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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프롤로그 일상의 민주주의로의 확대 제1부 도입 제1장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생각하다. 포퓰리즘이 던지는 질문 / 윤비 1. 포퓰리즘이 던지는 문제들 2.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와 포퓰리즘 3. 피플, 민주주의, 포퓰리즘 제2부 사상적 배경과 흐름 제2장 서양 정치사상에서 인민의 실존과 정치적 문제성 / 이상원 1. 민주주의, 포퓰리즘 그리고 인민의 문제 2. 현대사상에서 제기된 존재의 질문과 인민 3. 근대 정치사상에서 바라본 인민의 공존 가능성 4. 고대 정치철학이 제기한 인민의 자유와 우애의 문제 5. 인민의 정치적 실존과 참된 민주주의의 지향 제3장 고대 데마고고스의 정치술과 참된 정치술 / 황옥자 1. 최초의 포퓰리스트, 고대 데마고고스 2. 데마고고스의 정치술과 모호성 3. 참된 정치술과 민주주의, 대중, 데마고고스 4.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73 제4장 현대 중국에서의 포퓰리즘과 민본주의의 동거 / 김현주 1. 혁명의 주체가 된 ‘민’과 민본주의, 민주주의 2. 중국에서 민본주의가 다시 조명 받다 3. 중국식 포퓰리즘과 중국식 사회주의의 동거 4. 중국식 포퓰리즘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질문 제5장 한국 정치사상에서 people의 대응 개념과 그 의미, 그리고 포퓰리즘 / 안효성 1. people에 해당하는 동양 고대의 명칭들 2. 전근대 한국사에서 people의 대응 개념들과 지위 3. 한국 정치사상과 민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 4. 지금 한국의 포퓰리즘 관념에 대한 성찰 제3부 역사적 전개 제6장 라틴아메리카 포퓰리즘과 인민 / 김은중 1. 들어가며: 견지망월, 견월망지 2. 라틴아메리카 포퓰리즘에 대한 네 가지 관점 3. 인민이란 무엇인가 4. 나가며: 라틴아메리카 포퓰리즘이 던져주는 시사점 제7장 유럽과 미국 포퓰리즘의 역사적 조망: 보나파르트주의에서 트럼프주의까지 / 장문석 1. 글을 열며 2. 19세기 유럽과 미국의 포퓰리즘 3. 20세기 유럽과 미국의 포퓰리즘 4. 21세기 전환기의 ‘새로운 포퓰리즘’ 5. ‘새로운 포퓰리즘’의 시대 대서양 양안에서는… 6. 글을 맺으며 166 제4부 대표의 한계 제8장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와 대중정치의 모색 / 심승우 1.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그림자? 2. 대의민주주의 원리와 포퓰리즘 3. 대의정치의 위기와 포퓰리즘 낙인 4. 나오며 제9장 포퓰리즘은 왜 그리고 어떻게 몹쓸 것이 되었나? / 박성진 1. 들어가며 2. 포퓰리즘은 왜 ‘몹쓸 것’이 되었나? 3. 포퓰리즘은 어떻게 ‘몹쓸 것’이 되었나? 4. 나오며 제10장 다른 민주주의의 재등장 / 백미연 1. 포퓰리즘은 정치 문법이다 2. 민주주의 vs. 민주주의 3. 다른 민주주의의 재등장 제11장 포퓰리즘, 민주주의와 한 몸이면서 분리된 / 김주호 1. 포퓰리즘, 민주주의적이면서도 반민주주의적인 2.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어디서 만나고 어디서 갈라지는가? 3. 포퓰리즘의 양가성,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4. 포퓰리즘의 양가성, 왜 여기서 출발해야 하는가? 제5부 민주주의의 다양성 제12장 민주적 포퓰리즘과 정치의 재구성 / 이승원 1. 포퓰리즘 계기 2. 포퓰리즘 특징의 재해석과 정치의 복원 3. 민주적 포퓰리즘을 위한 반성과 정치의 재구성 제13장 결사체 민주주의 재건을 통한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 가능성 / 장석준 1. 민주주의의 위기 시대 2.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대한 저항: 21세기 초의 반란과 그 선례인 20세기 초의 반란 3. 대중 중심 사회주의의 문제 제기와 결사체 민주주의 4. 결사체 민주주의를 통한 민주주의의 위기 극복 가능성 제14장 포퓰리즘을 넘어 ‘강한 민주주의’로 / 김만권 1. 팬데믹, 포퓰리즘, 지방자치 2. ‘지구적 시장’ 속에 외로워진 개인들 3. 변화를 요구한 ‘포퓰리즘’, 병리적 현상으로 전락하다 4. 펜데믹이 드러낸 당대 포퓰리즘의 무능과 지방자치의 가능성 5. ‘포퓰리즘’을 넘어 ‘강한 민주주의’로 제15장 실천적 시민과 민주주의 지속 / 김성하 1. 시민의 목소리 2. 새로운 틀에 대한 요구 3. 더 민주적인 민주주의 4. 시민의 실천과 민주주의 지속 제16장 연대의 두 얼굴과 한국 복지국가의 미래 / 남재욱 1. 들어가며 2. 연대의 두 얼굴: 포용적 연대와 배타적 연대 3. 한국 복지국가와 포용적 연대 4. 어떻게 포용적 연대를 형성할 것인가? 제6부 마무리하며 제17장 포퓰리즘을 넘어 피플-이즘으로 / 좌담회 1. 포퓰리즘에 대한 개념 정의는 가능한가? 2.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관계는 무엇인가? 3. 피플-이즘의 의미는 무엇인가? 4. 피플-이즘은 새로운 정치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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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체 인구 중에서 13억 이상의 인구는 정치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의 불만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만큼 중국은 21세기에 다시 ‘민본’을 외치고 있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민본은 전통적 민본과는 다르다. 그것의 이름은 이제 ‘중국식 민주주의’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인민의 아름다운 삶’의 실현이다. 그리고 그 구체적 내용은 인민의 생존권 보장, 즉 전면적 소강사회의 실현이다. 소강사회란 누구나 배불리 먹고 따듯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진핑은 집권이후 그것을 ‘중국의 꿈(中國夢)’이라는 이름으로 홍보해오고 있다.
