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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 강예린
특집 리뷰: 혼돈 그리고 그 너머 우리는 지금 얼마나 안전한가 ·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 최현진 무너질 것 같은 국가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 최정규 냉전사 쓰기의 난점, 냉전적 서사로 회귀할 함정 · 『냉전』 ∥ 백승욱 오지의 지질학자가 남긴 연구 기록 · 『김용구 연구 회고록』 ∥ 옥창준 이마고 문디 시간 축적의 악몽, 유예된 정치적 상상 · 〈미키 17〉∥ 한윤아 디자인 리뷰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책의 해체 ∥ 전가경 북&메이커 환대, 그리고 출판으로 가는 문 앞에서의 상상력 ∥ 이옥란 리뷰 감옥에서 온, 환대의 기록 · 『이븐 바투타 여행기』(전2권) ∥ 최소영 이 책은 ‘인생 수업’이 아닙니다 · 『라이프 이즈 하드』 ∥ 송지우 감염의 비평 · 『물듦』 ∥ 백종관 인공지능 시대, 복잡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 『이것이 기술윤리다』 ∥ 정은진 인간의 지능은 AI로 가는 징검다리인가 · 『지능의 기원』 ∥ 권석준 공무원은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 ·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 오서정 반론 제대로 읽지 않고 서평을 써도 되는가 ∥ 김재인 재반론 새로운 기술 혁신 탐험의 동반자로서의 철학 ∥ 권석준 문학 뱃사람 신밧드와 짐꾼 신밧드 ∥ 김만수 우리는 함께 읽기를 모른다 ∥ 김새섬 지금 읽고 있습니다 신간 책꽂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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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일대에서 일하고 살다 보니 매주 집회를 접한다. 큰 소리는 광장에서만 들리는 것이 아니다. 인근 식당이나 지하철 등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종종 듣는다. 마치 알고리즘처럼 비어 있는 청와대를 향해 앉아서 서로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소리지른다 생각했는데, 전쟁에서나 사용하는 말들이 일상생활에서도 난무한다.
--- p.2-3 강예린 「편집실에서」 중에서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는 단지 내전 발생의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이론서가 아니다. 점점 불안정해지는 민주주의의 현실을 진단하고, 우리가 그 흐름에 무관심할 경우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경고하는 책이다. 특히 내전이 더 이상 특정 지역이나 후진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후퇴가 진행되는 모든 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 위협임을 상기시킨다. 민주주의가 단단해 보이는 국가일수록 균열은 더 늦게 포착되지만, 그 파괴력은 훨씬 크다. --- p.22 최현진, 「우리는 지금 얼마나 안전한가」 중에서 대중의 목소리가 9.9퍼센트가 마련해 놓은 논리의 틀에 담겨서 9.9퍼센트의 입을 통해서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직접 정치적 공간에 의견을 반영하고 의제화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의 목소리를 담아낼 논리와 그것을 전달할 힘이 필요하다. 한편으로 이는 자원과 역량의 문제이고, 평등의 문제다. 다른 한편으로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통로가 마련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면, 이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평등과 민주주의,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 --- p.36 최정규 「무너질 것 같은 국가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중에서 냉전 시대를 다시 묻는 이유는, 이 시대를 자기 방식으로 끌어가고자 한두 세력 즉 미국과 소련 공히 19세기 위기를 돌파하는 각자의 ‘대안’의 경합을 벌인 이 시대에 어떤 나름의 해결책이 모색되어 일정 시기 특정한 질서가 유지되었는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질문의 핵심은 19세기 위기를 낳은 ‘자기 조정적 시장경제’의 무오류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할 수 있는지, ‘인민 주권’의 시대를 정치의 틀 속에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 그리고 식민주의 시대를 탈피해 ‘민족자결’의 틀을 어떻게 수립할 것인가였다고 할 것이다. --- p.52-53 백승욱 「냉전사 쓰기의 난점, 냉전적 서사로 회귀할 함정」 중에서 김용구는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단층선을 둘러싼 강대국 간의 세계관 충돌을, 한반도라는 지역과 얽힌 강대국의 외교사 흐름과 그 속에서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피며, 힘의 관계를 역추적하고자 했다.