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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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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onel Shr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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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이 새로운 사고방식은 우리보다 큰 흐름이야. 잘못된 방식으로, 잘못된 시점에 신념을 내세웠다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상처만 받게 될 거야.” 언젠가 이 설교를 나에게 해야 할 때가 올 것 같았다.
--- p.20 “애들이 보고 배울 거고, 애들까지 박해받을 거야. 당신은 외로운 늑대가 아니야. 엄마라고. 아이들을 보호해야 해. 애들이 안전하게 보고 배울 수 있는 본보기가 되어줘.” --- pp.37-38 엄마는 내게서 뭔가 빼앗아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내게 평범한 사람이라는 기분을 안겨주면서 잔인한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충동은 변태적이었다. 애당초 자기가 준 것을 내게서 빼앗으려 했으니 말이다. --- p.62 나는 부정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신념을 저장하는 공간에, 나는 내가 믿지 않는 것들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내게는 열정적인 수용보다 격렬한 불호가 쉽다.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남들에게서 무언가를 하라고 지시받는 것에 대한 혐오감이 크다. --- p.102 짜증 날 정도로 영감을 주는 오바마의 연설에 비하면, 바이든의 연설 스타일은 유쾌할 정도로 뻣뻣했다. 평범한 요점을 말하고 그것을 한 단어 한 단어 되풀이하는 것이 바이든의 심오함이었다. 할 말이 없으면 부통령이 상습적으로 끼워 넣는 “그렇잖아, 이 사람들아!” 같은 말은 힘차지도 멋지지도 않았지만, 선거가 있던 그해에는 단점을 강조하는 행동이라면 뭐든지 통했다. --- p.115 나는 루시가 싫든 좋든 이미 읽기를 다 배우고도 온갖 약삭빠른 수를 총동원하여 그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아이는 전혀 멍청하지 않았지만, 멍청한 척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학습에 대한 이런 알력은 거식증인 아이에게 부모가 아무리 억지로 먹이려 들어도 소용없는 것과 종종 비슷했다. ‘집’의 자음과 모음을 모두 다 쓸 때까지 보내주지 않겠다고 하면, 루시는 결국 마지못해 굴복했다. 하지만 마치 쫄쫄 굶다가 억지로 새 모이만큼 입에 넣은 아이가 욕실로 달려가서 토해버리는 것처럼, 아이는 다음 가정학습 시간이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구조물의 철자를 도로 모르는 척했다. --- p.184 무엇을 두려워한 걸까? 이미 당할 일은 다 당하지 않았나? --- p.272 겨우 오후 5시였지만 얼린 보드카를 호텔 오렌지주스만큼 따랐다. --- p.281 “난 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 --- p.293 현실에 존재하는 날것 그대로의 추악함을 대체할 언어는 때로 없는가 봅니다. --- p.299 자기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누군가로 대상화된 모습을 목격하는 것은 항상 불편한 일이고, 그 광경은 어김없이 충격적이다. --- p.300 “내가 왜 네 사과를 바라고 있는지 혹시…… 이해는 하고 있니?” --- p.313 “이런 상황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거야. 두 사람이 오랫동안 알고 지내면, 그중 한 사람이 더 잘되고 한 사람은 안되는 이런 상황 말이야. 한쪽이 질투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어.” --- p.317 “네 이단적인 성상파괴주의는 결국 이런 거야. 오로지 나만이 계몽된 인간이라는 자아상을 외눈박이 곰인형처럼 소중하게 가슴에 껴안고 있는 거라고.” --- p.320 그 분노는 특정한 성격이었다. 침착하고, 꾸준하고, 계산적이고, 무엇보다 차가운 분노였다. 활활 타오르는 횃불이 아니라 얼음송곳이었다. 내가 언제나 자기파괴적이었다던 에머리의 주장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 해도, 나는 그런 성향에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을 파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 pp.326-327 나는 용서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로부터의 용서도, 순전히 가상의 독자들로부터의 용서도. 잔지바에게 말했듯 회개 없는 용서는 무의미하며, 나는 내가 일말의 즐거움을 느끼며 둔 한 수에 대해 회개한 적이 없다. 그 즐거움에는, 가장 강렬했을 때조차 어느 정도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복수는 만족스러운 경우가 드물다. 그 점은 시작할 때부터 나도 알고 있었다. 이미 적었지만, 나는 감정적으로 둔감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 복수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온전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면, 나는 그만두라고 강력하게 조언하고 싶다. 효과가 없을 것이다. 무엇에 대해 복수하든, 복수는 애당초 당신이 당했던 일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 p.327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어머니는 아닐지도 모른다. 퉁명스럽고, 참을성이 없고, 때로는 불공평할 수도 있다. 내 일에만 너무 몰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대부분의 면에서 평범한 엄마였고, 아이들에게 쏟는 애정만큼은 남들과 다를 바 없었다. --- p.336 일종의 패턴이었어. 따돌림은 한쪽 방향으로만 작동했지. --- p.3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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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공평이 우리를 파괴하고 있다. 우리는 진짜 평등을 알고 있는가?
