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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912/13년 첫 발행본에 즈음한 서문 1918년 두 번째 발행본에 즈음한 서문 영혼 달력 루돌프 슈타이너의 생애와 작업 옮긴이의 글 |
Rudolf Ste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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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혼 달력은 1998년 특별 발행본의 형태를 따랐다. 예전 달력이 첫째 주부터 마지막 주까지 차례대로 이어지는 반면 이 달력은 펼치면 다음과 같이 왼쪽과 오른쪽 지면에 각기 두 주씩 총 네 주의 명상시가 쓰여 있다. 단, 알파벳 표기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육필 원고를 따랐다. 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옮긴이의 말’에 실려 있다.
--- 「일러두기 」 중에서 인간은 자신이 세계와 시대 변화에 결합되어 있다고 느낀다.…인간은 감각과 지각에 몰두하는 자신의 존재를 빛과 온기로 직조된 여름 성격에 부합하는 것으로 느낀다. 내적으로 확립된 상태, 그리고 자신의 사고 세계와 의지 세계 속 삶은 겨울 현존재로 감지할 수 있다. 자연에서 시간에 따른 교대를 여름과 겨울로 드러내는 것이 인간에게는 외부 생활과 내면생활의 리듬이 된다. 그런데 시간을 초월한 지각 리듬과 사고 리듬을 적절한 방식으로 자연의 시간 리듬에 견주면, 현존재의 커다란 비밀을 알아볼 수 있다. --- 「1912/13년 첫 발행본에 즈음한 서문」 중에서 2. 이 달력에는 영혼이 한 해의 전체적인 삶의 부분으로서 주마다 완수되는 것을 함께 체험하도록 하는 명상시가 기록되어 있다. 영혼이 그 삶과 하나가 되면, 그 삶이 영혼 속에 울리도록 하는 것이 이 명상시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런 명상시의 의미에서 세계 과정을 함께 감지하는 것은 영혼이 자신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경우에만 열망하게 되는 것이라 믿을 때, 자연 과정과 건강하게 ‘하나됨을 느끼기’와 거기에서 생겨나는 힘차게 ‘자신을 발견하기’가 고려된다. --- 「1918년 두 번째 발행본에 즈음한 서문」 중에서 종파를 초월하는 보편적 그리스도 루돌프 슈타이너는 영혼 달력이 원래 속했던 1912/13년도 인지학적 일반 달력 표지에 ‘나/I=CH06의 탄생 후 1879년에’라는 불가해한 제목을 붙이고 서문에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원紀元은 민족마다 특히 중요하다고 느끼는 사건에 따라 결정된다. 유태인은 그들이 ‘세계 창조’라 칭하는 시점을, 기독교인은 ‘예수 탄생’을 기원으로 삼는다. 이 달력은 서력 33~34년을 기원으로 햇수를 센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지구 발달에서 인종, 민족, 국가 등을 막론하고 인류 전체를 위해 의미 있는 날짜가 근거로 놓여 있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인간-나/Ich가 내적, 자체적 표상생활의 힘을 통해 비유 없이 스스로를 파악하고 세계에 대한 관계를 맺도록 하는 힘이 인류 발달에 들어선 시점을 그 해에서 알아본 ‘정신과학’의 가정이 근거로 놓여 있다.” 영혼 달력 이용 방법 루돌프 슈타이너가 직접 발행에 관여한 세 가지 영혼 달력의 새해는 각기 다른 주에 시작된다. 부활절이 춘분 후 보름에 이어지는 일요일이라 해마다 다른 주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의문이 생긴다. 총 52주의 양력을 따르는 영혼 달력의 첫째 주 명상을 언제 시작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루돌프 슈타이너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부활절에 첫째 명상을 시작한다. 영혼 달력 명상은 3주 동안 같은 정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부활절이 매년 다른 날짜인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몇 년 후 영혼 달력의 오이리트미 작업에서도 마리 슈타이너에게 그와 같은 말을 했다. “영혼 달력의 내적 구성은 3주 동안 같은 정서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다. 그다음에 다시 3주 동안 다른 정서를 내포한다.” 양극 사이에서의 진자 운동 인지학적 인식은 상호 요구하는 양극 사이에서 리듬에 따라 진동하며 변화와 발달을 추구한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양극적 사고’에 관해 비망록에 다음과 같이 썼다고 한다. “비학을 하는 사람은 다른 극이 아주 나직하게나마 배면에 울리도록 하지 않고는 한 극에 관해 절대 말을 해서도, 심지어는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서 ‘신이 내 내면에 있다.’고 말할 때 ‘나는 신 안에 있다.’는 생각도 함께 나직이 울리도록 해야한다. 이로써 해당하는 다른 극에 의해 일방적 사고 형태가 저지될 수 있다.” --- 「옮긴이의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