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실에서∥김두얼
특집 리뷰 특집을 기획하며: 모든 여행은 세 번 떠난다, 책 읽기도 그렇다∥김영민 모데스틴! 그리부예! 우리 이제 떠나볼까?∥심승희 여행 속에서 나는 건축가가 됐다∥강예린 너를 보니, 내 옛 생각이 나서 좋다∥박훈 원수를 보러 가는 여행: 연행(燕行)과 홍대용의 생각∥김영민 18세기의 어떤 여행(들): 그 야심과 허영과 낭만에 대하여∥윤비 세계의 발견, 유럽의 탄생∥조준희 우주 여행도 직업이 되면∥심채경 영화 리뷰 서바이벌 미학 - 김기영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김홍중 디자인 리뷰 ‘본문’이라는 이미지∥김홍중 리뷰 입시지옥은 우리가 평등하다는 증거일까? ∥김현경 탁월함의 역설∥조문영 남자의 도시, 남자의 예술∥한승혜 정치의 자리에 대한 질문과 응답∥유정훈 무당은 알겠다. 그런데 유생은?∥안동섭 문학: 에세이 책 읽기와 함께 글쓰기를∥이장욱 정확한 인용에의 욕구∥정세랑 책을 내는 기분∥최은영 |
심승희의 다른 상품
강예린의 다른 상품
朴薰
박훈의 다른 상품
김영민의 다른 상품
윤비의 다른 상품
심채경의 다른 상품
金洪中
김홍중의 다른 상품
김형진의 다른 상품
김현경의 다른 상품
조문영 의 다른 상품
한승혜의 다른 상품
Lee, Jang-wook,李章旭
이장욱의 다른 상품
鄭世朗
정세랑의 다른 상품
최은영의 다른 상품
趙俊熙
조준희의 다른 상품
[편집실에서] 중에서
모든 여행은 세 번 떠난다. 먼저 상상을 통해 그곳으로 떠난다. 그다음, 몸을 움직여 그곳으로 떠난다. 끝으로, 기억을 통해 다시 한번 그곳으로 떠난다. (……) 독서도 여행이다. 독서라는 여행도 세 번 떠난다. 우리는 책을 펼치기 전에 상상을 통해 먼저 책과 만난다. 그다음, 마침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한다. 읽고 난 뒤, 기억을 통해 다시 한번 책을 여행한다. (……) 책을 다 읽은 뒤, 서평 쓰기를 통해 다시 한번 그 책을 여행한다. 서평을 쓰는 사람만큼 철저하게 책을 다시 읽는 사람이 있을까. 서평은 단순한 줄거리 요약이 아니기에, 저자가 제시한 경로를 수동적으로 따라가지 않고 적극적으로 내용을 재구성한다. 이 능동적인 과정이 없다면, 독서 체험은 쉽게 휘발된다. 서평을 쓰지 않은 독서는 여행기를 쓰지 않은 여행과 같다. 쓰기를 통해 여행은 비로소 자기의 여행이 된다. (……) 서평 쓰기는 책의 세계로 떠난 자신이 고향에 돌아오려는 집요한 노력이다. 서평 쓰기를 통해 책 여행자는 비로소 여행으로부터 돌아온다. 영혼을 뒤흔든 책을 만나고 마침내 돌아올 수 있을 때, 독자는 더 이상 책 읽기 전의 자신이 아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장거리 여행이 어려워진 2021년, 서울리뷰오브북스는 독자들을 서평을 통한 상상의 여행에 초대합니다. 심승희는 “인간화된 자연” 속으로, 강예린은 건축의 성지들로, 박훈은 반세기 전 한국으로, 김영민은 중국으로, 윤비는 유럽으로, 조준희는 드넓은 세계로, 그리고 마침내 심채경은 저 광막한 우주로 독자들을 안내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시기를, 그리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편집위원 김영민 메리필드에게 당나귀는 삶의 속도를 재조정해 주는 메트로놈 같은 존재이다. 자꾸만 빨라지면서 앞만 보고 달리게 만들었던 삶의 속도를 초기화시키고, 당나귀의 속도로 찬찬히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상에 귀기울이게 해준다 --- p. 28 여행이 힘든 요즘 유튜브나 가상현실의 기술을 통해 건축 공간을 제한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가상 플랫폼에서의 여행이다. 선별한 장면과 해석까지 자세히 곁들이는 공간 소개의 플랫폼에서, 우리는 실제 여행 보다 건축을 깊숙이 섬세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여행에 대한 갈급의 많은 부분이 해소된다. 하지만 건축과 장소를 보는 사이사이 우리가 느끼는 그 정서와 감각은 여전히 그립다. 