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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코스모스
편집자의 말 |
Riku Onda,おんだ りく,恩田 陸,熊谷 奈苗(くまがい なな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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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여자를 향해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뒤쪽으로 슬며시 다가가 조금 거리를 두고 섰다. 물론 여자는 그 사실을 모른다. 이야기에 푹 빠져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을 뿐. 다음 순간. 또다시 소녀가 사라졌다. 앗. 가미야는 속으로 외쳤다. 그렇군. 이제 알았다. 기시감을 느꼈다. 소녀는 사라졌지만, 그곳에 있었다. 모순되는 말 같지만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 표정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옆에서 휴대전화에 침을 튀기고 있는 중년 여자와 똑같았다. --- pp.27-28 “아야야, 바사라, 얌전하게 굴어야지.” 소녀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물론 그녀 옆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쓰미는 오싹했다. 간지러움 같기도 한 소름이 온몸에 좍 돋는 게 느껴졌다. 방금 뭐가 지나갔는데. 분명히 그런 느낌이 들었다. 커다란 짐승 같은 뭔가가 자기 곁을 지나 저 애를 들이받은 것 같았다. 물론 이성으로는 착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아무것도 소녀를 들이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움직임을 저 애는 했다. 머리가 이 사태를 따라가지 못하겠다. --- p.60 객석이 조용해졌다. 개막 1분 전, 이라고 무대 뒤에서 누가 소리쳤을 것이다. 개막 전에는 늘 긴장된다. 남의 무대라도 마찬가지다. 장내가 어두워졌다. 친숙한 어둠. 농도가 짙은, 순간의 침묵과 정적. 이제부터 시작될 것에 대한 기대. 무대가 시작될 때의 설렘. 이 순간을 자신은 늘 사랑해오지 않았나. 가미야는 극장의 어둠 속에서 자문했다. 이제부터 눈앞에 펼쳐질 미지의 세계. 생각지도 못한 기쁨과 슬픔이 기다리는 허구의 세계. 저 작은 공간에 과거도 미래도, 하루하루의 생활도, 국가도, 머나먼 세상과 끝없는 우주도 창조해낼 수 있는 경이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그럴 터였다. --- p.166 소녀가 팔을 벌린 채로 돌아섰다. 헉. 가미야는 숨을 훅 들이마셨다. 아니, 가미야뿐 아니라 객석이 순간 움찔 얼어붙었다. 얼굴이 없다. 온몸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진짜 공포가 온몸의 살갗을 훑었다. 얼굴이 없다. 소녀의 얼굴이 없다. 머리카락, 목, 팔다리는 있는데 얼굴 부분만 비었다. 아무것도 없다. --- p.210 그렇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그녀는 템포를 놓치고 말았다. 그게 방심으로 이어졌는지, 제풀에 넘어져 생각지도 못한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분했지만 한편으로 여우에게 홀린 심정이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굉장히 강한 애’ 같지는 않았다. 그럼 어째서 오빠는 굉장히 강한 애라고 했나. 실제로 그녀는 지고 말았다. 오빠의 심리 작전에 걸려들었다는 뜻인가. 아스카는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너 가라테가 무섭지 않으면 이 이상 강해지지 못한다. 대체 무슨 뜻이었을까. 아스카는 날이면 날마다 공포심에 관해 생각했다. --- pp.225-226 교코는 아오이에게서 ‘배우의 눈’을 느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떼어놓고 볼 수 있다, 냉정한 제삼자의 시점에서 배역과 자신을 분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말로 표현해본 적은 없지만 교코에게는 지론이 있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배우는 눈이 세 개 있다. 배우 자신의 눈. 그것을 객석에서 보는 객관적인 눈. 그리고 양쪽을 조금 높은 곳에서, 혹은 조금 깊은 곳에서 분석하는 제삼의 눈. 이 세 눈을 균형 있게 갖춘 배우가 그녀의 취향이었다. 배우 중에는 첫째 눈이나 둘째 눈만 있는 사람도 있고, 둘 다 가진 사람도 있다. 그렇다고 배우를 못 할 것은 없거니와 그것도 개성일 것이다. 하지만 역시 제삼의 눈이 존재한다고 교코는 생각한다. 오랜 세월을 들여 그것을 획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부터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아오이에게는 그게 있다는 생각이 든다. --- p.259 다음 순간, 빨간 천과 파란 시트가 공중을 날았다. “앗!” 관객의 시선이 공중을 빙글빙글 도는 빨간 천과 파란 시트에 고정된다. 무대 위의 두 사람이 동시에 그것을 던져 올린 것이다. 좌우로 흔들거리며 떨어지는 빨강과 파랑. 무대를 보자, 두 사람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란히 서 있다. 관객의 시선이 천에 고정돼 있던 동안, 아스카가 의자 뒤에 서고 기타가와가 무대 오른쪽으로 이동한 것이다. 노랫소리가 점점 커진다. 천과 시트가 바닥에 떨어졌다. 다음 순간, 두 사람이 재빨리 움직였다. 아스카가 파란 시트를, 기타가와가 빨간 천을 집어 자연스럽게 허리에 둘렀다. 이번에도 변신은 동시에 일어났다. 타이밍이 정확히 맞아들었다. 