“이 소설의 가장 무서운 부분은 언어 검열이나 제도적 비겁함이 아니라 사회가 조용히, 집단적으로 거짓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는 느낌이었다. 선한 의도가 규칙으로 바뀌고, 규칙이 처벌로 바뀌고, 처벌이 광기로 이어지는 과정의 게임이 짚어낸 것들이 너무나 많다.” _2025년 프로메테우스상 최종 후보 선정 이유 * 2025년 프로메테우스상 최종 후보 작품 * 틸다 스윈턴 주연, 황금종려상 후보 동명 영화 원작 『케빈에 대하여』 작가 *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내 아내에 대하여』 작가 * 미국, 영국, 캐나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베스트셀러 * 《워싱턴포스트》 《보스턴글로브》, 미국도서관협회 선정 최고의 블랙코미디 『케빈에 대하여』 이후 20년, 라이오넬 슈라이버가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로 돌아왔다. 이번엔 지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사회적 강박, ‘정신평등주의’라는 지적 마조히즘을 패러디한 디스토피아적 이념 속에서 특유의 밀도 높은 심리 묘사와 냉소적이고 화려한 문체가 더해지며 시대의 광기를 해부한 작품으로 카타르시스를 폭주시킨다. 사유의 자유를 잃어가는 사회, 그 안에서 끝까지 생각하려 한 두 여성(피어슨과 에머리)의 40년에 걸친 우정과 배신, 모성과 권력, 숨 막히는 사유의 대결은 도파민 페이지터너라는 극찬을 받으며 뜨거운 논쟁을 불러 모았다. 평등이 종교가 될 때, 그 광기를 누가 멈추게 할 것인가? 우리 모두가 타인이 선하다고 말하는 가치를 검증 없이 쉽게 믿어버린 사이, 세상은 미쳐가고 있었다. 평등은 언제나 선한가? 그리고 그 평등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이 작품은 소위 ‘정의로운 시대’의 가면을 쓴 가짜 공평의 폭력성을 폭로한다. 라이오넬 슈라이버가 『케빈에 대하여』에서 모성이라는 신화를 해체했다면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에서는 평등이라는 사회적 금기와 현대의 성역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정치가 우정을 먹어치울 때, 왜 가장 사랑하는 사람 먼저 적이 될까? 올해 가장 치명적이고 지적인 스릴러, 두 여자의 지성적 전쟁 “넌 내 친구니까, 난 널 더 나은 사람으로 봤으니까.” “내가 왜 네 사과를 바라고 있는지 혹시…… 이해는 하고 있니?”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안전한 존재가 되려 했다. 그러다 결국,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 사랑하기 어려운 인물을 위한 소설을 쓴다는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열여덟 번째 장편소설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또 다른 문제적이며 강렬한 캐릭터 피어슨과 에머리로 독자의 심장에 문신을 새긴다. 피어슨은 십대 때부터 가장 가까웠던 친구 에머리와의 사상 대립으로 딸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어쩌면 사랑보다 소중했던 우정까지 산산이 부숴버리고 사회적으로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처참한 처지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깨진 우정의 틈으로 비로소 세계의 진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부유한 교수와 변호사 부모를 가졌으며 마성적인 아름다움으로 빛나는 에머리와 음침한 여호와의 증인 가정에서 자라난 피어슨의 결속은 얼핏 하이틴 장르에서 익숙한 여자 친구 간의 권력 관계 문법을 따르는 것 같다가도 사회운동의 일환인 정신평등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은 디스토피아를 만나며 색다른 양상을 띠게 된다. 드라마 〈셜록〉 등 지적인 모든 콘텐츠가 검열되는 야만적인 디스토피아를 다룬 이 대체역사 SF는 개인의 기질이 사회와 충돌할 때 겪게 되는 고통과 우정의 붕괴를 다룬다. 정치적으로 사회에서 추방당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훼손되는지, 캔슬 컬처가 중세 마녀사냥보다 비이성적이며 광적인 폭력이라는 충격적인 진실을 독자는 피어슨의 몰락과 부활을 통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영문과 강사 피어슨에게 생각은 언제나 검열 대상이다. 그녀는 혐오 발언이라는 지뢰밭을 피해 걷는 냉소적 생존자이며, 동시에 이 시대의 입장에서는 이단보다 불온하다.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 에머리는 정반대다. 야망 넘치는 저널리스트로서 정신평등주의의 얼굴이 되어 대중의 찬사와 권력을 동시에 얻는다. 그러나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의 진정한 잔혹함은 가장 동경하고 사랑했던 존재였던 두 여자의 관계를 사유의 경쟁으로 밀어붙인다는 데 있다.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분열을 조장하는 책이 아니라 분열의 뿌리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가장 탁월하다. “루시. 너보다 오히려 나한테 더 힘든 일이었단다.” “나한테는 힘들지 않았어요. 난 당신을 그리워한 적 없어요.” 딸이 문간에 서서 적개심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엄마를 노려보고 있었다. 