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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을 농단한 왕비
3분 만에 읽는 조선왕조실록
조민기
씽크스마트 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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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실록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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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저자 소개 1

한양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였다. 영화사를 거쳐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던 중 회사 홍보기사로 작성한 ‘광고쟁이의 상상력으로 고전 읽기’ 시리즈가 호응을 얻으며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고, 〈세계일보〉에 칼럼 ‘꽃미남 중독’을 인기리에 연재하였다.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절대자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기울이던 중 권력이 잉태되어 탄생하는 과정의 놀라운 기록들을 발견하였다. 절대자와 권력자의 자취를 따라가 실록의 행간에서 찾아낸 흥미진진한 성공과 실패의 기록에 매료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 임금 잔혹사』와 『조선의 2인자들(2016)』을 발간하였다.
한양대학교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였다. 영화사를 거쳐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던 중 회사 홍보기사로 작성한 ‘광고쟁이의 상상력으로 고전 읽기’ 시리즈가 호응을 얻으며 칼럼니스트로 활동을 시작했고, 〈세계일보〉에 칼럼 ‘꽃미남 중독’을 인기리에 연재하였다.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절대자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기울이던 중 권력이 잉태되어 탄생하는 과정의 놀라운 기록들을 발견하였다. 절대자와 권력자의 자취를 따라가 실록의 행간에서 찾아낸 흥미진진한 성공과 실패의 기록에 매료되었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조선 임금 잔혹사』와 『조선의 2인자들(2016)』을 발간하였다.

그 외 저서로는 『외조 : 성공한 여성을 만든 남자의 비결』과 영화소설 『봄』이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역사가 가진 무궁무진한 가치와 의미를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인문역사 강연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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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4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04쪽 | 105*148*6mm
ISBN13
9788965294382

책 속으로

“어제 경이 준 정강은 전하와 함께 잘 살펴보았소. 하나하나 우국충정이 담겨있더군. 경도 알다시피 전하도 나도 늘 개혁을 바라왔소. 정강을 반포하려면 먼저 전하의 교지가 있어야 하는데… 경우궁에서 교지가 반포되면 아무래도 위엄이 서지 않을 것이오. 게다가 경우궁은 대책을 논하기에 너무 좁고 불편하니 창덕궁으로 가야겠소.” 부드러운 표정으로 조목조목 말하는 왕비를 보며 김옥균은 기이하게 소름이 돋았다. 그날, 고종과 왕비는 기어코 창덕궁으로 돌아갔고 불과 몇 시간 후 청나라 대군이 한양에 들어왔다. 청나라의 대군이 입성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일본군은 철수했다. 순식간에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된 김옥균은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일본으로 망명했다. 만고의 역적으로 끝나버린 개화파의 삼일천하, 갑신정변이었다.
---「3분 소설」중에서

명성황후가 한양에 올라온 지 3년째 되던 1863년 12월, 철종이 승하했다. 대비 신정왕후는 흥선군의 차남 이재황을 남편 효명세자의 양자로 삼아 왕위에 올렸다. 1864년 1월, 이제 막 13살이 된 고종은 조선의 제26대 임금이 되었고, 흥선군은 흥선대원군으로 승격되었으며 부인 민씨도 여흥 부대부인으로 승격되었다. 살아있는 몸으로 임금의 아버지가 된 흥선대원군의 지위와 권세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영특함과 총명함이 남달랐던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변화를 가까이서 지켜보며 권력을 꿈꾸기 시작했다.
---「한양에서의 새로운 삶」중에서

일본의 속내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조선은 강화도조약의 내용이 불평등하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조약을 체결했다.

[일본 전권 대신(日本全權大臣)이 바친 글]

우리나라와 귀국은 아세아주 동양에 있어 강토가 가까이 이웃하고 해안이 맞서 있어 사신과 예물이 오간 지 300년이나 됩니다. 다만 중간에 의견이 맞지 않아 정의(情意)가 서로 화합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번에 우리 대신들이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귀국에 와서 귀 대신과 함께 모여 옛날의 우의를 중수하고 새로운 조약을 맺어 양국이 함께 지킬 신위(信威)를 밝히고 만대를 두고 변하지 않을 전범을 마련하였으니 참으로 국가의 끝없는 복이며, 본 대신들도 영예가 있게 되었습니다. 삼가 귀국의 군왕 및 여러 유사(有司)들의 강녕을 축원하며, 아울러 귀 대신들이 진심으로 합심하여 우리 대신들이 사명을 다하게 한 두터운 우의에 감사드립니다.
명치(明治) 9년 2월 27일

고종실록13권
고종 13년(1876년) 2월 3일

강화도조약 체결 두 달 후 고종과 왕비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했다. 순조11년(1811년) 조선통신사가 파견된 후 65년 만의 공식 사절이었다.
---「강제 개화의 시작, 강화도조약」중에서