두 사람은 입을 딱 벌리고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마주 본다. 이번에는 아스카가 큰어머니가 되고, 기타가와는 베라가 된다. --- pp.391-392 객석은 또다시 조용해졌다. 주위를 뒤덮은 기이한 긴장감은 객석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심경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엄청난 게 시작된다. 엄청난 곳에 와 있다. 우리는 지금 좀처럼 없는 행운을 누리고 있고, 이제부터 누리게 될 것이다. --- p.434 교코 또한 객석에서 젊은 청년이 일으켜 세운 소녀가 그 애라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그 눈에 시선이 빨려드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그 애가 나를 보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르다. 서로가 서로를 배우라 인식한 눈, 같은 세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인정한 눈이었다. 교코는 소녀를 쏘아봤다. 자, 이리 와. 난 한 번 더 그 느낌을 맛봐야 해. 넌 거기에 협조해줘야 해. 그러니까 얼른 이리 와. 그녀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소녀에게 속으로 말했다. 얼른, 얼른. 그러지 않으면 느낌을 놓치고 말 거야. --- pp.479-480 다쓰미는 떨리는 심정으로 무대를 보고 있었다. 아니, 정말로 다리가 바르르 떨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까지,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이런 기적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렇지만 이런 것을 보게 될 줄이야. 다쓰미는 숨 쉬는 것마저 잊었다. 언젠가 오늘을 기억할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다. 노인이 되어, 그때 나는 그곳에 있었노라고 시대의 증언을 할 날이 분명히 온다. --- p.4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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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연극에 바치는
애정 가득한 찬사 어느 대학의 극단 단원들에게 몸집도 작고 용모도 수수한 소녀가 입단 의사를 밝힌다. 적당히 거절할 생각으로 입단 테스트 과제를 준 단원들. 하지만 소녀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해 보인다. 수수께끼 같은 첫 번째 주인공의 이름은 사사키 아스카. 그녀는 극단에 성공적으로 입단하고, 오디션을 볼 기회 또한 얻는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 아즈마 교코는 젊은 나이에 실력과 명성을 겸비한 배우 집안 출신의 인재이지만, 자신의 연기에 대한 망설임을 갖고 있다. 교코는 국립극장 개관 기념 공연의 주연 여배우 선발 오디션 참가 제안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크게 절망한다. 오디션은 비밀리에 시작되고, 예순에 가까운 베테랑 여배우 이와쓰키 도쿠코, 교코의 친척이자 역시 배우 집안 출신인 하즈미, 교코와 같은 연극에서 활약 중인 아이돌 출신의 아오이, 그리고 사사키 아스카. 이렇게 네 명이 2차 오디션을 받는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오디션장을 찾은 교코는 경합을 벌이게 된 오디션의 상대역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는데…. 『초콜릿 코스모스』는 여성 배우들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 작가 미우치 스즈에의 전설적인 작품 『유리가면』의 오마주로, 전혀 다른 성질의 재능과 실력이 무대 위에서 충돌하고 화합하는 극적인 순간을 소설이라는 장르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무빙〉 등에 출연하여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배우 곽선영은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무대라는 세계를 동경해본 적이 있다면, 이 작품은 깊은 공감과 동시에 묵직한 질문을 남길 것”이라는 말과 함께, 뮤지컬과 연극 무대로 잔뼈가 굵은 베테랑 배우의 면모를 드러냈다. 한편 『성소년』 『환상통ㄴ』 등으로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소설가 이희주는 재치 있는 문구로 온다 리쿠와 그의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아, 맞다. 이 사람 온다 리쿠였지.” 무대라는 세계, 세계라는 무대 위에서 두 소녀, 격렬하게 맞부딪치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사키 아스카와 아즈마 교코로, 소설의 중반을 훌쩍 지나 처음 조우하기 전까지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각자의 궤도를 달린다. 한쪽에는 아즈마 교코가 있다. 대대로 연기를 해온 뿌리 깊은 배우 집안 출신으로, 나이는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하지만 10년이 넘는 경력이 있다. 진로 걱정으로 진땀 빼는 또래의 세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이 걷는 탄탄대로가 정말 맞는 길인지 고민한다. 남들은 배부른 소리라고 욕할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달려들어도 오를 수 없는 산이다. 그러나 교코는 우물쭈물한다. “이곳은 정말 내가 있을 곳인가.”(본문 46쪽) 다른 한쪽에는 사사키 아스카가 있다. 