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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名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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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인생이 하나의 이야기라면 가장 처음 일어난 사건에 큰 의미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간단히 그렇게 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이 몇십 년씩이나 변하지 않을 때도 많고, 사족 같은 묘사나 별 의미도 없는 표현이 잔뜩 나오기까지 한다.
--- p.5 나는 깜짝 놀라 그쪽으로 다가가 천을 걷어봤다. 그건 평범한 천이었다. 두 손으로 붙잡고 펄럭펄럭 움직여봤지만, 그 안에 사람이 숨어 있지 않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반대편으로 돌아가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바닥에 구멍이 뚫려 있을 리도 없다. 그럼 아까 그 그림자는 뭐였을까. “아오바, 아오바!” 큰 소리로 동생의 이름을 외쳤다. 아무 대답도 없다. 아키토는 방 입구에서 얼어붙은 듯 멍하게 서 있기만 한다. 나는 그를 불렀다. “지금 그거 봤어?” 아키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뭘 봤는데?” “아, 아오바가 천 너머로 걸어갔다가…… 그러다가 사라졌어.” --- p.22 “있잖아.”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오바가 없어졌어.” 한바탕 난리가 날 줄 알았는데 부모님은 뜻밖에도 매우 조용했다. 아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내 말을 못 들은 줄 알고 다시 한번 말했다. “아오바가 없어졌다고. 나랑 같이 있는 줄 알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없어졌단 말이야.” 부모님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다가 고개만 갸웃거렸다. 곧 어머니가 불안한 어조로 말했다. “누구를…… 말하는 거니?” --- p.28 “후지에다 교수님이 실종된 거랑 그 사람이 없어진 게 무슨 관련이 있나?” “관련?” 아즈사가 말했다. “기요하라 씨가 없어졌기 때문에 후지에다 교수님이 실종됐다는 뜻이야?” 그럴 리는 없지, 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답했다. 사람을 두 명이나 실종되게 하는 원인이 뭔지 금방 생각은 나지 않았다. 함께 산으로 가서 조난이라도 당했으면 모를까, 이 둘 사이에는 시간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나중에 우메모토 선배한테 한번 물어볼까?” 우메모토 선배는 박사 과정에 있는 선배로, 우리와 자주 어울려 논다. 소문에도 빠삭해서 어느 교수님과 어느 교수님끼리 사이가 안 좋다거나, 무슨 동아리에 이런 싸움이 났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술자리에서 늘 떠들었다. 아즈사와 죽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 기요하라 씨는 전문 분야가 뭐였는데?” 미오가 물었다. 고전문학 연구라고 해도 그 속에는 여러 분야가 있다. 시대만 따져도 나라 시대부터 에도 시대까지 있고, 모노가타리1나 일기 등의 산문이나 와카나 하이쿠 같은 운문, 우타모노가타리 같은 산문과 운문이 절충된 것도 있다. 그 책이 누구에 의해 언제 쓰였는지를 조사하는 전문가도 있는가 하면, 책 내용만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기요하라 씨는 산일散佚된 모노가타리 연구가 전문이래.” 낯선 단어였다. “산일이라는 건 ‘소실됐다’라는 뜻이잖아. 현대까지 글로 내려오지 않고 행방불명이 되어버린 옛날이야기 말이야.” --- pp.33-34 산더미처럼 쌓인 책을 무너뜨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안쪽으로 나아갔다. 불투명한 유리가 끼워진 미닫이문을 열자 약 10평 넓이의 방이 나왔다. 커튼이 단단히 쳐져서 내부는 어두웠지만, 이곳도 주방과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었다. 방구석에는 제법 큰 책장이 있었으나 그곳에서 넘쳐난 책이 바닥이란 바닥은 죄다 점령하여 침대나 옷장 안쪽까지 자리를 차지한 상태였다. 방 한가운데의 접이식 테이블 위에는 노트북이 펼쳐진 채로 놓여 있었다. 트랙 패드에 손을 대보니 바로 화면에 불이 들어온다. 슬립 상태였나 보다. 패스워드는 걸려 있지 않은지, 곧장 화면에 워드프로세서가 떴다. “뭔가 작성 중이었던 모양이야. 가득 쌓인 책들 사이에서…… 그렇다면 이거 졸업논문 데이터 아닐까?” “어디 봐봐…….” 미오와 나는 편집 중의 글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졸업논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논문조차 아니었다. 아니, 그래도 서론은 논문 형식이긴 했다. 제목은 ‘모노가타리의 제목에 관해 ―「아사토호」를 중심으로―’였다. --- pp.54-55 잘 생각해 보면 내 말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후지에다 교수님의 실종과 아즈사의 죽음에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정도는 경찰도 의심하고 있겠지만, 이 사건을 조사했다가 똑같은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니 그야말로 망상이다. 