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비교 문명’과 ‘개념사’의 만남은 한반도라는 오지에서 세계사의 흐름을 그 누구보다 절절하게 포착했던 김용구였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그는 단순한 오지의 지리학을 넘어서, 그 지질의 역사까지 치밀하게 파고드는 ‘지질학자’가 될 수 있었다. --- p.67 옥창준 「오지의 지질학자가 남긴 연구 기록」 중에서 〈미키 17〉에서 작동하는 정치 행위도 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는 일종의 무대이자 공기처럼 ‘파시즘’이, 혹은 괴상하지만 정교하게 디자인된 ‘파시스트’ 캐릭터가 등장해 왔다. (……) 그의 영화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어 본다면, 어쩌면 그 파시스트들은 사라지지 않는 삶의(영화의) 조건이며, 영화의 서사는 궁극적으로 그들을 제거하는 데 계속해서 (어쩌면 일부러) 실패하고 있다. 영화 말미, 미키를 복사하던 프린트기가 파시스트를 복사하는 악몽 같은 장면은 세계를 이어가기 위해 어쩌면 그를 없애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히기도 한다. --- p.80-81 한윤아 「시간 축적의 악몽, 유예된 정치적 상상: 〈미키 17〉」 중에서 컬랜드는 책으로 대변되는 가부장제에 반박하며 자신의 서재에 있는 약 150여 권의 백인 남성 사진가들의 사진책들을 해체했다. (……) 가위질에서 살아남은 사진들은 컬랜드만의 독자적인 해석으로 재조합되어 이전 사진가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워버린다. 기존 백인 남성의 사진책을 해체한 후 남은 ‘앙상한’ 표지 껍데기만 배경에 있다. 기존 표지가 감싸고 있던 내지들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컬랜드가 ‘구원한’ 이미지들만이 살아남아 출처를 모르는 사진들이 모여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한다. 백인 남성 사진가가 구축한 이미지의 성벽을 허물어뜨린다. 이제서야 비로소 책의 제목을 파악하게 된다. --- p.82-83 전가경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으로서의 책의 해체」 중에서 취업 준비 프로젝트로서 지피지기 캠프는 다만 길잡이 역할을 할 뿐이다. ‘환대, 그리고 출판으로 가는 문 앞에서의 상상력’이라는 표현으로 캠프 참가자들의 경험을 정의해 보고는 한다. (……)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무엇이라 정의하든 그 이면에는 청년 시절에 경험한 환대와 연대의 기억이 있다. 일을 이어오는 동안 늘 그런 마음들이 함께 있었다. 편집자 지망생 청년들, 지피지기 캠프의 청년들이 선배 출판인들, 같은 꿈을 꾸는 동기들과 나눈 환대와 상상력의 시간이 거친 현장을 일구어 가는 동안 오래도록 든든하게 간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p.107 이옥란 「환대, 그리고 출판으로 가는 문 앞에서의 상상력」 중에서 이븐 바투타가 메카 순례를 마친 이후에도 여정을 계속한 데에는 세상에 대한 그 자신의 지적 호기심뿐만 아니라, 당시 그가 알고 있는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던 이슬람 세계(D?r al-Islam)에서 받은 지속적인 환대가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는 동시대 여행가인 유럽 출신의 기독교도 마르코 폴로에게는 불가능했을 경험이었다. --- p.122-123 최소영 「감옥에서 온, 환대의 기록」 중에서 사는 게 힘들다는 걸 그렇게 잘 이해해서 뭐 하겠냐고 물을 수 있겠으나, 행복한 삶과 잘 사는 삶을 구분하는 세티야에게 현실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행복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세티야에게 철학적 자조의 궁극적 목적은 잘 사는 것이다. 현실과 괴리되어 망상에 빠진 사람도 감각적 의미에서는 행복할 수 있지만, 망상의 삶을 잘 사는 삶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잘 산다는 것은 나의 현실에 닿아 있는 삶이고, 나의 현실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그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 p.135 송지우 「이 책은 ‘인생 수업’이 아닙니다」 중에서 이 글에서 저자는 일관되게 한 가지 질문을 반복한다. 그것은 자유간접화법이 단순한 서술 기법이 아니라 (파졸리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른 생명 경험을 다시 살아 내는 문체적 조건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이는 작가가 인물의 ‘말’을 단순히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언어적 감각과 사회적 조건, 이데올로기적 지형까지도 ‘되살리는’ 문체적 사건으로서 자유간접화법을 사유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 p.147-148 백종관 「감염의 비평」 중에서 기술의 비도구적 사용은 기술이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판단하기에 조금 더 복잡하다. 