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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 / 13
숭덕 4년 권46 숭덕 4년 4월 ~ 5월17 권47 숭덕 4년 6월 ~ 7월64 권48 숭덕 4년 8월 ~ 9월104 권49 숭덕 4년 10월 ~ 12월150 숭덕 5년 권50 숭덕 5년 정월 ~ 윤정월177 권51 숭덕 5년 2월 ~ 5월218 권52 숭덕 5년 6월 ~ 9월277 권53 숭덕 5년 10월 ~ 12월324 숭덕 6년 권54 숭덕 6년 정월 ~ 2월3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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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태조 때에 인삼을 명나라 사람과 교역했다. 명나라 사람은 귀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팔지 않아서 우리는 단지 조악한 편금(片金)·주릉(紬綾)·단필(緞疋)만 얻었다. 그때 버이서와 대신의 가인(家人)이 명나라와 몰래 교역하여 좋은 비단 1필을 얻었다. 아둔 아거(adun age, 阿敦阿格)는 그 사람을 사형에 처하고 화려한 옷을 살 수 없게 해 달라고 주청했다.
--- p.54 정사일(7.2), 서신을 작성하여 명나라와 통호하고자, 파총(把總) 서문사(徐文師), 태감(太監) 왕조진(王朝進)·장복록(張福祿) 등에게 서신을 가지고 명나라로 가게 했다. 아울러 전장에서 생포된 명나라 덕왕(德王) 주유추(朱由??) 등이 숭정황제에게 올리는 상소문과 태감 풍윤승(馮允昇)이 명나라의 일을 맡은 여러 신하들에게 보내는 서신도 함께 보냈다. 전봉장령(前鋒將領) 누산(nusan, 努山)·후미서(h?mise, 胡密嗇)·부단(budan, 布丹)·바란(baran, 巴蘭)·오목투 바투루·오쇼·술더이·시터쿠 등에게 각 기(旗)에서 전봉(前鋒) 5명씩과 장긴 4명씩을 데리고 가도록 보냈으며, 갑사 100명은 서문사(徐文師) 등을 호송하여 십삼참(十三站)까지 갔다. --- p.94 주유추(朱由??) 등이 명나라 황제에게 상소하여 말했다. 「신들이 대대로 성은을 입은 지 일곱 대째입니다. 그러나 신의 죄악은 하늘에 닿을 정도로 커서 봉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고 백성은 도탄에 빠졌으니, 신의 죄를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신들은 붙잡힌 후 북조(北朝) 성상의 천은을 입어 해를 입지 않았으니 모두 우리 황상의 체면을 공경한 것입니다. 신들은 오로지 우리 황상께서 인자한 마음을 베푸시기만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 p.95 우리나라가 상국에 죄를 얻은 지 이미 오래되었다. 기미년 싸움에 도원수 강홍립(姜弘立)이 명나라의 원군으로 갔다가 패하여 사로잡혔다. 그러나 태조무황제께서는 강홍립 등 몇 명만 억류하고 나머지는 모두 돌려보냈으니, 은혜가 그보다 큰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가 미혹하여 깨달을 줄 몰랐다. 정묘년에 황제가 장수에게 명하여 동쪽으로 정벌하게 하니 우리나라의 임금과 신하가 강화도로 피해 들어갔다.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자, 황제가 윤허를 하고 형제의 나라가 되어 강토가 다시 완전해졌고, 강홍립도 돌아왔다. --- p.171 날이 밝아 오자 명나라 행산총병(杏山總兵) 유주지(劉周智)는 기마병과 보병을 이끌고 성 가장자리를 따라 배치했다. 금주총병 조대수는 우리의 병사가 적음을 살피고 금주유격 대명(戴明)에게 명령을 전달하여 기마병 700명을 이끌게 하고, 송산총병(松山總兵) 오삼계(吳三桂)의 기마병 3,000명, 행산 유주지의 병사 3,000명, 행산에 원래 주둔하는 기마병 300명, 총 7,000명의 병사가 힘을 합쳐 싸우도록 했다. 송산과 금주의 병사들이 계속 와서 모두 유주지와 군영을 합쳤고, 익(翼)을 나누어 진을 치고 우리 군사에게 접근했다. --- p.2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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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태종실록은 청태종 홍타이지가 통치한 1626년부터 1643년까지 청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민족, 천문, 지리 등 여러 분야의 사실을 기록한 편년체 사서이다. 이 책에 기록된 사실의 구체적 내용은 방대하다. 청태종 재위기의 존호와 국호의 제정, 후비(后妃)의 책립, 제사(祭祀), 친정(親征), 전투, 수렵의 시행, 원단과 동지 행사, 왕공(王公)의 책봉, 외번(外藩)의 버일러(貝勒)와 대신(大臣)의 책봉, 명나라 장수들의 귀순, 팔기제의 확대, 내삼원(內三院)과 육부(六部)의 설립, 의정대신(議政大臣)과 내대신(內大臣)의 제수, 궁궐의 건립과 의관제도(衣冠制度)의 수립, 투항한 명나라 장병의 부양과 배치, 몽고 대신(大臣)의 명호 제정, 청태조실록의 수찬, 서적의 번역, 만주문자 개정, 과거시험, 한인과 조선인의 니루 편제, 성곽의 축성과 보수, 변경의 개척과 방어, 기근과 재난의 구제, 명나라·몽골·조선·티베트와의 외교 등 매우 다양한 사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청태종 시기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_해제 中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