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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리뷰오브북스》 편집실에서∥박진호
포커스 리뷰: 스몰 북, 빅 이슈 왜 21세기에 『공산당 선언』을 읽는가? ∥김만권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 ∥홍성욱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자아의 소진과 사물의 소멸 ∥이행남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생명과 더불어 세계 만들기의 이미지―〈고독의 지리학〉 ∥김은주 리뷰 자폐인 변호사라는 실험 ∥장하원 애도와 번역의 퍼포먼스 ∥민은경 노동자가 되기 위한 배움 ∥김원 지능은 태어나야 하는가? ∥이석재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 ∥송지우 우회 말고 정공을 기대한다 ∥김두얼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 ∥조문영 만물유전 ∥권석준 공부법과 교육의 다른 점 ∥박대권 디자인 리뷰 키트, 능동적 혹은 경제적 읽기의 가능성 ∥구정연 BOOK&MAKER: 출판의 낭만과 일상 리스트 만드는 마음 ∥김수현 문학 소설을 책으로 배웠어요∥이기호 여러분, 번역하지 마세요∥조영학 신간 책꽂이 지금 읽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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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중에서
일곱 권째 《서울리뷰오브북스》를 내면서 일곱 번째 특집을 묶는다. 이번 호 특집은 ‘계보의 계보’다. 물리적으로 두껍고 큰 소위 벽돌책이 내용상으로도 큰 주제를 다루고 있고 이것이 세상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적도 꽤 있지만, 물리적으로는 얇고 작은 책이 그에 못지않은 큰 이슈를 다루고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런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책들에 주목해 보고자 한 것이다. (……) 인간은 어떤 목표를 정해 놓고 그 방향으로 숨 가쁘게 달려야 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가늠해 보고 필요하다면 방향을 수정하는 일도 필요하다. (……) 《서울리뷰오브북스》도 지난 2년간을 돌아보면서 차분한 고민을 해보려 한다. 독자들의 연말연시도 그런 성찰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편집위원 박진호 - 그렇다면 변해 가는 21세기 자본주의에서, 우리는 누구를 호명할 것인가? 계급의 정치 위에 차이의 정치, 기후와 생태 및 환경의 정치가 가세한 지금, 여전히 프롤레타리아트만을 변화의 주체로 호명하는 일은 바람직한 것일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계급의 정치는 ‘젠더’와 같은 정체성의 정치를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기후와 환경을 위해 성장에서 탈피해 기계에 덜 의존하는 노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노동하는 인간이 파괴해 온 지구와 자연에 인간과 동등한 자격을 부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p.29 「김만권, 왜 21세기에 『공산당 선언』을 읽는가?」 중에서 가이아는 그저 환경이 아니라 내 존재를 생성하는 땅, 나의 일부이다. 그래서 가이아를 침범하고 훼손하는 것은 나를, 내 육신과 정신을, 내 가족을 훼손하고 침범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인간을 생각지 않는 인간의 존엄이란 허상이며, 마찬가지로 인간과 비인간의 개입을 고려하지 않은 자연도 허상이다. 라투르의 이런 생각은 소화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이 책은 잘게 씹어 먹어 소화할 책이지 토를 달 책이 아니다. ---p.42 「홍성욱,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 중에서 “규율사회는 더 이상 우리 사회가 아니”라는 한병철의 선언도, ‘신체의 정치’를 지나간 규율사회의 것으로 ‘심리정치’를 지금의 성과사회의 본질로 선명하게 나누는 한병철의 구별도, 우리 시대의 초상을 정교하게 그리는 데에 기여하기보다는 섬세함이 결여된 부정확한 그림으로 만드는 데에 일조하는 지나친 ‘선 긋기’로 보이는 것은 나의 느낌만은 아닐 것이다. ---pp.59-60 「이행남,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자아의 소진과 사물의 소멸」 중에서 세이블 섬을 아카이빙하면서 자연-문화의 역사를 쓰는 조이 루커스와 이를 카메라로 담아낸 〈고독의 지리학〉은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의 긴급한 문제 상황을 마주하고 자신의 할 일을 해내 간다. 