체험의 대상으로서 건축물 뿐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나러 가는 사이의 경험,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모두 건축여행이다. --- p. 42 혐한이 일본 사회에서 커가고 있는 동안, 대체로 이들은 적당한 범위 내에서 점잖게 나무랐을 뿐, 그것과 격렬하게 싸우지는 않았다고 나는 느낀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에는 사활을 걸고 싸우지만, 한국에 대한 식민주의적 인식은 정도는 물론 다르지만 그들도 공유하고 있고, 그 확산은 그들의 입지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혐한이 일본의 ‘공기’가 되어 가고 있는 지금, ‘양심적 일본 지식인’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 pp. 54-55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청나라는 명나라라는 동반자를 잡아먹은 원수 같은 존재였다. 김종후는 청나라 여행을 “더러운 원수의 국토를 밟는 것”(김명호, 87쪽)이라고 말한다. 청나라 문물을 경험하고자 떠나는 홍대용이라고 이런 원수 의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진시황제를 암살하러 가는 자객 형가처럼 처신하지는 못할망정, 사신단의 일원으로 따라가는 자신의 행색을 한탄한다. “비수를 옆에 끼고 역수를 못 건넌들, 금등(金?)이 앞에 서니 이것이 무슨 일인가.”(김명호, 94쪽) 북경에 도착해서도 홍대용은 공자의 사당에 사용된 만주 문자를 보고 오랑캐의 글자로 공자 사상이 더럽혀졌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홍대용은 북경 문물이 보여주는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하지 못한다. 홍대용의 마음에 큰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그 파도는 홍대용을 어디로 데려다주었을까? --- pp. 87-88 따라서 그랜드 투어는 단지 허영과 욕망, 우스꽝스러움과 야심, 사치와 낭비와 지나친 진지함과 탐구열이 뒤섞인 인간 군상들의 소극(또는 비극)만은 아니다. 그랜드 투어는 몇몇 가문과 그들이 배출한 혹은 그들 주위에 모인 엘리트들이 유럽과 세계를 주름잡던 그 시대, 그들의 삶의 필요와 비전이 녹아 있는 삶의 한 부분이었다. 설혜심의 『그랜드 투어』는 인류문화사에서 대중의 시대가 열리기 전 구 엘리트들이 지배했던 시대의 한 자락을 그려낸 초상화이다. --- p. 96 『욕망하는 지도』와 『르네상스』가 보여주는 근대 초기 유럽에서 고전의 ‘부활’과 세계의 ‘발견’은 아이러니이다. 앞서 언급한 여행가이자 문필가 몸은 상상으로 떠나는 여행을 찬양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도입은 결국 상상의 영역을 벗어나 자신이 가진 환상을 깨는 일그러진 실제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한 반어적 장치였다. 유럽 역시 세계지도를 통해서 고전의 지식을 부활시키고 동방 진출에 대한 상상을 펼쳤으나, 실제 여행을 통해서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와 시실과 마주쳤고 그그로 가지고 있었떤 환상들이 깨지며 르네상스가 펼쳐졌다. 근대 유럽은 여행의 아이러니 속에서 탄생했다. --- p. 112 '중력'이라는 지구의 속박을 벗어던지고 창공 높이 솟아오르는 여행에는 길고 긴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 우주로 떠나는 사람들만큼 길고 철저한 여행 준비를 거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발이 모두 우주로 떠오른 뒤에도 이 세상의 굴레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말이다. 다만 우리의 할 일은, 끝없이 여행을 꿈꾸고, 새로운 공간을 상상하고, 그곳에서의 유익함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마침내 더 나은 여행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 p. 126 김기영의 기괴는 죽음 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 쪽에서 온다. (좀비처럼) 부패하고, 훼손되고, 파열된 내장이나 피부가 끔찍한 것이 아니라, 시신 속에서 아직도 꿈틀대며 생명 운동을 하는 구더기나 정충의 존재 그 자체가 그로테스크한 것이다. 