완전한 자율주행 중, 즉 차에 탑승한 사람이 전혀 주행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위험에 처해 있고 그들 중 일부는 다칠 수밖에 없다면 자율주행차는 누구의 안전을 우선으로 여겨야 할까? 이런 도덕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에 자율주행차는 도구라고 하기 어렵고, 도구의 사용자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하다. --- p.159 정은진 「인공지능 시대, 복잡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중에서 베넷은 지능의 빅 히스토리를 통해 진화생물학, 신경과학, 비교심리학, 인공지능의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유비와 비교 사례를 제시한다. 이러한 연계는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생각 소재를 던져 준다. 저자가 밝히듯, 이 책은 자신의 지적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쓴 책이기도 하므로, 비슷한 호기심을 가진 독자들에게도 즐거운 지적 자극과 함께 짧은 학문적 모험을 제공할 수 있다. --- p.179 권석준 「인간의 지능은 AI로 진화하는 징검다리인가」 중에서 나는 이 책이 무엇보다도 일반 국민에게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민주주의의 원칙에 비추어 행정부의 진정한 주인은 국민이다. 공직 사회의 문제를 단편적인 사건 중심의 반응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인 원인과 제도적 한계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갈 때, 비로소 건설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이러한 비판은 정부를 위축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정부가 본연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외부 동력이 될 수 있다 --- p.189 오서정 「공무원은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 중에서 화이결실(花而結實) 낙화역생(落花亦生).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게 훌륭한 인생이고 모두 그처럼 꽃과 열매를 얻기를 축원하는 바이나, 떨어지는 꽃도 인생의 일부가 아닐 리 없다. 내 인생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떨어지는 꽃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내 인생을 꽃처럼 살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것. 그런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었다. --- p.211 김만수 「뱃사람 신밧드와 짐꾼 신밧드」 중에서 이전에 이런 독서 모임을 못 봤기 때문에, 나는 오해를 했다. 그리고 나처럼 오해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독서 장려’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대체로 ‘책을 읽지 않는 잠재 독자’를 향해 있다. 그러다 보니 읽기 어려운 책보다 쉬운 책을 권하고, 독서에 대한 보상을 강조한다. 가볍고 얇은 책이라도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나으니까. 그런데 잠재 독자가 아닌 ‘찐독자’들에게 가장 큰 보상은 독서 그 자체다. 그들을 유혹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책’이지, ‘가벼운 책’이 아니다. --- p.219-220 김새섬 「제목은 가능한 세상의 증거를 보여 준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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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리뷰: 혼돈 그리고 그 너머
“큰 소리는 광장에서만 들리는 것이 아니다. 인근 식당이나 지하철 등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날카로운 소리를 종종 듣는다. 마치 알고리즘처럼 비어 있는 청와대를 향해 앉아서, 서로의 뒤통수만 바라보고 소리 지른다 생각했는데, 전쟁에서나 사용하는 말들이 일상생활에서도 난무한다.” ―강예린, 「편집실에서」 중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로도 한국 사회의 정치적 갈등은 봉합되기는커녕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이는 비단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혐오와 적대가 일상화되고, 갈등과 분열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혼돈의 시대와 그 너머를 살피는 네 권의 책을 만나본다. 