매일의 삶으로 빚어내는 이 행위는 묵시록적 냉소가 아니라 여기 지금 우리가 쌓아 올린 두꺼운 현재 그리고 다종의 얽힘에서의 공동 제작인 공생(sympoeisis)에 참여하며 곤경과 함께 머무는 반려종(companion species)의 함께-되기(becoming-with)의 한 시도일 것이다. ---p.68 「김은주, 생명과 더불어 세계 만들기의 이미지―[고독의 지리학]」 중에서 이제는 우영우 실험이 남긴 잔상과 질문들에 집중할 시간이다. 좋은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 직업 세계에서 비장애인이 성장하듯 장애인도 성장하며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가 아닌 현실에서 우영우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우영우와는 다른 자폐인, 다른 장애인이라면 어떨까? 현실의 자폐인과 장애인이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마련되어야 할까? ---p.79 「장하원, 자폐인 변호사라는 실험」 중에서 기다림에 지쳐 아들이 죽었다고 결론 내리고 긴 애도에 들어간 엄마. 오빠가 그 오랜 세월 동안 전 지구를 떠돌며 엄마에게 보낸 유일한 편지를 엄마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마음에서 놓지 못했다. 사랑하던 여자친구 애나가 죽고 나서 슬픔에 “미쳤”다며 엄마에게 보낸 오빠의 절절한 편지. 엄마에게 “사랑해요, 사랑해요”, 인사를 두 번 반복한 편지. 엄마가 애도한 오빠는 애나를 애도하고 있었다. 그림 안의 그림, 거울 속의 거울. 슬픔이 사랑한 슬픔, 애도의 미장아빔(mise en abyme). ---p.85 「민은경, 애도와 번역의 퍼포먼스」 중에서 그렇다면 『쇳밥일지』에서 작가는 노동자계급으로서 정체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에게서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상상되었던 남성 노동자 혹은 가족임금(family wage)을 담보하는 가부장적 주체의 모습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쇳밥일지』에서 그는 ‘노동’ 자체에 대한 자부심보다, 용접이라는 기술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과 자기만족이라는 감각을 느낀다. 학교, 사회에서 학력자본의 결핍,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 학력 간 위계에 따른 불안정한 인간관계 등은 천현우에게 ‘존경받고 싶은 사람’이 되기를 갈망하게 했다. ---p.100 「김원, 노동자가 되기 위한 배움」 중에서 지능을 생명체로 제한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생명체만이 지능을 가진다면 현재 모두의 관심인 ‘인공지능’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엄밀히 말해 인공지능은 지능이 아니라는 것인가? 아니면 인공지능체 역시 살아 있는가? ---p.107 「이석재, 지능은 태어나야 하는가?」 중에서 Humane은 인도적 전쟁은 윤리적으로 괜찮다고, 우리가 현실적으로 희망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믿으려는 경향을 경계한다. 그의 저작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진보 진영의 윤리적 안일함과 상상력의 빈곤이다. 비록 인과적 차원에서 인도주의가 평화주의를 죽여 버린 게 아니라 하더라도, 인도적 전쟁에 만족한 나머지 더 견고한 평화의 가능성을 떠올리지도 못하는 상황은 분명 이상적이지 못할 것이다. 이런 가능성을 환기하는 용도로 모인의 도발적인 전쟁사는 의미가 있다. ---pp.125-126 「송지우,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 중에서 최병천은 불평등의 원인을 추적하는 데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였다. 