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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공포
데뷔작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로 호러 열풍을 만든 세스지의 신작. 편집자, 유튜버, 심령현상 전문가 세 명이 함께 심령 명소를 취재하며 일어나는 저주 현상을 설득력 있게 써냈다. 한겨울에 맛보는, 뜨거운 호러 소설.
2025.12.05.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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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장 풍선 015
제1장 변태 오두막 023 제2장 천국 병원 091 제3장 어리석은 세 사람 153 제4장 윤회 러브호텔 203 제5장 불확실한 괴이 243 제6장 한낱 패밀리 레스토랑 255 제7장 한낱 옛날이야기 267 제8장 날조된 괴담 275 역자 후기 297 |
背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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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도 말했지, 이건 재밌으라고 한번 꼬아본 아이디어. 독자가 재밌어하면 그걸로 족하니까. 실제로 유키에가 왜 이 오두막에 사진을 가져갔는지 알 수도 없고, 애초에 유키에가 가져간 건지 아닌지도 몰라.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거기에 다다르기까지의 리얼리티야.”
--- pp.78-79 그런 인간, 죽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빌며 그곳으로 향했다. 그 인간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유타카 곁에서 자랑스럽게 웃는 사진을 인쇄하고 잘라내서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서. _87쪽 여성의 얼굴은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고바야시가 압도된 것은 여성이 내뱉은 말도, 표정도 아니었다. 여성이 뿜어내는 어둠의 기운. 고바야시를 향한 깊은 분노와 동생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뒤섞인 채 끈적이는, 질량마저 느껴지는 부정형의 그것이 여성에게 엉겨 붙으며 흔들리는 것 같았다. --- p.161 “나 있지, 줄곧 널 봤어. 네 속을. 근데 계속 텅 비어 있더라. 그래서 생각했어. 아, 이케다 불안하겠다. 틀림없이 뭔가로 속을 채우고 싶어서 못 견디겠다, 하고.” --- p.175 호조의 어린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진짜라면, 그들의 마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분하고, 슬프고, 그 마음을 알아줬으면 해서 방황하는 유령들. 그들을 인간의 일방적인 사정 때문에 퇴치해 버려도 되나. 저세상으로 돌려보낸다니, 듣기야 그럴싸하지만, 과연 그들이 그걸 바랄까. --- p.189 경찰서에 따르면 신생아는 몸무게 약 2,500그램. 탯줄이 붙은 채 벌거벗은 상태로 실내의 침대에 눕혀져 있었다. 영아를 유기한 친모는 “낳은 것은 나지만, 내 아이가 아니다”라고 증언했으며, 동기에 대해서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 pp.228-229 나는 돌아다녔다. 옛날, 신이 있던 장소를. 지금은 고질병이나 다름없는 인간의 탐욕으로 더럽혀진 성지. 그 더러움으로 뇌수를 채우고 속죄함으로써, 맑고 고운 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그리하여 나를 대신할 누군가를 찾아내기 위하여. --- p.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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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밤이었지. 네가 날 죽인 게…”
오래된 괴담이 낯설어질 때 극한으로 치닫는 공포 폐건물이나 버려진 장소는 인간의 생활권에서 분리된 채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동시에 그런 곳은 사회와 접촉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나 무언가를 감추려는 이들에게 좋지 않은 용도로 활용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변태 오두막’, ‘천국 병원’, ‘윤회 러브호텔’이라는 버려진 공간을 조사한다. ‘변태 오두막’은 불륜으로 인해 생겨난 원한이, ‘천국 병원’은 남몰래 품은 불온한 염원이, ‘윤회 러브호텔’은 근거 없는 불길한 소문이 들러붙어 각각 저주의 발원지로 기능한다. 인간의 탐욕과 악의로 오염된 공간과 그곳에 층층이 쌓인 저주와 죄업이 순환한다는 가설의 근원에는 일본의 ‘로쿠부 살해’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민담(아들로 태어난 원수?가해자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 과거의 죄업을 직면하고 죽음으로 복수하는 이야기)이 존재할 만큼 보편적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자식으로 환생해 응보를 되돌린다는 ‘로쿠부 살해’의 윤회 구조는 작품 속 세 인물이 탐방한 버려진 공간에 얽힌 소문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작가는 돈, 성공, 가족, 재능 등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죄업이 환생을 통해 가해자에게 끝없이 되돌아간다는 오래된 민담을 근거 삼아 과거 로쿠부의 목적지를 현대의 폐허, 즉 더럽혀진 성지로 치환함으로써 우리에게 익숙한 공포를 견고하고 설득력 있게 재창조한다. 천천히 산을 오르며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맛보듯 면밀히 설계된 세스지 호러의 정수를 즐긴다 유령을 믿지 않는 유튜버 이케다, 유령을 보는 여자 호조, 유령을 곧 돈으로 여기는 편집자 고바야시, 이 셋은 돈벌이를 위해 유령을 이용한다. 버려진 장소에 얽힌 소문을 각색해 독자들이 착각하게 만들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괴담을 실제처럼 날조한다. 한편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유령을 활용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곳쿠리 상’ 놀이는 유령을 불러내어 질문을 던지는 우리나라의 분신사바와 비슷하다. 심령 명소를 비즈니스 대상으로 분석하고, 그곳에 얽힌 소문을 콘텐츠로 생산하며, 유령을 심심풀이로 갖고 노는 불경스러운 행위를 저지른 인물들에게 마치 그 행동의 결과인 것처럼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면서, 착각, 무의식, 우연의 일치로 치부하던 심령 현상과 유령에 대한 두려움이 서서히 싹튼다. 주인공 삼인방은 각자 타인을 저주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과거를 지니고 있으며, 심령 명소를 취재하려는 자신의 의도를 숨긴다. 이들은 일인칭 시점에서 서로 주고받은 정보만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밖에 없지만, 독자는 전지적 시점을 통해 심령 명소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세 인물이 감추고 있는 어두운 마음과 이를 바탕으로 벌이는 끔찍한 행동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결말에 이를수록 이러한 시점의 차이가 극대화한 작가의 연출은 읽는 이의 공포감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린다.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는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가 인터넷 연재 소설의 형식이었던 것과 달리,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는 단행본 출간을 전제로 집필해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풀 수 있었다고 밝혔다. “산을 천천히 오르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풍경을 맛보듯이 차분하게 연출한 작품”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서서히 고조되는 신개념 공포의 재미는 장르 독자들이 세스지 작가에게 갖는 기대감을 충분히 만족시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