무시무시하고 섬뜩한 것은 죽음이라기보다 죽음 속에 파고 들어가 확장되고 연장되는 생명, 즉 서바이벌이다. 서바이벌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음과 대면하여 자신의 힘을 빼앗기고, 삭감되고, 부서지지만 결국 죽음을 벗어남으로써 더 질겨지고, 강인해지고, 집요해진 존재의 특수한 형태다. (……) 모든 생존자는 생명을 끌고 죽음 쪽으로 최대한 가까이 감으로써, 부분적으로 파괴된 채 살아난 자들이다. 생존 현상 안에는 생명과 죽음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혀있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기괴하다. 김기영의 기괴 미학은 생존 미학과 같은 뿌리를 갖는다. --- p. 135 차라리 본문을 하나의 이미지로 본다면 어떨까. 글자를 통해 의미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닌 제각기 다른 밝음과 어두움, 배치와 리듬을 가진 시각 결과물로서 본문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가독성이라는 앙상한 기준 대신 하얀 배경 위의 검은색 글자들이 만들어내는 긴장감, 조화로움, 아이러니, 유쾌함, 불길함, 고요함 등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 p. 149 저자는 실업계 고등학생의 비율이 50% 아래로 떨어지자 교실붕괴가 시작되었다면서 “산업정책의 실종”을 아쉬워 한다. 그 말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억지로라도 실업계에 보내야 한다는 뜻인가? 그런데 지금도 가난한 집 아이들을 실업계로 유인하여 저숙련 노동자로 만드는 정책은 차고 넘치도록 많다. 강제노동에 지나지 않는 현장실습과 산학일체형 도제학교, 실업계 학생들의 대학진학을 막는 것이 핵심인 선취업후진학 제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진로교육법 등. 실업계 학생들은 박정희 시대와 다름 없이 교육의 예외지대에 갇혀 있다. 실제로 실업교육과 관련된 정책들은 대부분 교육부가 아닌 고용노동부 소관이다. ‘산업정책’이 실종되었다는 말은 이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는 뜻인가? --- p. 160 내일이 오늘보다 전혀 나을 것 같지 않은 때, 인생이 구질구질한 게 당연하고 무엇을 감히 더 바라는 게 사치로 느껴져 억울하고 서글픈 마음조차 잦아들던 때, 다해는 은상이 건넨 이더리움 차트의 ‘J곡선’을 보았다.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다 별안간 치솟으며 급하게 우상향 중인 J커브. 돈에 순수하게 미쳐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은상 언니를 믿어도 되나 고민을 거듭했지만, 다해는 “우리 같은 애들한테 아주 잠깐 우연히 열린 유일한 기회”를 받아들이기로 작정한다. J는 “내게 절실히 필요한 것”(95쪽), 벼랑 끄트머리에서 발견한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곡선”(90쪽)이었기 때문이다. --- pp. 167-168 분명히 존재함에도 많은 이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남영동의 대공분실처럼,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며 여행과 예술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하려고 시도한 이 책은 아쉽게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존재했던, 욕망과 의지와 꿈을 지녔던 당대 여성들의 예술과 그들의 생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말았다. 부제와 같이 국적과 국경을 뛰어넘는데는 성공했는지 몰라도 성별에 관해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게 있어 이 책은 본연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류 보편의 어떠한 것이 아닌 남자만의 관점으로 바라본 도시와 예술이라는 인상으로 남게 되었다. --- p. 184 정치의 응답 또한 필요하다. 관료는 정치에 혹은 민의에 복종해야 한다는 취지로 두 책을 이해하는 것은 단선적인 독해다. 