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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가며_ ‘평생 살고 싶은 집’을 짓는다는 것
나의 주택 유전자를 찾아서 [집의 유전자 1]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우리는 왜 한옥보다 양옥집이 더 친근할까 _불란서주택 다세대는 정말 안 좋은 집일까 _다세대주택 몰라서 안 짓는 게 아니라 못해서 안 짓는다 _ 모듈러주택 ‘큰 한 채’보다 ‘작은 여러 채’가 불편해도 더 편한 이유 _제주도 외갓집 [집의 유전자 2] 집의 뼈대, 보려 하지 않으면 안 보이는 것들 콘크리트가 없으면 집을 지을 수 없을까 _연와조 연탄 가스에 중독되면서까지 구들방을 고집한 이유 _온돌 주택 구조의 역사 _ LDK 우리집 벽은 왜 울퉁불퉁할까 _벽 [집의 유전자 3] 문턱을 넘는 순간, 집은 시작된다 당신이 집에 들어갈 때 거치는 것들 _문지방 우리는 언제부터 집에 들어갈 때 선 채로 신발을 벗었을까 _현관 푸른 초원 위 그림 같은 집의 오류 _마당 [집의 유전자 4] 방, 삶의 시간이 쌓이는 장소 거실은 언제부터 거실이었을까 _거실 안방은 잠만 자야 할까 _안방 어쩌다 부엌은 집의 중심이 되었을까 _부엌 보너스 공간은 언제부터 메인 공간이 되었을까 _다락방 다락방도 집이 될 수 있을까 _다락집 [집의 유전자 5] 한국 주택 인테리어의 진화사 우리가 콘크리트에 빼앗긴 것들 _체리몰딩 IMF 이후 목재 창문이 사라진 이유 _창 불에도 타지 않고 물에도 젖지 않는 _타일 넓은 공간감을 위해 우리가 포기한 것들 _천장 너도 나도 더 하얗게 하얗게 _화이트모던 [집의 유전자 6] 아파트는 정말 집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25평 쓰리룸’은 어떻게 국민평형이 됐나 _국민평형 남향은 정말 다른 향보다 살기 좋을까 _남향 아파트는 어떻게 지어질까 _벽식 구조, 기둥식 구조 정말 아파트가 유일한 정답일까 _게이티드 커뮤니티 [집의 유전자 7] 밖과 안이 연결될 때 집은 완성된다 집 안에 정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_ 중정 주차장의 변신은 무죄 _주차장 한국 사람들은 왜 죄다 발코니를 없앨까 _발코니 집의 절반은 지하에서 시작된다 _ 반지하 [집의 유전자 8] 집은 시대와 사회를 닮아간다 집을 지으려면 꼭 땅을 사야 할까 _토지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전세의 감각 _전세 도달 불가능한 꿈 _층간소음 집에서 나오며_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는 여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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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집에 관한 자신만의 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이상향이 아니다. ‘좋은 집’이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시대와 사람의 삶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한국 주택의 유전자 속에는 이미 그런 지혜가 녹아 있다. 지난 수십 년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며 변해온 집의 구조와 재료, 생활 방식의 흔적 속에서 우리는 지금의 현실에 맞는, 어쩌면 정말로 평생 살 수 있는 단순하지만 탁월한 집의 조건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집의 원형을 되짚으며, 오늘의 삶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주거의 지혜를 복원하려는 시도다.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꿈을 잃지 않는 집, 이것이 이 책에서 내가 찾아가려는 ‘좋은 집’의 진짜 기준이다.
--- 「집으로 들어가며」 중에서 하지만 이 이름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당시 프랑스가 선진국 중에서도 세련되고 예술적인 나라라는 이미지를 지녔던 만큼, 집장사들이 그 이미지를 장삿속으로 이용했음은 분명하다. 막 시장에 등장한 아파트와 경쟁하기 위해 내놓은 일종의 상술이기도 했다. 요즘 아파트들이 외관은 비슷하지만 브랜드만 다르게 해서 분양을 하듯, 당시 업자들도 양옥에 붙일 간판이 필요했던 것이다. --- 「집의 유전자 1,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중에서 건축이라는 일은 여전히 오래된 기술과 첨단 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결국 그 건물이 놓일 땅의 조건, 주변의 기술,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완성될 수 없다. 공장에서 완벽히 만들어온 농막이라 해도 최소한의 기초는 현장에서 단단히 다져야 한다. 물과 전기를 쓰려면 주변 전문가의 도움도 필요하다. 결국 아무리 기술 수준이 높고 여건이 좋은 나라에서 만들어온다고 해도, 그 집이 자리할 환경에 맞게 다시 수정하고 조정해야 한다. 집은 캠핑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까지가 건축이다. 