연기 경험도 없는 주제에 완벽하게 타인이 되어버리는 천재. 배역을 맡기면 자각도 없이 연출까지 해내버리는 괴물. 아스카는 같은 연극계에 불쑥 던져진 수수께끼이자, 미친 재능을 지닌 연기 기계다. 무대 저 안쪽을 보고 싶다는 열망만으로 나아가지만, 자기(自己)가 없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그것이 그녀에게 고통을 주고 벽이 되어 앞을 가로막는다.”(본문 252쪽) 이 작품은 배우라는 직업과 연극이라는 세계, 그리고 천재성을 탐구하는 소설이기도 하지만, 연기자의 길에 올라선 두 주인공 소녀가 각자 변곡점에 다다르고 벽에 부딪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각자의 고민이 다른 만큼 타개책 역시 상이하다. 교코는 자신이 쌓아온 경험에 대한 믿음으로 진로에 대한 확신을 얻고, 아스카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강한 이끌림으로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간다. 바로 무대 위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보여준 새로운 경치 덕분이다. 그리고 이것은 독자에게도 적용된다. 마치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남녀는 한낱 배우일 뿐”이라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당신 뜻대로》의 한 대사처럼, 모든 이는 인생을 살아가며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고, 배우로서 두 주인공이 찾은 해결책은 단순히 배우로서의 커리어뿐 아니라 개인의 인생에도 적용될 만한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18년 만에 한국 독자를 다시 찾아온 전무후무한 연작의 시작점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60여 편이 넘는 단행본을 출간하며 꾸준히 세계를 확장해온 베테랑 소설가, 온다 리쿠. 잔인한 살인극이면서도 애틋한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스릴러, 마치 기억 속에서 불러온 듯한 밝고 아련한 학원물임에도 어딘가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청춘물, 그리고 무대 위 예술가들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복잡한 내면세계까지 치밀하게 그려낸 ‘예술가 3부작’까지, 한 장르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SF와 스릴러, 판타지와 미스터리를 횡단하는 능숙한 이야기꾼이다. 그중에서도 『초콜릿 코스모스』 『꿀벌과 천둥』 『스프링』으로 이어지는 ‘예술가 소설’은 작가가 가장 애정을 쏟고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연작이다. 그 독보적인 연작의 시작점에 있는 것이 바로 『초콜릿 코스모스』로, 일본 현지에서 첫 출간된 지 20년이 되는 2026년에 한국 독자를 새로이 만나게 되었다. 공연장의 불이 꺼지고 극이 시작되기 전의 짧은 순간. 현실과 유리된 공간에 앉아 앞으로 시작될 이야기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푼다. 공연자와 관객 모두 허구의 세계에 기꺼이 발을 들여놓는 것이다. 무대 예술의 세계와 그 세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이 소설 역시 강한 흡입력을 갖고 있어, 5백 페이지가 넘어가는 작품임에도 단숨에 끝까지 읽게 된다. 마치 눈앞에서 펼쳐지는 쟁쟁한 오디션을 보는 듯한 현장감에,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소름이 돋을 정도다. 나아가, 성인기에 막 들어서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가는 두 주인공을 통해 인생이라는 무대에 선 독자 한 명 한 명이 공명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쉼없이 치열하게 이어지는 숨가쁜 인생에서 잠시 빠져나와, 소설만이 다다를 수 있는, 현실을 초월하는 황홀한 경치에 몸과 마음을 맡겨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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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연기의 본질을 되묻게 만드는 하나의 기록이다. 다 읽고 나서는 진짜 재능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고, 아름다운 무대를 지켜본 듯한 깊은 여운이 몸에서 떠나지 않는다. 연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무대라는 세계를 동경해본 적이 있다면, 이 작품은 깊은 공감과 동시에 묵직한 질문을 남길 것이다. - 곽선영 (배우,〈무빙〉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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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 집안의 노력형 천재 소녀와 주체할 수 없는 재능의 아마추어 소녀가 등장하는 극이라니. 다 아는 얘기라고 시큰둥하게 읽다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예상을 교묘히 비껴가며 힘 있게 나아가는 페이지. 매력적인 등장인물. 무대에 대한 열정과 예술에 대한 철학과 창작의 자세까지 생생한 이야기에 흠뻑 빠져 읽다가 책장을 덮고 깨달았다. 아, 맞다. 이 사람 온다 리쿠였지. - 이희주 (소설가, 『성소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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