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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13
1부 * 18 2부 * 130 3부 * 274 4부 * 408 5부 * 500 감사의 말 * 559 옮긴이의 말 * 561 |
Jennifer Sa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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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여신 헤라에게 바치는 선물을 찾아봐.” 그녀는 미간을 찡그렸다. “기쁘지 않나?” 그는 물었다. 제우스는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이 나를 그렇게 부른다고?” “그게 바로 당신이니까. 내가 당신에게 내리는 칭호요. 그 외에 달리 무엇이 있겠나?” 헤라는 뭐라 말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한때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수없이 많았는데.
--- p.149 아레스가 전쟁이라는 영역을 기꺼이 받아들인 만큼, 헤라는 자신의 영역에 분통이 터졌다. 그럼에도 제우스가 자신에게 결혼의 여신이라는 칭호를 내렸다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책임이었고, 헤라는 그 책임이 너무나 갑갑했다. 데메테르의 역할은 능동적인 것이다. 구름의 님프에게 명령하여 목마른 토양을 빗물로 적시거나 비를 그치게 하고, 헐벗은 밭에 옥수수 이삭을 낭창낭창 자라게 하고, 가지 한가득 무화과가 무르익도록 하고, 사과나무와 배나무를 가꾸고, 수줍은 드라이어드 나무 요정과 어여쁜 꽃의 님프를 가르쳤다. 자애로운 성품으로 인간을 배불리 먹이고, 인간이 불쾌한 짓을 하면 고장 난 쟁기와 마른땅, 흉작으로 벌을 주었다. 포세이돈은 폭풍과 지진, 바다 신들을 다스리고, 배를 난파시키거나 뗏목을 산산조각 내기도 하고, 마음 내키면 안전한 항구로 인도하느라 바빴다. 하데스가 하계에서 유령의 왕국을 다스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지만, 헤라 자신의 맥 빠지는 임무와 비교하면 그것조차 부러운 일 같았다. 결혼식은 계속 열렸고, 헤라는 일일이 축복해야 했다. --- p.163 남은 뒤처리는 헤라의 몫이었다. 여자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흔해 빠진 비극에 귀를 기울이는 것. 나는 결혼의 여신이 되게 해달라고 청한 적이 없었어, 그녀는 생각했다. 신부의 후원자가 되고 싶었던 적도 없었다. 지금 자신이 행하고 있는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억지로 맡겨진 역할이었다. 헤라는 자신의 영역이 고작 공허한 약속과 좌절된 희망, 망가진 믿음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졌다. --- p.169 헤라는 이런 위선에 화가 치밀었다. 아프로디테는 어딜 가나 불륜을 조장한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결혼의 맹세를 마구 짓밟는다. 아테나는 거인들이 언제라도 위협이 되면 짓눌러야 하는 괴물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지만, 헤라가 식탁을 둘러볼 때 진정한 괴물들은 불멸의 아름다운 육신을 입은 채 여기 모여 있었다. --- p.219 “가이아가 오로지 내 자매들이 다스리는 세상을 원했기 때문에 나를 필요로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여신들이 지배하는 세상. 하지만 우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어. 그리고 가이아는 너를 내게 보냈지. 나는 그녀가 내게 깨닫게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 p.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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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여왕 헤라 vs 여신 헤라
가려져 있던 헤라의 내면을 파고들다 우리는 여신 헤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올림포스 열두 신 중 하나로, 제우스의 아내이자 신들의 여왕, 결혼의 여신으로 대체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초창기 이야기에서 헤라는 남매였던 제우스와의 결혼을 피하기 위해 잠적했었다. 그들이 사랑으로 이뤄진 관계가 아닌, 권력을 더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결합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헤라는 아버지인 크로노스와 대항해 쟁취한 남매들이 본디 가졌던 권력이 점차 남자 형제들에게만 분배되는 것을 마땅치 않아 했고, 그 분배에 의문을 품었다. 이러한 의문은 점차 자매들과 여성 신들과의 연대로 확대된다. 이 책은 여신 헤라가 제우스에게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과정을,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헤라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그리스 신화 재해석 장르에서 독보적인 작가로 부각한 제니퍼 세인트는 제우스에게 가려져 있던 여신 헤라에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다. 더불어 신화 속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들의 목소리들도 만나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헤라의 정당한 분노와 권력을 되찾아 준 그리스 신화의 재해석 신들의 여왕 헤라에게 딸려 오는 단어들이 있다. 질투, 복수, 집착, 광기, 통제, 잔인함……. 수많은 정분을 나눈 제우스를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면서 따라온 칭호이다. 수천 년간 그리스 신화 속에서 헤라는 늘 바람기 많은 제우스의 뒤를 쫓으며 무고한 이들을 괴롭히는 악역이자, 가부장적 권력 아래 마모된 인물로 소비되어 왔다. 제우스는 자신의 행위가 헤라의 귀에 들어가지 않게 입단속을 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귀에 들어가는 것을 오히려 즐기기도 한다.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그대에게 이런 짓을 했다고 헤라에게 말했다가는, 그녀의 분노까지 이어서 네게 쏟아질 것이다.” “결혼은 당신의 영역이지, 내 영역이 아니지 않나.” - 본문 중에서 그러나 남성 중심적 기록이 지워버린 신화의 행간 속에는 원초적인 권능을 품었던 거대한 여신의 진짜 얼굴이 숨겨져 있다. 타자에 의해 수동적으로 정의되던 신화 속 여성들에게 서사와 목소리를 부여해 온 제니퍼 세인트 작가는 이 책 『헤라』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오해로 가득 찼던 여신 헤라의 삶을 치밀하고 강렬한 필치로 다시 써 내려간다. 독재자를 견뎌낸 어린 시절부터 제우스와 함께 올림포스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장대한 여정을 지나며, 헤라는 제우스의 배신과 권력 독점 속에서도 단순히 ‘위대한 왕의 아내’로 머무르지 않는다. 올림포스의 균형을 유지하는 통치자이자, 자신의 신성과 권능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거대한 권력에 맞서는 헤라의 입체적인 서사는 기존 신화가 주지 못했던 새로운 서사적 쾌감을 선사한다. 『헤라』는 단지 옛 신화의 화려한 재현에 그치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과 역사적 프레임에 왜곡되었던 한 존재가 자신의 진짜 이름과 주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제우스의 그늘에서 벗어나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헤라의 고결한 위엄은, 빼앗긴 자신의 서사를 되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렬한 영감을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