만일 그가 학자라면 이런 접근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정책 연구자다. (……) 대내외적 요인으로 상승하는 불평등을 억제할 수 있는 재분배 정책을 정부가 왜 도입하지 못했는지 나아가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했어야 하지 않을까? 불평등을 새롭게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뭔가 신선해 보이는 제3의 길을 모색하기보다는, 진보 진영이 전통적으로 추구했던 재분배 강화라는 정책 노선을 왜 그동안 제대로 정책화하지 못했는지 철저히 반성한 뒤에 미래를 모색했어야 하지 않을까? ---p.140 「김두얼, 우회 말고 정공을 기대한다」 중에서 존재론을 “세상은 실천을 통해 만들어진다”(162쪽)는 저항적 비전에 서둘러 정박시키려는 조급함을 내려놓고 ‘굼뜬’ 인류학자로 돌아가 현상의 주름들을 찬찬히 살폈다면, 이 책이 세 가지 축으로 삼은 존재론, 디자인, 정치의 관계를 둘러싸고 더 풍성한 질문, 비판, 논쟁, 제안이 오갔을 것이다. (…) 기후재난과 핵전쟁의 위험이 편재하는 시대, 일상 속 사람들이 일하다, 타다, 걷다, 서 있다, 숨 쉬다 별안간 참사를 맞는 시대에 연구자의 소명이란 무엇일까? ---p.158 「조문영,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 중에서 흥미롭게도 서로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다양한 학문들은 유체역학이라는 하나의 줄기 속에서 마치 잘 짜인 태피스트리처럼 얽히면서 하나의 패턴을 만들어 낸다. 독자들이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다른 과학 교양서나 과학사 책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던 이러한 숨겨진 패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과정을 하나씩 발견해 나가는 것이다. ---p.165 「권석준, 만물유전」 중에서 키트 제작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한번 조립된 키트, 혹은 미완성된 키트가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지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니 키트 기획자나 설계자로부터 그 답을 찾을 수는 없겠다 싶다. 결국 키트가 지닌 효용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사용자의 몫이 될 테니. (……) 이런 비결정적 행동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믿고 기대한다. 키트가 언젠가는 완성되고 읽힐 수 있다고. 그리고 이 열린 결말은, 우리가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 생산과 공유의 형식을 탐색하게 만드는 동력일 수 있다. ---p.191 「구정연, 키트, 능동적 혹은 경제적 읽기의 가능성」 중에서 “이번에는 무슨 리스트 해요?” 연말이 다가오자 동료들이 넌지시 묻는다. 다시 머릿속이 바빠진다. 좋았던 제목, 표지, 문장, 책은 너무 많은데 어떻게 풀어내야 이 모든 책에 얽힌 마음들을 다 담아낼 수 있을까.(……) 올해는 ‘문장의 리스트’다. 당신이 사랑한 문장은 무엇이었는지 묻기 위해 우리가 사랑한 문장의 목록을 먼저 만든다. 다시 한번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기를 바라며 준비하고 있으니, 여러분도 부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려 주시면 좋겠다. ---p.199 「김수현, 리스트 만드는 마음」 중에서 ‘아아,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환원주의였군요.’ 작가가 되고 난 뒤에야 정리할 수 있는 방법들, 그러니까 ‘소설가 지망생들을 위한 지침서’가 아니라 ‘작가가 된 뒤에야 보이는 어리숙함’들이었군요. 나는 그때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작가들의 작법서는 사실 작가들의 고백록이었음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었다. 한 작가에겐 그만의 어리숙함이 있고, 그것이 그만의 창작론이 된다는 것. 그게 그 책의 핵심이었다. ---pp.211-222 「이기호, 소설을 책으로 배웠어요」 중에서 이러다 정말 번역가가 멸종하면 어떻게 될까? 