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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아침
박희영 시집
박희영
한국문연 202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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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시인선

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수덕사 10
고향을 떠나며 12
자작나무 14
예산역 15
아들의 고향 16
귀향 18
건축물대장 직권말소 사전통지 20
탱자꽃이 필 때 22
눈 내리는 아침 24
8월의 강 26
가을이 문을 두드릴 때 28
5월이 오기 전에 30
이팝나무 아래에 서서 32
숲에서 어둠을 만났을 때 34
바닷가에 서서 35

제2부

비와 낙엽 38
찻잔을 들고 39
후회 40
첫사랑 42
문신 44
갈증 46
푸른 날개 48
늙은 일기장 50
황사 52
기다림 53
그대의 기침 54
봄이 눈을 뜰 때 55

제3부

우울증 58
백석의 시 59
돋보기를 벗고 60
개구리 61
시간 대출 62
오이꽃 63
빈 둥지 64
회초리 66
꽃대를 밀어 올릴 때 67
가을밤 안개 68
폭설 69
불난 갈대밭 70

제4부

사람이 되고 싶다 72
가을이 숨어들 때 73
겨울 고양이 74
첫눈을 기다리며 76
참을 수 없는 행복 78
눈은 아픔의 영혼이다 80
봄 감기 81
달개비꽃 82
가을 83
몽둥이 바람 84
풍선 86
봄꽃 눈물 88
박새의 봄 90

박희영의 시세계 | 서안나 91

저자 소개 1

충북 음성 출생. 예덕여고, 예산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했다. 1998년 『지구문학』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그리움의 방정식??이 있다. 한국문인협회 예산지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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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7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12쪽 | 136*216*20mm
ISBN13
9788961043892

책 속으로

늦은 밤에 돌아오는
술 취한 사람의 눈빛처럼
봄은 오는데
아내는 기차 기다리는
역사의 가로등을 바라보고 있다

동냥젖이라도 먹이려고
낮은 산등성이로 아침은 나비처럼 날아오고
작은 골목길은 낡은 적삼 자락을 들어 올리며
붉은 가슴을 보이고 있다

바람이 갯벌을 이고 왔다고
비릿한 바지게를 내려놓고 있다
오래된 이정표는
여기로 가면 눈빛이 센 문학관이 있다며
새롭게 자리 잡은
안내판이 서로 손가락질을 한다

어제도 아프고 지금도 아파도
내일은 아프지 말라고
돌아선 바람도 봄도 불러보는 고향
--- 「고향을 떠나며」 중에서

산13번지에 눈이 내려 논두렁 지워지겠다
산짐승 서넛 찾아왔다 간 아침
흐린 하늘을 헤치고 오느라 늦은 햇살이
서둘러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떨어지는 눈덩이에도 멧비둘기 날지 못하고
밥 짓는 내음에 참새들만 처마 끝으로 모여
제 밥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런 날이면 고드름 길게 맺히고
군고구마 먹던 손으로 고드름 뚝 잘라
칼싸움을 했다
누군가 찾아올 일이 없는데 넉가래로 길을 내고
신작로 저편까지 후하고 입김을 뿜어 보았다

겨울에도 보리밥을 먹었던 산골을 떠나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살았다
이제는 눈을 치우지 않아도 되는 손바닥에
아직도 남아 있는 희미한 굳은살
아 나는 지금도 하얗게 눈이 내리면
그렇게 먹고 싶었던 쌀밥이 떠오른다

기워 신던 양말에 눈이 들어와 발 시린 겨울
모닥불에 녹이다 또 구멍 난 양말
눈 치우던 빗자루에 등짝을 맞아가며
무엇이 그리 좋아 뛰어다니던 눈 내리는 고향
내려놓을 수 없는 그리움
--- 「눈 내리는 아침」 중에서

사람이 살아야 집이라고
산13번지에는
거미줄 너머로 비를 뿌린다
바람이 제멋대로 밟아버린
벽지에는 몇 개의 낙서가
매달려 있고
작은 거울 뒤에는
그 사람이 서 있다
비가 천장을 통해 들어온다
쥐들이 다니던 길을
물어 왔는지
사람의 냄새보다
더 짙은 냄새가 난다
습작하던 원고지가
사람이 살아야 시가 된다며
깨진 유리창을 막고 선다
사전 통지서를
대문 앞에 던져놓고
집 마당을 벗어나기도 전에
내 바지가 흠뻑 젖어 있다

--- 「건축물대장 직권말소 사전통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에 나뭇잎 배를 띄우듯 시집을 세상에 보낸다. 어느 항구에서 쉬어 돛을 접고 고단한 어부의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섬에서 닻을 내려 파도 소리 퍼 올려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으면 좋겠다.

시를 쓰며 생각은 끊임없는 탈피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라 믿고 밀려오는 사념의 파도를 견뎌야 했다. 쏟아지는 언어가 세상 속을 떠돌고 그 무게로 인해 괴로움을 등에 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 시를 쓰는 사람이 겪는 삶의 자세라서 탈피가 아닌 우화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쓰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탈피의 멍에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새롭지 못한 답습의 글자욱을 남긴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가를 알기에 오늘도 고뇌한다.

몇 편의 시를 내보이면서 읽어주는 누군가에게 신선한 공감을 불러일으켜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거창하게 철학적 배경이나 사상을 담지 않았다 해도 잔잔한 물결이라도 일렁이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름대로 나물을 다듬듯 방망이로 주름을 펴듯 수없이 티를 고르고 다듬었어도 어디 흠결이 없겠는가마는 지그시 보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하겠다.

2025년
박희영

추천평

박희영 시인은 피폐화한 고향 현실을 고발하면서, 이에 관한 대안책으로 숲과 육체를 통한 자연에 귀 기울이기를 통해 근대문명에 관한 반성적 태도를 취한다. 자연과 인간관계의 탐구와 사유가 이 시집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과의 공존을 탐구하고, 환경오염으로 파괴된 물질문명을 비판하는 생태주의적 시선은 “고향”과 같은 다양한 상징 혹은 은유로 변주되어 박희영 시인만의 개성적인 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 서안나 (작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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