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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리에코
2부 아키히코 |
Riku Onda,おんだ りく,恩田 陸,熊谷 奈苗(くまがい なな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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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에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혼재한다. 발치에는 죽은 자가 퇴적되고, 나뭇가지 끝에서 갓난아기의 웃음소리가 비 내리듯 내린다. 숲속에는 온갖 시간이 흐르고, 침체하고, 소용돌이를 그리고, 때로는 역류를 되풀이하며 언제나 뒤섞이고 있다. 수없이 많은 죽은 자들. 바꿔 말하면, 정신이 까마득해질 듯한 시간의 축적을 보며 우리는 숲에 압도되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 p.9 여행. 우리는 왜 여행을 하는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고, 아름다운 경치도 보고 싶고, 술 마시고 그 자리에 대자로 뻗어 쿨쿨 자고 싶다. 그것은 당연한 욕구이다. 하지만 그뿐일까? 우리는 무엇보다도 ‘비일상’을 원하는 것이다. 물론 ‘비일상’이라는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평소와는 다른 장소의 일상, 평소에는 보지 않는 타인의 일상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무엇을 보든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는’ 법. 평소에는 환기되지 않는 기억을 찾아 우리는 여행을 한다. ‘자기 자신을 다시 생각한다’, ‘자신과 대면한다’, 모두 내가 싫어하는 말이지만 이렇게는 말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과거를 되찾기 위해 여행한다’. --- p.38 무표정하게 같은 차에 탄 동승자들을 바라봤다. 말없이 흔들리고 있는 세 친구.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을. 그날 밤, 사실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바다를 보는 남자의 옆얼굴을 몰래 봤다. 그녀는 살해당했을까. 마음속에서 처음으로 말로 표현해 봤다. 마키오는 그날 밤, 유리를 죽였을까. --- p.92 가지와라 유리. 기묘한 존재다. 나와는 직접 관계가 없고 세쓰코와도 없다. 리에코도 오래전에 소식이 끊긴 모양이고, 유일하게 접점이 있을 마키오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여행에서 우리 네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것, 여행의 중심에 있는 존재는 그녀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녀는 살아 있나, 아니면 죽었나? 살아 있다면 지금 어떻게 지내나? 죽었다면 언제 죽었나? 왜 죽었나? 그리고 그녀의 생사에 마키오는 어떻게 연관되어 있나? 뇌리에 붉은 리본이 떠올랐다. 마키오는 핵심 가까이에 있다. 내 직감이 그렇게 고했다. 나는 내 직감을 믿기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수수께끼의 해답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도 내 직감이었다. --- pp.274-275 “그나마 다행인 건 독약의 양이 꽤 많았기 때문에 거의 즉사였다는 거야. 감기 때문에 코랑 목이 맛이 가 있었으니 방금 마신 게 이상하다고 알아차리기 전에 의식을 잃었을 거라더라.”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깨달았다. “용케 그렇게 자세한 상황을 알고 있네. 원래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는 거야? 혹시 그 애 어머니가 가르쳐주셨어?” 세쓰코가 물었다. 당연한 질문이다. “가르쳐준 건 경찰이야. 내가 용의자였거든.” --- pp.360-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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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수수께끼