그래도 이 나라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 은근히 심통이 나기도 했다. 10년 후 번역가가 정말로 사라진 세상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수강생들을 말리는지도 모르겠다. “여러분, 번역하지 마세요.” ---pp.221-222 「조영학, 여러분, 번역하지 마세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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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의 정치는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선언문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가?” 김만권은 「왜 21세기에 『공산당 선언』을 읽는가?」라는 서평에서 170여 년 전 세상에 울려 퍼진 『공산당 선언』의 의미를 다시 좇는다. 그는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사라진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에 이 선언의 의미가 어떻게 재창조되어야 하는지 묻는다. 디지털 시대, 전 지구적 시장의 상황에서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넘어 젠더, 비인간, 자연 등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짚는다.
“지금 당장 녹색 계급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홍성욱은 「전 지구적 기후위기와 녹색 계급」에서 브뤼노 라투르와 니콜라이 슐츠의 『녹색 계급의 출현』을 들여다본다. 라투르가 평생 치열하게 연구?고민하며 형성해 간 그의 사상을 책 속 ‘녹색 계급’을 통해 살펴보고, 더 이상 “지구공동체가 직면한” 큰 위기를 돌이킬 수 없는 시점이 되기 전에 막아보자고 책의 목소리를 빌려 외친다. “오늘날의 ‘주체’는 누구인가? 우리 시대의 주체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며 ‘무엇’을 지향하는가?” 이행남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의 자아의 소진과 사물의 소멸」에서 한병철의 『사물의 소멸』 서평을 썼다. 그는 『피로사회』(2012), 『투명사회』(2014) 등으로 한국 사회의 세태와 인간상을 냉철하게 분석?비판한 한병철의 사상을 높이 사면서도, 어떤 면에서 현재 ‘후기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주체’로 호명된 이들이 그려 나가는 연대, 공동의 실천 등을 간과한 진단은 아닌지 문제 제기한다. 리뷰: 책으로 세상을 보다 『리뷰』에서는 《서리북》 편집위원을 포함해 각 분야의 전문가 필자들의 시의성 있고, 심도 깊은 서평들이 이어진다. 장하원은 「자폐인 변호사라는 실험」에서 올해 화제가 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대본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1, 2』의 서평을 썼다. ‘자폐인도 직업인으로서 변호사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대본을 써내려 간 저자의 질문에 드라마가 아닌, 우리 사회의 현실 속에서 답을 찾는다. 다소 엉뚱하고 귀엽지만, 무해한 ‘우영우’라는 캐릭터와 ‘변호사’라는 직업 세계가 드라마 속 판타지로 남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는 자폐인도 장애인도 현실 사회에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점이 무엇인지 묻고, 특히 개인보다 사회 구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민은경은 「애도와 번역의 퍼포먼스」에서 앤 카슨의 『녹스』를 읽는다. 이 책은 ‘행방불명’된 오빠를 평생 그리워한 가족들의 슬픔을 담아냈다. 상자에 담겨, 펼치면 “스르르 열”리는 책, 바래고 헤져 삐뚤빼뚤한 모양 그대로를 실은 책, 마치 오빠를 잃어버렸던 그때에 시간이 멈춰 있는 듯, 그리움을 책으로, 예술로 승화한 물성의 독특함을 소개한다. 김원은 「노동자가 되기 위한 배움」에서 천현우의 『쇳밥일지』를 비평한다. 용접공에서 ‘정동노동자’로서 글쓰기 노동을 시작한 저자의 생애를 ‘자기역사쓰기’라는 장치로 살핀다. 아버지 세대의 가부장도, 20대를 향한 평평한 진단도 모두 거부한 저자가 어떻게 정동노동자라는 정체성으로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지 또렷하게 보여 준다. 이석재는 「지능은 태어나야 하는가?」에서 이대열의 『지능의 탄생』 서평을 실었다. ‘지능’과 ‘인공지능’의 차이는 무엇인가? 