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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글/11
Ⅱ. 인간 문화의 겉/15 1. 대통령은 사면불가 천명해야 17 2. 진보노인? 청년보수 19 3. 로봇을 대하는 인간의 마음 21 4. 누가 공평을 말하는가 23 5. 녹평 김종철 선생을 그리며 묻는다 26 6. 통합과 공존의 이민정책 29 7. 개인적 친분 있어 도와줬다는데 왜 하필 국회의원인가 31 8. 공정의 정치학 36 9. 지속 불가능한 사회의 생태적 회개 39 10. 나는 당신의 공정성이 불안하다 43 11. 하루살이의 춤 45 12. 하나, 여럿 그 너머 47 13. 우주에 나가보지 않고도 어떻게 달과 태양의 크기 계산했을까 51 14. 환경도 건강도 돈도 챙겨주는 채식 56 15. 우리의 용기로 내딛은 한발, 더는 사회적 합의 뒤로 미뤄선 안 돼 58 16. 초고령화 시대 숙제 난청, 국가가 나서라 63 17. 증오의 밭에서 꽃은 피지 않는다 65 18. 지역 학벌 차별 뚫고 간신히 한 칸 올라와도 더 높은 사다리가 있어 67 19.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이 문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3 20. 이해 79 21. 회사의 목표값이 충실한 알고리즘, 그 안에 노동인권은 없다 81 22. 슬픔을 증명하라는 부당한 요구, 당신에게는 그럴 권리가 없다 86 23. 퇴직 법관도 탄핵심판 대상 90 24. 최재영·윤석열은 진보정부에 위장 취업했나 95 25. 국립 이건희미술관 짓겠다는 것 기증의 뜻 헤아리지 못한 발상 97 26. 분야별 탄소배출과 대응 103 27. 미리 일어날 확률이 미래의 정보 때문에 바뀌는 나법 105 28. 대선, 누가 되든 왕좌에 오를 자가 내편이어야 한다 112 29. 군더더기 판결 117 30. 무엇이 능력인가 119 31. 세대 문제에 대한 단상 121 32. 우뭇가사리가 세균 배양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125 33. 저 썩은 강을 다음 정권에 넘기지 마라 130 34. 존재 이유 의심받는 군대 귀족, 군 법무관을 132 35. 머리와 가슴과 손의 균형 잡힌 능력 134 36. 땀 138 Ⅲ. 인간 문화의 속/141 1. 성연대와 케밥녀, 차별주의자들은 어떻게 댓글을 게시판으로 활용하나 143 2. 어른의 덕질 147 3. 국민통합, 잘돼야 할 텐데 149 4. 내몰리고 내려앉은 내리사랑 151 5. 여성의 공적 참여 비용이 폭력감수는 아니다 153 6. 불멸의 꿈 155 7. 자기 해방의 서사 157 8. 개벽의 시대를 기다리며 159 9. 지렁이를 위한 탄식 161 10. 서머타임이란 노래를 좋아하세요? 163 11. 고행 2022년 여름 165 12. 8·15 기념과 기억의 정치 169 13. 법도 피를 먹고 자란다 173 14.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176 15. 여성 삼대 178 16. 이준석은 남성도, 청년도 아니다 180 17. 언론과 검찰 182 18. 근대 일본의 묻혀진 목소리들 187 19. 세 무녀의 이야기 189 20. 이준석의 시간과 조국의 시간 191 21. 군 성추행 사건, 차라리 특검을 하라 193 22. 죽음에 분노할 때는 이미 늦은 것 196 23. 인터넷에 전송료는 없다 198 24. 평화로 가는 길은 200 25. 인간 세계는 작다, 스트라이크 존 203 26. 기안 84와 달팽이 인간, 그리고 이대남이라는 정체성 207 27. 간호사는 있지만 간호법은 없는 나라 211 28. 대학 진학도 취업도, 부모 경제력 따라 노력의 결과가 달라지는 현실 214 29. OTT에 빛바랜 영화의 영광, 이젠 극장 울타리 벗어나야 221 30. 스포츠 영화제라는 즐거운 상상 227 31. 이 빵밖에 없었어 229 32. 이준석에게 딱지 붙이는 정치가 위험한 이유 232 33. 예언자 김종철 234 34. 검사의 정체성, 진보의 정체성 237 35. 인공지능이 내려온다 241 36. 피해자는 용서보다 복수를 원한다 243 37. 손열음, 남초 건반 사이에서 빛나는 열 손가락 245 38. 시진핑의 굴기가 없는 세 가지 254 39. 사랑하는 능력 256 40. 윤석열의 우파본색 258 41. 이대남은 왜 시장주의자가 됐을까 260 42. 대한민국은 00공화국이다 262 43. 수도권 중심주의라는 자충수 264 44. 코로나의 시간, 대선의 시간, 미래의 시간 268 45. 서울대 10개 만들기 넘어 5대 생활자립권으로 270 Ⅳ. 나가는 글/275 참고문헌/277 주석/280 |
金龍洙,海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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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즘 먹고 마시는 것, 음식 문화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2018년 기준, 한국인의 커피 소비량은 전 세계 평균의 2.7배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은 코로나19 여파로 수요가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353잔, 즉 하루 한 잔 꼴이다. 커피 전문점 매출 규모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최근에는 에스프레소(espresso) 원두도 선택해서 즐기는 맞춤형 고객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이제 마실 만큼 마셨는지, 더 스페셜(special)한 커피를 찾고 있다. 한 압력으로 추출한 이탈리아식 커피. 에스프레소는 이탈리아어로 ‘빠르다, 신속하다'의 뜻이다. '에스프레소'라는 용어는 현대의 에스프레소 머신이 존재하기 전인 1880년대에 이미 사용되기 시작했다. 처음의 뜻은, 고객의 주문에 맞추어(expressly) 추출한 신선한 커피라는 의미였다. 오늘날 에스프레소는 ‘곱게 갈아 압축한 커피가루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9~11bar의 압력으로 뜨거운 물을 가하여 짧은 시간 동안 추출한 고농축 커피’를 의미한다.
