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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서문 (1902)
2판 서문 I. 관점들 II. 신비, 그리고 신비의 지혜 III. 신비의 지혜에 비추어 본 플라톤 이전의 그리스 현자들 IV. 신비가 플라톤 V. 신비의 지혜와 신화 VI. 이집트의 신비의 지혜 VII. 복음서 VIII. 라자로의 기적 IX. 요한묵시록 X. 예수, 그리고 그의 역사적 배경 XI. 그리스도교의 본질에 대하여 XII. 그리스도교와 이교적 지혜 XIII. 아우구스티누스와 교회 몇 가지 부언 이 발행본을 위한 주석 인명색인 참고문헌 |
Rudolf Ste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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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정신적 발달 과정을 자연과학자가 감각 세계를 관찰하듯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때에만 자연과학의 의미에서 행동하는 것이 된다. 물론 정신 활동의 영역에서 생겨나는 고찰 방식은 단순히 자연과학적인 것과는 구별되는데, 이는 지질학적인 고찰 방식이 단순히 물리학적인 것과 다르고 생명 발달의 연구가 단순한 화학적 법칙의 탐구와 구별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결과, 자연과학적인 방법일 수는 없지만 의미상으로는 전적으로 자연과학적인 고차적 방법들이 나온다. 그래서 자연과학의 편파적인 견해 상당수는 어떤 다른 관점에 의해 수정되거나 교정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그저 자연과학을 계속할 뿐, 자연과학을 훼손하지 않는다. 그런 방법들만 있어도 그리스도교 등의 종교의 표상 세계의 정신적 발달과 정신적 발달 안으로 정말로 파고들 수 있다. 그런 방법들을 쓰는 사람은 자연과학적으로 생각한다고 믿는 상당수 인물들의 반박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정말로 자연과학적인 표상 방식과 완전히 일치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 p.21 인간은 스스로 타원의 개념을 만들어낸다. 인간이 타원의 법칙들을 확인한다. 그리고 천체는 인간이 확정한 법칙들에 따라 움직인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 피타고라스학파의 천문학적 직관들이 아니다. 그 직관들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에서 고려되는 점에서 볼 때 코페르니쿠스학파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이로부터 바로 나올 수 있는 결론은 인간 영혼의 활동은 일상적인 세계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적법한 질서로서 세계를 관통하는 것이 이 영혼의 활동에서 진술된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감각이 인간에게 감각적 현상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감각은 사물이 따르는 조화로운 질서를 보여주지 못한다. 이 조화로운 질서를 바깥에 있는 세계에서 보고자 한다면 인간 정신은 그 질서를 먼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 세계의 더 깊은 감각, 즉 법칙에 따른 영원한 필연성으로서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 그것이 인간 영혼에 나타난다. --- p.66 셰익스피어가 쓴 《햄릿》의 내용 전체는 몇 마디 말로 요약된다. 그 몇 마디를 얻게 된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자기가 《햄릿》의 내용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도 그는 햄릿의 내용을 알고 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 작품의 대단히 풍부한 줄거리 전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내용을 다르게 안다. 어떤 단순한 묘사로 대체될 수 없는 삶의 내용이 그의 영혼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햄릿의 관념이 그에게 예술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이 된 것이다. 인간의 어떤 고차적 단계에서는 입문과 결부된 마법 같은 의미심장한 사건을 통해 비슷한 사건이 일어난다. 인간은 자신이 정신적으로 싸워 얻는 것을 비유적으로 체험한다. “비유적”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외적 사실이 감각적-실제적으로 실행되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형상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그것은 비현실적 형상이 아니라 실제적 형상과 관련이 있다. 현세적인 육체는 사흘 동안 정말로 죽어 있었다. 죽음에서 새 생명이 생겨난다. 이 생명이 죽음을 이겨냈다. 인간은 새 생명을 믿게 되었다. 라자로가 겪은 것이 이러했다. 예수는 그에게 부활을 준비시켰다. 그것은 비유적이면서도 실제적인 병이었다. --- p.161 고대 신비관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것을 완전히 새로운 어조의 세계관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도교의 처음 몇백 년 동안 수많은 인물들이 아마 그런 경우였을 것이다. 그들은 신비의 형태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이 옛 형태와 씨름해야 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가장 힘든 심적 갈등에 놓였을지 모른다. 그들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두 방향의 세계관 사이에서 균형을 찾았을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처음 몇 백 년 동안 나온 글들은 이런 투쟁을 반영한다. 그리스도교의 숭고함에 마음이 끌리는 이교도들의 글들만이 아니라, 신비라는 방법을 포기하기 어려운 그리스도인들의 글들 역시 그러하다. 신비의 존재에서 그리스도교가 서서히 생겨난다. 그리스도교 신념들이 신비의 진리 형태로 진술된다. 신비의 지혜가 그리스도교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 p.192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이 계시를 통해 인간에게 지혜를 계시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신적 계시의 모상은 인간에게 인식을 통해 전달된다. 신비의 지혜는 온실 식물과도 같아서, 성숙한 개인들에게 주어진다. 그리스도교의 지혜는 누구에게도 인식으로 계시되지 않고 모두에게 믿음의 내용으로 계시되는 신비이다. 그리스도교에서 신비의 관점은 계속 존재했다. 그러나 그 관점은 변화된 형태로 계속 존재했다. 특별한 개인이 아니라 모두가 진리에 관여해야 했다. 그러나 인식의 어느 지점부터는 계속 나아갈 수 없는 무능력을 인식하고 거기에서부터 믿음으로 올라가는 일이 일어나야 했다. 그리스도교는 신비 발달의 내용을 신전의 어둠으로부터 환한 빛으로 끌어냈다. 그리스도교 내에서 어떤 특징적인 정신적 경향은 이 내용이 믿음의 형태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 p.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