인공지능은 진정한 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는 독자들이 충분히 던질 만한 질문을 하며, 책에서 어떻게 답했는지 하나하나 쫓아간다. 결과적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번영”을 위해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할 때, 온전한 ‘지능’으로서의 정체성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지능’에 대한 최근의 뜨거운 관심에 부응하는 궁금증과 고민을 설명한다. 송지우는 「인도주의는 평화를 가로막는가」에서 새뮤얼 모인(Samuel Moyn)의 Humane(국내미출간) 서평을 실었다. 이 책에서 모인은 『인권이란 무엇인가』, 『충분하지 않다』에서의 논쟁을 ‘국제인도법’이라는 영역으로 확장해서 가져온다. 그는 ‘인도주의의 확산이 평화주의의 성장을 막는다’는 모인의 주장에도 전쟁이 종속되지 않았다는 “슬픈 사실”을 지적하며, ‘인도적 전쟁’은 괜찮다며, 더 나아간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진보 진영의 “윤리적 안일함과 상상력의 빈곤”에 씁쓸함을 보낸다. 김두얼은 「우회 말고 정공을 기대한다」에서 『좋은 불평등』의 서평을 실었다. 이 책의 저자는 민 주연구원에서 부원장을 지낸 연구자로, 김두얼은 그에게서 보다 실질적인 문제 제기와 대안이 조금이라도 나왔어야 한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모든 불평등이 나쁜 것은 아니며, 심지어 상위 계층의 소득이 증가함으로써 나타나는 소득격차의 확대는 ‘좋은 불평등’이라고까지 한 저자의 주장과 그 여정을 비판적으로 살핀다. 조문영은 「다른 세계를 디자인하고 선언하는 인류학자」에서 『플루리버스』의 서평을 실었다. 그는 콜롬비아 출신의 인류학자 아르투로 에스코바르(Arturo Escobar)가 책에서 주장한 “자본주의?제국주의”를 넘어선 “다중의 우주와 세계인” 플루리버스가 가리키는 방향성에 십분 동의함을 피력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존재론적 전환’의 문제 제기가 다소 성급하게 진행되었음을 짚는다. 플루리버스와 디자인이라는, 다소 추상적으로 다가오는 책의 핵심 개념들을 연결해 주는 구체적인 사람, 사건 등 현장의 모습들이 다소 느슨하게 서술된 부분을 아쉬워한다. 권석준은 「만물유전」에서 『판타 레이』의 서평을 실었다. 이 책은 현실 세계에서 전 방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유체역학’의 역사를 훑으며, 이 과정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수많은 과학자를 내세우기도 한다. 그는 이 책의 매력으로 다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하고 흥미로운 패턴들이 ‘유체의 과학사’라는 하나의 주제로 수렴되는 것을 꼽는다. 저자가 발품을 팔아 실은 풍성한 자료들은 덤이다. 박대권은 「공부법과 교육의 다른 점」에서 『최재천의 공부』의 서평을 실었다. 그는 이 책이 ‘최고의 학자가 제시하는 공부법’을 알려 줄듯 하면서도, 정작 이에 대한 해답은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한다. 경복고, 서울대, 카이스트와 하버드대학교 등에서 배우고 가르친 저자의 주장에 ‘범인’들이 과연 얼마나 동의할지 의문이 든다고 말한다. ‘수재 통섭학자’를 따라가기에 벅찬 한국 교육의 현실과 벽도 더불어 지적한다.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 “매일의 삶으로 빚어내는 이 행위는 묵시록적 냉소가 아니라 여기 지금 우리가 쌓아 올린 두꺼운 현재 그리고 다종의 얽힘에서의 공동 제작인 공생(sympoeisis)에 참여하며 곤경과 함께 머무는 반려종(companion species)의 함께-되기(becoming-with)의 한 시도일 것이다.” 8호 『이마고 문디』에서는 철학 연구자 김은주가 재클린 밀스의 영화 〈고독의 지리학〉을 비평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부문에서 대상을 받은 이 영화는 캐나다 노바스코샤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세이블 섬에서 나타나는 현상들에 주목했다. 조이 루커스라는 주인공은 실제로 이 섬에 40년 동안 거주하면서 섬이 지닌 다양한 목소리에 감응한다. 김은주는 루커스가 섬에서 말과 그 분뇨를 관찰하며 얻은 정보나 매년 섬에 찾아오는 바다표범의 일생 등 생태계의 변화에 특히 주목해서 세이블 섬의 고유함을 설명한다. 다소 ‘고독’해 보일 수도 있는 루카스에 대해 그가 주목한 건, 루카스가 섬, 그리고 섬에 머무는 생태계와 맺는 관계이다. 