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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강, 1920년 9월 15일 제2강, 1920년 9월 16일 제3강, 1920년 9월 21일 제4강, 1920년 9월 22일 참조 사항 주석 인명 색인 루돌프 슈타이너 생애와 주요 활동 루돌프 슈타이너 전집 목록 |
Rudolf Ste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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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학생들이 교사를 놀릴 때 교사 편을 들어야 할까, 오히려 학생 입장이 되어야 할까?” 하고 자문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교육 상황에서는 좀 더 학생 편을 들고 싶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의 결과가 어떤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우리 대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대학은 다 자란 청년들을 위한 교육기관인가요, 아니면 연구기관인가요? 대학은 동시에 그 둘 다이고 싶어 하고, 그 바람에 오늘날과 같은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그렇게 교육기관이자 동시에 연구기관이라는 점을 우리 대학의 특별한 장점으로 치켜세웁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게 된 탓에 이 최고 교육기관에 모든 해악이 들어왔고, 마찬가지로 교육학에서도 교사를 학자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그 해악은 초·중학교까지 들어와 자리잡습니다. 그 무엇보다 깊이 고려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육 예술은 삶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 즉 고고한 학문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 말입니다.
--- 「슈투트가르트, 1920년 9월 15일」 중에서 이렇게 영혼이 7세 때 신체에서 풀려나 신체에 작용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작용한다는 사실에서 여러분은 영혼과 신체의 매우 현실적인 공동작업을 확인하게 됩니다. 7세가 되면, 신체 안에서 이제 스스로 새로이 태어나는 영혼의 힘들이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힘들의 작용은 이제 다음 육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이어집니다. 또한 신체에서 바깥으로 방출되는 것은 반사되는 반면, 머리에서 아래쪽으로 향하는 힘은 저지됩니다. 이로 인해 이갈이를 하는 이 시기에는 위에서 아래를 향하는 힘들과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 힘들 사이에 아주 강렬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갈이는 그런 두 종류의 힘들이 벌이는 싸움이 신체적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아이에게서 지성적이고 지적인 힘으로 나타나는 힘들, 그리고 무엇보다 형태 그리기, 미술, 글씨 쓰기 등에 사용되는 힘들이 그것입니다. --- 「슈투트가르트, 1920년 9월 16일」 중에서 교육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하는 어떤 것, 그리고 그렇게 배운 것을 통해서 실제 수업에서 우리 자신이 본질적으로 새로이 창조해내야 하는 어떤 것입니다. 우리가 잡다한 원칙과 완성된 명제들로 이루어진 학문으로서 교육을 배우면, 그런 것은 마치 다른 사람에 의해 이미 특정한 상태로 소화된 음식을 영양 공급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학, 즉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배워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이는 자연이 영양 공급의 수단으로 주는 것을 섭취하는 셈입니다. 그렇게 되면 실제 수업에서 우리는 그런 인간 인식을 바탕으로 깨어나서 언제나 우리 자신만의 교육예술을 실행하게 됩니다. 그런 교육예술은 근본적으로 매 순간 교사에 의해 새로이 창조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오늘 말하려는 것의 서언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 「슈투트가르트. 1920년 9월 21일」 중에서 많은 그리기와 조형 예술 활동은 자아가 쉽사리 유기체에서 떨어져 나오도록 할 수 있고, 따라서 이 또한 아이를 몽상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태 그리기, 미술, 심지어 쓰기를 하는 과정에서 몽상적으로 되는 아이에게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가 그린 것을 의미 있게 파악하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장미 형태를 그리도록 하면서 그 과정에서 뭔가를 생각하게 하거나, 철자들을 쓰면서 철자의 형태에 경탄하게 하고는 그 형태들을 마음에 담도록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 말입니다. 단순하게 쓰기를 하거나 그리기를 할 때 아이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하지만, 그렇게 그리고 쓰거나 그린 것을 관찰하면 아이들은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 「슈투트가르트. 1920년 9월 22일」 중에서 우리가 그런 방식을 버리고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의 인지학적 인간학을 아이의 교육을 위해 적용해서 유기체가 우리에게 자신의 영혼적 상태를 말해주도록 한다면, 우리는 흔히들 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다른 방식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묘하게도 우리 안에서는 아이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서 아이에 대한 사랑이 커지고, 점점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아이를 파악하게 됩니다. 또한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이를 사랑으로 가르치고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강력한 힘을 얻습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제가 방금 설명하려 한 것처럼 교사인 우리가 무엇보다 올바른 감정과 감각을 얻는 길입니다. 가령 작곡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음악에 관한 교재를 손에 들고 있으면 작곡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하는 생각, 미술에 대한 여러 가지 내용이 실린 미학 서적을 가지고 있으면 화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완전히 잘못된 방법인 것과 마찬가지 일이니 말입니다. --- 「슈투트가르트. 1920년 9월 22일」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