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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깔있는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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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유물 : 소재구
국민대학교 국사학과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에 근무하고 있으며 「원각사지 10층석탑의 연구」, 「동문선의 불탑자료」등 여러 편의 논문과 『법주사』, 『금산사』 등의 저서가 있다.
건축 : 김봉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울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문화관광부 문화재전문위원, 김수근 문화재단 전문위원, 한국건축역사학회 상임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교수로 있다. 『한국건축의 재발견』(전3권), 『한국의 건축-전통건축편』, 『법주사』, 『한국건축과 만남』(전3권) 등의 저서 외에 한국건축에 관한 30여 편의 연구 논문과 다수의 현대건축 비평들이 있다.
저자 : 정병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졸업(한국불교사 전공)하였다. 간송미술관 연구원과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의상 화엄사상 연구』, 『그림으로 보는 불교이야기』, 『일연과 삼국유사』 등의 저서와 「의상 화엄사상의 사회적 의의」, 「통일신라 불교 철학」 등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사진 : 손재식
신구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불교 문화와 자연을 소재로 하는 작업을 주로 해오고 있다. 그동안 십여 권의 빛깔있는 책들에 이와 관련된 사진을 실었고 웅진출판사의 『한국의 자연 탐험』 작업에 참여하였다. 현재 『사람과 산』의 객원 편집위원으로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0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44쪽 | 148*210*20mm
ISBN13
9788936902414

출판사 리뷰

천년의 화엄 성지, 화엄사
그윽한 노송 숲에 둘러싸여 독특하고도 경건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는 천년 고찰, 화엄사는 신라 불교의 중심 사상인 화엄의 근본 도량이다. 또한 건물 전체가 국보로 지정될 만큼 우아하고 당당한 바는 어떤 사찰도 따르지 못한다. 예부터 신선들이 모여 사는 삼신산(三神山)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기도 했던 지리산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이 사찰은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실제로 불교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이후부터이다.

80권의 『화엄경』을 사경(寫經)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던 연기조사와 그를 기리기 위해 자장율사가 세운 4사자3층석탑 그리고 의상대사가 이곳에 주석하면서 3층의 장륙전을 건립하고 사방 벽면에 둘렀다고 하는 화엄석경 등 일련의 불사로 인해 화엄사는 대도량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9세기에는 다양한 조각과 전통적인 형태의 서로 대비되는 동서 5층석탑을 세웠고, 의상의 화엄을 주축으로 하면서도 기신론과의 조화를 꾀하는 등 포용적인 관점을 지향하며 독창적인 면모를 이루어 왔다. 이렇듯 가람의 규모를 다지면서 화엄사는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는데, 신라에서 고려에 걸쳐 이름을 드날린 이로는 도선국사, 낭원(朗圓), 선각(先覺), 통진(洞眞)대사 등이 있다.

화엄사의 이름난 사상과 조형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도 계속되었는데, 이곳 화엄사에서 출가하여 당대 불교계를 지도하던 대각국사 의천은 이곳을 순례하면서 연기조사를 기리는 시를 읊기도 하였으며, 전적(典籍) 편찬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이러한 명성에 힘입어 화엄사는 조선 초 전국의 사원을 선교 양종 36사로 정리할 때에도 전라도 선종을 대표하는 두 사원 가운데 하나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한편,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화엄사의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의승군에 참여하여 나라를 지켜냈으며, 벽암(碧巖)대사는 대웅전을 비롯한 화엄사의 중창에 힘썼다. 그뒤 계파선사가 장륙전(각황전)을 건립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가람 배치가 형성되었다. 이렇듯 화엄사는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큰 스님들이 머무르면서 화엄종의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왔으며, 화엄사상 구현에 힘써 왔다.

추천평

각황전(국보 제67호)
정면 7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으로 조선시대 중층 불전 건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국내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대웅전(보물 제299호)
정면 5칸, 측면 3칸의 건물로 벽암대사가 중건한 것이다. 특히 소박한 외형에 비해 화려한 불단이 17, 8세기의 불교 건축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4사자3층석탑(국보 제35호)
각황전 뒤편 효대에 있는 석탑으로 화엄사의 창건주인 연기조사와 어머니의 전설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사자탑 가운데에서도 가장 우수하면서도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동서 5층석탑(보물 제132호, 133호)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이 석탑들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면서도 하나는 화려한 장식과 조각(서탑), 하나는 절제된 질서(동탑)를 지니고 있다.

원통전 앞 사자탑(보물 제300호)
화엄사에만 존재하는 희귀한 석탑으로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또는 그 이후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석등으로 각황전의 위용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선인들의 신앙과 예술, 지혜를 느낄 수 있다.

화엄석경(보물 제1040호)
의상대사가 장륙전을 건립한 후 사방 벽면에 새겼던 화엄석경은 정유재란과 한국전쟁 등으로 산산조각나고 말았지만, 당시 장엄했던 모습을 남아 있는 파편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괘불(국보 제301호)
색채가 곱고 균형 잡힌 구도와 치밀한 선의 움직임이 돋보이는 이 불화는 임진왜란 이후 불타 버린 전각들을 중창하고 난 뒤 벽암대사를 비롯한 승려와 불자들이 공을 들이고 왕실을 축원하며 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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