었고, 한국형 외계 지적 생명체 탐색(SETI KOREA)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다. 그런 그의 경험과 별에 대한 동경, 칼 세이건에 대한 오마주가 만들어낸 멋진 작품은 우리 모두를 설레게 한다. 또 하리하라 이은희는 실제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며 느낀 부조리를 자신의 전공 분야인 생물학과 연결해 명쾌하게 풀어낸다. 무협풍의 일상을 양자 얽힘과 평행 우주로 갑작스레 전환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이종필의 작품은 읽고 나면 자연스레 과학 이론까지 섭렵하게 된 기분이 들고, 천문학자 정경숙은 별의 진화에 미치는 먼지의 작은 역할에 대해 고민해온 연구자답게 지구를 포함해 우주에 생명이 생겨나게 되는 그 자체로 공상과학 같은 원리를 생생하게 연출해낸다. 과학자들의 이 놀랍고도 재미있고 독특한 SF는 자신의 학문과 관련해 그들의 오랜 관심과 호기심, 애정이 빚어낸 결정체이다. 여기에 인간 AI급으로 전방위적으로 박학다식한 곽재식 작가 특유의 감상평이 더해져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논리와 과학에 두뇌를 많이 쓰는 이들이 그 줄다리기를 어떻게 계획해 놓았는지 독자가 느끼고 즐긴다면 이 책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라는 김창규 작가의 말대로 이제 독자들의 선택이 남아 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쓴 첫 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작가들의 떨리는 마음이 모두에게 작은 울림으로 전해지길 바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