정치 리더십이 결정권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관료와 달리 국민이 선거를 통해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책에는 모두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강조된다. 정치가 정치의 자리를 찾는 방법은, 민주정의 당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의한 문제 해결이 관료의 결정 혹은 다른 어떤 절차보다 낫다는 것을 스스로 책임지고 입증하는 것이다. --- p. 196 “언제 어디에서나 인간은 종교를 통해 질서 잡힌 지배체제를 구축하려 하는가 하면, 풍요와 행복이 가득한 삶을 누리려고 한다. (……) 그런 다양한 욕망이 뒤엉키는 방식”이 그저 시대마다 달랐을 뿐이다(254쪽). 특수한 역사적 소재로부터 현재성과 보편성을 이끌어내는 것은 사학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우아한 마무리이다. --- p. 206 삶을 살면서, 말을 하면서, 글을 쓰면서, 과잉결정을 피할 수는 없다. 아니 과잉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언어도 작동하지 않고 제도도 작동하지 않고 더 나은 사회도 만들어지지 않는다. 과잉결정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한 마디도 할 수 없고 한 문장도 쓸 수 없다. 그래서 글쓰기는 괴로움과 고통 속에서 과잉결정의 폭력, 과잉결정의 기만, 과잉결정의 오만을 섬세하게 피하고 제어하고자 하는 자기 수련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 p. 221 어쩌면 건조하고, 짧고, 서로 연결될 때만 의미가 생기는 문장들을 골라 쓰는 게 원치 않는 상황에 빠지지 않을 방도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미래가 닥치든 결국 쓰고 싶은 대로 쓸 수밖에 없다는 걸 안다. 앞으로도 감당해야 할 일들은 감당하고 감당하지 못할 일들엔 정신없이 휩쓸려갈 테니, 치돌고 엇도는 물에 떨어질 낙엽의 기분을 짐작해본다. 당혹스러운 인용의 경험이 있는 이들만이 이해할 것이고, 그들에게 우정의 표시를 보내고 싶어진다. --- p. 227 나는 그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비열하고 나약한, 악의로 가득 찬 인간은 나를 상처입힐 수는 있지만 내 존재의 뿌리는 조금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다. 내 삶은 결코 망쳐지지 않아. 내 인생은 누군가의 악의에 의해 파괴될 수 없어. 세 번째 책을 내는 일은 내게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그 말의 진실함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때는 그토록 불가능해 보였던 미래에서 지금 나는 이 글을 쓴다. 책을 내서 기쁘고 좋아. 그 단순한 말 안에 담긴 지난 시간의 마음들을 돌아보면서. --- p. 235 |
3호 특집: 모든 여행은 세 번 떠난다
《서울리뷰오브북스》 3호에서는 ‘모든 여행은 세 번 떠난다’라는 주제로 특집 서평을 다루었다. 또한 교육학, 인류학, 법학, 역사학 등의 전공자들이 쓴 깊이 있는 서평과 김홍중의 [영화 리뷰]가 더욱더 깊어진 모습으로 찾아간다. 이장욱, 정세랑, 최은영 작가의 에세이는 그들의 시나 소설에는 볼 수 없었던 읽기와 쓰기의 세계에서 작가들이 겪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를 실었다. 새로 신설된 [디자인 리뷰]에서는 워크룸프레스 공동대표 김형진 디자이너가 ‘디자인’이라는 넓은 무대로 들어서기 전, 본문 디자인에 대해 먼저 짚고 넘어간다. 서리북은 ‘전문 서평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독자들이 상상하고 기대하는 다양한 ‘리뷰’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서울리뷰오브북스》 3호는 7편의 서평을 통해,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간절해진 ‘여행’의 의미를 묻는다. 어디로 여행을 떠날 것인가? 여행을 떠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경험하는가? 