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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Q씨에게 작가의 가치관 순간순간은 새로운 것 두 여인상 산다는 것 자유 1 자유 2 자유 3 내 손과 내 말 문학의 자리 장마 끝의 생각 병적(病的) 열등감 위선 좌절된 영웅들 지성과 지식 어느 날의 망상 왜 쓰는가 선택 성격 문제 잠 안 오는 밤 자기의 목소리 회귀선에서 사소설 이의 시계 없는 시간 집필 표현의 방법 어떤 순간에 사실과 사상 동일한 상황의 이질적인 작품 대량 인쇄의 결과 휴일 소설을 쓰는 마음 사람 소재 창작의 주변 12년 만에 서문(序文)이라는 것 일상의 행위 화원을 꿈꾸며 신기루 같은 것일까 소리 의상 일 아침의 대화 언어 예의 다시 Q씨에게 가설(假說)을 위한 망상 |
Park, Kyung-Ree,朴景利,박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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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 있는 것은 프로할징 씨가 무서운 인내심으로 자신의 보루로서 물질을 지킨 것뿐이며 타인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오히려 피해자로서 구원받지 못한 끝장이었고 라스콜니코프는 관념적인 초인적 개인주의가 범죄와 결부되어 악덕한 수전노 노파는 물론 선량한 노파의 동생까지 살해하는 가해자로서 오히려 구원을 받는 결말을 맺은 일입니다.
--- p.29 밤이 되면 열려 있는 창문으로 불빛을 따라 나비들이 찾아드는데 참말 신기하고 황홀한 나비들이 많았습니다. 나비 채집을 해보려고 그것들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무더운 여름밤이었습니다. 잠시 잠이 들었든지 아니면 환상 속에서였었든지 내 방에 수천수만의 나비 떼들이 몰려들지 않겠어요. 막 춤을 추는데 그것은 눈보라 같기도 하고 흰 종이를 찢어서 마구 흩뜨린 것 같기도 하고, 그 무시무시한 나비 떼들은 미친 것처럼 춤을 추며 내 얼굴에다 흰 가루를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 p.63 그런 자기 투쟁 없이 인간에게 깊이 부딪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쓰인다는 것은 매우 희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것은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맹물같이 맨숭맨숭한 것, 그것은 밝을지는 몰라도 인생 자체가 어두운 혼돈 속에 뒤틀고 있는 괴물인 바에야 에덴동산의 이야기에 불과하겠고 아무리 자신과 자부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지만 그 자신과 자부가 벌써 열등감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어떤 것으로든 반드시 열등감이 있게 마련입니다. --- pp.129-130 일순의 유예도 없이 끊어져버린 인간 혈연의 유대, 그러나 나는 잃은 것 앞에서 잃은 모성을 찾았다. 아이의 죽음은 문학에서보다 내 인생에서 인고를 스스로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가족에 대한 의무감, 아니, 살아남은 아이에 대한 사랑에 겹쳐진 준열한 의무감을 나는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흔히들 나를 보고 매력이 없다, 수도승이냐, 연애를 하지 않느냐는 둥 말들도 많지만 아이의 죽음을 통하여 모성을 각성시킨 동시에 나는 여성을 상실하고 만 것인지도 모르겠다. --- p.249 왜 지난 얘기를 하는고 하니 그것은 모두 내 문학의 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교적 금전에는 무관심한 편이며 때론 일종의 혐오감이랄까 그런 저항의식을 가지게 된 것도 돈을 위하여 부끄러운 짓을 하는 사람에게 격정적인 미움을 느끼는 내 편협한 성향도 그때에 비롯된 것임을, 그러니까 어린 날은 숙명적으로 청탁(淸濁)이 공존하는 인생에 끊임없이 절망하며 그 절망의 낙수(落穗)를 주워 문학의 양식을 삼을 근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p.262 하루가 또 지났습니다. 부치지 못한 편지의 추신입니다. 세 시쯤 일어나서 책도 읽고 원고지도 오려 붙이고 하는데 까치소리가 나길래 얼굴을 번쩍 쳐들었더니 글쎄 창문이 희뿌옇습니다. 얼른 문을 열고 내다보니 건너편 산등성에서는 전등불이 아직도 빨간데 만개한 철쭉꽃이 구름바다 같지 않겠어요? 라일락의 흰빛, 연보랏빛 그리고 철쭉빛이 안개같이 뿌옇고 신록은 또 뭐라 했으면 좋을까요. 