그러므로 “저렴하게 집을 지을 수 있나요?”라는 질문은 애초에 전제가 잘못됐다. 사람이 살아가는 집이라는 건, 결코 싸고 빠르게, 대충 지어도 되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기술자와 건축가들이 시도했지만 여전히 상용화되지 못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세상은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안 되기 때문에 못 하는 것이다. --- 「집의 유전자 1, 어떤 집이 좋은 집일까」 중에서 그런데 놀라운 건, 그렇게 불편하고 때로는 공포스럽기까지 했던 집이 정확히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가장 선명하고 강렬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대문에서 현관까지 길게 이어진 입구, 아늑하다 싶을 만큼 작았던 거실, 금붕어가 뛰놀던 식당, 작은 부엌…. 그리고 아버지가 글로도 남길 만큼 소중하게 여겼던 안방에서 쥐 소리에 놀라 온 가족이 깼던 새벽조차 추억이 되어 남았다. 우리와 가족처럼 가깝게 지냈던 반지하에 살던 가족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집은 어쩔 수 없이 연와조처럼 완벽할 수는 없기에, 오히려 우리에게 삶과 기억이라는 작은 선물을 안겨주는 것이 아닐까? 완벽하지 못한 집이라서 그 공간에서의 추억이 더욱 선명하게 우리 몸안 어딘가에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집은 하이테크High-tech와 로테크Low-tech가 교차하면서 만들어진다. 하이테크가 첨단 기술이라면, 로테크는 오래되고 성숙한 기술이다. 특히 의식주처럼 인간의 삶에 깊이 관련된 분야일수록 기술의 진화는 매우 느리고 점진적이다. 그만큼 건축에서 하이테크와 로테크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 쌀에 물을 넣고 끓여 밥을 짓는 기술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옷을 만드는 바느질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에는 재봉틀이 대신하지만, 실과 바늘로 꿰매는 기술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다. 집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외부에서도 휴대폰 하나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을 만큼 집이 최첨단 전자기기처럼 진화했지만, 여전히 망치로 못을 박는 기술 없이는 건축이 완성될 수 없다. 지금도 건축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행위들은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집을 짓기 위해 이어온 기술의 연장선에 있다. 그중에서도 구들은 조상들이 한반도에서 수만 년 동안 살아오며 다듬고 발전시킨, 가장 오래되고 성숙한 기술이다. --- 「집의 유전자 2, 집의 뼈대, 보려 하지 않으면 안 보이는 것들」 중에서 우리 조상들은 대문을 열자마자 집 안이 훤히 드러나게 하지 않았다. 마당이 보이기 전에 작은 문을 한 번 더 지나게 하거나, 누마루 밑으로 몸을 낮추게 했다.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골목을 돌아 들어가게 했다. 낯선 사람과 갑자기 마주하지 않기 위한 배려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 민얼굴이나 잠옷 차림으로 만난다면 서로 당황스러운 것처럼, 만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갖게 하려는 의도다. 실제로 오늘날까지 보존 중인 전통 한옥에 가보면 겹겹이 옷을 입은 한복처럼 담과 문, 길로 둘러싸여 안채에 닿기까지 몇 겹의 사이 공간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이는 곧 집에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고 잡념을 내려놓으라는 뜻이기도 했다. 한옥에서는 이 애매한 여백을 ‘문지방’이라고 부른다. 대청마루에 앉은 주인과 대문을 열고 들어온 손님의 시선이 겹치지 말라고 약간의 여유 공간을 배치한 것이다. --- 「집의 유전자 3, 문턱을 넘는 순간, 집은 시작된다」 중에서 그런데 한옥의 평면도를 보면 건넌방이 중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건넌방은 이미 살림을 넘겨준 시어머니의 은퇴를 위한 공간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집안의 실제 권력은 부엌과 창고 사이, 창문 하나 제대로 없는 안방에 있었다. ‘건넌방 늙은이’라는 말도 바로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새집이라면 하자로 여겼을 일들이 오래된 집에서는 불평하는 사람이 오히려 하자로 여겨졌다. 낮은 천장도, 기울어진 벽도 문제 될 게 없었다. 위아래로 길게 나 있던 창은 여닫기 불편했지만, 다락이라 깊어진 벽면에는 자연스럽게 윈도우 시트가 생겨 앉기에 제격이었다. 그 창 너머로 보이던 집 앞 공원과 오래된 나무들은 마음을 다독여주기에 충분했다. 공부에 지쳐 창가에 기대어 밖을 바라보던, 지금은 대학 교수가 된 룸메이트의 모습도 아직 선명히 기억이 난다. --- 「집의 유전자 4, 방, 삶의 시간이 쌓이는 장소」 중에서 그 시절 소비자들은 집 안의 문과 문틀은 당연히 나무여야 한다고 믿었다. 