여행이 꼭 물리적 여행이어야만 하는가? 등등 여행에 대한 독자들의 갈증을 채워 줄 다양한 여행을 소개한다. 바야흐로 ‘위드 코로나’ 시대이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기업과 조직이 근무의 형태가 달라지고 ‘비대면’은 이제 삶의 전반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가장 큰 결핍 중 하나는 ‘여행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낯선 땅, 풍경으로의 여행길이 벌써 2년째 막혀 있다. 공항은 텅텅 비었고, 관련된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무착륙 비행기 상품이 개발되었지만, 일 년 내내 자유롭게 아시아, 유럽, 북미 등 다양한 곳으로 향했던 여행자들의 마음을 채워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서울리뷰오브북스》 3호 특집 “모든 여행은 세 번 떠난다”에서는 팬데믹의 장기화로 발 묶인 여행자들의 상상과 구미를 당기게 할 다양한 곳으로의 여행을 서평을 통해 선보인다. 이번 호 특집 서평을 담당했던 김영민 편집위원은 책 읽는 행위를 여행에 비유한다. 일종의 여행으로 봐도 무방한 ‘독서’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가 닿는다. “아주 진지한 만남을 요구하는 애인 같”은 책 읽기를 통해 우리는 여행을 한다. 서평 쓰기는 책을 더 깊이 여행하는 좋은 방법이다. 독자들을 서평을 통한 “상상의 여행”, 상상의 여행자로 초대하며, 물리적 여행이 불가능한 시대에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묻고, 나와 타인 그리고 세계로부터 시작된 여행들이 각각 어떠한 삶의 통찰과 의미를 되새겨 주는지 이번 서리북을 통해 독자들이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앞만 보고 달리게 만들었던 삶의 속도를 초기화시키고, 당나귀의 속도로 찬찬히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상에 귀기울이게 해준다.” 심승희는 「모데스틴! 그리부예! 우리 이제 떠나볼까?」라는 제목으로 『당나귀와 함께한 세벤 여행』과 『당나귀 지혜』 두 권의 서평을 썼다. 『보물섬』의 저자 스티븐슨이 “소박하고 조촐하”기 그지없는 여행기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스티븐슨과 당나귀의 여행이 가진 매력으로, 시골 마을을 둘러싼 자연의 환대, 여행길에서 만난 현지인들의 호의 그리고 현대인의 삶의 속도를 돌아보게 만드는 ‘당나귀’라는 동행을 꼽는다. 메리필드의 『당나귀 지혜』 역시 함께 여행하는 당나귀 그리부예를 통해 삶에 대한 사유를 확장해 가는 이야기이다. 심승희는 트렌디하지는 않지만, “온기”와 “지혜”가 가득한 당나귀와 함께하는 색다른 여행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책을 읽는 것이 새로운 책을 집필하게 해주는 것처럼, 건축 여행은 새로운 건축을 낳는다.” 강예린은 「여행 속에서 나는 건축가가 됐다」에서 건축과 여행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강조한다. 근대 건축의 거장인 르 코르뷔지에의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과 현대를 대표하는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건축을 꿈꾸다』 등 세 권의 책을 리뷰했다. “독학으로 건축가가 된” 두 사람은, 연결된 세 권의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건축가의 삶을 살았다. 르 코르뷔지에가 건축한 롱샹성당을 방문한 안도 다다오는, 건축 인생에서 인상 깊은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얽히고설킨 이들의 관계의 역동은, ‘빛의 교회’라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결정적인 디딤돌이 되었다. 