음식에 대한 욕망은 커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시중에 쏟아지는 수많은 음식 관련 서적들이 음식 예찬과 미감의 탐험을 위한 안내서로 바뀌고 있다. 방송 또한 예능은 말할 것도 없고, 각양각색의 이름으로 제작된 프로그램들이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고 있다. 명언처럼 굳어진‘프렌치 파라독스(French paradox)’란 말도 음식의 쾌락에 기반해 나오지 않았는가. 이는 프랑스인들이 고지방을 많이 섭취하는데도 심장계통의 질환이 적고 건강하게 산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제 탐식은 더 이상 죄도, 부끄러움도 아니다. 탐식이 죄인 시대는 종말을 고했고, 미각적 쾌락은 인간이 누려야 할 최고의 선(善)인 시대에 살고 있다. 프랑스인과 관련된 역설을 이르는 말. 본래는 문화적ㆍ사회적 차원에서 프랑스인의 비상식적인 생활이나 사고방식을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는데, 1980년대 이후 프랑스인들이 동물성 지방을 다른 나라의 국민들에 비하여 많이 섭취함에도 불구하고 심장 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오히려 낮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이런 현상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탐식과 미식이 같은 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구르망디즈(gourmandise)는 탐식, 미식, 식도락이라는 세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됐다. 한때 구르망디즈는 음식을 무조건 탐하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고, 심지어 탐식은 간음을 낳는 죄로 여길 정도로 부도덕한 단어였다. 그러나 점차 이 단어는 맛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 즐긴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변화했다. 근대에 이르러 구르망디즈에서 착안한 용어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이 단어는 위(胃)를 의미하는 가스트로(gastro)와 규칙을 의미하는 노모스(nomos)가 결합해 만들어졌다. 미식가를 지칭한 가스트로노미는 잘 먹는 기술과 방법으로 도를 벗어나지 않고, 절제하며 먹는다는 뜻이다. 음식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지만, 그것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에 따라 그 선악이 달라진다. 문제는 도를 벗어난 무절제와 과잉에 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작가 프랑수와 라블레(Rabelais, F.)의 대표작 ‘가르강튀아(Gargantua)’에 등장하는 핵심적 메시지는 과잉이었다. 그는 폭식, 폭음이라는 과잉이 역설적이게도 기독교 중세 세계에 만연한 부조리임을 폭로했다. 프랑스의 작가 라블레(Rabelais, F.)가 지어 1534년에 간행된 풍자 소설. 전 5권으로 된, 프랑스 르네상스의 걸작인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1권으로, 체력과 식욕, 지식욕이 뛰어난 거인 가르강튀아가 중세 말기의 봉건주의와 가톨릭교회를 흥미진진하게 풍자ㆍ비판한 작품이다.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인간이 행하는 악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과잉이라고 했다. 과잉이 왜 악일까. 과잉은 인간으로 하여금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방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잉은 본질을 다르게 보이도록 치장하는 속성까지 가지고 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과잉은 좋은 삶으로 인도하기보다는 우리를 쾌락으로 몰아넣는 거짓이자 악이라고 했다. 탐식을 인간의 내면적 삶과 관련해 처음 언급한 사람은 4세기 수도승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Evagrius Ponticus, 345-399)이다. 그는 인간을 내적으로 타락시키는 8가지 악덕을 열거하면서, 첫 번째 자리에 탐식을 놓았다. 그는 과잉이 낳을 심각한 결과를 우려했다. 우리는 탐욕과 과잉을 부추기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탐욕과 과잉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속삭이고 있다. 더 많이 먹고, 더 맛있는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 성공한 삶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탐식과 과잉이 진실한 삶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인간(人間)은 직립 보행을 하며, 사고와 언어 능력을 바탕으로 문명과 사회를 이루고 사는 고등 동물이다. 문화(文化)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해 습득, 공유, 전달이 되는 행동 양식이다. 이 책은 사람의 본성과 관계지어 사회 전체 구성원의 생활 양식과 행동 양식 및 그 기반이 되는 물질적, 정신적 소산과 관련이 있는 것을 누리는 인간 문화의 겉과 속을 들어야 보고자 한다. 2025년 4월 海東 김용수 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