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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서문
국역 간양록을 다시 펴내며 『간양록』에 붙이는 유계兪啓의 글 적국에서 임금께 올리는 글[賊中奉疏] 적국에서 보고 들은 것[賊中聞見錄] 포로들에게 알리는 격문[告?人檄] 승정원에 나아가 여쭌 글[詣承政院啓辭] 환란 생활의 기록[涉亂事迹] 『간양록』에 붙이는 윤순거尹舜擧의 끝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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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침략 때의 일입니다. 수길이는 출정 장병들에게 이런 엄포를 놓았습니다.
“사람마다 귀는 둘이요 코는 하나야! 목을 베는 대신에 조선 놈의 코를 베는 것이 옳다. 병졸 하나에 코 한 되씩이야! 모조리 소금으로 절여서 보내도록 하라.” 이렇게 적장에게 명령을 내려서 적장들은 제 콧수를 채운 뒤에야 비로소 사로잡는 것을 허락하였다 하니 이러한 민족적 참변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적괴는 산더미같이 실어 오는 코를 일일이 검사한 다음에 북문 밖 10리만큼 되는 데에 쌓아 산 하나를 만들었으니 동포의 참변을 호소할 곳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일 년이 채 못 되어 제 배때기 속에다 소금을 처박게 되었으니 세상일은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p. 6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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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형이 돌아가실 적에 말문이 어둔하여 종이를 빌려 기록하신 말이 있다. “네가 있으니 나는 잊고 간다. 형수를 부탁한다.” 하셨으니, 그 말씀 아직도 역력하건만 이 일이 웬일인가! 너무도 기막히고 너무도 원통한 이 사실을 호소할 곳조차 없었다. 내 목숨마저 언제 어찌 될지 모르질 않나! 종놈들이라 해 봤자 나를 버리고 도망간 놈은 고스란히 살게 되고, 차마 떨어질 수 없다며 따라선 놈들은 도리어 죽게 되니 애달픈 일이었다. 기구한 운명이라고 치기에는 너무도 안타까운 사실이 아닌가!
놈들은 뭇 배를 끌고 남으로 내리 뺐다. 영산창 우수영을 지나 순천에 배를 댔는데 놈들은 순천을 중심으로 갯가에다 둥그렇게 성을 쌓고 뱃전을 지어놓고 있었다. 성은 하늘에 솟구쳐 은하수를 가르듯 하고 뭇 배는 떼를 지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포로들을 실은 배 100여 척만이 큰 바다 물결에 출렁거릴 뿐이었다. 잡혀 온 날을 손꼽아 보니 오늘이 아흐레째로구나! 그래도 죽지 않은 게 용해. 물 한 모금 적시지 않았건만 그래도 멀뚱멀뚱 살아 있으니 말이야. p. 1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