건축 여행은 두 거장이 작품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뜻깊은 각성의 계기를 제공한다. “혐한이 일본의 ‘공기’가 되어 가고 있는 지금, ‘양심적 일본 지식인’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박훈은 「너를 보니, 내 옛 생각이 나서 좋다」에서 시바 료타료의 『한나라 기행』을 리뷰한다. “일본 국민 작가”로 알려진 시바 료타료는 1971년부터 25년간 여행기를 연재했다. 부산-김해-경주-부여 등을 여행한 『한나라 기행』을 통해, 박훈은 시바 료타료로 대표되는 ‘양심적 일본 지식인’들의 모순적인 태도를 지적한다. 필자가 유학과 이 책들에서 느낀 것은, 한국/한국인에 대한 일본 지식인들의 “다정스러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내려다보는 느낌”이다. 일본 사회에서 커지는 혐한 정서 속에 일본 지식인들의 내재된 “무기력하기만”한 모습을 서평을 빌려 전달한다. “홍대용의 마음에 큰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그 파도는 홍대용을 어디로 데려다주었을까?” 김영민은 「원수를 보러 가는 여행: 연행(燕行)과 홍대용의 생각」에서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여행기인 ‘연행록’을 리뷰한다. ‘조선 시대에도 해외여행을 했을까?’라고 묻는 독자가 있다면, 김영민의 서평은 이에 대한 훌륭한 대답이다. 조선 사신단의 북경을 향한 여행길에 담긴 의미를 파헤친다. 연행록은 “세계사에서도 지극히 특이하”(『조선연행사와 조선통신사』)다고 평가되는 장르이다. 조선 시대 연행록에 관한 연구는 국내외 학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 사료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당시 (상류층) 사람들의 모습뿐 아니라 양국의 모습, 외교 등이 어땠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거자오광, 후마 스스무 등은 연행록을 살피며 중화 질서와 주자학의 바탕에서 ‘조선’을 읽었던 외국인의 시선을 담는다. 또 북학파라는 “힙한 집단의 일원”인 홍대용이 여행을 통해 “생각과 인생이 바뀌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김영민은 현재 나와 있는 책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피하지 않는데, 이를테면 월봉저작상을 수상한 『범애와 평등』(박희병) 등을 검토하며, 홍대용 사상이 면밀하게 분석되지 않았음을 비판한다. “주자학 대신 묵자(墨子) 사상에 주목”하여 홍대용의 사상을 “호혜와 평등”과 일맥상통한다고 결론 지은 박희병의 연구가 다소 부정확함을 비판하는 것이다. 박희병의 분석은 대부분의 중국 사상 연구자들이 묵자를 “위계로 기초한 군주 지배 체제”라고 정의한 것과 차이가 난다는 평이다. 김영민은 이처럼 국내외 저자들을 넘나들며, 연행록이라는 장르의 배경이 된 홍대용 사상의 역사적 의의를 찾아간다. 그의 필력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조선 시대, 북경으로 여행을 떠났던 사행단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랜드 투어는 몇몇 가문과 그들이 배출한 혹은 그들 주위에 모인 엘리트들이 유럽과 세계를 주름잡던 시대, 그들의 삶의 필요와 비전이 녹아 있는 삶의 한 부분이었다.” 윤비는 「18세기의 어떤 여행(들): 그 야심과 허영과 낭만에 대하여」에서 설혜심의 『그랜드 투어』를 리뷰한다. 김영민이 18세기 동아시아 여행기를 살펴봤다면, 윤비는 같은 시기 유럽으로 향한다. 18세기 영국 상류 계층의 인사들, 특히 상류층 자제들이 “견문을 넓히고 교양을 쌓으며 (......) 대륙을 떠돌았던” 여행. 이름하여 ‘그랜드 투어’. 이 여행은 당시 유럽 엘리트 계층의 “야심과 욕망, 어리석음과 허약함”을 보여 주면서도 “그들의 삶의 필요와 비전”을 담아내기도 한다. 예나 지금이나 낯선 미지의 땅, 어쩐지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 유럽, 여행기의 과거를 독자들은 윤비의 서평을 통해 만날 수 있다. “근대 유럽은 여행의 아이러니 속에서 탄생했다.” 조준희는 「세계의 발견, 유럽의 탄생」에서 ‘지도’라는 여행의 연관 검색어의 역사를 추적한다. “지도의 역사에 대한 저작”을 쓴 제리 브로턴의 두 책을 서평하며, “세계사를 바꾼 지도들”을 분석하며 당시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한 키워드를 갈음한다. 