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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13
천총 7년 권13 천총 7년 정월 ~ 4월17 권14 천총 7년 5월 ~ 7월67 권15 천총 7년 8월 ~ 9월124 권16 천총 7년 10월 ~ 12월172 천총 8년 권17 천총 8년 정월 ~ 2월209 권18 천총 8년 3월 ~ 5월268 권19 천총 8년 6월 ~ 8월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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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이 각 니루어전에게 유시했다. “토지와 가옥은 백성이 삶을 의지하는 것이고, 농사를 권면하고 무예를 가르치는 것은 국가의 근본이다. 너희는 각자 맡아 관장하는 촌락의 토지에 가서 더욱 상세히 몸소 살펴야 하며, 부(部)의 사무로 미루면 안 된다. 만약 2-3개 니루가 성보 하나에 함께 거주하는 경우 각자 논밭 부근의 땅에 크게 담장을 쌓고 가옥을 군데군데 세워 살게 하고 이주할 때에는 그들의 편의를 따른다. 곡식을 심는 경우 움푹 파인 땅에는 적절히 기장과 피를 심고, 높은 밭은 지형에 따라 적절히 파종하라.
--- pp.22-23 왕천상(王天相)은 홍의포를 만든 공적이 있고, 김세창(金世昌)은 밀랍을 사용하지 않고 홍의포를 주조했으므로, 모두 비어로 승진시켰다. 동성공(董成功)에게 벼슬을 주어 천총으로 삼았다. --- p.54 정해일(8.28), 비어 사비간(sabigan, 薩璧翰)과 부장 김옥화(金玉和)를 보내 도원수 공유덕과 총병관 경중명에게 유시를 전했다. 「너희 도원수와 총병관은 오랫동안 정벌에 익숙한 사람으로, 군율에 본래 익숙한데 어찌 짐의 유시를 기다리는가? 다만 군사를 일으킨 당장에는 무지한 사졸들 가운데 사사로이 기병·보병의 병장기를 파는 자가 있을까 우려되니 급히 정돈해야 한다. 경들이 가져온 홍의포(紅衣砲)와 크고 작은 화포는 이미 통원보(通遠堡)에 옮겼다. 도착하면 곧 경들에게 맡길 것이니, 총·화포·활 등을 군사들에게 수시로 훈련시키고 잠시도 멈추면 안 된다. 기(旗)와 독(纛)은 모두 검은색을 쓰고, 말은 모두 낙인을 찍고 관할 관원의 관함(官銜)과 말 주인의 성명을 만주 문자로 쓴 패(牌)를 말에 매달아라. 낙인을 찍고 패(牌)를 매는 까닭은 군사의 말이 달아나 잃으면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印)과 패(牌)가 있다면 본 사람이 돌려보내기가 편할 것이다. 말마다 지달을 반드시 여러 개 사용해야 한다. 대개 한인은 말먹이를 주머니에 넣어 둔 채로 말을 먹이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 --- pp.143-144 이에 사할리얀이 주상의 명을 받들어 관원들을 조정 뜰에 모으고 유시를 전하여 말했다. 「너희 한인 관리들이 차요(差?)가 번중하다고 한 호소는 숨김없이 직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로 부득이하지 않으면 어찌 그리 절박하게 호소했겠는가? 그러나 짐의 뜻 또한 숨기거나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마땅히 공(公)에 따라서 논하면 짐이 생각하기에 너희의 괴로움은 전과 비교하여 조금 더 편하다. 처음에 너희가 모두 만주 대신에게 나뉘어 예속되었을 때 소유한 말도 타지 못하고 만주 관원이 탔으며, 소유한 가축도 너희는 쓰지 못하고 만주 관원이 강제로 값을 주고 사들였다. 관원이 병들어 죽으면 그 처자는 모두 버일러의 집에 주어 노복으로 삼았다. 만주 관원에게 소속되어 비옥한 밭이 있어도 농사를 짓지 못해서 1년 내내 수고해도 미곡은 입에 풀칠하기에도 부족하니, 매번 노복을 팔고 의복을 전당 잡혀 자급하기에 이르렀다. 너희가 몰래 명나라와 통하여 서신을 왕래하다가 거의 멸문을 당할 뻔했는데, 양문붕(楊文朋)이 고발되어 일이 발각된 이후에 짐이 잠시 너희의 죄를 용서하고 너희를 만주 대신의 집에서 빼내 별도로 1개의 기를 편성했다. 그 이후로 너희도 소유한 말을 탈 수 있었고 기른 가축을 쓸 수 있게 되었다. --- pp.225-226 또 하나의 서신에서 말했다. 「우리가 명나라와 화친을 의논하는 일을 왕에게 중간에서 전달하게 하니, 왕은 이미 승낙했으면서도 아직 답을 하지 않았다. 왕은 혹 우리나라가 여러 차례 군사를 일으켜 토벌했기 때문에 화호의 말이 필시 진실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기는가. 짐이 명나라와 전쟁을 하게 된 이유를 왕을 위해 말해 주겠다. 우리나라는 서책이 비록 온전히 갖추어져 있지 않지만 이전의 말과 행적들 사이에 남아 있는 것이 있다. 종래에 각국에 대해 일찍이 강함을 믿고 이득을 탐하여 가벼이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반드시 타국에서 먼저 무례하게 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옳고 그른 연유를 하늘에 고한 후에 군대를 일으켰으니 까닭 없이 전쟁을 즐긴 것이 아니다. --- p.2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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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태종실록은 청태종 홍타이지가 통치한 1626년부터 1643년까지 청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민족, 천문, 지리 등 여러 분야의 사실을 기록한 편년체 사서이다. 이 책에 기록된 사실의 구체적 내용은 방대하다. 청태종 재위기의 존호와 국호의 제정, 후비(后妃)의 책립, 제사(祭祀), 친정(親征), 전투, 수렵의 시행, 원단과 동지 행사, 왕공(王公)의 책봉, 외번(外藩)의 버일러(貝勒)와 대신(大臣)의 책봉, 명나라 장수들의 귀순, 팔기제의 확대, 내삼원(內三院)과 육부(六部)의 설립, 의정대신(議政大臣)과 내대신(內大臣)의 제수, 궁궐의 건립과 의관제도(衣冠制度)의 수립, 투항한 명나라 장병의 부양과 배치, 몽고 대신(大臣)의 명호 제정, 청태조실록의 수찬, 서적의 번역, 만주문자 개정, 과거시험, 한인과 조선인의 니루 편제, 성곽의 축성과 보수, 변경의 개척과 방어, 기근과 재난의 구제, 명나라·몽골·조선·티베트와의 외교 등 매우 다양한 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청태종 시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_해제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