무슨 서스펜스 소설도 아니고. 그러나 나는 예전부터 세상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며 살았다. 이게 이야기라면 다음에는 어떻게 될까. 큰 사건 전에는 작은 전조 현상이 있다. 위험은 서서히 다가오고, 최악의 상상은 대부분 실현된다. 그건 내 나름의 경험적 법칙이나 징크스 같은 것이다. 그러나 나의 그런 예감은 어릴 때부터 신기하게도 다 적중했다. “후지에다 교수님, 아즈사, 그리고 미오까지 없어지면 나는 정말…….” “알았어.” 미오는 내 손등 위로 가만히 자기 손바닥을 포갰다. “미안해. 갑자기 여러 가지 일이 생겨서 나도 좀 이상해졌나 봐……. 진짜로 복수를 생각하는 건 아니니까.” --- p.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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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그 아이는 내 여동생이다. 모두가 말한다. 그런 아이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작은 마을에 살던 오오하시 나츠히와 쌍둥이 여동생 아오바 자매는 어느 날 동네로 이사 온 아키토와 소꿉친구가 된다. 아오바는 아키토를 처음 본 순간 그에게 관심을 보이며 분명 운명적으로 맺어질 일이 일어날 거라고 장담한다. 얼마 후, 저녁 무렵 자전거를 타던 아키토가 아오바를 치면서 그녀 얼굴에 평생 남을 상처가 생기고, 그 죄책감으로 아키토는 그녀와 절친이 된다. 소꿉친구 얼굴에 상처를 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아키토가 이리저리 휘둘릴 것임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나츠히는 사랑하는 동생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굳이 그런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오바에 대한 죄책감과 속박에 눌려 사는 아키토야말로, 아오바가 사라지면 제일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나츠히와 아오바, 그리고 아키토 세 사람은 인근 산으로 놀러 갔다가 한 폐가를 발견한다. 어린 마음에 집 안으로 들어가서 이것저것 뒤지고 놀던 중 나츠히는 안에 걸린 희고 커다란 천에 가려진 동생 모습이 마치 녹아내리듯 사라지는 걸 목격한다. 아무리 찾아도 아오바가 보이지 않자, 산에서 동생을 잃어버렸다는 충격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집에 가서는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저녁 늦게 돌아왔다고 꾸중하는 부모님에게 나츠히는 동생이 없어졌다는 말을 꺼냈지만, 부모님이 내뱉은 말은 뜻밖에도 이것이었다. “그게 대체 누군데?” 이 충격적인 사건이 있은 뒤, 시간이 흘러 대학교 4학년생이 된 나츠히는 동생의 실종 이후 여전히 뭔가를 떠나보낸 것 같은 기묘한 기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리고 뻥 뚫린 공백 속에 분명 뭔가 적혀 있을 것 같은데도, 그걸 도저히 예측할 길이 없어 자신의 인생이라는 이야기의 다음이 어떨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느낀다. 그렇게 공허함에 젖어 사는 나츠히는 대학에서 졸업논문의 지도교수이자 고전문학 담당인 후지에다 교수의 행방불명 소식을 듣는다. 게다가 알고 보니 이전에는 키요하라라는 시간 강사도 5년 전에 실종되었고, 그의 전공은 특이하게도 ‘내용마저 소실된 옛이야기(散佚物語)’ 연구였음을 알게 된다. 후지에다 교수 역시 헤이안 시대의 옛이야기나 문학과 관련해 비슷한 연구를 하고 있어서 나츠히는 두 실종 사건에서 묘한 공통점을 느낀다. 졸업과 취업이 급한 나츠히는 친구들과 교수님 실종 사건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과 정보를 가지고 떠들지만, ‘이미 실종된 지 2, 3일 후에 후지에다 교수가 캠퍼스에 나타난 걸 봤다’라는 기이한 소문 또한 많아서 이 사건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고……. 일본 독자들의 극찬 ★★★★★ 환상과 미스터리의 융합! 그날 사라진 나츠히의 쌍둥이 여동생 아오바는 어떻게 됐을까? 몽상적인 문장에 이끌려 단숨에 읽었다. 다시 한번 읽으니 또 다른 세상이 열리는 그런 마음에 남는 이야기였다. 특히 아름다운 마지막 문장이 심금을 울린다. ★★★★★ 잘 짜인 청춘 미스터리 치밀하게 구성된 이야기에 아름다운 결말. 작가의 문장력도 탁월해서 읽기에 좋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다. ★★★★☆ 부조리한 공포에 머릿속이 끓어오를 듯하다 인간의 일생이 한 편의 이야기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경험이 인생의 복선이 되어, 마지막에 결론이 날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로 아름답게 생이 마무리되길 바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복선만 가득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공포가 아닐까?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그녀가 느끼는 부조리한 공포를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투영한다. 아이덴티티가 붕괴되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 느끼고 싶다면 단연코 이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