본문에 실린 [메르카도르의 지도]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지도 안에 담긴 당대 지역과 사람들의 생각을 추론할 수 있게 해 준다. 지도는 여행을 상상으로 이끌며 기대감을 고취시키지만, “실제 여행을 통해” 만난 세계는 종종 그 상상이 깨지기도 하는 점을 지적한다. “다만 우리의 할 일은 끝없이 여행을 꿈꾸고, 새로운 공간을 상상하고, 그곳에서의 유익함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심채경은 「우주 여행도 직업이 되면」에서 우주 여행에 관련된 두 책 『오늘, 우주로 출근합니다』와 『중력』을 리뷰한다. “지구 탈출도 직업이 되면 월요병을 유발한다”는 유쾌한 만화인 『오늘, 우주로 출근합니다』와 10여 년 전 한국에서 있었던 우주인 선발 과정을 근거리에서 지켜본 기자의 상상력이 곁들여진 소설 『중력』.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가 ‘여행’이 아닌 ‘일상’이 되었을 때 마주하는 녹록지 않음과 그럼에도 새로운 세계를 또다시 꿈꾸는 ‘여행하는 인간’에 대해 돌아본다. 영화 리뷰 /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김홍중은 「서바이벌 미학」에서 김기영의 영화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를 중심으로 리뷰한다. 1955년 영화계에 데뷔한 뒤, [양산도], [하녀], [현해탄은 알고 있다] 등의 “문제작”을 남긴 김기영의 영화 속 미학을 분석한다. 김홍중은 김기영의 “기괴한 세계의 작동 원리”를 죽음보다 더 끈질긴 욕망, 즉 서바이벌, 생존 미학에서 찾는다. 죽음은 “허상”인 반면, 생존은 끝나지 않는다. 삶의 본질은 “생존의 기괴함”에 있다는 것을 영화 속에 담긴 김기영의 세계관을 통해 분석한다.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사진 출처: DAUM 영화) 디자인 리뷰★(신설) 이번 3호에 새로 신설된 [디자인 리뷰] 코너에서는 워크룸프레스의 공동 대표인 김형진의 글로 시작한다. 김형진은 「‘본문’이라는 이미지」에서 북디자인 하면 으레 떠올리는 ‘표지’ 디자인 이전에 ‘본문’ 디자인에 대해 먼저 비평한다. 본문 디자인을 가름하는 제1 기준인 ‘가독성’이라는 무기가 “부정확한 단어 사용”은 아닌지 질문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책의 판면을 예시로 들면서, 필자는 “본문을 하나의 이미지” 그 자체로 보길 제안한다. 본문 텍스트의 배치, 그 속에 들어 있는 리듬과 호흡 등도 충분히 디자인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에세이 /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LITERATURE’에서는 다양한 배경과 색깔을 지닌 세 명의 에세이스트의 글이 실렸다. 이장욱은 「책 읽기와 함께 글쓰기를」에서 “글쓰기에 대한 ‘오해 아닌 오해’들을 짚어” 준다.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여, ‘나’라는 세계를 표현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글쓰기, 영감을 메모하며 발전하는 글쓰기, 새로운 관점 속에 탄생하는 글쓰기 등 대단한 작가가 아니더라도 읽고 쓰는 삶을 일상으로 안착시킨 이들에게 알찬 글쓰기 팁을 전수한다. 정세랑은 「정확한 인용에의 욕구」에서 “책을 세상에 내보내는 일”에 따른 고충에 관해 썼다. 맥락 없이 인용된 문장들이 화살처럼 돌아올 때, “내가 쓰지 않은 글들이 내 이름을 달고 퍼지고 있을 때” 등의 곤혹스러움을 고백한다. 책을 세상에 낳을 때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앞으로도 “쓰고 싶은 대로 쓰”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최은영은 「책을 내는 기분」에서 3년 만에 책을 낸 소회를 담담히 썼다. 글쓰기를 마치고 책이 되어 글을 떠나보낼 때, ‘자식’을 떠나보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 수많은 책 속에 자신의 책을 통해 연결된 독자들과의 만남은 “신비롭”다. 삶이 무너질 때도, 누군가 내 삶을 공격하여 다시 재기하지 못할 거라고 예상한 미래. 그 현재에 책을 내는 작가의 기쁨과 감동이 잔잔히 느껴지는 에세이다. 