커피 한 잔을 끓여오다가 창밖을 내다보았더니 그새 안개가 걷힌 듯이 꽃들의 윤곽이 확실해져 있고 참새들이 야단이었어요. --- pp.284-285 도대체 시간은 축복입니까 시련입니까. 행복입니까 불행입니까. 아마도 그 두 가지 모두를 다 가졌겠지요. 죽음과 삶, 만남과 이별, 희열과 절망, 그 쌍칼을 든 진실로 정체 모를 그게 시간입니까. 공간을 지배하는 권능을 쥔 시간은 그러면 신일까요? 시간 때문에 우리는 살아 있음과 죽음을 인식하는 걸까요. 삶과 죽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을 인식하는 걸까요. 행복한 시절과 시련의 시절이 마치 영화관 화면이 전환하듯 일순간이더군요. 그런가 하면 일각이 천추 같다는 기다림, 그렇다면 시간은 우리 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습니까. 아무리 물어봐도,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양파의 껍질 한 장 벗겨내지 못하고 결국 우리는 알지 못하는 대상과 알지 못하는 나 자신 사이를 떠돌고 있습니다. --- p.362 그러나 복병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났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백 년 동안 과학 문명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인간들은 과학 문명에 중독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적 능동성은 둔화되고 사고력은 단순화되어가고 인간성은 희박해져가고 있습니다. 투쟁의 역사는 이제 끝난 것일까요? 모두 자발적으로 더러는 찬미하면서 과학 문명이라는 신세계에 입문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인류는 어떻게 될까요? 행복도 불행도 없는 영원한 공간의 기계 인간! 과학 영화에 중독된 발상이라 할 사람도 있겠으나 세상이 그렇게 짜여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p.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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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단절된 나 자신을 바깥과 이어보는 유일한 방법”
문학과 삶에 대한 박경리의 꾸밈없는 진심 그리고 소망 “생각이 막힐 때는 신이 오르지 않는 무당처럼 육체적인 고통에 전신이 틀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나는 머릿속의 핏줄이 터질 것 같은 무서운 예감에 떨게 됩니다.” “그놈의 원고 얘기 또 하는군. 귀에 못이 박이겠다 하시겠지만요, 사람이란 뭣이든 자기 자신에게 절실한 일이면 되풀이 되풀이해도 항상 새롭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요?” 400쪽에 달하는 두툼한 그의 편지글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다름 아닌 ‘원고’ 혹은 ‘글쓰기’다. 오랜 기간 신문사와 잡지사에 소설과 에세이를 연재해온 그는 “허덕거리는 언덕길의 기차처럼” 겨우겨우 원고를 써서 넘긴다. 그러곤 이슬에 젖은 뜰에 나가 잔디를 심고 솟아오른 자갈을 쓸어낸다. 박경리에게 ‘글을 쓰는 일’과 ‘땅을 파는 일’은 똑같은 노동일 뿐, 그에 따르는 희열도, 육체가 소모되어가는 고통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런 그가 문학을 하게 된 이유는 “슬프고 괴로웠기 때문”이다. 젊은 여자와 딴살림을 차린 아버지, 6·25전쟁 때 부역을 하다 실종된 남편, 아홉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은 아들, 어쩔 수 없이 홀어머니와 작가 자신, 외동딸까지 여성 3대가 남게 된 “다분히 객관적인” 그의 불행을 염두에 둔다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에게 문학은 “단절된 (나) 자신을 바깥과 이어보는 유일한 방법”이다. 문학이라는 심장에 피가 돌아야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벅찬 현실을 등지고 싶을 때가 왜 없으랴. 문학을 버리고 “강원도 산골에서 감자를 심어 먹는다든가” “담배를 포장하고 나사를 만들고 하는 기계적 작업으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이를 “현실 도피”라며 질책한다. 그러면서 “아무리 그것이(문학이) 나를 먹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내가 희열을 느끼는 이상 계속될 것이고 아무리 나 자신에 영광이 온다 하더라도 희열이 없을 적에 나는 그것을(문학을) 버릴 것입니다.” 