비인간 행위자를 “의인화”하지 않으면서도, 인간-비인간이 얽혀 있는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평한다. 디자인 리뷰 『디자인 리뷰』에서는 구정연이 「키트, 능동적 혹은 경제적 읽기의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디자인 비평을 실었다. 그는 ‘특정한 목적에 필요한 물품 또는 장치로 구성된 하나의 세트’를 말하는 ‘키트’와 그 정신으로부터 새로운 작품 생산의 가능성을 소개한다. 출판사면서 아닌, 완성품을 취급하지도, 제작의 기쁨을 생산자만 느끼게 하지도, 완성도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도 않는, 낯선 ‘프레스 키트 프레스’라는 출판사에 주목해 출판이라는 기존 세계에서 정답으로 요청된 틀을 부수어 간다. 그러나 필자는 키트 역시, 새로운 하나의 틀임으로, 이마저도 더 넓힐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며, 경계를 넘어서는 출판의 다양한 미래를 상상한다. Book & Maker: 출판의 낭만과 일상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 『북&메이커』에서는 교보문고의 김수현 MD가 「리스트 만드는 마음」이라는 글을 썼다. 연말이면 서점 MD들이 삼삼오오 모여, ‘올해의 책’ 리스트를 만드는데, 이를 통해 서점 MD들이 지닌 마음과, 이들이 독자들에게서 발견한 책에 대한 어떤 마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진심과 진정성을 담은 추천 책 리스트는 결국 독자들의 호응을 이끌어 내고, 작가, 출판사, 서점인 끝끝내 독자에 이르기까지 ‘책’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된 사람들의 시공간을 채워 가는 연말은 따뜻하다. 문학: 풍성한 읽을거리 소설가 이기호는 「소설을 책으로 배웠어요」에서 소설을 처음으로 배웠던 대학 시절을 회상한다. 소설 창작 수업과 『소설작법서』 등의 책에서 이론적으로 배웠지만 다 소화하지 못했던 소설 창작을 결국 깨달았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것을 잊어버렸던 때였다. 소설가들의 작법서가 실은 작가들의 “고백록”이었음을 깨닫는, 이제는 능숙한 소설가의 에세이는 유쾌하기만 하다. 출판번역가 조영학은 「여러분, 번역하지 마세요」에서 번역가로서의 슬픔을 터놓는다. 들어가는 노동력에 비해 대우나 처우가 ”형편없는“ 한국 출판번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씁쓸하게 써내려 간다. 번역이 없는 세상이 가능할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이러한 현실이 달라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번역을 말리는 번역가의 속내를 통해 한국 출판번역의 어두운 미래가 엿보인다. “한국에도 서평 전문지가 필요합니다.” ‘어떤’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2022년 3월, 창간 1주년을 맞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그 답을 서평에서 찾는다. 12인의 편집진은 오랜 토론을 거쳐서 주제와 책을 선정하고 서평을 쓴 뒤에, 이를 내부에서 돌려 읽으면서 비판을 듣고, 이를 반영해서 글을 고친다. 타인의 책을 비평하고 비판하듯이, 자신들의 글도 같은 비판의 과정을 거친다. 서평 전문 계간지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좋은 서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한국에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는 서평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탄생했다. 사회학, 인류학, 경제학, 자연과학, 역사, 문학, 과학기술사, 철학, 건축학, 언어학, 정치학, 미디어 등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12명의 편집위원이 뜻을 모았다. 중요한 책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제대로 짚고, 널리 알려졌지만 내용이 부실한 책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주목받지 못한 책은 발굴해 소개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좋은 책은 무엇인가에서, 좋은 서평은 무엇인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