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김현경은 「입시지옥은 우리가 평등하다는 증거일까?」에서 이범의 『문재인 이후의 교육』을 리뷰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원격 교육이 ‘급하게’ 진행되면서 겪은 진통과 “온라인 교육 모델”의 개발, 문재인 정부의 ‘수시-정시 논쟁’에 대한 교육 정책 그리고 한국 교육 경쟁의 기원을 찾아 나서는 등의 책 내용을 하나하나 짚어 준다. “일반고가 황폐해진” 이유로 『문재인 이후의 교육』의 저자는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까지 마구잡이로 받아 준” 것을 꼽고, 이에 “일반고의 진입 문턱을 높이”라는 해결책을 내세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주장이 “고졸자의 고용률이 대졸자보다 매우 낮”은 실제 상황에 있다고 말하며,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이지 않은 교육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조문영은 「탁월함의 역설」에서 최근 20, 30대 여성들에게 환호성을 불러일으킨 장류진의 소설 『달까지 가자』를 리뷰한다. ‘이더리움’이라는 가상화폐의 시대와 “이제 (......) 이것밖에 없”는 여성 청년 3인방의 현실이 만나 2030 독자들의 깊숙한 공감을 일으킨 현상에 대해 질문한다. 소설 속 3인방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나온 여성 3인방과 오버랩된다. 로켓까지 가자고 소리치는 이들을 향한 응원과 공감 뒤엔 그러나 씁쓸함이 남는다. ‘J곡선’은커녕 소설 속 주인공이 결국 포기하지 못했던 “조용하고 쾌적한” 회사의 자리 하나도 소유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발목을 잡아서이다. 이 소설의 “탁월함”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한승혜는 「남자의 도시, 남자의 예술」에서 『두번째 도시, 두번째 예술』을 리뷰하며 여행 너머의 젠더 문제에 주목한다. 사회학자인 저자가 다소 여유로운 여건 속에 다녀온 ‘두 번째 여행’에서 느꼈던 의미 있는 예술적 사유에 왜 여성 예술가들의 모습은 소거되어 있는지 질문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간’과 ‘예술’에 여성이 포함되는”가? 필자는 아름다운 유럽 여행기 이면에 남겨진 이러한 찝찝함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다. 유정훈은 「정치의 자리에 대한 질문과 응답」에서 『일본의 굴레』와 『상의하달 민주주의(Top-Down Democracy in South Korea)』를 리뷰한다. 외국인의 눈으로 본 일본과 한국 사회를 바탕으로 쓰인 두 책에서 공통으로 “정치가 어떠한 장(場)에서 이루어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필자는 ‘책임성(accountability)’이라는 공통분모를 찾아내어, 정치의 자리에 대해 응답한다. 안동섭은 「무당은 알겠다. 그런데 유생은?」에서 한승훈의 『무당과 유생의 대결』을 리뷰한다. “무당처럼 날아서 유생처럼 트집을 잡아보겠다”는 필자는 책에서 “한국 신유교의 시초로 평가되는 안향의 승리”가 다소 과하게 여겨진 측면, ‘유생’에 대한 설명은 다소 미비한 점, 그리고 무엇보다 ‘신유교’와 ‘성리학’이라는 용어 속에 담긴 뉘앙스 차이를 적절하게 잡아내지 못한 점 등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합니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13인의 편집진은 오랜 토론을 거쳐서 주제와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쓴 뒤에, 이를 내부에서 돌려가며 읽으면서 비판을 듣고, 이런 비판을 반영해서 글을 고친다. 타인의 책을 비평하고 비판하듯이, 자신들의 글도 같은 비판의 과정을 거친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3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좋은 책은 무엇인가에서, 좋은 서평은 무엇인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