정치학자 최현진은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통해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분열시키는 다양한 요인을 살피며, 정치적 양극화가 일상화된 작금의 한국 사회를 성찰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경제학자 최정규는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읽고 엘리트 과잉생산과 대중의 궁핍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대중들이 직접 정치적 공간에 의견을 반영하고 의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학자 백승욱은 『냉전』을 읽고 냉전을 전 지구적 이데올로기 대결과 20세기의 세계사로 확장한 베스타의 시도를 지지하는 한편, 기존의 냉전적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강조한다. 정치학자 옥창준은 『김용구 연구 회고록』을 살피며 2025년 2월에 타계한 김용구가 한국의 국제정치학에 이바지한 60년간의 노고를 살핀다. “내전은 정치 체제가 안정되어 있을 때보다, 민주화 과정이 정체되거나 역행하는 중간 단계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최현진(정치학자, 경희대학교 교수)은 「우리는 지금 얼마나 안전한가」에서 바버라 월터의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다룬다. 최현진은 사회를 분열시키는 다섯 가지 요인에 대한 분석을 통해 내전이 일부 국가의 특수한 사정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약화하고 정치적 분열이 극단화될 때 어느 국가에게나 닥칠 수 있는 위기임을 강조한다. 또한 양극화가 일상화되고 정치적 제도가 마비된 작금의 한국 사회 역시 그 경계에 서 있음을 짚어낸다. “불만이 분노로 바뀌고, 분노가 과잉생산된 엘리트 지망자 집단과 결합하면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최정규(경제학자, 경북대학교 교수)는 「무너질 것 같은 국가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두 개의 키워드로 살펴본 복잡한 세상 이야기」에서 피터 터친의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다룬다. 최정규는 엘리트 과잉생산과 대중의 궁핍함이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의 균형을 무너뜨리는지 분석한다. 그는 지위 경쟁이 격화될수록 대중의 좌절과 분노가 커지고, 정치 시스템은 이들을 수용하지 못한 채 불안정성을 키운다고 진단한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대중이 정치적 의사를 조직하고 제도에 실질적으로 개입해야 함을 강조한다. “한 축의 붕괴는 다른 한 축의 승리가 아니라, 두 세력을 묶은 한 시대의 ‘종료’와 위기의 재도래로 인식되어야 하는 것이다.” 백승욱(사회학자, 중앙대학교 교수)은 「냉전사 쓰기의 난점, 냉전적 서사로 회귀할 함정」에서 오드 아르네 베르타의 『냉전』에 대해 논의한다. 백승욱은 냉전을 전 지구적 질서 재편의 역사로 읽어내려는 베스타의 시도에 주목하면서도, 그가 제시하는 냉전 체제가 기존의 냉전적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점을 함께 언급한다. 그러한 지점을 통해 오늘날까지 재생산되는 냉전 서사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세계 질서를 바라보는 인식 틀을 재구성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그는 단순한 오지의 지리학을 넘어서, 그 지질의 역사까지 치밀하게 파고드는 ‘지질학자’가 될 수 있었다.” 옥창준(한국학연구원 조교수)은 「오지의 지질학자가 남긴 연구 기록」에서 『김용구 연구 회고록』을 살피며 김용구가 걸어온 60년간의 학문적 여정을 따라 걷는다. 옥창준은 자국의 외교 문서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할 만큼 정신적으로 낙후된 한국에서 김용구가 국제정치학자로서 어떤 문제의식을 키워나갔는지를 살피며, 그가 한국의 ‘오지 사고’ 극복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오지의 지질학자’였음을 밝힌다. 나아가 세계의 중심과 주변 사이에서 골몰하며 학문적 성과를 보인 김용구처럼, 지금 우리에게 반(半)주변적 사고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리뷰〉에서는 인간과 사회를 둘러싼 다채로운 질문을 톺아보는 책들을 소개한다. 동양사학자 최소영은 정수일 역주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살펴보며,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이 방대한 여행기를 감옥에서 역주해야 했던 정수일의 노고를 기린다. 본지 편집위원인 송지우는 키어런 세티야의 『라이프 이즈 하드』에서 살면서 맞닥뜨리는 부정적인 경험과 감정들을 논리적으로 해체하는 저자의 분석철학적 고찰을 읽는다. 시각 예술가 백종관은 유은성의 『물듦』을 통해, 파졸리니의 자유간접화법을 상호감염의 미학과 연관 지어 확장한다. 컴퓨터과학자 정은진은 스벤 뉘홀름의 『이것이 기술윤리다』 속에 등장하는, 우리가 앞으로 맞닥뜨릴 기술 발전에 따른 기술 윤리의 복합적인 면모를 살펴본다. 본지 편집위원인 권석준은 지능의 진화를 일련의 단계적 돌파로 해석하는 막스 베넷의 『지능의 기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국정전문대학원 조교수인 오서정은 노환동의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읽고 공직 사회의 비효율성과 불합리함에 공감하며, 공무원과 행정부의 역할에 대해 질문한다. “이븐 바투타는 이 열린 국경을 넘어 환대 속에 여정을 이어 나갔다.” 