--- p.90 다른 모든 그림자들처럼 포퓰리즘의 그림자도 그 진짜 모습을 가늠하기란 쉽지 않다. 한편으로 이 그림자를 밟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예전과 마찬가지로 계속 ‘안’에 남고자 고집하면, 포퓰리즘은 보수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공산이 크다. 즉 예전에 누리던 기득권을 그리워하며 그에 집착한다면 포퓰리즘은 현대 민주주의의 추세에 역행하는 편협하고 퇴행적인 운동이 될 위험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직까지는 ‘안’에 있지만 ‘밖’으로 밀려난다는 감정이 고조되면, 포퓰리즘은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바꿔 말해 포퓰리즘이 기성 체제의 불공정과 그 대표성의 한계에 문제 제기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면, 그것은 어쩌면 현대 민주주의가 드러내는 주름들을 펴고 구멍들을 메꾸면서 혁신적인 체제 변형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 p.165-166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적인가 아니면 반민주주의적인가? 어느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우리는 결코 온전한 답을 구할 수 없다. 어느 쪽이든 항상 절반은 맞고 또 절반은 틀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포퓰리즘 이해의 출발점은 그것이 민주주의적이면서 동시에 반민주주의적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인민을 중심에 세운 정치를 약속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이지만 권위주의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그것을 구현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반민주주의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화의 약속과 권위주의적 실행”(데 라 토레, 2018)이라는 말은 포퓰리즘을 나타내는 가장 간명하면서도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 p.224-225 따라서 포퓰리즘은 어느 우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보수세력과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세력들이 사이에서 만들어 낸 ‘중도합의’ 결과로서 그저 선거공학과 의회의 의사일정 수준으로 전락해버린 정치를 다시 시민주도 정치로 복원하고 재활성화하는 중요한 민주주의 정치 전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신자유주의 체제와 우파 포퓰리즘에 대항하는 ‘좌파 포퓰리즘’의 목표가 될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민주적 포퓰리즘’이라 부를 수 있다. --- p.266 ‘아래로부터의 복지 정치’ 전략은 다양한 의제를 하나로 묶어간다는 점, 그리고 시민의 직접 참여를 통한 복지국가 주체 형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무페(C. Mouffe)의 ‘좌파 포퓰리즘 전략’론과 유사성이 있다. 지난 2017년 촛불시민혁명에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민주적 에너지 역시 직접민주주의적 동원으로서의 포퓰리즘과 중첩되는 지점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포퓰리즘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가능성은 보편성과 다양성의 공존이라는 현재의 복지국가가 처한 난제를 극복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있다. --- p.352-2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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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 강력 추천: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훌륭한 지침서”
경기연구원 기획,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와 학자가 집필 주권자의 집단지성으로 열어갈 새로운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대안 제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성찰과 논의 다양한 개인을 포용하는 집단지성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민주주의 시민이 자기 일상의 삶과 직결된 문제와 정책 수립에 참여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하여》는 경기연구원이 기획하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추천한 ‘공정과 지속가능 프로젝트’ 민주주의 편이다. 이 책은 현재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현실과 한계를 짚어보고 시민이 일상 속에서 자기 삶과 직결되는 문제에 목소리를 내며, 다양한 집단지성을 통해 만들어지는 더 많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권위주의 통치를 거쳐 온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지향점이자 이상향이었다. 그리고 제도적인 측면에서 민주주의 형성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한국 민주주의 발전이 형식적인 측면에 머물러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지향하는데, 이는 정치적 거대 담론이나 정치 공간의 장식품에 그칠 수 없다. 또한, 선거를 통해 공직자를 선출하는 제도로 한정되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일상의 삶으로서 구체적 실천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민들이 자기 삶의 문제와 관련된 정책에 관해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고 간여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어야 민주주의의 본질적 의미에 다가설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시민의 목소리가 강력한 힘을 얻는 데 대한 거부감이 존재한다. 이른바 ‘포퓰리즘’에 대한 경계심이 그것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대중영합주의’ 혹은 ‘대중선동’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공격하고 배제해야만 할 대상은 아니다. 