초라한 몰골로 피신 중인 왕비를 본 한 노파가 혀를 차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중전이 음란하여 난리가 나는 바람에 아가씨가 여기까지 피난하고 고생이구려.” 절망의 순간, 왕비 민씨는 처음으로 자신에 대한 백성의 시선을 알게 되었다. 이후 왕비 민씨는 죽는 날까지 절대로 백성의 편에 서지 않았다. 한편 엉망이 되어버린 창덕궁에서 고종과 흥선대원군은 10년 만에 얼굴을 마주했다. 군인들을 선동하여 왕비를 죽이러 온 흥선대원군에게 고종은 전권을 맡겼다. 군인들이 창덕궁에 난입한 고종19년 6월 10일, 실록에만 무려 17개의 기록이 있으니 얼마나 긴박했으며 서둘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전교하기를, “중궁전(명성황후)이 오늘 오시(午時)에 승하(昇遐)하였다. 거애(擧哀)하는 절차는 규례대로 마련하고 망곡처는 명정전 뜰로 하라.”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총호사(總護使)는 영의정(領議政)으로 하라.” 하였다. 또 전교하기를, “빈전(殯殿)은 환경전으로 하라.” 하였다.

고종실록19권
고종 19년 6월 10일

궁으로 돌아온 흥선대원군은 왕비의 죽음을 선포하고, 장례를 진행했다. 관에는 시신 대신 수의를 넣었고 무덤의 이름(정릉)과 시호(인성)까지 정해졌다.
---「살아있는 왕비의 장례식」중에서

일본군은 고종과 세자 부부 앞에서 왕비를 난도질하여 죽였고 시신을 불에 태웠다. 동이 터올 무렵 흥선대원군과 함께 경복궁에 도착한 미우라 공사는 고종을 협박하여 왕비를 폐서인했다.

묘시(卯時)에 왕후가 곤녕합에서 붕서(崩逝)하였다. [이보다 앞서 훈련대 병졸과 순검(巡檢)이 서로 충돌하여 양편에 다 사상자가 있었다. 19일 군부 대신 안경수가 훈련대를 해산하자는 의사를 밀지(密旨)로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에게 가서 알렸으며, 훈련대 2대대장 우범선도 같은 날 일본 공사를 가서 만나보고 알렸다. 이날 날이 샐 무렵에 전(前) 협판 이주회가 일본 사람 오카모토 류노스케와 함께 공덕리(孔德里)에 가서 대원군을 호위해 가지고 대궐로 들어오는데 훈련대 병사들이 대궐문으로 마구 달려들고 일본 병사도 따라 들어와 갑자기 변이 터졌다. 시위대 연대장 홍계훈은 광화문 밖에서 살해당하고 궁내 대신 이경직은 전각 뜰에서 해를 당했다. 난동은 점점 더 심상치 않게 되어 드디어 왕후가 거처하던 곳을 잃게 되
었는데, 이날 이때 피살된 사실을 후에야 비로소 알았기 때문에 즉시 반포하지 못하였다.]

고종실록33권
고종 32년 8월 20일

22일, 충격과 공포 속에서 왕비를 폐서인했던 고종은 이튿날 왕세자(순종)가 세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상소를 올리며 항의하자 후궁의 직첩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정1품 ‘빈’의 칭호를 주었고 다시 왕후로 복위했다. 고종34년(1897년) 1월, 경복궁에서 도망쳐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왕비의 시호를 ‘문성’으로 정하고, 3월에 다시 ‘명성’으로 수정했다. 같은 해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언하고 황제로 즉위했고 ‘명성왕후’는 ‘명성황후’로 추존되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드디어 왕비의 예로 장례가 치러졌다.

---「청일전쟁과 멍성황후의 죽음」중에서

출판사 리뷰

빛일까, 어둠일까?
핵심만 파고드는 [3분실록] 등장

명성황후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자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인물이다. 어떤 이는 ‘조선의 멸망을 재촉한 사악한 왕비’라고 평가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조선의 자립을 위해 서구 열강을 상대로 외교를 펼치다가 일제에게 살해당한 비운의 왕비’라고 평가한다. 이렇게 평가가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왕비, 뇌물을 받고 관직을 팔며 국정을 농단하다

명성황후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흥선대원군의 옆에서 권력의 맛을 보았다. 이후 고종과 함께 권력을 휘두르며 뇌물을 받고 관직을 내어주고, 왕실의 재산을 마음대로 쓰며 호화스러운 생활을 이어간다. 하지만 갑신정변과 갑오개혁, 청일전쟁 등 어지러운 국내외 상황을 수습하고자 고군분투했으나 결국 일제의 손에 살해당했다. 백성과 신하들을 외면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았던 동시에 비참한 죽음을 맞으면서도 황후로서 숭고함을 지켰던, 고귀함과 추악함을 동시에 가졌던 왕비. 명성황후의 삶은 빛이었을까, 어둠이었을까? 이 책을 통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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