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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순간 KISS 강과 맥주 7초만 더 굿 나잇, 웨스트엔드 싱글 허니문 핏자국 얼음과 달 당신이 준 추적 체이서 Chaser 홀 시커 Hole-Seeker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미래 멸종과 생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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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정에 나타난 곡명을 확인한다. 〈추억과 함께 영원히 둘로 남는다〉. 아티스트는 이루마. 나는 길고 어딘지 슬픈 제목을 가만히 중얼거려본다. 추억과 함께, 영원히, 둘로 남는다.
--- p.32 「7초만 더」 중에서 아니, 아니, 그런 그들이 있기는 했을까. 지금 내가 앉은 테이블 끝에 묻어 있는 핏자국이 혹시 그래서 생긴 것은 아닐까 상상해본다.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알 수 없는 핏자국을 바로 그 핏자국으로 만드는 일. --- p.55 「핏자국」 중에서 왓 이즈 디스? 왓츠 더 미닝? 그녀는 영어가 어려운지 몇 단어만을 반복해서 늘어놓았다. 내가 알아들은 건 세 가지뿐이었다. 유. 타임. 프레젠또. --- p.72 「당신이 준」 중에서 50. 이론상이라면 모든 안드로이드의 수명은 동일해야 한다. 56. 그러나 실제 안드로이드의 수명은 모두 다르다. 59. 무엇 때문인가? 60. 음식 때문에? 61. 환경 때문에? 62. 감정 때문에? --- p. 111 「체이서Chaser」 중에서 지구공동설이란 요약하자면 말 그대로 지구의 속이 텅비어 있다는 거였다. 더불어 양극, 남극과 북극에는 비어 있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고 했다. --- p.121 「홀 시커Hole-Seeker」 중에서 뻔히 알면서도 나는 불시에 남편을 떠보는 척하곤 했다. 진실을 알고 있지만 거짓을 말하는 상대를 바라보는 일은 일종의 엔터테인먼트다. --- p.160 「다이아몬드는 영원히」 중에서 오늘 북 토크의 주인공이 될 책의 제목은 『고급 한국어』다. 2020년에 『초급 한국어』가 시작되었으니 벌써 15년째 이 짓을 하고 있다. 속편이라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던 출발점과 달리 어느샌가 나는 이 한국어 시리즈를 일생일대의 작업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초급’ ‘중급’ ‘실전’ ‘상급’ ‘실용’을 거쳐 드디어 ‘고급’이다. --- p.196 「멸종과 생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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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겨진 채 무의미와 싸워야 했는데
그건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승산 없는 싸움이었다.” 불가해한 비극 앞에서 반전되는 삶의 좌표 『당신이 준 것』에서 문지혁 작가는 어떤 이유도 없이 찾아온 비극에 반응하는 인물들을 들여다본다. 소설은 뉴욕의 지하철에서 방화 목적으로 뿌린 시너를 뒤집어쓰거나(「7초만 더」), 결혼을 약속한 애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하거나(「싱글 허니문」), 살인범으로 누명을 쓰는(「체이서Chaser」) 이들이 그 재앙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진중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그로써 비극에 정당한 이유란 없음을, 일상을 무너뜨리는 사건이 어떻게 삶의 방향을 완전히 뒤바꾸는지 보여준다. 장례를 치르는 내내 그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내가 1만 분의 1이라는 확률을 한 번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0.01퍼센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1만 명 중 누군가와 그 가족은 날벼락 같은 비극을 경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_「싱글 허니문」에서 “그러나 아무리 같은 문장을 반복해도 흐릿한 그녀의 얼굴은 끝내 분명해지지 않았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 드러나는 이야기의 이면 비극이 한바탕의 소란과 충격을 동반해 인물을 뒤흔든다면 무심결에 지나온 과거는 일상에 잠복해 있다가 촉매제로 인해 모습을 드러낸다. 「당신이 준」의 ‘나’는 내키지 않는 가족여행을 계획하다 옛 외국인 동료가 주고 떠난 선물의 의미를 골몰하고, 「홀 시커Hole-Seeker」에서 억지로 출장길에 오른 ‘나’ 역시 잘못 들고 온 책으로 인해 이미 결별한 가족의 이해할 수 없던 행보를 되새긴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의 ‘수진’은 자신과 같은 이름을 가진 동급생과의 불길한 조우 이후, 남편인 ‘나’와 함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겪는다. 아내는 왜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걸까. 대체 반지는 누가 보낸 걸까. 처음부터 내가 놓친 게 있었나. 있다면 뭘까. 아내의 행선지처럼 답은 묘연했다. 어디선가 희미하게 가솔린 냄새가 났다. _「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서 외국인 동료가 건넨 작별 선물, 어른이 된 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부모, 어릴 적 동경과 모멸감을 함께 안겨준 사건 등은 온전히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개인의 삶에 침입한 어떤 것이다. 이렇듯 ‘당신이 준 것’으로 인해 일상에 균열과 틈이 생기는 순간 떠오르는 작은 진실이 이 책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당신이 준 것』은 우리가 삶의 매 순간을 이해하고 있다는 착각을 가볍게 깨뜨리고, 금이 간 일상을 계속 살아나가야 하는 인물의 고요하고도 치열한 투쟁을 보여주며 묘한 위로를 건넨다. ■ 작가(문지혁)의 말 장편소설이나 소설집은 저의 특정한 한 시절을 담은 결과물이지만, 어쩌면 이 책은 온전한 제 역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란 수많은 시간과 언어, 선택과 행동이 모인 결과겠지요. 책의 제목을 두고 고민하다가 ‘당신이 준 것’을 선택한 이유는 여기 담긴 모든 글이 결국 누군가 저에게 준 것들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지켜보며 기록한 결과라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슬프거나 기쁜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나 분에 넘치는 사랑도 모두 당신이 준 것입니다. 시간과 장소와 언어와 얼굴을 바꾸어가며 만난 당신이 지금의 저와 이 작고 모난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그 당신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25년 겨울 문지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