플라스틱이나 금속은 가짜처럼 느껴졌고, 몸에도 해로울 것 같았다. ‘진짜 집’이라면 무조건 목재여야 했다. 알루미늄 창호는 오로지 사무실이나 상가 건물에서나 쓰였다. 그렇게 건축의 중추적인 자재로 군림하던 목재 산업이 외환위기를 맞으며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주로 동남아시아에서 원목을 들여오던 영세 수입업체들이 급등한 환율을 감당하지 못하고 줄줄이 부도를 낸 것이다. 더 이상 원목을 수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IMF 외환위기 때 아파트 현장기사로 일하던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미안해 하시던 목창호 사장님의 얼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본사로부터 이미 계약을 마친 목창호와 문 납품이 불가하다는 최종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몇 날 며칠을 밤새워 기존에 발주했던 물량 전부를 플라스틱 창호로 변경해야 했다. 그 사건 이후였을까? 어느덧 목재로 된 문틀과 문, 창문은 우리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 「집의 유전자 5, 한국 주택 인테리어의 진화사」 중에서 최근 재개발을 위해 철거되기 전, 구반포아파트 단지를 기록한 자료가 나왔다. 완공 후 50년 동안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를 살펴봤더니, 한 집도 원래 분양 당시의 평면을 유지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못도 안 들어갈 정도로 단단하게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고치고 변해온 과정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삶은 아무리 단단하게 지어진 틀로도 가둘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됐다. 현실의 삶은 늘 시시각각 변하지만 집은 아무래도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현재의 소망을 담아 지은 집이라도 미래의 변화까지 포용할 수 있어야 이상적인 집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방이 여러 개 필요하지만, 아이들이 떠난 뒤의 삶에서는 2세대 동거형으로 바꾸거나 입구를 따로 만들어 세를 줘야 할 수도 있다. 집이 트랜스포머처럼 변하면 좋겠지만, 가능한 변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구조체라도 유연하게 짓는 집이 바로 미래의 집 아닐까? --- 「집의 유전자 6, 아파트는 정말 집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중에서 옥상 정원을 꼭 만들고 싶다면, 나는 한 가지를 반드시 권한다.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작은 ‘거점 공간’을 함께 만드는 것이다. 작은 다실, 테라스처럼 짧게라도 쉴 수 있는 벤치, 혹은 간단한 창고나 그늘막이라도 좋다. 사람이 잠시라도 머무를 이유가 있을 때, 비로소 옥상 정원은 삶 속으로 들어온다. 그 공간이 있어야 일상적인 동선이 생기고, 동선이 생겨야 정원이 비로소 살아난다. 집은 결국 내부와 외부가 균형을 이루며 작동할 때 아름다워진다. 외부 공간만 멋지게 만든다고 해도, 그것이 내부 생활과 단절되어 있으면 금세 무용지물이 된다. 반대로 내부가 아무리 편리하게 구성되어 있어도 바깥 공간이 죽어 있다면 집의 깊이가 얕아진다. 건축은 그 두 세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옥상 정원 역시 마찬가지다. 일상을 담아낼 내부 공간이 먼저 갖춰져야 외부 공간도 비로소 제 역할을 한다. 좋은 집은 몇 컷의 멋진 장면 혹은 인증샷 같은 것들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사람이 일상 속에서 오가고, 머무르고, 눈길을 주는 그 모든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집이 된다. 중정이든 옥상이든, 외부 공간을 꿈꿀 때 먼저 점검해야 하는 건 화려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 공간으로 이어지는 삶의 동선과 밀도다. 집은 결국 그곳에 사는 사람과 함께 완성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 「집의 유전자 7, 밖과 안이 연결될 때 집은 완성된다」 중에서 하지만 건축계의 이런 전방위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층간소음을 완전히 제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앞으로 아무리 건축공학 기술이 발달해도 이 목표를 완수하기란 요원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한, 즉 생활을 영위하는 한 소음은 언제나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음 없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파트에서 이웃과 함께 살면서도 마치 호텔에 사는 것처럼 아무도 모른 채 살고 싶어 한다. 