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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대활자본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서해문집 2016.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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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개정판을 내며
류성룡과 《징비록》

스스로 쓰는 서문
징비록 1권
징비록 2권
녹후잡기

류성룡 종군의 기록
참고문헌
류성룡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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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2

柳成龍,유성룡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다.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전적, 공조좌랑 등을 거쳤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이조참의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 우부승지, 도승지를 거쳤다. 1583년 다시 부제학이 되어 「비변오책(備邊五策)」을 지어 올렸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왜란이 있을 것
본관은 풍산(豊山)이고, 자는 이현(而見), 호는 서애(西厓)다. 156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벼슬길에 나섰다. 전적, 공조좌랑 등을 거쳤으며 성절사(聖節使)의 서장관(書壯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어 이조참의를 거쳐 부제학, 대사간, 우부승지, 도승지를 거쳤다. 1583년 다시 부제학이 되어 「비변오책(備邊五策)」을 지어 올렸다.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으로 기축옥사가 일어나자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려놓으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았다. 1590년 우의정에 올라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녹훈되고 풍원부원군(豊原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왜란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형조정랑 권율(權慄)과 정읍 현감 이순신(李舜臣)을 각각 의주 목사와 전라도 좌수사에 천거하였으며, 진관법鎭管法을 예전대로 고칠 것을 주장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병조판서를 겸하고, 도체찰사로 군무(軍務)를 총괄했다. 이어 영의정이 되어 선조를 모시며 평양으로 파천했다. 이때 나라를 그르쳤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이유로 반대파의 탄핵을 받고 면직되었는데, 의주에 이르러 평안도 도체찰사가 되었다.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李如松)과 함께 평양성을 수복한 뒤 충청·경상·전라 3도의 도체찰사가 되어 파주까지 진격했다. 이여송이 벽제관(碧蹄館)에서 패배하고 퇴각하려 하자 이를 만류했으며 일본과 화의에도 반대했다. 유성룡은 전란 기간 내내 군대 양성과 더불어 훈련도감 설치, 화포를 비롯한 각종 무기의 제조, 성곽의 수축을 건의하여 군비 확충에 노력했으며, 소금을 만들어 굶주리는 백성을 진휼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록되고 다시 풍원부원군에 봉해졌다.1607년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호는 서애西厓이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저서로 『징비록懲毖錄』 『서애집西厓集』 『난후잡록亂後雜錄』 『신종록愼終錄』 『영모록永慕錄』 『관화록觀化錄』 『운암잡기雲巖雜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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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부터 도서관에서 살면서 책과 출판을 꿈꾸었다. 졸업 후 출판사를 설립, 평생의 꿈을 이룸과 동시에, 우리 고전과 역사,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책 출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우리말 공부를 하다가 《한글전쟁》과 《우리말은 능동태다》, 《국어사전 일일공부》를 출간했고, 우리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래된 책방’ 시리즈, 역사적 인물을 실제 재판 기록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전봉준 재판정 참관기》 등이 포함된 ‘재판정 참관기’ 등을 기획하고 썼다. 한편 평생 벗인 독서의 결과물로, 이웃들과 지식이 가져다주는 희열을 나누고자 출간
대학 입학 후부터 도서관에서 살면서 책과 출판을 꿈꾸었다. 졸업 후 출판사를 설립, 평생의 꿈을 이룸과 동시에, 우리 고전과 역사,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책 출간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우리말 공부를 하다가 《한글전쟁》과 《우리말은 능동태다》, 《국어사전 일일공부》를 출간했고, 우리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래된 책방’ 시리즈, 역사적 인물을 실제 재판 기록 등을 통해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 《전봉준 재판정 참관기》 등이 포함된 ‘재판정 참관기’ 등을 기획하고 썼다. 한편 평생 벗인 독서의 결과물로, 이웃들과 지식이 가져다주는 희열을 나누고자 출간한 《세상의 모든 지식》은 지금도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검색 서비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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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153*224*30mm
ISBN13
9788974838058

출판사 리뷰

지옥의 전쟁, ‘임진왜란’에 관한 가장 입체적인 역사 기록

《징비록》은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 역사에 드물게 보존되어 온 기록문학이다. 그 내용은 임진왜란 이전의 국내외적 정세로부터 임진왜란의 실상, 그리고 전쟁 이후의 상황에 이르기까지를 체계적이며 종합적으로 구성하고 있다.
1592년 왜군은 조선을 침략, 파죽지세로 조선 땅을 약탈했다. 그러나 하늘을 찌를 듯하던 왜군의 기세는 평양성에서 멈췄고, 명나라 군대의 개입과 의병의 활약 그리고 이순신 등 뛰어난 장수들의 노력으로 왜군은 후퇴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에도 1597년 정유재란으로 침략은 재발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쟁의 끝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졌다.
전쟁 당사자인 조선과 일본 그리고 참전국인 명나라, 명나라와 경쟁하던 청나라 등의 전쟁 관련국들에게도 임진왜란이 끼친 영향은 대단히 컸다. 다만 전쟁의 직접 피해자인 조선 정권은 붕괴하지 않았다. 이러한 내용이 《징비록》에 동영상처럼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명재상 류성룡이 눈물과 회한으로 쓴 반성의 기록

류성룡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포화의 한가운데서 전쟁의 참화를 실제로 겪은 고위 관리였으며, 특히 전쟁 수행 책임자 가운데 최고위직에 있던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증언은 임진왜란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류성룡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 ‘징비懲毖’란 《시경》 ‘소비小毖’ 편에 나오는 문장, ‘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토록 하기 위해 쓴 글이다. 이러한 집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류성룡은 자신의 잘못부터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그러기에 《징비록》이라는 책을 통해 수백 년 후 우리에게 임진왜란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해 줄 수 있었다.

나와 같이 보잘것없는 자가 흩어지고 무너져 내린 때를 맞아 나라를 지키는 무거운 임무를 맡아 위기를 극복하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나라를 지키지도 못했으니, 그 죄는 죽음으로도 씻을 수 없다. 그럼에도 산골 전답 사이에서 쉬며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고 있으니 이 어찌 두려움을 씻어 주시는 임금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그때 일을 생각할 때마다 두렵고 부끄러워 몸을 지탱할 수조차 없다.
- 류성룡의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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