『케빈에 대하여』에서 모성의 금기를 부쉈던 라이오넬 슈라이버가 이번에는 사유의 유전자가 단절된 모녀 관계를 연구한다.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서로를 반역할 수밖에 없었던 피어슨과 딸 루시의 사랑이 증오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냉혹한 실험실이다. 피어슨은 여호와의 증인 광신도였던 어머니 글렌다로 인해 신앙이라는 이름의 복종에서 탈출하고 저항하는 방법을 배웠고, 딸 루시는 사유의 결핍 속에서 태어난 복종의 세대다. 글렌다-피어슨-루시로 이어지는 3대 여성의 서사는 멜라니 클라인의 모친 살해 욕망을 현대사회의 윤리 코드로 폭발시킨다.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여기서 지성은 세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잔혹하게 입증한다. 사유를 금지한 사회에서, 모녀 관계는 신앙과 권력, 언어와 침묵의 관계로 변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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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계의 이단아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최신작이면서 역대 최고 작품.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그녀가 써온 장편소설 중 단연 걸작이다. 매우 재미있고, 때로는 불쾌하며, 물론 영리하기까지 하다. 지금까지 다뤄온 주제들 가운데서도 가장 섬뜩하고 불편한 영역을 정면으로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 《워싱턴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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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우정의 역학을 포착하는 대목이다. 정치적 견해 차이로 수십 년 동안 라이벌이면서 가장 친애했던 친구와 멀어지는 아픔을 섬세하게 길어 올린다. 잔혹한 우정의 역사를 돌아보며 에머리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보다 언제나 자신이 그녀를 더 좋아해왔다는 사실을 외면했음을 고백하는 순간, 독자에게 화자는 가장 입체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 《뉴욕타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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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 없이 살을 베듯 깊이 파고들며 피 튀기는 풍자.” - 《보스턴글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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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무섭도록 날카롭고 신랄한 풍자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 《미국도서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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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하게 재밌다. 정치적 신념의 대립으로 친밀한 우정이 파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 《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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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지 디스토피아.” - 《스코츠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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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웃기고 중요하며 이 시대에 필요한 책은 드물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동시에 피가 얼어붙는다” - 존 클리즈 (코미디언, 몬티 파이선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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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겨냥하는 핵심은 훨씬 근본적인 지점?평등을 약속하는 민주주의의 이상과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일찍이 짚어낸 미국 사회의 반지성주의가 충돌하는 그 틈새다.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그 위험한 긴장을 유머와 아이러니, 때로는 도발적인 재치로 포착한다.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놀라울 만큼 기지가 넘치고, 때로는 거침없을 정도로 직설적이며, 무엇보다 지적으로 탁월하다.” - 《N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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