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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13
숭덕 6년 권55 숭덕 6년 3월 ~ 5월17 권56 숭덕 6년 6월 ~ 7월67 권57 숭덕 6년 8월 ~ 9월108 권58 숭덕 6년 10월 ~ 12월167 숭덕 7년 권59 숭덕 7년 정월 ~ 3월211 권60 숭덕 7년 4월 ~ 5월264 권61 숭덕 7년 6월 ~ 7월305 권62 숭덕 7년 8월 ~ 9월3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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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축일(3.2), 주상이 여덟째 딸 구룬 공주를 투시예투 친왕 바다리의 아들 바야스훌랑과 혼인시키는 것을 허락했다. 가장 먼저 빙례(聘禮)를 행함에 호쇼이 친왕 이하 니루장긴 이상을 숭정전(崇政殿)에 모으고, 호쇼이 푸진 이하 구사 푸진 이상을 청녕궁에 모아 큰 잔치를 베풀었다. 바다리가 조각한 안장을 갖춘 말·낙타·갑옷·투구·담비가죽옷 등의 물품을 바치니 헤아려 받았다.
--- p.17 주상이 그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본래 명령하기를 먼 곳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며 금주(錦州)를 포위하여 위태롭게 만들라고 했는데, 지금 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주둔했으니 적은 필경 군량과 마초를 대량으로 운반해 성에 들일 것이다. 적이 버티면서 시간을 끌면 금주(錦州)를 언제 얻을 수 있겠는가?” 주상의 분노가 매우 심하여 하루 종일 풀리지 않았다. --- p.26 이에 의거하여 볼 때, 황금은 본래 우리 땅에서 나지 않고 또 시장에서 매매하는 물건도 아니며, 나라에 희귀한 보물입니다. 함양군(咸陽郡) 신계서원(新溪書院)은 원래 신라의 옛 사찰 터입니다. 생각건대 천 년 전에 지혜로운 사람이 여기에서 희대의 보물을 얻었는데, 자기가 가지지 않고 상서로운 조짐의 글자를 새겨서 다른 시대의 서물(瑞物)로 남긴 것입니다. --- p.70 또한 주상은 이날 밤 아군을 한꺼번에 보내면 후에 다시 도주하는 적군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적의 상황을 살펴보면서 잇달아 출발시켰다. 새벽이 되자 여러 장수들이 주상의 명을 받들고 각자 담당 지역으로 가서 적병을 가로막았으니, 실로 영명한 계책이었다. 적군을 기습하여 끝까지 추격하니 명나라 병사들이 온 산과 들로 도주했고 행산 남쪽 지역부터 바닷가를 따라 탑산 큰길까지 바다에 이르러 죽은 자가 무수히 많았다. --- p.143 주상은 상주문을 본 후에 말했다. “너희는 곧바로 연경을 취하라고 건의했다. 짐은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연경을 취하는 것은 큰 나무를 베는 것과 같다. 반드시 먼저 양쪽에서 잘라야 큰 나무가 넘어진다. 짐이 지금 관외의 네 성을 취하지 않았는데 어찌 산해관을 함락할 수 있겠는가. 지금 명나라의 정예병이 끝났고 우리 군대가 사방을 포위하고 공략하여, 저 나라의 세력이 날로 쇠퇴하고 우리 병력이 날로 강력해지니, 이제부터 연경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p.3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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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태종실록은 청태종 홍타이지가 통치한 1626년부터 1643년까지 청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민족, 천문, 지리 등 여러 분야의 사실을 기록한 편년체 사서이다. 이 책에 기록된 사실의 구체적 내용은 방대하다. 청태종 재위기의 존호와 국호의 제정, 후비(后妃)의 책립, 제사(祭祀), 친정(親征), 전투, 수렵의 시행, 원단과 동지 행사, 왕공(王公)의 책봉, 외번(外藩)의 버일러(貝勒)와 대신(大臣)의 책봉, 명나라 장수들의 귀순, 팔기제의 확대, 내삼원(內三院)과 육부(六部)의 설립, 의정대신(議政大臣)과 내대신(內大臣)의 제수, 궁궐의 건립과 의관제도(衣冠制度)의 수립, 투항한 명나라 장병의 부양과 배치, 몽고 대신(大臣)의 명호 제정, 청태조실록의 수찬, 서적의 번역, 만주문자 개정, 과거시험, 한인과 조선인의 니루 편제, 성곽의 축성과 보수, 변경의 개척과 방어, 기근과 재난의 구제, 명나라·몽골·조선·티베트와의 외교 등 매우 다양한 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청태종 시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_해제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