동양사학자 최소영은 「감옥에서 온, 환대의 기록」에서 2025년 2월에 타계한 정수일 역주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다룬다. 최소영은 이븐 바투타가 다녀간 몇 개의 주요 지역에 대한 기록을 살펴봄으로써, 방대한 여행기를 효과적으로 압축한다. 나아가 이븐 바투타의 기나긴 여행이 팍스 몽골리카의 열린 국경과 이슬람교의 지속적인 환대 덕분임을 환기하며, 차디찬 감옥에 갇혀 따뜻한 환대의 여행기를 역주했던 정수일의 노고를 기린다. “삶을 의미 있게 하려면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송지우(본지 편집위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책은 ‘인생 수업’이 아닙니다」에서 분석철학자 키어런 세티야의 『라이프 이즈 하드』를 소개한다. 여기서 송지우는 섣부른 희망에 기대지 않고 삶에 찾아온 부정적인 감정과 경험을 논리적으로 분석해서 받아드리는 저자의 철학적 고찰을 살핀다. 나아가, 잘 살기 위해서는 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고, 그 현실을 깊이 이해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철학적 자조’의 쓸모를 강조한다. “‘상호감염의 미학’이란 결국, 예술이 타자의 언어로 말할 수 있기 위한 가능성과 그 윤리적 전제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영화감독이자 시각 예술가인 백종관은 「감염의 비평: 『물듦』이 사유하는 예술의 조건들」에서 유은성의 『물듦』을 평한다. 백종관은 파졸리니의 자유간접화법을 단순한 서술 기법이 아닌, 상호감염의 미학을 윤리적 조건으로 삼는 문체적 사건으로 사유한다. 인물의 언어적 감각과 사회적 조건, 이데올로기적 지형까지도 되살리는 확장된 자유간접화법 속에서 오늘날의 예술적 실천과 디스플레이의 장소성을 재발견한다. “기술의 복잡도가 올라갈수록 책임 공백을 해결하는 일도 복잡해진다.” 컴퓨터과학자 정은진은 「인공지능 시대, 복잡한 질문들에 대답하기」에서 스벤 뉘홀름의 『이것이 기술윤리다』를 다룬다. 정은진은 기술 발전과 인간 사이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갈등 상황을 소개하며 기술 윤리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나아가 정은진은 기술이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책임의 주체가 분명하지 않은 ‘책임 공백’이 빈번해진다고 말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은 기술 윤리의 담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지능이 진화할지 탐구하는 것은 연구자의 몫이겠지만, 상상은 모두의 몫이다.” 권석준(본지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 교수)은 「인간의 지능은 AI로 진화하는 징검다리인가: 지능의 진화 과정으로서의 인공지능의 의미」에서 막스 베넷의 『지능의 기원』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지능의 진화를 일련의 단계적 돌파로 해석하며 인공지능의 출현 역시 이러한 단계적 돌파의 연장선으로 간주한다. 이에 대해 권석준은 저자의 주장이 내포한 ‘진화의 필연성’과 ‘목적론적 방향성’이 학문적 엄밀함을 갖추었는지를 되묻는다. “오늘날 공직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조명한다.” 국정전문대학원 조교수 오서정은 「공무원은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에서 노한동의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다룬다. 오서정은 저자가 비판하는 공직 사회의 다양한 문제점에 대해 기획재정부 사무관으로 일했던 자신의 공직 경험에 비추어 보며 공감한다. 나아가 단편적인 사건이 아닌, 구조적인 원인과 제도적 한계에 대한 비판이 이뤄질 때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며, 국민 모두의 관심과 참여를 촉구한다. 반론과 재반론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지난 12호(2023년 겨울) ‘특집 리뷰: 인공지능,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는가’에서 『AI 빅뱅』(동아시아, 2023)을 다룬 권석준의 「미학과 철학의 기준으로 재평가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운명」을 게재했다. 이에 『AI 빅뱅』의 저자 김재인(철학자,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은 반론 「제대로 읽지 않고 서평을 써도 되는가」를 통해 권석준의 서평 「미학과 철학의 기준으로 재평가하는 생성형 인공지능의 운명」이 “내가 한 얘기, 혹은 내가 하지 않은 얘기의 반대되는 얘기를 쟁점으로 논평”했다고 비판하며, 서평자가 서평 도서를 제대로 읽은 것이 맞는지 묻는다. 이에 권석준(본지 편집위원,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 교수)은 재반론 「새로운 기술 혁신 탐험의 동반자로서의 철학」을 통해, 『AI 빅뱅』와 반론에서 말하는 AI의 다양한 문제점이 실은 빠르게 해결되는 중이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음을 짚는다. 동시에, AI에 대한 원 저자의 설익은 분석과 판단을 비판한다.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소각장의 쓰레기가 된 미키들. 