시간과 기억 속에 소리 없이 묻혀간 실체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리에코, 아키히코, 마키오, 세쓰코는 졸업한 지 십몇 년이 지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태고의 숲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중 추리소설 마니아인 아키히코는 여행의 테마를 ‘비일상’으로 정하고 저마다 ‘아름다운 수수께끼’를 지참해 오라고 당부한다. 또 마음에 켕기는 게 있는 사람은 볼 수 없다는, ‘전설의 벚나무’를 보는 것도 그들 여행의 목적이 된다. 네 친구는 여행길 위에서 어릴 때부터 반복적으로 꾸는 꿈이나 학창 시절의 도난 사건, 불가해한 공포 따위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는 내내 그들의 걸음 뒤로 과거의 ‘어떤 일’이 조용히 따라붙으며 기묘한 긴장감을 더한다. 이 책은 네 명의 주인공이 각 부마다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1부의 화자인 리에코는 대학 시절 절친했던 가지와라 유리의 행방에 의문을 품고 있지만, 그와 관련된 의심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는다. 리에코는 대학 시절 마키오와 연인 관계이기도 했는데, 마키오가 돌연 유리를 좋아하게 됐다고 고백하며 이별을 선언한다. 한편 유리는 자신의 졸업 공연인 일인극 무대에 리에코와 마키오 모두를 초대하고, 공연을 마친 후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리에코는 이번 여행을 통해 마침내 유리의 행방과 그를 둘러싼 진실에 다가서려 한다. 그날 밤, 유리를 죽인 사람은 마키오일까. ‘그 일’은 잊힌 걸까, 말하지 않는 걸까 짙은 안개 속을 빠져나와 도달한 내막 상권 2부의 화자 아키히코는 친구들에게 과거의 불편한 기억을 꺼내놓게 하면서도 그 자신의 수수께끼는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자신이 수국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수국 덤불 그늘에 서 있는 소년. 아키히코의 머릿속에 자리한 두려움의 잔상이 선명해지는 순간, 그가 과거를 잊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절로 이해하게 된다. 네 친구 가운데 가장 속내를 알 수 없던 마키오의 이야기는 하권의 3부에서 드러난다. ‘인간쓰레기’. 생각해 보면 마키오를 처음 그렇게 정의한 사람도 가지와라 유리였다. 리에코는 유리의 죽음을 예감하고 그 범인으로 마키오를 의심한다. 심지어 아키히코도 마키오에게 단도직입으로 “네가 죽였냐?”라고 묻는다. 하지만 마키오는 끝내 친구들 앞에서 거짓을 고한다. 진실은 때때로 서글픈 여운만 남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4부의 화자 세쓰코도 여행 내내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지 않는다. 세쓰코는 등장인물들이 공유하거나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과 밀접하게 연결된 인물로, 가장 차분하게 모두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냥 해맑아 보이던 캐릭터가 간직하고 있던 비밀과 시각은 일종의 반전을 선사하고, 그녀가 종장을 담당하게 된 이유를 보여준다.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어둡고 끝없는 숲길을 빠져나온 네 사람. 마음에 켕기는 게 없어야만 볼 수 있다는 ‘전설의 벚나무’는 누구의 눈앞에 나타날까. 훗날 이들에게 기억될 이 여행의 마지막 장을 따라가 보자. 해답 없는 퍼즐을 맞춰가는 듯한 기이한 긴장감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일상 미스터리’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는 동명의 미지의 책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등장한다. 그 책의 1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네 명의 장년 남녀가 여행하는 이야기예요. 정말로 그게 다랍니다. 하여튼 한가롭게 늘쩡늘쩡 여행해요. 등장인물이 하는 말을 통해 섬 맨 안쪽에 있는 전설의 벚나무를 찾아가는 게 이 사람들의 목적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 전혀 진전이 없는 거예요.” ― 《삼월은 붉은 구렁을》 중에서 즉 《흑과 다의 환상》은 작가가 전작에서 뿌려놓은 씨앗을 거둬들인 작품이자 세계관을 발전시킨 면에서 의미가 깊다. 또 전통적인 미스터리 소설과는 결이 다른데, 누군가의 죽음이나 사건의 실체를 파헤치기보다 오랜 시간 침묵으로 덮여 있던 관계의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나간다. 네 명의 주인공이 대화로 주고받는 수수께끼 역시 범인이 누구인지, 사건의 트릭이 무엇인지 같은 외형적 해답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기억 속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고, 그 과정에서 수수께끼가 말끔히 풀리기도, 어정쩡하게 끝나기도, 때로 의도적으로 외면되기도 한다. 그런데도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몰입감은 속도감 있는 미스터리 소설과 견주어도 다르지 않다. 온다 리쿠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섬세하게 포착한 인물의 미묘한 감정 변화가 작품 전반에 불온한 감각을 불어넣으며 일상 미스터리의 극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