무리 속에 함께 있지만 서로 누군지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어진 생활에 너무 익숙해진 건 아닐까? (...)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집은 수많은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으며 진화해왔고, 그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집이다. 층간소음도 그러한 문제 중 하나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그 해결책이 꼭 첨단의 과학과 고차원의 기술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다. 그러니, 만약 층간소음이 걱정인 사람이라면 새 집에 이사 간 날 케이크라도 사서 윗집과 아랫집에 인사해보는 건 어떨까? --- 「집의 유전자 8, 집은 시대와 사회를 닮아간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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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집을 소환하고, 현재의 공간을 기록하고, 미래의 주거를 상상하다”
_ 견본 주택의 환상 뒤에 숨겨진 진짜 내 집의 기준을 세우는 ‘주거 탐구기’ 오늘날 우리는 SNS 속 화려한 인테리어와 예쁜 집의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내 몸에 딱 맞는 집을 고르는 기준은 그 어느 때보다 희미해졌다. 거실 창밖으로 무엇이 보이는지, 이웃과 어떤 거리를 두고 사는지도 모른 채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현실에서 집은 잠시 머물다 떠나는 호텔 같은 소비재로 전락했다. 20년 넘게 집을 지어온 베테랑 건축가 김호민은 묻는다.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는 채 층간소음의 갈등만 남은 아파트에서, 우리는 과연 진정한 안식을 누리고 있는 걸까?” 집은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시대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아파트의 대표 평면을 10년 단위로 나열해보면 지난 반세기 동안의 변화가 이전 수천 년의 세월보다 훨씬 급격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도면 안에는 우리가 추구했던 행복의 형태와 시대적 욕망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저자는 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건축가인 자신조차 정작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잡지 속 화려한 집들은 동경의 대상일 뿐, 구체적인 나의 삶을 담아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해답을 멀리서 찾지 않고 자신이 거쳐온 평범한 집들을 하나씩 소환하기 시작했다.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제주도 외갓집의 기억부터 건축가였던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설계작, 영국 유학 시절의 낯선 다락집, 그리고 전세를 전전하던 아파트와 다세대주택까지, 자신이 살아온 공간들을 복기하며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집의 단서는 결국 나의 ‘주거 역사’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 책은 건축가 김호민이 스스로 수십 년간의 주거 이력을 탐구하며 기록한 주택 공간에 대한 가장 솔직하고 현실적인 날 것의 일기장이자,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건축가로서 가장 이상적인 집의 형태와 구조를 집대성한 주택 탐구 보고서다. 건축가 김호민이 한발 앞서 그린 이 청사진을 보며, 당신도 전부터 꿈꿔온 행복한 주택 공간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내가 사는 이 집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_ 대문을 열고 마당을 지나 집 안에서 옥상까지, 8가지 한국 주택 유전자로 탐험하는 ‘집의 인류학’ 저자는 이 책에서 생애 처음 집을 짓거나 평생 살 공간을 꿈꾸는 이들이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집의 기준을 8가지 ‘한국 주택 유전자’로 체계화했다. 독자들은 마치 실제 집처럼 구성된 이 책 내부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 발길이 닿는 대로 자신에게 필요한 주택 유전자를 방의 문을 열듯 자유롭게 펼쳐 읽을 수 있다. 여정의 시작인 1장에서는 ‘우리는 어떤 집을 원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무심코 전제해온 주거의 기준을 다시 묻는다. 이어 2장에서는 콘크리트와 연와조, 온돌과 석고보드 등 익숙하지만 낯선 건축 용어 뒤에 숨겨진 역사와 참뜻을 통해 집의 거시적 구조를 머릿속에 그리게 한다. 