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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1919년 8월 20일, 슈투트가르트
제1강, 1919년 8월 21일 제2강, 1919년 8월 22일 제3강, 1919년 8월 23일 제4강, 1919년 8월 25일 제5강, 1919년 8월 26일 제6강, 1919년 8월 27일 제7강, 1919년 8월 28일 제8강, 1919년 8월 29일 제9강, 1919년 8월 30일 제10강, 1919년 9월 1일 제11강, 1919년 9월 2일 제12강, 1919년 9월 3일 제13강, 1919년 9월 4일 제14강, 1919년 9월 5일 [부록] 1919년 9월 7일루돌프 슈타이너의 자유 발도르프 학교 개교 기념 행사 인사말 : 마리 슈타이너 [참조]이 책의 판본 성립에 관하여 본문 주석 인명색인 사항색인 강연 필사본에 대한 루돌프 슈타이너의 언급 루돌프 슈타이너 전집 목록 옮긴이의 말 |
Rudolf Ste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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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사실을 확실하게 언급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 바탕에는 정말 그런 것들이 깔려 있습니다. 현재와 같은 문화의 하락과 함께 인류가 점점 더 몰락의 길을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모든 영역에서 인간적인 이기심에 대한 이런 호소를 추방해야만 하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지상의 삶에 포함되는 인간 발달의 다른 끝, 즉 출생을 더욱더 분명하게 의식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죽음과 새로운 출생 사이의 긴 시간 동안 발달을 이어가며 이 발달 과정에서 인간은 정신세계로 향하기 위해 죽는 지점에 도달한다는 사실, 이 지점에서 인간은 다른 형태의 현존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계속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조건으로 정신세계에서 살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 의식 안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39p. ‘제1강 : 1919년 8월 21일’」중에서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자연 자체를 관찰하면 여러분은 이렇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자연을 보니, 죽음의 흐름이 내 안에, 새로운 생성의 흐름 역시 내 안에 있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구나.” 근대 과학은 이런 맥락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합니다. 근대 과학은 자연을 일종의 단일체로 여겨 죽어가는 것과 생성 중인 것을 언제나 마구 합쳐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죽어가는 것과 생성 중인 것이 지속적으로 뒤섞여, 오늘날 자연과 그 본질에 관한 모든 다양한 언명이 대단히 혼란스러워지고 말았습니다. 자연 안에 있는 이 두 흐름을 완전히 구분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 자연 안에 인간이 없다면, 자연은 어떤 상태일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87p. ‘제2강 : 1919년 8월 23일’」중에서 우리는 사고, 감정, 의지라는 영혼의 세 가지 능력을 고지식하게 구분해서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나열해서는 안 됩니다. 살아 있는 영혼 전체에서는 각각의 활동이 언제나 다른 활동으로 옮겨가기 때문입니다. 먼저 의지를 관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사고를 통해서, 즉 인식하는 활동을 통해서 꿰뚫고 들어가지 않은 것은 원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행동을 하려 할 때, 피상적이라 하더라도 여러분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집중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모든 의지 행위에 어떤 식으로든 사고가 들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의지 행위에 어떻게든 사고 활동이 들어 있지 않다면 여러분은 인간일 수가 없습니다. 의지에서 솟아나오는 행위에 사고 활동을 철저히 개입시키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의지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것을 둔감하고 본능적으로 실행하게 될 것입니다. ---「127p. ‘제5강 : 1919년 8월 26일’」중에서 인간 안에는 동물적인 형태들이 끊임없이 초감각적으로 움직이고 해체됩니다. 만일 초감각적인 사진가가 있어서 이 모든 과정을 잡는다면, 이 모든 과정을 계속 바뀌는 사진판에 담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우리는 인간의 사고를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고는 말하자면 감각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한 초감각적인 표현입니다. 