이 행성의 저항자들이 박수를 치는 동안, 모두 어디에 존재하고 기억되고 있는 것일까.” 이마고 문디 코너에서는 한윤아(출판 및 시각예술 기획자)의 「시간 축적의 악몽, 유예된 정치적 상상: 〈미키 17〉」이 실린다. 한윤아는 소모품이 된 미키를 보면서 느낀 불편함을 따라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을 살핀다.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 『여름으로 가는 문』, 데이비드 크로넌버그의 영화 〈코스모폴리스〉 등 다양한 매체를 필터처럼 활용해 영화에 깔린 자본주의와 파시즘의 세계를 들춘다. 나아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한계와 이미 죽어버린 자들에 대한 애도가 끝끝내 다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 영화의 해방적 서사가 거짓된 약속임을 짚어낸다. 자인 리뷰 “여성을 향한 남성의 차별적 시선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때마다 여성은 가라앉는다. 『SCUMB Manifesto』는 그런 가부장적 사회에 가위질이라는 삿대질을 한다.” 이번 디자인 리뷰는 디자인 저술가 전가경이 쓴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으로서 책의 해체」이다. 전가경은 책이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음을 지적하며, 미국 사진가 저스틴 컬랜드의 『SCUMB Manifesto』를 소개한다. 이 책은 조각난 신체들이 복잡하게 뒤섞인 콜라주로 가득한데, 이는 권위 있는 백인 남성 사진가의 이미지를 오려내 재조합한 컬랜드의 독창적인 작업이다. 전가경은 이러한 콜라주가 단순한 디자인 실험을 넘어, 밸러리 솔라나스의 급진적 선언문 『SCUM Manifesto』를 시각적으로 재해석한 하나의 정치적 실천임을 강조한다. 또 이 이미지들이 처음에는 섬뜩하고 기이하게 다가오지만, 결국에는 봉합과 수정,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을 상징하는 은유로 이어짐을 짚어 낸다. 북&메이커: 출판의 낭만과 일상 “편집자 지망생 청년들, 지피지기 캠프의 청년들이 선배 출판인들, 같은 꿈을 꾸는 동기들과 나눈 환대와 상상력의 시간이 거친 현장을 일구어 가는 동안 오래도록 든든하게 간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북&메이커에는 출판 커뮤니티 ‘올차캠프’와 출판 편집자 워크숍 ‘지피지기 스타터 캠프’를 운영하는 이옥란의 「환대, 그리고 출판으로 가는 문 앞에서의 상상력」이 실렸다. 오랜 시간 출판 교육 현장에서 힘써온 이옥란은 출판계의 문 앞에 선 이들의 망설임과 가능성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이옥란은 편집자 지망생들이 업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며 출판 커뮤니티 ‘올차 캠프’와 출판 편집자 취업 준비 워크숍인 ‘지피지기 스타터 캠프’를 만들었다. 출판을 꿈꾸는 이들이 조금 덜 외롭게 그 문 앞에 설 수 있도록, 이옥란은 여전히 상상의 가능성을 실험 중이다.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문학에는 『스토리 리부트』, 『옛이야기의 귀환』, 『진달래꽃 다시 읽기』 등을 쓴 김만수 교수와 온라인 북클럽 플랫폼 ‘그믐’을 만들어 사람과 책을 잇는 김새섬 대표의 에세이가 실렸다. 김만수 교수는 「뱃사람 신밧드, 짐꾼 신밧드」에서 정년을 앞둔 노학자의 소회를 털어놓는다. 연구실에 가득한 책을 정리하며 학자로서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자신은 먼바다를 항해하며 보물을 찾는 뱃사람 신밧드가 아니라, 그저 평생 짐을 나르는 짐꾼 신밧드였음을, 그러나 짐꾼 신밧드의 삶도 나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나아가 제품을 팔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저니맨’을 예로 들며, 문화콘텐츠문화경영 교수로서 문화산업의 본령에 대한 마지막 가르침을 전한다. 김새섬 대표의 「우리는 함께 읽기를 모른다」에서는 온라인 북클럽 플랫폼 ‘그믐’을 만들어가며 마주했던 문제들과 그 풀이법을 소개한다. 김새섬은 독서를 사랑하는 ‘찐독자’는 커피 쿠폰 따위가 아니라 좋은 책으로만 움직이며, 그러한 독자들은 책에 대한 자기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김새섬의 풀이법은 ‘그믐’이 어떻게 2,100여 개의 독서 모임, 15,000명이 넘는 회원, 19만 개가 넘는 글을 품은 독서 커뮤니티가 될 수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하다.” ‘어떤’ 책을 ‘왜’, 어떻게 읽을 것인가? 2020년 12월 0호로 출발하여 2025년 봄, 창간 4주년에 이른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18인의 편집진은 오랜 토론을 거쳐서 주제와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쓴 뒤에, 이를 내부에서 돌려 읽으면서 비판을 듣고, 이를 반영해서 글을 고친다. 타인의 책을 비평하고 비판하듯이, 자신들의 글도 같은 비판의 과정을 거친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물리학, 생물학, 법조, 북디자인,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8인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