포퓰리즘 현상 속에서 민주주의의 현실을 깊이 성찰하고 한계를 극복할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역행이라 단정할 만큼 단순한 현상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인민주권’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국가 혹은 사회에서 인민이 진정한 주권자로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불평등과 불공정이 여전히 남아 있고, 그에 대한 인민의 불만, 그리고 불평등과 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한 주장이 포퓰리즘과 만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포퓰리즘을 정의하고 분석하지 않는다. 그 의미를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해석하거나 평가하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정치사상 측면에서 인민(민중)의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포퓰리즘이 유럽, 미국, 라틴아메리카에서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 민주주의를 상징해온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무엇인지,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살펴보려 한다. 즉, 현재의 민주주의를 재검토하며 ‘민’을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근본적 민주주의를 성찰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제 정치 공간은 일반 시민들이 일상에서 자유와 평등을 체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치지도자는 시민들의 일상을 지켜주고 그들이 자유와 평등을 가꿔나갈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을 거대 정치 담론으로만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 속에서 자유와 평등이 실천될 수 있도록 일상의 실천적 정치 공간을 만들기 위한 더 큰 걸음이 필요하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실천과 지속은 결국 ‘민(民)’을 중심으로, 동일한 하나의 집단지성이 아닌 다양한 개인을 포용하는 포괄적인 집단지성을 통하여 만들어져야 한다. 그것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얻는 길이다. 세계적 포퓰리즘 현상의 시사점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지혜 2016년에는 세계 정치사에 기록될 굵직한 일이 여럿 일어났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가,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한국에서는 촛불혁명이라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영국과 미국의 사례는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로 해석되기도 하며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이었는지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하지만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은 그 중심에 시민들,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버려진 사람들’이라 불린 쇠락한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브렉시트를 이끌었고, 미국에서는 가난한 서민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한국에서는 가족, 친구, 동료들끼리 광장에 모여들었다. 전 세계에서 일상의 삶과 연결된 문제로 시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등 일상의 전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평등과 불공정의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며, 평등하고 공정한 일상의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의미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적인가, 반민주주의적인가를 논하기에 앞서, 포퓰리즘 혹은 포퓰리즘적 현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면서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하고 보다 객관적으로 포퓰리즘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민은 자신들의 일상의 삶이 정치라는 공간을 통해 정책으로 지켜지기를 원한다. 그들의 요구와 주장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민들의 요구와 주장이 계속되는 맥락을 살펴봐야 할 것이며, 나아가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만들어갈지 고민이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그 진정한 주체인 ‘민(인민, 민중, 시민 등)’이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를 어느 정도 실천하고 있는가에 따라 평가받는다.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실천된다는 것은 더 많은 ‘민(인민, 민중, 시민 등)’들의 개인적 자유와 사회적 평등이 실현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더 많은 ‘민’들이 자신들의 일상의 삶과 직결된 문제에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반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포퓰리즘이 제기하는 문제 역시 일상의 민주주의로의 확대, 즉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평등의 실천이라고 볼 수 있다. 포퓰리즘의 정치사상적 맥락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관통하는 민중 참여 방식 포퓰리즘은 19세기 유럽과 미국에서 등장하여 20세기 후반의 ‘새로운 포퓰리즘’으로 진화했다. 이는 엘리트에 의해 무시당한다고 느끼는 민중에게 목소리를 되돌려준다고 약속하는 이데올로기이자 운동으로 존재했다. 정치 앨리트와 기득권층의 일방적 평가와는 별개로 포퓰리즘은 오늘날 사회적 현상이자 정치적 세력이고, 지난 두 세기의 역사적 사실이었다. 특히 라틴아메리카 포퓰리즘은 장기 16세기 근대/식민 자본주의 세계체제로부터 구조화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모순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해석된다. 