머리로부터 하부로 진행되는 동물적인 것의 이런 지속적인 변형생성은 감각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초감각적으로 인간 안에서 사고 과정으로 작용합니다. 초감각적으로 사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과정으로서는 이 변형생성이 언제나 존재합니다. 여러분의 머리는 어깨 위에서 게으름을 피우며 가만히 있지만은 않고 여러분을 되도록 동물적인 것으로 머물도록 하려 합니다. ---「261p. ‘제12강 : 1919년 9월 3일’」중에서 그렇다면 이 보이지 않는 머리는 무엇을 할까요? 이 머리는 끊임없이 여러분을 먹고 여러분을 향해서 주둥이를 벌립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이 외적인 형상에서 사실을 보여 주는 놀라운 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간의 실제의 머리가 신체적이고 물질적인 머리인 반면, 사지에 속하는 머리는 정신적인 머리입니다. 그런데 정신적인 머리는 부분적으로 물질적으로 되어 끊임없이 인간을 먹어 치웁니다. 그리고 인간이 죽을 때는 그것이 이미 인간을 완전히 먹어 치운 상태입니다. 우리 사지가 우리를 끊임없이 먹어 치우도록 만들어져 있다는 것은 놀라운 과정입니다. 우리의 유기체와 함께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정신의 활짝 벌어진 입 안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정신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희생적으로 헌신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우리 신체의 형상 자체에 이런 희생적인 헌신이 드러나 있습니다. 다른 지체들에 대한 사지의 관계에서 이미 정신을 향한 이런 희생적인 헌신이 드러나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형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292p. ‘제14강 : 1919년 9월 5일’」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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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인간학』을 깊이 읽는 방법 191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최초의 발도르프 학교가 문을 열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1년이 지난 시기였습니다. 끔찍한 전쟁의 폐허 위에 모든 생활 기반이 새롭게 구축되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발도르프-아스토리아 담배 공장의 대표 에밀 몰트는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에게 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학교의 설립을 제안했습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제1차 세계대전과 무관하게 이미 20세기 초엽에 미래를 위한 교육을 구상하여 베를린에서 강연회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만, 에밀 몰트의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요청을 받고는 인류 발달을 위해 사회적 자극을 줄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학교를 만들어 냈습니다. 당시의 독일 교육 제도를 개선한 “대안학교”가 아니라 교사가 교과서 없이 수업하고 교장 없이 운영하는 세상에 없던 “혁신 교육 모델”을 실현한 것입니다. 소박하게 출발한 최초의 발도르프 학교는 100년이 지나 세계의 모든 문화권에서 발도르프 교육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첫 학교의 교사진이 말 그대로 “혁신 수업”을 이끌 수 있도록 14일에 걸쳐 연속 강의를 진행했습니다. 현대의 독자가 이 열네 편의 강의록을 제대로 읽고 파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삼중 구조를 다룬 이 강의는 철학, 신학, 심리학을 포함하여 자신이 30년간 연구한 내용을 인지학의 관점에서 농축하여 담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내용을 흡수하려는 독자는 먼저 농축된 것을 희석하고 압축된 것을 풀어내야 합니다. 1920년 루돌프 슈타이너가 한 말처럼 말입니다. “인간학은 우리가 연구하고, 명상하고, 기억해야 할 대상입니다.” 2017년 여름을 시작으로 몇 차례 사단법인 한국슈타이너인지학센터의 발도르프 담임교사 양성과정에서 인간학을 강의했습니다. 한국의 세미나 참석자들이 보였던 배움의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번역, 출간되는 『일반 인간학』이 여러분에게 잘 소화되고 흡수되어 한국에서 인간학적 교육학이 올바르게 실천되길 희망하며, 루돌프 슈타이너가 제시한 방향을 참고하여 제가 네덜란드 헤이그의 발도르프 학교에서 25년간 재직하며 실천한 인간학 공부법을 예시적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 마르셀 드 뢰브 (헤이그 발도르프 학교 교사, 헤이그 국제발도르프연합 상임이사, 네덜란드 인지학협회 대표 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