본격적으로 집 내부로 진입한 3장에서는 현관과 문지방, 마당이 그려내는 한국 주택 전통 특유의 여유롭고 고즈넉한 출입 문화를 다룬다. 4장에서는 거실, 안방, 부엌, 다락방 등 실제 거주 공간을 통과하며 한국인의 가족 문화와 생활 양식의 변천사를 추적하고, 5장에서는 그 공간을 채운 몰딩, 창호, 타일 등 인테리어 요소들이 시대적 요구에 따라 어떻게 진화했는지,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 취향의 기원을 되짚는다. 6장부터는 시야를 넓혀 한국 주거의 거대한 줄기인 아파트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국민평형의 탄생 비화부터 남향에 대한 신봉, 한국형 아파트 단지만의 독특한 시스템인 게이티드 커뮤니티까지 오늘날 우리 삶을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주택 유전자인 아파트 시스템을 점검한다. 이어 7장에서는 발코니, 주차장, 중정, 반지하에 이르기까지 안과 밖이 만나는 경계 공간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마지막 8장에서는 집의 물리적 경계를 넘어 토지 문제, 전세 제도, 층간소음 등 현실에서 맞닥뜨리는 주거의 사회문화적 쟁점들을 짚는다. “한국 주택의 유전자 속에는 이미 오늘의 우리가 누릴 공간의 지혜가 모두 녹아 있다!” _ 모듈러주택, LDK, 반지하, 주차장, 국민평형… 나만의 집을 짓고 싶다면 고민해야 할 ‘집의 언어들’ 3대째 건축가 집안에서 자라나, 어린 시절부터 도면과 시공 현장을 일상생활처럼 경험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그동안 낡고 불편한 것으로 치부해왔던 과거의 건축 기술, 즉 ‘로테크(Low-Tech)’의 새로운 가치를 복원해낸다. 그는 모닥불을 보호하기 위해 움막을 치고 최소한의 공간을 발명한 건축이라는 기술이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로테크이며, 수천 년의 시간이 축적된 인류의 노하우를 오늘날 현실 주택 건축에 도입할 수 있다면 각자에게 맞춤한 ‘평생 살고 싶은 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책에는 부엌과 화장실이 본채와 떨어져 있어 오히려 삶의 리듬을 만들어냈던 제주 외갓집의 기억, 그리고 최첨단 아파트 현장에서도 여전히 핵심 기술로 쓰이는 봉투 도배 기법 등 과거의 지혜가 어떻게 현대 건축의 기술과 결합해 작동하는지 풍부한 사례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한옥의 전통 건축 양식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저렴한 인건비 덕분에 가능했던 하이브리드 건축의 하나인 ‘연와조 구조’가 새로운 리모델링 방식으로 부상하는 이유, 극심한 주거난 속에서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도시의 소중한 주거 대안이 되어준 ‘반지하’ 등 우리 곁에 늘 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던 공간들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더한다. 저자는 대중적인 편견을 뒤집는 현실적인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건축가로서 거주 만족도가 가장 높았던 ‘다세대주택’의 가능성을 제안하고, 어쩌면 미래 주택 문제의 해법이 될 ‘모듈러주택’의 장단점을 자신의 이지홈 프로젝트 경험을 통해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나아가 한국의 가장 보편적인 주거 시스템이 된 아파트의 ‘게이티드 커뮤니티’를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한국 주택 유전자로 받아들이며, 층간소음 대비책 등 그 안에서 살아갈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거주 전략까지 제시한다. 당신은 지금 어떤 집에 살고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살면서 한 번쯤은 내 몸과 마음에 딱 맞는 공간이 무엇인지, 그 공간을 어떻게 나의 삶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집이란 가장 사적이면서도 은밀한 삶의 베이스캠프다. 영국 런던과 서울을 넘나들며 다양한 주택 시공 사례를 경험하고, 할아버지로부터 시작해 아버지를 거쳐 자신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 가까이 계승된 풍부한 건축 지식과 실전 노하우를 바탕으로 평생을 ‘좋은 집의 조건’을 탐구해온 저자는 책에서 이렇게 단언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집은 결코 싸고 빠르게, 대충 지어선 안 된다.” 베테랑 건축가의 꼼꼼한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살고 싶은 집의 기준이란 결국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 몸과 마음이 기억하는 주택 유전자의 줄기 위에 세워져야 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몇 컷의 이미지가 아닌, 매일의 평범한 하루 속에서 저절로 완성되어가는 가장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집의 모습들을 찾아가기 바란다. ? |