하고 다짐하듯 말한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선가 그가 지닌 소박한 소망이 엿보인다. “(연재가 끝나면) 찬란한 햇빛과 가을바람과 밭둑에서 우는 송아지, 낯선 고장의 붐비는 장터, 시냇물에서 신발짝으로 송사리를 뜨려는 아이들, 겨울 바다”가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은 소망 말이다. “Q씨, 사랑이 없는 순간은 죽은 시간입니다” 다시 Q씨에게 보내는 ‘불행한 구도자’의 편지 30여 년간 지속해 온 편지글에 대해 박경리는 “묵은 상처를 들추는 것만 같아서 사실 읽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Q씨에게 다시 편지글을 쓰는 이유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든 생명, 오묘하고 정직한 우주와 자연이 천대받고 도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그는 원주의 모 대학 캠퍼스 안에 있는 호수에 수상골프장이 들어서려 하자 이를 매스컴에 알린다. 철새들의 보금자리인 호수를 어떻게든 보전시켜야 한다는 그의 강철 같은 의지로 결국 수상골프장 허가는 취소되고 호수는 “있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편안하게” 계절을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계절이 바뀌고 어김없이 철새들이 찾아오자 그는 “내 핏줄이 돌아온 듯” 반갑고 감격스러워한다. 나아가 박경리는 그의 작품 가운데 일부가 ‘사소설’이라는 평가에 대해 “작품은 어떠한 나, 어떠한 주관도 객관을 거치지 않고 쓰일 수는 없으며 자서전이나 일기문이라 할지라도 엄격하게 따지고 본다면 쓴다는 그 자체가 벌써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행동”이며 “소재를 어디서 가져오건 그것은 작가의 자유이며 다만 그 소재를 어떻게 소화하여 다루었느냐가 문제일 것”이라면서 이의를 제기한다. 작가에게는 “경험한 것, 기억한 것, 목격한 것, 영혼의 깊은 곳에 있는 그 모든 것”에 구애되지 않고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며, 그에 대한 가치 평가는 매우 어렵긴 하지만 예술의 가치에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프로할징」을 예로 들면서 작가의 가치관은 “도덕이나 법률이라는 불완전한 규제를 걷어 젖히고 보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 인간을 보고 느끼는” 작가 내면의 자유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배반과 모멸, 빈곤과 질병 속에 일생을 마친 문인들, 즉 베를렌느,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플로베르, 프루스트, 조지 오웰 등을 언급하면서 작가는 큰 고통이나 깊은 체험을 창조의 희열로 승화시키는 존재, 자신의 괴로운 체험을 파괴하여 새로운 차원의 높이로 끌어올리려고 치열하게 투쟁하는 불행한 구도자라고 덧붙인다. “쓰지 못하면 죽어야 했던” 시절, 통로 공사를 하느라고 벽이 뻥 뚫린 방에서 뿌옇게 시멘트 가루를 뒤집어쓴 채 치열하게 글을 썼던 박경리. 그러나 그에게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사람이며 그 속에 품은 사랑이다. 아무리 불우하여도 뜨거운 눈물이 있는 사람, 누군가를 위해 무거운 짐을 지는 사람, 수숫대 움막에서도 자연을 내 숨결같이 느끼는 사람, 어린 자식을 위해 밤을 밝히며 선반을 돌리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치열했던 작가의 삶을 그는 이렇게 결론 맺는다. “Q씨, 사랑이 없는 순간은 죽은 시간입니다.” #박경리 17주기 추모 기획 #다산책방 「박경리 산문선」 출간! 한편 다산책방에서는 2026년 박경리 작가 탄생 100주년을 준비하며 한국 사회와 문학의 중추를 관통하는 그의 방대한 작품들을 새롭게 출간하고 있다. 대하소설 『토지』와 장편소설선에 이어 진행하고 있는 이번 기획은 박경리 작가의 산문과 시를 아우르며, 오랫동안 유실되었던 미발표 작품도 포함되었다. 올해 집중적으로 출간되는 「박경리 산문선」은 지난 2023년에 다시 출간된 『일본산고』에 이은 다산책방의 기획 산문선이다. 새롭게 개정된 『Q씨에게』는 작가의 육필 원고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했던 이전 판본의 오류들을 바로잡았다. 또한 현대의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끔 다듬으면서도 고유한 문장과 표현, 시대를 드러내는 단어들은 그대로 두어 작가의 목소리를 오롯이 전하고자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