라틴아메키카에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적대하지 않는다. 포퓰리즘의 인민은 불평등과 배제의 민주주의, 허울뿐인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를 구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우리의 편견 속에 존재하는 포퓰리즘은 민중의 참여에 대한 기득권의 반작용이 만들어낸 가상의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포퓰리즘은 포퓰리즘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포퓰리즘들’로 존재하며 포퓰리즘들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개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사상의 맥락에서 살펴볼 때 포퓰리즘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으며, 현재도 존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고대 그리스와 현대 중국, 우리나라의 정치사상에서 포퓰리즘의 존재 양식을 확인할 수 있다. 포퓰리즘의 시원은 고대 아테네의 민중선동가 혹은 민중지도자로 불리었던 ‘데마고고스’에서 찾을 수 있다. 민주정을 혐오하던 앨리트주의자였던 그리스 학자와 정치가들은 이 단어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였는데, 포퓰리즘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는 이로부터 재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포퓰리즘이 가진 독재의 경향을 줄이려는 시도였으며 고대 엘리트주의자들 역시 민중의 정치 참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현대 중국에서도 포퓰리즘적 성격을 찾을 수 있다. 개혁개방 이후 양극화로 인해 정치적 정당성의 위기를 겪게 된 중국 정부는 민본주의에서 그 해결책을 찾았으며 민본주의적 성격을 띠는 중국의 포퓰리즘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내용이 되었다. 한국 정치사상에서도 포퓰리즘의 형태가 발견된다. 영어 단어 people에 대응하는 우리말 개념은 민(民), 인민(人民)이다. 그밖에도 백성(百姓), 국민(國民), 사민(士民), 신민(臣民), 시민(市民)도 일정한 의미에서 people의 대응 개념이다. 인간, 인민, 공공성을 근본에 두는 한국정치사상의 전통에서 (인)민은 정치에서 가장 귀한 자산이자 정치와 정권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원천으로 인정받았다. 애민(愛民)과 외민(畏民)의 마음으로 수혜자 범위를 최대한 넓히는 정책 실행은 과거로부터 국가의 마땅히 할 일이다. 이를 ‘포퓰리즘’으로 매도하는 것은 반민주 반정치적인 책동이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민주적 대중정치 민주주의적인 동시에 반민주주의적인 포퓰리즘의 양가성 극복하기 포퓰리즘을 이해할 때 민주적이면서도 반민주적인 양가성을 전제로 삼는 것이 합리적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와 인민이라는 몸통을 공유한다. 그러나 인민에 대한 독특한 해석 때문에 민주주의와 다른 존재로 갈라져 나간다. 우파 포퓰리즘이 확산되며 병리적 현상으로 전락한 사례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게 합리적이다. 포스트 민주주의로 일컬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포퓰리즘 현상은 대의민주주의로 상징되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식한 바탕에서 새로운 정치 문법, 정치 방식, 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정책에 영향을 받는 인민, 국민, 평범한 사람들, 보통 사람들, 노동자, 농민, 빈민,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사회적 자원분배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포함되는 새로운 민주주의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포퓰리즘은 정치적 선동이 아닌,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 등에 관한 ‘불안’과 위기에 대한 대응이며 기존 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러한 포퓰리즘 현상이 우파나 권위주의로 빠지지 않고,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포퓰리즘을 민주적으로 재구성하고 시민 주도 정치를 재활성화해야 한다. 다양한 개인으로서의 시민이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제약 없이 들리며 정책적으로 반영될 때, 더 민주적인 민주주의의 지속이 가능하다. 배타적 연대와 포퓰리즘의 결합으로 등장한 복지 쇼비니즘이 아닌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포퓰리즘적 동원과 포용적 연대의 구축으로부터 시민이 주체가 되는 아래로부터의 복지정치가 한국 복지국가에 필요하다. 그리고 일상의 민주주의로의 확대를 통해 민주주의를 재구성하고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정치로서 ‘피플-이즘’으로의 의미 확장이 시도되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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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정치의 주체는 주권자인 국민입니다. 일억 개의 눈과 귀, 오천만 개의 입을 가지고 스마트폰으로 무장한 집단지성으로 불의한 권력을 끌어내린 ‘촛불혁명’을 일군 주역입니다. 그런 국민을 대상으로 정치적 목적으로 ‘포퓰리즘’을 말하는 것은 주권자를 모욕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일입니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하여』는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반공 이데올로기처럼 덧씌우는 ‘포퓰리즘’ 담론을 넘어서 주권자의 뜻이 정치와 사회 등 모든 영역에 관철되는 ‘민주주의의 확장’에 대해 고찰하고 있습니다. 치열한 논의를 통해 엮은 이 책이 주권자의 집단지성으로 열어갈 이 땅의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해 가는 훌륭한 지침서가 되어주리라 기대합니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